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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번 반목(反目)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종족 연합으로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치가! 이번에 증명되었습니다.”
드낙이 양팔을 쩍 벌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세상에 드리워졌고, 하늘을 뒤덮었던 적의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곳에서 논공행상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곳 인형 협곡의 옆쪽으로 제 1차 차원 전쟁에 대한 희생과 헌신, 그 위대한 위업을 달성한 모든 이들을 위한 것들을 짓고, 베풀어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늘 있는 이 현실과 내일 있을 미래. 자유와 행복 그리고 평호H 그모든 것이 참전용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믿습니다.”
드낙이 그렇게 말했을 때, 검은색 대리석과 그 대리석에 황금의 장식을 박아 넣은 최고급함이 들어섰다. 그 크기는 대단히 커서 짐승이 끌고 와야 했다.
그는 무식한 힘으로 함을 위로 올렸다. 뚜껑과 연결되어 있는 함은 자연스럽게 쩍 열려 단단히 고정되었다. 금박을 한 강철 관절이 보였다.
그 강철 관절은 얇고, 넓었다. 넓은 면에는 차원 전쟁에 대한 내용이 그림으로 양각(陽刻)되어 있었다. 보통은 음각을 하기 마련인데, 사치스럽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그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드낙이 함 속에서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를 들어 올렸다. 그 양피지에는 가히 100만이 넘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를 행하는 데 숭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각자 한 송이 꽃을 들고 드낙이 호명하는 사람의 함에 조문을 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함 앞에 섰다. 그는 허리를 숙여 꽃을 놓았다. 그는 북부 귀족 출신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모병제에 대해서 잘알고 있고, 병사들을 대우해 주는 만큼 그 신념이 활활 타오른다는 걸 잘 알았다.
묵례는 15분 이상 길어졌다. 뒤에 있는 이들은 세파리아스의 기행에 눈을 찌푸렸다. 신황제가 15분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거침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9만 명이 모두 예를 표해야 했고, 세파리아스가 무식한 기준을 잡았다. 그건 드낙도 예상하지 못하는 바였다.
모든 이름을 부르는 데 11일이 소요되었다. 그 덕에 잠도 야지에서 자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기록되었고, 영상과 사진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드낙이 함에서 양피지를 들고 이름을 논하면서 눈으로는 묵례하는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대로 안하면 큰일 난다.’
하찮은, 먼지같이 사그라지는 덧없는 생명들을 중요시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그건 권력자들에게서 아주 귀찮은 일이었다.
민중이 왜 잡초라 불리는가. 알아서 잘 자라니까. 싹 밀어버려도 어느새 잘 자라있으니까. 그런 것을 온실 속 백장미처럼 여기는 드낙 때문에 마음속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결코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철저하게 숨겼다.
적어도 드낙이 죽기 전까지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처세술이다.
‘생명을 잃었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 자들을 위해서 고작 11일을 보냈다. 드낙은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고 여겼다.
살았든 죽었든 참전한 이들을 위해서 즉시매달 돈을 주고 있었다. 현대로 치면 월 2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주는 것이다. 최저 생계비용이라는 별 병신 같은 기준보다 더 높게 책정했다.
현실은 세금이 부족해서 못한다지만, 다종족 연합은 돈이 넘쳐났다. 인구가 받쳐주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는 자연히 현 다종족 연합이 가장중요시하는 것의 시연이 예정됐다. 하루를 더꼬박 쉬고 이행했는데,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인형 협곡.’
드낙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밤에도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 시연까지 변경하는 것 없이, 최대한 반복하여 자잘한 실수만 수정하겠다는 개발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흡족했다.
‘전쟁은 계속 일어날수밖에 없다.’
그건 드낙의 원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중립신처럼 차원의 장벽을 두껍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대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드낙이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삶이 있기에 계속 살고 싶었다. 이 때문에 드낙은 다종족 연합의 필멸자들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대로어쩔수 없다.’
전쟁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곳은 후미진 곳에 있지만, 적들은 이곳을 찾아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올 터다. 그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것이 인형 계곡인 것이다.
‘실전 경험.’
자치 왕국의 환영 마법은 폐해가 존재한다. 기사가 신념을 버릴 정도로 정신적 고통만 심할 뿐 그 괴리가 커서 현실 육체가 감당한 적이 없었다.
‘필멸자는 육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신은 몸을 따라간다. 육체가 나약해지고 노쇠해지면 성질도 죽어간다.
‘이를 간과했지.’
육체로 부딪치고, 그 충격을 통해서 정신과 신념이 제련되어간다. 자치 왕국은 이를 몰랐고 환상 마법으로 기사와 병사를 강하게 하려고 하여 큰 곤욕을 치렀다. 많은 혜택을 받는 기사가 차원 전쟁에 임하지 않고, 도망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번의 실패를 봤을 때, 인형 협곡은 그걸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를 체험하며 부딪쳐 보기도 하고 성장해 나간다.’
편한 길을 접고, 고생길로 들어선다. 그게 바로 인형 협곡이었다. 그와 동시에 스포츠도 만들 생각이었다. 종족마다 팀을 꾸려서 서로 경쟁하며 마력 피부가 사라질 때까지 마법 무기로 싸우는것이다.
‘그건 따로 해야할 일이지.’
지금 하는 건 전투 데이터를 어떻게 쌓는지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 시연이다.
“다종족 연합의 무력이 평화롭게 강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환호성과 함께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드낙의 눈은 허공에 있는 마법 시야가 펼쳐 진 구조물로 향했다. 느긋하게 등을 기대었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책자를 열었다.
책자에는 강철 인형에 대한 개요, 이번 시연에 대해 사전에 알아야 할 것들이 보였다. 주목해야 할 건 지휘관들의 성향이다.
