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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국의 국왕들이 물러갔다.
“칠등공신! 아스톨포 샤를로트는 나오라!”
인간들로부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 만 이 내 다른 종족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았다. 잘 모르는 이지만, 그래도 박수를 쳐줬다. 적이 아니기에, 그럴 여유를 가졌다.
그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아스톨포가 붉은 양탄자에 섰다. 천천히 걸어 나가며 자신과 큰 인연이 아님에도 박수를 쳐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는 대단히 겸손한 모습으로 받아들여 졌다. 다른 공신들은 그저걸어갔기 때문이다. 아스톨포는 귀족이었기에, 이 세계의 귀족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것보다 그 상황에서 겸손하게 구는 것이 대중들을 더욱 기쁘게 한다는 걸 잘 알았다. 대중에 속한 약자를 괴롭히는 건 스포트라이트가 없을 때 하면 된다. 돈을 펑펑 쓰는 것도 대중들에게 들키면 안된다.
복권 1등에 당첨되는 순간, 종교의 이름으로 벌거벗은 채 달려오는 털 짐승들을 마주한다면 깊게 공감할 터다. 이권을 가지는 순간, 사람들은 짐승이 되어서 그걸 같이 누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척!
발로 옆의 발을 치며 소리를 낸 아스톨포가 바로 섰다. 드낙이 빙긋 웃었다.
“이번 전쟁에서 홀로 나서서 용병 지구인 소속 군인들을 잡아 죽였다. 수많은 전쟁 병기를 일으키려는 걸 막아섰다!”
아시톨포는 빌리언즈에 탑승하려는 용병 지구인만 찾아다녔다. 인조인간은 피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세뇌되었고, 인신들의 만신전에서 입맛대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피로 만든 전신 갑주를 대단히 많이 보급했다. 개인으로 이 정도의 보급 활동을 펼친 이는 전무하다. 모두 세력의 힘을 빌렸다.”
그 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덕에 대부분 인간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전신 갑주가 돌아갔다. 말단조차도 전신 갑주를 입고 전쟁터에 나설 수 있었다.
“병사들의 생존율을 올린 공이 있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 모든 말을 들은 아스톨포가 그제야 무릎을 꿇었다. 드낙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국제 연합 도시 밖에 그를 위한 새로운 부속 도시를 건설할 것이다.”
흡혈귀는 인간에게 기생하듯이 살아가야 한다. 소비를 통한 경제 부흥을 노리는 드낙에게 아스톨포는 훌륭한 재원이다.
또 하나의 산업은 그 자체로 경쟁성을 가지고, 돈을 불러오고 나가게 한다. 돈 주고 사고 팔게 되는 인간의 피는 인간들을 더욱 이롭게 할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피를 뽑으면 수십만 원돈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헌혈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 다.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시대.’
그 속에서 드낙은 군림하며 돈이 없어도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무후무한 지배자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순이 이 차원을 맑게 만들 터다.
“아스톨포 샤를로트에게 부속 도시 시장직을 내린다.”
흡혈귀들과 그들을 추앙하고, 그들에게서 일을 받아서 일하는 이들이 살게 될 부속 도시다. 서서히 발전하며 국제 연합 도시의 옆에서 알짜배기 산업을 일굴 터다.
‘위상을 높이면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오기 마련이지.’
땅을 지배한 자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건물주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또한 아스톨포 공왕은 공왕 직속 건강관리협회를 신설하여 협회장으로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라!”
“명을 받듭니다.”
아스톨포가 고개를 숙이며 조아렸다. 강대한 권한과 직함이 내려올 때, 더더욱 겸손해야하는 것이 귀족적인 모습이다.
‘남들은 못하는 짓이지.’
서민들은 조금만 큰돈이 들어와도 자랑하기 바쁘다. 부자가 되지 못한 자들은 부자처럼 되기 위해서 돈을 펑펑 쓰지만, 부자들은 자신이 부자라는 걸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질투와 시기를 받고, 종종 험한 꼴을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내’가 아니라 ‘부자 새끼’라 지칭되기 때문이다.
귀족은 더더욱 시기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아스톨포는 많은 걸 받았을 때, 환호성을 내지 르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았다. 오크들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지켜보는 옵시디안 가문은 걱정이 피어올랐다.
‘너무 담백해서 당황하실 것 같은데…….’
다른 이들도 아스톨포가 드낙으로부터 받은것에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원하지 않은 오해였다.
