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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입을 다물었으니, 이제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이 무인들의 습성이다.
이는 다분히 경험적인 측면에서 튀어나온진리였다. 기병을 타고 달리다 보면, 보병진에 있는 작은 틈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 틈은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으며 볼품없다. 역전의 기로로 삼을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만 틈이다.
그러나 기수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걸 볼 수 있다. 허무할정도로 무너지고, 등 뒤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의 함성만을 귀로 들을 때 전신이 전율한다.
은퇴 기사는 수십 년도 전에 이를 경험했다. 그는 대단한 기사는 아니었지만 못난 기사도 아니었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깃발들을 다수 가지고 있다.
지금이 그 깃발 중 하나를 쓸 때다. 하지만 하도 자주 써서 다른 문인들도 급히 입을 나불거렸다.
“전쟁엔 변수가 많은데, 어찌 정석만을 보여줍니까?”
“차라리 불화살처럼 효과가 큰 것이 좋고, 눈요기할 수 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은퇴 기사가 짐승처럼 고개를 털며 반박했다.
“아니지! 전쟁은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기도 하다!”
이에 관리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말이 모순되어 있어서였다.
“정석은 보기 좋다. 잘 정련되어 있고, 한 눈에도 수천을 가늠할 수 있지.”
매번 훈련마다 본 풍경이기에 규모를 짐작하기도 편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있으면 그저 새까맣지만, 그마저도 계속 보면 대충몇 명인지도 알게 되는 법이다.
특히 일개 병졸이 아닌 그들을 지휘하는 귀족이라면 그런 것에 더욱 눈이 가기 마련이다.
“그 속에 변수를 녹인다면 진정으로 감탄할것이다.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라, 명검을 보는 눈을 할 것이 틀림없다!”
관리들은 그럴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석이 눈에 잘 들어오고, 그 속에 변수를 크게 집어넣어 내보일 수 있다면…….”
은퇴 기사의 말을 곱씹었다. 잠깐의 침묵 이후에 비관론이 튀어나왔다. 대개 회의가 다 그렇다. 이것을 제시하면 별로, 저것을 제시하면별로. 그저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이들은 비판자의 모습으로 자존감을 곧추세우고, 기뻐하기 일쑤다.
“어려운 일 아닌가? 지금 강철 인형들의 전술 숙련도도 낮은데…….”
부서지고 수리하기를 반복하며 전투 데이터를 쌓아도 한계가 존재했다. 인형은 인형일 뿐, 숙련된 병사의 판단을 하는 게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직도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당장 중요한 게 연구인가? 아니지, 구색이라도 맞추란 말이다.”
“구색을 갖추면 변수는 어찌 창출하려고 하십니까?”
은퇴 기사가 혀를 찼다.
“보니까 헛똑똑이들이구먼. 보는 이로 하여금 변수를 창출하면 될 일이지. 어차피 강철 인형들의 능력치는 소소하게 다르잖아? 어차피무식하게 백병전으로 걸어도 항상 결과가 다르잖아! 그런데 무슨 걱정이야?”
그 말대로 드낙의 프리미엄 상점에 대한 욕구는 상당했다.
능력치 좋은 인형들을 다른 이로부터 비싸게 구매하는 행위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서로 능력치가 다르면, 변수는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인원수가 많이 부딪치는 이 전쟁터에서는 인적 자원의 차이는 그 결과를 극명하게 바꾼다.
탁!
은퇴 기사가 손에 쥐고 있던 금화로 회의실의 책상을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숲과 언덕이 혼재된 곳으로 시범을 보이면 딱이겠다.”
“그래도…… 평원이 아무래도, 대규모 싸움에 는…….”
은퇴 기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평원 전투는 경기병들의 악전고투(惡戰苦鬪)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현재 강철 인형들로는 감당이 안 도H. 좋은 점수를 못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정녕숲과 언덕이 혼재된 그런 복잡한 곳에서 싸우려고 합니까?”
은퇴 기사가 빙긋 웃었다.
