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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에필로그 (6)
수많은 이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준 인형협곡의 시연이 끝났다.
‘점령지를 점령하는 건 로켓이 아니다. 통나무 미사일은 한계가 존재하지.’
수백만 개가 있어도 한계가 있다. 수억 개가 있어도 한계가 분명하다. 무한대로 존재해도 명확한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건 바로 군인이 가지고 있는 군홧발. 통나무 미사일에는 그 발자국이 없었다. 그 발로 상대의 땅을 짓밟고 지나가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 더욱이 일반 시민들,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미사일보다는 군대가 더 매력이 있다.
‘물론 강철 인형도 한계가 있다.’
강철 인형 지휘관 ‘코린 도르브(Khorin dorv)’의 숫자는 아직도 다섯에 불과했다. 나무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굼뜬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반마(半魔)가 만든 나무라서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엘프 따라가다가 대가리 박살이 난 경우지.’
장군 나무(General tree)는 엘프의 배양소와 닮았다.
카득, 카득.
모든 것이 끝났기에 마법 시야가 꺼지고, 덜컹거리며 파손되는 듯한 소리를 냈다. 반영구적으로 쓸 수 없었다. 투명한 철 구조물 내부에 있는 연금 물약이 바짝 마르면서 철에 균열을냈다.
이를 치우고, 식사 시간이 돗?다. 한쪽에서는 논공행상에 대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보여줘야 했기에 사전 준비가 상당히 오래 이루어졌다.
“여기에요?”
“그건 가장 큰 영상 장치잖아요. 중앙에 둬야죠”
그것은 트리플 이미지 아티팩트라 불리는 대단히 큰 영상 장치였다. 가장 큰 특징은 시각, 청각, 후각을 상대에게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해당 장치의 기준으로 전방위를 볼 수 있었다.
드낙은 이를 통해서 논공행상 현장감을 주고, 많은 필멸자에게 ‘동기부여’를 할 생각이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동기부여가 되겠지 만…….그래도 해야한다.’
소비 위주 경제는 잘 먹혀들어 갔다. 필멸자들은 사기 위해서 살게 될 것이다. 끝없이 그굴레에 굴종할 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신념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다. 출셋길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공무원조차도 실력이 있으면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다.
옛날로 치면 왕족 혈통을 따라간 천민이 대장군에 올라서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출셋길은 신념이 있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책 한 권 읽고 신념을 울부짖는 짐승 같은 놈들이 섞이겠지만 솎아내면 될 일이었다. 그런 악독한 벌레들 때문에 신념자들을 등용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신념이 없어서는 안 되는 직종은 의외로 많다. 꾸준히 노력하고, 새 물을 부어줘야 했다. 대개, 기성세대는 신세대와 비교하면 밀리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끝없이 노력해야 했는데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순찰자를 보고도 신념 있는 이들을 중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눈깔 병신이지.’
지금은 신제국으로 넘어갔지 만, 세상에는 많은 신념자들이 존재한다. 이를 계속 받아들인다면 다종족 연합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기 이름 남긴 채 원자력 발전소의 깊은 냉각수 아래로 들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이들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런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태양이 아닌 그림자만 보고 손사래를 치는 이들보다는 태양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논공행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기록되어 전 세계에 있는 이들이 봐야만 했다. 값진 인생의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논공행상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게제라스 총리의 말에 드낙이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숨겨두었던 악마의 날개를 등에서 뽑아냈다.
왕관을 쓴 드낙은 화려한 백색과 금색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다양한 색의 보석이 달린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 반지는 하나하나다종족 연합의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다. 드낙의 가슴팍에는 다양한 종족을 백색 바탕에 황금으로 자수했다. 복장부터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드낙의 시선이 왕좌의 옆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엄청난 양의 금으로 만든 금궤와 백금으로 만든 백금궤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고, 양피지가 쌓인 곳도 있었다. 그 양피지에 적힌 것들은 토지 문서를 비롯한 온갖 이권들이었다.
대륙을 지배한 연합국가의 논공행상은 보통일이 아니다. 드낙이 명령한 것이다. 다종족 연합이 공을 세운 이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모든 시민이 알 필요가 있었다.