“금궤 L800관을 하사한다.”
훈장도 받았다. 황금에 강물이 흐르는 걸 새겨놓고, 그 위에 아스톨포가 배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피의 강을 항해하는 아스톨포를 형상화한 것이다. 흡혈귀는 흐르는 피와 함께 흐르는 존재다.
그는 훈장에 크게 만족했다. 아직 훈장 등급이 결정되지 않았기에 훈장은 그저 훈장이었다. 등급은 나중에 뒤에 새겨질지, 그건 알 수 없다. 전쟁 전에도 많이 준비했지만, 전쟁 이후에 필요한 게 더 많았다.
눈 밑이 검은 게제라스 총리는 눈두덩이를 만졌다.
‘앞으로 남은 공적자의 숫자는 9만 명…….’
그에 대한 모든 걸 주관해야 한다. 드낙은 이를 기록에 담아서 전 종족에게 배포한다고 했다. 또 편집본을 만들어서 공적자 개인들에게도 자신들의 모습만 담긴 걸 배포할 생각을 가졌다.
전쟁에 참여하면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60년이 넘도록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쟁을 ‘환상적인 모험’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전쟁을 겪은 베테랑은 전쟁을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전쟁하고자 하는 자들은 전쟁을 겪지도, 병사로서 살아가지도 못한 이상주의자들이다.
드낙은 이를 양산하고자 했다.
싸우고자 한다면 싸울 수 있는 멍청이들이 필요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해야했다. 지배자들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나선다면 일반 보병은 재미를 위해서, 남들이 다 하니까,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 종족이 싸우니까. 그런 하찮은 이유들로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했다.
모병제가 있다고 해도, 모병 또한 그런 마음을 지닌 자들이 와서, 새로운 정신 무장을 해야한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개체를 보유해야 한다. 훈련병도 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오기 때문이다.
전쟁은 좋은 것. 전쟁으로 얻는 건 자신의 사회계급 상승. 그렇게 생각하게 하려면 그들을 대접해 줘야 했다. 실제로 드낙은 그보다 더 독하게 전쟁참전자들을 대우해 줄 생각이었다.
나라를 지킨다는 숭고한 이들! 나라를 위해서 죽은 숭고한 용사들! 그렇게 목청껏 고함을 지르며 다닐 생각이었다. 기억에서 잊힐 만하면 그들을 공개적으로 치하하는 걸 반복할 것이다. 굳이 드낙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통해서 꾸준히 진행할 생각을 가졌다. 실로 악독한 행동이었다.
그건 중립신,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대업을 망가뜨린 자가 걸어가야 할 피의 길이다. 언제찾아올지도 모르는 차원의 적들을 계속 상대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필멸자가 죽을지도 알수 없었다. 대신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는 차원 장벽과 테라를 만들 수는 없었다.
‘온전한 악마가되니 알수 있다.’
전에 했던 중립신에 대한 의심을 모두 지웠다. 그는 분명 테라와 굳건한 차원 장벽을 위해서 희생했을 터다. 수만 년이 지나서 다시 깨어나겠지만 그 희생은 수만 년에 달하는 세월만큼이나 큰 희생이다.
‘중립신은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다.’
결국, 그도 방식은 다르지만 필멸자를 위해서 살아가고자 한 것이다. 그 탓에 다른 인신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
‘하지만 날 죽이려고 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게 현실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에게 손해를 끼치고 피해를 주려고 한다면 결국 그 일은 전복될 수밖에 없다.
드낙은 심호흡을 하며 아스톨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게제라스는 그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조금 넋 놓자 대신 고함을 질렀다.
“팔등공신! 덕지덕지 뚱쥐는 앞으로 나와라!”
전 종족을 대표해서 공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 속에서 활약했던 이들이 공을 받을 차례다. 덕지덕지 뚱쥐는 자신의 이름이 십등공신 안에 들어가자 눈물을 쏟아냈다. 옆에 있던 리전장이자, 뿔 쥐 위원들 또한 눈시울을 붉혔다.
덕지덕지 뚱쥐는 녹슨 리전(Rusty Region)의 소속이었고 그들은 그저 떼(Swarm)로 몰려다니는 리전으로 활약했기에 높은 수준의 리전은 아니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특출난 점이 없던 그가 팔등공신으로 여겨진 건 축하할 만한 일이었지만 눈시울을 붉힐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덕지덕지 뚱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축하한다! 찍찍!”
