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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에필로그 (7)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크온은 노래를 불렀다. 국왕이 라는 자가 말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으로 감사를 표현했다. 그만큼, 투자 정치제도는 엄청난 정치체제다.
‘돈 있는 이들을 위한 정치체제.’
돈을 많이 집어넣은 순서대로 표를 획득할수 있다. 한 명이 여러 개의 표를 지닐 수 있으므로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토지를 비롯한 수많은 사업체를 굴리고 있는 아크온은 그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을 터다.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강자에게 들러붙는 기생충 같은 짓거리를 하므로 더욱 수월하게 으뜸이 될 수 있었다.
1달러 투척하는 것과 1억 달러 투척하는 건 다른 법이다. 금권정치(金權政治)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투자 정치제도였다. 이기는 놈이 계속 이기는 정치를 허락한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끔찍한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래도 드낙은 당당했다.
‘아니꼬우면 이주하면 되니까.’
딴 나라 가면 된다. 손쉬운 일이다. 그것이 국가의 지배자들을 통제하게 될 터다. 소비자가 있어야 기업이 돌아가고, 경제가 움직인다. 밑에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면 대부분이 소모된다.
밑에 있는 벌레 같은 것들이 득실거리면서 활발하게 흙을 퍼먹어야 그 위에 사람들이 잘먹고 잘산다. 그런 벌레가 없어진다면? 생태계는 순식간에 멸망한다. 벌레의 중요성은 계속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벌레가 소중한 줄 모르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사도 벌레처럼 많으면 최저 생계비를 받으며 사람들을 치료하게 될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그만큼 중요하다. 의과대학 정원수를 늘리겠다고 하면 왜 득달같이 난리를 치는지, 모두 그 비밀을 애써 외면한다. 사람이 죽어도, 나 자신의 직업적 가치가 더 우선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사조차도 그러할진대, 다른 건 얼마나 끔찍한 지알수 있다.
그렇기에 드낙은 백성들이 나라를 선택할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물론아직은 시기상조지.’
똑똑한 백성을 만들고 나서 해야 할 일이다. 현재 다종족 연합의 교육은 대단히 실용적이다. 수학을 배우기보다는 실생활에만 존재하는 수학만 배우고 끝이다. 심지어 배우지 않아도 된다.
간단한 셈만 할 줄 알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밑바닥 인생일수록 수 학이 필요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신 자격증 시스템을 통해서 교육 시간을 단축하고, 백성들의 질을 끌어 올리는 데 집중하는 편이었다. 검술부터, 마법, 연금술을 비롯한 목공 등등. 모두 필수교육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격증을 따야 했다. 못하면 도태될뿐이다. 그런 놈들까지 챙겨주기 싫었다.
아크온의 옆에 서 있는 도렌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반대했는데 기어코. 끝까지 변경하지 않았군.’
확정되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지배자는 사자의 가면과 여우의 가면을 언제든지 번갈아 가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배자의 번복은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도렌은 끝까지 아크온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기어코 일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국가의 통일성마저 저해하게 된다는 걸 왜모를까.’
상위국(Superior Country)이 된 자치 왕국의 통일성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그 덕에 공왕의 칭호가 국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드낙은 오히려 상위국이 분열하길 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국양제(一國兩制) 라니.’
기가 찼다.
극진하게 감사를 표하는 아크온을 지 나 드낙은 도렌의 앞에 섰다. 드낙이 그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말했다.
“마음에 변화는 없는가?”
논공행상에서 그렇게 묻는 건 드문 일이다. 드낙과 도렌 사이에 있는 문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의도적인 말이었다.
‘도렌은대나무다.’
적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었다. 대놓고 친서 민적인 정책을 쏟아내니, 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돈이 많은 이들은 여유롭고 돈을 버는 시간보다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를 늦추기 위해서는 약간의 연기가 필요했다.
“없습니다.”
“그런가알았다.”
드낙이 그렇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도렌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었다. 가벼운 특별대우조차도 드낙의 위치에서는 대단하게 여겨진다. 유명해진 시인의 시를 시인이 아니라고 해도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것과 같았다.
“도렌 국왕은 자신의 영토에 사는 이들에게 기본 생계비를 지급하고, 그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재산을 33등급으로 나누어서 정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주겠다. 예외는 없다.”