“개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언덕의 아래에서는 언덕 너머를 보지 못한다. 숲에서는 가시거리 30m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 다. 숲은 사람의 손길과 제초 약이 가득한 현대의 등산길과는 격이 다르다.
가시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기에 개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곳은 지휘관들의 무덤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을 운에 맡겨야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보통 숲속 전투는 정예나 대인전에 강한 병사들을 지닌 지휘관이 즐긴다.
“강철 인형은 그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지.”
전술 체득은 낮아도, 백병전은 좋은 수준이다.
그가 손가락 하나를 올리며 말했다.
“개체별 변수가 있다고 했지? 숲에서 싸우면 기가 막히지. 전술적으로도 재밌는 광경을 제법 많이 찍을 수 있을 거다.”
“어째서입니까?”
“궁수 뒤통수치는 것만큼 재미난 것이 없거든.”
보병으로 궁수의 뒤통수를 친다?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화살은 적 군대의 병사들을 죽이는 건 어려워도, 손실은 많이 끼칠 수있다. 화살은 투사체가 제법 길어서 무게도 되고 뼈를 다치게 할 수 있다. 쐐기처럼 박히기에 부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놈들의 뒤통수를 친다는 건 짜릿하다. 항상 기병으로 후방의 경무장한 궁수를 노리는 건 기본적인 전술이지만 보병으로 궁수 뒤통수치는 건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숲과 언덕 지형에서는 이것이 가능했다. 언덕의 건너편은 잘 보이지 않고, 숲은 가시거리가좁기 때문이다.
“그럼 언덕에 왜 있겠습니까?”
관리 하나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고지를 지키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병사가 죽고 살고는 아무 의미 없다.”
전쟁은 입체적인 공간 속에서 싸운다. 그렇기에 공간이 주는 의미가 대단한 것이다. 궁수들이 있는 곳에는 장애물도 설치할 것이기에 더욱 볼 만할 것이다.
“…그럼기병들은 뭐합니까?”
“언덕을 빼앗는 건 보병만 하는 일이 아니다.”
포레스트 힐(Forest Hill) 프로젝트가 수립됐다. 그렇게 대단한 게 필요한 건 아니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을 연출하기 위한 것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 이를 적용한다면 거짓을 진실 속에 숨기는 것처럼 요긴하게 점수를 확확 따올 것이 분명했다.
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야외에서 논공행상이 벌어지기에 온갖 것들도 새로이 치장해야 했다. 붉은 천과 실크들이 대거 들어갔고, 맨땅에 나무를 심어서 구조물을 땅에 고정하기도 했다. 깃발 또한 수많은 곳에 일렬로 배치하여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그 길은 1km나 되었는데, 깃발의 높이가 3m에 달했기에 걸어갈 때 웅장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그 길은 승리와 영광의 길로 방문자들 모두 통과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법 크리스털이나 수정구를 이용해서 그 장면을 기록하는 이들도 많았다.
최고의 영광이었다. 드낙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위해서 만든 하나의 문화 콘텐츠이기도 했다.
그 길의 끝은 논공행상의 회의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길의 끝에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검과 방패의 제단이 있었다. 거기서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그 모습을 담은 수정구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유일한 자격은 전쟁 참여 여부였고, 그 어떤 돈도 필요하지 않았다. 영광의 길을 걷는 걸 추억으로 담고 싶다면 돈이 필요했지만, 기념비에 자신을 기록하고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건 무료였으며, 그 수정구에 들어가는 마력 또한 언제든지 무료로 충전 받을 수 있었다.
그 제단의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세상을 찢고 모습을 드러 낸 하늘의 나라, 그 폭압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지상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
제단은 제법 크고 넓었다. 그 계단 위로 올라야 그 뒤에 있는 것들이 보일 정도였다. 그 뒤에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묘비들이 즐비했다.