‘너도 이렇게 될수 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가 이런 걸 보여주는 이유는 앞으로의 세계는 굶어 죽는 이가 없는 세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자 한다면 한량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야 세계는 발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지식의 경계선을 삽질해서 조금이라도 툭 튀어나오게 만들어야 했다. 평생을! 걸친 연구로 작은 발전을 이룩해 내는 것이다. 놀고먹고 자고 싸는 한량 같은 놈들은 드낙의 세계에 필요 없다. 하지만 드낙은 그들을 양산하려고 했다.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니까.’
박호훈은 그렇게 살지 못했다. 사회의 부품으로,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갔다. 가장 약자로 수많은 세상 풍파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다. 그건 그저 고통뿐인 삶이었다. 대한민국에는 ‘개인적’이라는 것은 ‘가장 약한 것’이었다.
테이블 하나 두고 혼자서 밥을 먹으면 ‘다수’가 찾아와서는 ‘우리 숫자가 많으니 다른 곳에서 처먹어주겠습니까?’라고 예의 바르게 묻는 무례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약자의 삶은 그저 치이는 삶에 불과했다.
그 상반된 개념을 하나로 묶으려면 이런 행위가 필요하다.
그가 천천히 붉은 양탄자를 걸어 나갔다. 한 가하게 게으름 피우며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 자신의 꿈이 있다면 그걸 단단히 받쳐주며 지원해 줄 수 있는 세상. 그런 이들이 내달릴 수 있는 곧은 트랙을 깔아주는세상. 이를 위해서 걸어 나갔다.
펄럭!
거대한 악마 날개가 보였고, 한 번 크게 움직여 보았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왕좌에 앉았고, 그 뒤로 게제라스 총리가 그의 보좌관들과 함께 나타나 그 길을 걷고, 드낙에게 예를 표한 뒤에 옆에 섰다.
“지금부터! 드낙 초월자님께서 한 말씀 하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뜨나아아악!
곳곳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고, 지하 연합의 이들은 드낙의 이름을 드높였다. 드낙이 왕좌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그 환호성에 대답해 주며 두 팔을 벌리고 짧고 굵게 딱 한 마디를 외쳤다.
“나와 함께 한 이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줄때가 왔도다!”
모두 그에 화답하여 더욱 소리를 내질렀다. 드낙이 웃으며 다시 거대한 왕좌에 앉았다. 그의 왕좌 뒤로는 전 세력의 깃발과 증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오른편에는 종족을 뜻하는 깃발이 있었고, 왼편에는 주요 세력들의 깃발이 있었다.
게제라스 총리는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했다.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는 5분이 넘도록 지속했고, 그 이후가 돼서야 말할 수 있었다. 드낙을 칭송하는것을 진정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등공신(一等功臣). 지하 연합 소속의 뿔쥐 위원이자 배불뚝 리전의 리더! 대장 쥐는 앞으로 나와라!”
게제라스 총리의 외침에 지하 연합이 대장쥐의 이름을 드높였다.
“대장 주I! 대장 주I! 우리들의 으뜸!”
쿵! 쿵! 쿵!
발도 굴렀다.
그 진동, 그 패기 지하 연합은 이번 논공행상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찍찍.”
대장 쥐의 울음소리는 정확하게 장치에 기록되었다. 대장 쥐는 쥐 소리를 내며 주둥이 양옆에 툭 튀어나온 긴 더듬이 같은 털을 손으로 잘 정돈했다. 기름을 발랐는지 반짝반짝 윤기가 났다. 다른 털들도 씻고 말려서 폭신폭신해보이고 아주 말끔해 보였다.
특히 토실토실하여 만지고 싶은 배를 툭 내밀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양탄자에 올라섰다. 위풍당당한 뱃살은 도드라져서 D로 보일 정도여서 보는 이들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망토 외에는 그 무엇도 입고 있지 않았다. 드낙을 위해서 털을 민 뿔 쥐 요리사들만이 옷을 입는다. 뿔 쥐 요리사들의 헌신은 뿔 쥐들 사이 에서도 특히 대단한수준이라, 신념 있는 뿔 쥐들은 뿔 쥐 요리사가 되려는 길을 자진해서 걸 으려고 하고 있었다.