다른 국왕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미 들었지만, 계속 반대했었다. 확정이 났지만 그래도 편지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도렌을 회유했고, 도렌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또 번복되었다. 확답을 준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를 풍긴 것이 컸다. 도렌은 ‘예’와 ‘아니요’가 확실한 지도자다.
‘미친놈인가!’
길게이와 아크온은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도 안 하는 백성들에게 돈을 준다는 개념,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대단한 돈이 아니라도, 돈 자체를 쥐여주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자신과 그들은 다르다는 신분제적 사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컸다. 특히 도렌은 평민 출신이라서 평민을 대표하는 정책만 내놓는 편협한 자로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망하겠군.’
비웃음을 짓기도 했다. 진심으로 그들은 도렌이 관리하는 땅이 망할 것으로 생각했다. 게 으름뱅이가 넘쳐나는 땅이 될 터다.
“상위국의 국왕들에게는 금궤 2천 관씩 하사하겠다.”
그들은 금궤를 챙겨서 물러갔다.
드낙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행사는 대단히 중요하지.’
많은 이들은 드낙의 권세를 보고 느낄 것이다. 허투루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무슨 행사가 있다 하면 헐레벌떡 침 닦으며 달려오는 정치인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그런 행사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게제라스 총리가 외쳤다.
“육등공신(六等功臣), 세린! 발마룽! 포낙서스는 앞으로 나오라!”
그 어떤 칭호도 없이 세 명이 나섰다. 포낙서 스는 칠흑의 거인이었고, 발마룽의 덩치 또한 대단히 컸다. 헤드스 하이에나를 출산하는 몸을 지닌 여왕 발마룽은 추악하다고 여겨지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세린은 새하얀 꼬리를 내밀며 앞으로 나섰다. 새하얀 피부에 칠흑처럼 어두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깨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가슴골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일에 잔뜩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괴물 두 마리에 매력적인 미녀가 한자리에 있는 건 실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드낙이 나서서 주관했다. 적어도 십등공신까지는 드낙이 직접 주관할 생각이었다.
“세린은 앞으로 나와라.”
“예!”
그녀가 앞으로 나오며 무릎을 꿇었다. 고개까지 조아렸는데, 드낙이 이를 말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서였다. 하지만 세린은 기어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이마를 땅에 한 번 찍고 고개를 폈다.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상황에 따라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 인간은 대쪽같은 인간을 좋아하지만, 90%가 상황마다 태도가 다르다. 거지새끼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미인을 보면 절로 그 곁에 머물고 싶어 한다. 아첨을 받고 좋아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저 경계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연금 물약의 단가를 낮추고, 보급량에 속하는 연금 물약의 양에 크게 공헌한 세린은 그 뒤로 차원 전쟁의 일선에 서서…….”
대충 뭉쳐져서 공을 치하했다. 세 명이 나눠서 받아야 했는데 공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 다수일 경우에는 그냥 뭉쳐서 답변했다. 나중에 하나하나 나누어서 더 자세한 것을 받을 터였다.
행정력의 부족. 논공행상을 빨리하려는 다급함이 만들어낸 결과다.
객관적 지표를 내어주는 건 1년 뒤가 될 터였다. 그때 가서야 상장을 수여할 수 있다. 상장의 크기는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한다.
‘끝난게 끝난게 아니지.’
드낙이 웃어 보였다. 희생자들이 너무 많았지만, 동시에 성공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게 전쟁을 수행한 지배자의 책임이며 의무다.
한 번으로 만족하고 끝낸다면, 그 누구도 그를 위해서 검을 들어 올리지 않을 것이다.
이합집산하여 다른 가치를 드낙보다 더 높은 곳에 올릴 수 있다. 타락, 성교, 변질, 금과술. 수많은 다른 가치들이 드낙보다 우선될 수 있었다.
“육등공신에 속한 삼위 변종 악마들은 모두 공작(Duke)의 작위를 수여한다.”
“명예를 드높이겠습니다!”
세 명 모두 목소리를 냈다. 삼위 변종 악마는 그 어떤 작위도 없었다. 애초에 정치적 활동을 주도적으로 펼치지 못했다. 북부 불모지의 땅은 엘프들의 시험으로 평범하게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세린의 앞에 있었는데, 이제 그녀에게 원하는 것을 내어줬다. 그건 그들을 위한 건국선언이다.
“북부 불모지를 국토로 지니며! 초월자 드낙으로부터 잉태되어 나온 권속 악마를 국민으로 두고! 통일된 언어와…….”