대장 쥐가 그를 껴안으며 다독이자 다른 뿔쥐 위원들도 냉큼 다가와서 그를 껴안고, 토닥여줬다.
“찍찍!”
쥐 소리를 내며 코를 푼 덕지덕지 뿔 쥐의 콧물이 대장 쥐의 털에 묻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 치 않았다.
그는 서둘러 양탄자 위를 걷기 시작했다. 살이 뒤룩뒤룩 찌고 털에 둘러싸인 탐스러운 배는 완벽하게 D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그 속에 얼굴을 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뿔 쥐들은 지하 식량 개혁을 누구보다 빨리했다. 인구는 식량의 증가와는 확연하게 다르게 폭증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그 덕에 이제는 너무 많은 식량이 보급되고 있다.
더불어 뿔 쥐들의 산업화로 인해서 단련하는 시간도 하루에 4시간에 불과했다. 전과 확연하게 다른 활동량 덕분에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특히 덕지덕지 뚱쥐는 대장 쥐의 풍채를 닮고 싶어서 열심히 먹은 탓도 있었다.
배를 출렁거리며 덕지덕지 뚱쥐가 드낙의 앞에 섰다.
“덕지덕지 뿔 쥐는 모두가 방어선 수비전을 펼칠 때,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도와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공세를 펼쳤다! 그 공은 실로 놀라우며, 전략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단히 헌신적인 전술 행위다!”
드낙은 직접 그를 껴안아 주며 등을 두드렸다.
“고생했다. 너는 자격이 충분하다.”
“찍찍!”
덕지덕지 뚱쥐가 오열했다. 드낙이 크게 웃었다. 이런 뿔 쥐가 있을 줄은 참으로 몰랐다. 더욱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 다!”
“그럼 내 옆에 서고 싶다는 뜻이냐?”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빨리 원하는 것을 말하라. 나는 이차원계의 지배자다. 못하고자하는 것이 없으며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모두 행할 수 있다.”
덕지덕지 뚱쥐가 고민했다. 물론 논공행상을 앞두고 있어서 많은 걸 생각했었다. 이곳에 온 이들은 모두 논공행상의 앞에 설 공적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저 팔등공신에 속한 것이 놀라웠다.
‘더 높은 걸 말해야 할 텐데.’
어떻게든 자신과 자신의 리전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
녹슨 리전의 장점은 숫자다. 최근에는 덕지 덕지 뚱쥐를 따라 해서 많이 먹어서 돼지들이 많았다. 뿔 쥐 최정예 리전이라 불리는 배불뚝리전과 어떻게든 체급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때문이다.
‘다른 리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성과.’
이를 생각한 덕지덕지 뚱쥐가 이내 대답했다.
“아스톨포 부속 도시(Annexed city)에서 저희 녹색 리전의 영토를 얻고 싶습니다. 그곳지상에 저희 리전의 땅을 원합니다.”
“좋다!”
드낙은 거침없이 확답을 내줬다. 아스톨꼬와 녹슨 리전은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상에 영토를 가진다는 건지하에 있는 지하 연합이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이기도 했기에 특출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지. 상위종, 흡혈귀로부터 많은 걸 얻으면서 시너지 효과를 크게 가져갈 것이다.’
뿔 쥐와 흡혈귀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했다. 흡혈귀 뿔 쥐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드낙은 강제할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그리될것이분명했다.
그 강력함은 더욱 이 차원의 수준을 높게 만들 터였다.
“금궤 1,500관을 하사한다!”
그가 물러갔다. 그는 뿔 쥐 위원들에게 가지 않고, 바로 녹색 리전의 공적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팔을 들어 올리며 그들의 리전 장을 맞이했다.
“흐흐흐!”
“하하하하!”
“찍찍!”
얼싸안았다.
녹슨 리전이 창설된 뒤로 많은 햇수가 지났다. 거의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드낙으로부터 치하를 받았다. 이렇게 크게 주목된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구등공신! 디아볼로스, 칼리스투스는 앞으로 나오라!”
게제라스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칼리스투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십등공신으로 해달라고 했거늘, 어째서 내가구등공신이지?’
드낙의 꿍꿍이가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칼리스투스는 알 수 없었다. 고작 한 등수차이였지만 알게 모르게 불안했다.
그가 지금 보여주는 면모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초월자, 악마의 격에 완전히 올라선 드낙은 수많은 곳에서 음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