그곳은 지금도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완성되어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시끄럽게 수다도 떨었지만, 용감히 앞으로 나섰던 전우가 기억났다.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고, 그것은 아픔으로 이어졌다. 아직 아물지 못한 것을 건드렸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기록해 주고, 건네주는 관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논공행상은 단순히 윗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니게 되었다. 드낙이 야외로 한 이유는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이 기도 했다. 이들은 살아있거나 죽거나 상관없이 조건 없이 매달 돈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이런 이벤트까지 겪었으니, 다종족연합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이 튀어나올 것이다.
다종족 연합은 전쟁 연금을 전쟁한 이들에게 모두 지급할 정도로 역량이 있다.
드낙이 멀리서 지켜봤다. 자신이 나선다면 소란이 일어나고,그 의미도 퇴색할 것이다. 유명인과 권력자가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다만, 드낙은 그 수많은 대기자를 보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저 많은 이들이 차원 전쟁에 나섰고, 보상을 받고 있었다. 10년, 20년, 죽을 때까지도 그들은 차원 전쟁 참여에 대한 덕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이게 나라지.’
쓸 때는 대우해 주고, 쓰고 난 다음에는 버 리는 것이 ‘인간’에게 통용된다는 것이 우스웠다.
범죄자 인권 챙기는 사람도 많다. 드낙은 그런 경우는 반드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자들은섬으로 보낸다.’
범죄를 저지르는 게 구걸하는 것보다 힘든 삶임을 각인 시켜야 한다. 인간은 간사하기 때문이다.
간사한 만큼 계산을 어찌나 잘하는지 모른다. 그걸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못 배웠다고 눈치도 없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람 인생 하나를 조지면 평생 사회로 돌아올 수 없는 사히. 드낙은 그걸 만들려는 것이다.
‘사람 인생 하나 조졌으면, 자기 인생도 조져야지.’
그게 드낙의 지론이었다.
소주병으로 사람 대가리를 찍어도 3년 뒤에 나오는 나라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드낙의 범죄자에 대한 분노는 대단했다. 여자 열다섯 명을 강간해서 다섯 명이 자살했음에도 사화에 나오는 범죄자도 봤다.
그렇기에 드낙의 범죄자에 대한 분노는 끝도 없이 타오르는 편이었다.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회의 밑바닥일수록 인간의 날 것을 자주보게 된다. 나이 50살이나 처먹고 공장에 들어온 지 1개월도 안 된 놈이 터줏대감처럼 구는것도 본 적이 있다. 그 팍팍한 삶과 그 거친 삶의 풍파 속에서 살았기에 범죄자에 대한 분노는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쟁을 수행하면서 내부 관리가 덜해졌고, 이를 이용해서 간사하게 온갖 탐욕을 부린 자들이 존재했다. 그런 자들은 종족을 불문하고 존재했다.
드낙은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 * *
논공행상은 예정된 날보다 보름 뒤에 개시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모였다. 드낙은 그 중심에 섰다. 수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그 숫자만 해도 9만 명이 넘어갔다. 그들은 모두 말단이라도 공을 세운 이들이었다.
허공에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람마법으로 물질을 부유시키고, 마법 시야를 통해서 수많은 곳을 보여주고 있었다.
논공행상 전에, 오랫동안 준비한 인형 협곡의 모습을 비치고 있었다. 그곳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우물도 있었고, 하늘을 날아가는 까마귀 떼도 보였다. 나무에서 흐물거리면서 똬리를 틀고 있는 아나콘다 같은 놈도 있었다. 모두 협곡에서 만든 생명체들이며, 병사들의 훈련에 직접 쓰이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평야도 보였다.
그 영상미는 대단했다.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돌산의 지형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반짝거 리는 호수를 끝으로 드낙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오늘을 위해서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다종족 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처음 있는 공통된 논공행상이었다.
드러내지 않던 십 여m의 크기를 지닌 악마의 날개도 한 번 펼쳤다가 반으로 접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크흠.”
드낙이 재차 말했다.
“사랑받는 여러분에게 오늘 이 자리에 오신것에 대해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가 빙긋 웃자 환호성 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들에게 존대하는 모습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극렬 주의자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