수많은 선언이 이루어졌다.
“드낙 악마를 위하여 존재할 것이며!”
그 속에는 강령 같은 것들도 존재했다. 건국선언문 뒤에 국명이 표현되었다.
“삼위 정부(Trinity Government)의 건국을 선언한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로써 새로운 국가가 또 탄생했다. 권속 악마들의 국가였다. 그의미만으로도 권속 악마들은 그곳에 속하려고 할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권속 악마들을 관리할 수는 없는 법이지.’
권속 악마에게조차도 일정 부분 자유를 주고, 휴가를 주려고 했다. 인간을 위해서 죽을 권속 악마가 아닌, 인간과 다른 종족과 함께 똑같은 지위를 권속 악마들에게 주고 싶었다.
우월한 지능과 지성은 독립성을 가지게 된다. 드낙은 이를 통해서 더 우월한 권속 악마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저 잠만 자면서 각성제만 토해내는 권속 악마와는 다른 권속 악마를 통해서 자율행동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알아서 잘할수 있는 놈들.’
그걸 원했다. 거기에 더해서 드낙은 훈장을 들어 올렸다.
단순히 세린은 삼위 정부의 공작이 아니었다. 새로운 직책도 맡았다.
“북부 불모지 연금술사단(Northern Wast이and Akhemisthood)! 대연금술사(Chief Akhemist) 세린!”
훈장의 하단에 쓰여 있는 것을 드낙이 크게 읽었다. 이를 세린의 드레스에 달아줬다. 옷이 조금 내려갔고. 보조관 하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실크로 된 스카프를 가져왔다. 세린이 이를 어깨에 둘렀다. 연보라색으로 된 깔끔한 스카프라 검은색에 잘 어울렸다. 거기에 훈장을 달았다.
그다음에 발마룽이 쿵쾅거렸다. 자세를 고쳐 잡는 소리였다. 발마룽이 예를 갖추었다.
“발마룽에게 공작의 작위를 수여한다. 북부불모지 방위군(Northern Wasteland National Guard)을 창설할 것이며, 그는 방위군 장관(National G니ard Secretary)에 임명한다!”
“예!”
그 또한 훈장을 받았다.
포낙서스도 공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북부불모지 연구소(Northern Wasteland laboratory)의 연구소장(Research Director)으로 임명되었다.
특히 빅데몬 프로젝트는 앞으로 드낙이 잔뜩 힘을 줄 곳이라 되레 크게 여겨지지 않는 연구소장 같은 직함을 받았다.
대단한 건 약하게 보이고 싶은 게 드낙의 음흉함이었다. 1억짜리 기업처럼 보였는데, 천조짜리 기업인 셈이다.
“삼위 정부의 영토는 북부 불모지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옛 엘프들의 영토였던 서북부일체를 포함한다.”
엘프들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이 다. 그곳의 땅은 대단히 양질이기에, 헤드스 하이에나들이 가축을 키울 땅으로 적합했다.
“마지막으로 발바룽 여왕에게 권능을 하나내어주겠다.”
드낙이 발마룽을 바라보았다. 발마룽은 대단히 의욕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발바룽은 거대한 몸을 지니고 있으며, 헤드스 하이에나를 연거푸 출산할 수 있는 강인한 몸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그만큼 더 많은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강력한 권능이 발마룽에게로 스며들어 갔다. 그 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더 커졌으며 더 길어졌다. 날렵해지고, 세련된 검은색의 갑옷 같은 표피가 자리 잡았다.
검은색 악마 강화.
하체의 길쭉하고 주름이 많이 잡혀있었던 벌레 같은 하체가 검은 표피로 뒤덮였다. 최신형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길쭉하고, 날카로운 곤충 하체가 만들어졌다.
상체는 인간처럼 변해갔지만, 검은색의 곤충껍질은 여전히 이를 덮었다. 긴 검은색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지고, 머리 또한 미녀로 변했다만, 덩치는 더욱 커졌다. 권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빅데몬 프로젝트에 쓰일 권능이지.’
발바룽에게도 내어줬다. 이제 발마룽은 단순히 출산하고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전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아아아아!”
발바룽이 감탄하며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그토록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등에 달린 날개를 펼쳤다. 여섯 쌍의 날개는 곤충의 날개였지만 그곳에서 푸른 마력이 쏟아졌다. 마력출력까지 높인 전투형 몸체였다.
드낙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