대장 쥐가 계단 앞에서 입을 쩍 벌렸다.
“뜨나아아아악!”
그 함성에 다른 지하 연합도 고함을 내지르며 드낙의 이름을 내뱉었다. 공기가 울릴 정도로 대단한 함성이었다. 그다음에 대장 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을 뵙습니다! 무한한 충성과 끝없는 헌신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드낙이 일어섰다. 그러자 게제라스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내 드낙은 게제라스의 단상에 있는 양피지를 가져와서는 대장 쥐의 앞에섰다.
“들어라! 모두 들을지어다! 지하 연합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이들을 투입해 나의 뒤를지켰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객관적 지표였다.
“동시에 수십 개가 넘는 공중요새를 동원하여 적의 방어 시설을 대거 파괴하고, 위에서부터 찍어 누르며 적들에게 공세를 펼쳐 양동작전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행해나갔다! 오크들을 지하 요새에 태워서 그들의 보급을 책임져준 공 또한 있다! 보급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방어전 싸움에서도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최고로 많은 수급을 챙겼다.”
동시에 희생자도 많았다.
드낙은 이를 드높여주며 대장 쥐를 치하했다.
“지하 연합(Underground union)은 앞으로 지하 제국(Underground empire)이라불릴 것이다!”
드낙이 손을 딱 펼치자 보좌관 하나가 깃발을 하나 가져왔다. 검은색의 깃발이었다. 깃대조차도 검은색이었지만 이를 자세히 보면 검은 회색의 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것은 마치 진흙과 같았고, 예술작품처럼 우둘투둘튀어나와 있어서 잡기도 편했다.
검은색의 깃발의 테두리는 종유석을 형상화한 듯, 툭툭 튀어나오는 은색 선이 나 있었다. 또한 깃발에는 뿔 쥐가 할버드를 땅을 찍고, 세우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깃발이 검었기에 검은 태양처럼 보였다.
그것이 새로운 지하 제국의 깃발이었다.
“이 깃발을 내려주마. 이것이 새로운 제국의 시작이다.”
“감사합니다!”
대장 쥐가 깃발을 받아 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낙은 보좌관으로부터 붉은 망토를 받아 들어서 대장 쥐에게 직접 입혀주었다. 어깨에 굵은 실크를 두르고, 브로치로 양옆을 단단히 고정하여 망토가 뒤로 내걸렸다.
“이 붉은 망토는 내가 너에게 내려주는 권능이며, 힘이다. 한시도 놓지 마라. 너가 먹을 수 있는 만큼, 계속해서 업이 너에게로 지급될 것이다.”
대장 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이 순간, 이 망토를 입은 순간 대장 쥐는 드낙의 손을 잡고, 강하게 계단을 올라가게 될 것이다. 뿔 쥐의 신. 그에 대한 미래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대장 쥐에게는 백금궤 100관과 금궤 5천 관을 하사한다.”
수많은 금궤와 백금궤가 대장 쥐의 양탄자 바로 옆에 옮겨져서 그 위용을 더했다.
드낙은 보좌관이 따로 가져온 왕관을 손에 쥐었다.
“대장 쥐는 앞으로 지하 제국의 지하 황제(Underground emperor)가 된다. 그 권한은 나한테서 나온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장 쥐가 고개를 조아렸다.
왕관은 지하에서 나오는 수많은 원석들을 적당히 공예하여 투박해 보이지 않고, 세련돼보였다. 황금으로 만든 왕관에 원석들이 오밀조밀 다양하게 붙어있었다. 왕관의 정면에는 주먹만 한 흑요석이 날카로운 마름모꼴로 세공되어 박혀있다.
이를 드낙이 직접 씌워줬다. 머리에 맞게 딱맞았다.
“지하 제국은 다종족 연합이 소유한 모든 땅의 모든 지하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 지하실조차도 지하 제국의 허락을 맡도록 할 것이다.”
대단히 큰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악마의 요람 가비노를 세파리아스에게 준 것에 비하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뿔 쥐들은 하늘과 우주를 지배하는 데 전력을 다해서 내달려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신! 우리들의 신! 우리들의 신!”
지하 연합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 환호성을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