‘이번에 나오는 강철 인형 지휘관은 단 두명.’
알파와 베타였다. 이름은 당연히 드낙이 지었다. 그는 인형 협곡에 관한 관심이 지대했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군대의 수준은 높아야 한다. 그 조건을 달성하려면 인형 협곡에서 강철 인형들과 전투를 해야 했다.
‘알파는 지장(智將), 베타는 맹장(猛將).’
지장을 처음으로 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드낙은 똑똑한 걸 좋아하기에 지장을 세워놓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맹장을 알파라고 부를 일은 없다.
‘세팔이 녀석이 은근히 자기를 대입할 것이 틀림없으니까.’
맹장으로 설정한 강철 인형 지휘관을 알표F로 지정한다면, 세파리아스가 의식할 것이다. 드낙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콧대 높은 놈에게 건수를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터는 숲과 언덕.’
그것에 대한 간략한 전술 정보가 있었다. 공을 세운 이들 중에는 보급을 담당하며 전술과 전략에는 무지한 문관들도 있어서 이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책자에는 지형 정보 또한 그려져 있었다. 드낙은 단번에 이를 파악해 냈다. 그리고 얕은수를 볼수 있었다.
‘포인트는 한곳.’
난잡해 보이는 숲과 언덕이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가장 큰 언덕이다. 위치는 전략적요충지가 아닌 것처럼 북쪽 끝에 있었지만 그곳이 진짜 중요하다. 지장에게 유리하게 여겨질 법한 지형이다. 하지만 승부는 알 수 없다.
‘강철 인형들의 전쟁은 끝장을 보는 거니까.’
와해가 일어나면 도망치기 마련인데, 강철인형은 마지막까지 싸운다. 퇴각 정보는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이 있어야 하기에 구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차라리 돌격하는 게 더 쉽다.
드낙의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는 세리안은 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레이시아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레이시아는 세리안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기에 이런 전투적인 것에는 무지했다.
“저기 저 화면이 여기, 이 지형을 보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으세요? 대단하세요. 저는 똑같은 숲으로 보이는데요.”
“햇빛이요. 전투를 하다 보면 시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거든요. 야지에서 사령관으로 경험을 쌓다 보면 자연스럽게…….”
레이시아는 세리안이 스스로의 커리어를 자부심 있게 말하도록 유도했고, 세리안은 이를 기쁘게 여기며 대답해 줬다.
그녀는 불파겐의 딸이므로 뽐내는 걸 싫어할 성격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어깨가 찰싹 붙었다.
드낙은 이를 힐끗 보다가 이내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부인끼리 관계를 쌓아가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렬! 정렬! 용기를 보여라!”
알파 군대가 정렬했다. 그들 중에는 경기병도 제법 있었지만, 중기병은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웬만한 보병을 처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알파군대의 큰 특징은 경기병 100기를 큰가치(value)를 들어서 가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보병으로 무장했다. 다만, 방패가 카이트 실드였으며, 투창도 몇 자루 지니고 있었다. 숲에서의 전투에 잔뜩 힘을 준 모습이었다.
지장인 알파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개인 무력이 베타보다 낮았기에 숲에서의 전투에 힘을 써야만 했다. 동시에 경기병으로는 언덕 전투의 우위를 노렸다.
[10]
[9]
[8]
음성이 들려왔다. 전투 개시라는 말과 함께 알파가 냉큼 움직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언덕중에서도 가장 높은 북쪽에 있는 언덕이다. 그곳을 거점으로 두고, 활동할 생각을 가졌다.
동시에 그의 눈 한쪽 구석에 타이머가 시작됐다.
[59분 57초]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빠듯하다. 최대한 큰피해를 준 편이 이기고, 다섯 곳의 점령지역을 많이 먹는 쪽이 추가 점수를 받는다.
‘병력을 나누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특히 보병은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기가 힘들다.
“경기병들은 정보를 가져와라!”
“예!”
알파는 북쪽으로 병사를 몰며 경기병을 척후로 보냈다. 상대가 있는 곳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적을 찬찬히 뜯어먹을 생각을 가졌다.
두두두두두!
경기병들이 내달렸다. 이들은 20기씩 다섯조로 움직여서 흩어졌다. 물론 숲으로는 향하지 않았다. 숲은 기병의 묘지라고 할 수 있다. 땅이 울퉁불퉁해서 빨리 달리다가 말을 죽이는게 된다.
‘숲은 두 곳, 언덕도 두 곳. 숲과 언덕의 경계선에 한곳.’
점령하면 점수가붙는 곳들의 지형이다. 당연히 모든 곳을 지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천도 아니고 고작 500명의 강철 인형으로 점령전을 하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각개격파의 두려움과 공포 탓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알파는 경기병을 100기나 기용했다. 적당히 때를 보면서 중앙의 언덕과후방의 언덕 두 곳의 점령지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적이 오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동시에 빠르게 합류할 수 있었기에 전투 합류를 통한 변수도 창출할 수 있다. 보이지 않았다가 뜬금없이 언덕을 넘어오는 기병을 본다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알파는 이를 통해 언덕을 확보하고, 숲으로 들어가서 전투를 할 생각을 가졌다. 숲의 지형은 중보병도 싸우기 힘든 곳이다. 지쳐서 쓰러지고, 기습에 당해서 고꾸라지기 쉬웠다.
수풀에서 갑자기 투창이 튀어나와 입 속으로 박히는데 중보병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언덕에서 경기병으로 재미를 보고, 숲에서 마지막 한판 대결.’
그게 그의 노림수였다.
반면, 베타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경보병500명에 중보병 100명으로 총 600명의 인원을 지니고 있었다. 경기병의 가치가 높았기에 100명 더 많은 군대 숫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병과만큼이나 단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