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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공통 하사품을 포기하라니!’
황금만 해도 최소 5만 관씩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금화로 따지면 5천만 닢이다. 다종족 연합의 경제 성장률은 그만큼 상상을 초월할지 경이다.
엘프들은 ‘지하 연합’이 있음에도 금화가 부족해서 거래하지 못할 정도로 앓는 소리를 하다가 결국 종이 화폐를 꺼내 든 것처럼, 다종족연합의 성세는 눈이 부실 정도다.
드낙으로 인하여 큰 전쟁은 절대 발발하지 않고, 지배자들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한 것이 컸다.
그만큼 공통 하사품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하다. 세수를 쓰기 위해서 공공사업에 투자해도 금화가 쌓일 정도였다. 호황도 그런 호황이 없다.
“못들은 것으로 하지.”
칼리스투스는 최대한 절제된 단어를 사용했다.
“그럼 끝이지.”
“끝이라고?”
칼리스투스의 반문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쉐도우 위스퍼는 모든 걸 지켜볼 것이다. 그들은 추측도 잘하기에 막을 수도 없다. 거기서 수작질을 하려고 한다면, 지하 연합은 한술더 뜨겠지.”
“한술 더 뜬다?”
“황금을 포기하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겠지. 논공행상은 지엄한 것. 하나를 취득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챙겨줄 수밖에 없다.”
금화는 국가 운영에 필요하다. 다양한 공공사업 때문이다. 국제 연합 도시에서 지원금이 많이 나오지만,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도로 사업이 있다. 관세가 10%로 낮게 정해지면서 세력 간의 상업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그것에서 이기려면 규모로 밀어붙여야 하고, 속도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더 많은 물건을 더 빨리 옮기면 유지비가 적게 들어간다. 그 양이 수십21 넘어가면 결코무시할 수 없다.
“지하 연합이 황금을 포기한다…….”
세파리아스는 엘프들이 움직이면 지하 연합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칼리스투스는 아니라고 봤다.
‘이미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제라스총리에게 더 부드럽게 다가오니까.’
게제라스는 대처할 시간을 줄 수 있다.
게제라스 총리는 입이 무겁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못 들어도 들은 척. 그 또한 총리로 지내며 많은 걸 배웠고, 정치력이 달리니 그냥 ‘중간’만 가자는 식의 태도를 지니게 됐다.
“지하 연합은 이미 움직였을 것 같다. 물밑작업을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술력 확보를 위해서 당장의 자본을 포기하는 셈이군.”
칼리스투스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반면 세파리아스는 무표정했다. 결국, 그는 이 테라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침공을 감행할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사실 내부의 세력 구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드낙이 있으니까. 최소한의 방벽이 되어줄것이다.’
이를 미루어 생각했을 때, 신제국의 입장상뿔 쥐와 최대한 교류하는 게 옳다.
감정적으로는 적대적이지만 지하 연합이나 뿔 쥐로서도 신제국과 세파리아스와 안정적인 교류를 하나 만들어놓는 게 필요했다. 상대 국가가 싫다고 돌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 다. 이제는 전쟁이 금지됐기에 할 수 있는 건 경제를 제한하는 일인데, 그래서야 자신의 세력만 손해를 본다.
자원의 유동성.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캐러밴을 좀 이끌어본 사람은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 엘프가 공통 하사품을 포기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있고말고. 먼저 깃대를 들고 깃발을 흔들사람이 있어야 다른 이들이 따라 들어가지.”
논공행상이란 곳은 공개적인 곳이다. 그곳에서 큰 수작질을 하려면 지하 연합의 화살을 대신 막아줄 방패병이 필요하다. 그게 엘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놈들은 돕지도 않을걸?”
“그렇게 하면 쉐도우 위스퍼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겠지.”
“하아.”
세파리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싸우려고 마음먹었으면, 싸워야지. 이 무슨 형편없는 소리인가?’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
“그런 마음이라면 견제를 하겠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
세파리아스는 더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마저도 사라졌다.
“그냥 협력하며 살아가라. 그게 날도와주는 일이기도 하고, 드낙에게 눈총받지도 않는 일이다.”
“그대도 말하지 않았느냐. 1위에서 2위로 만들수 있다고.”
세파리아스가 눈을 감았다. 새침하게 고개도 돌렸다.
눈을 감는 세파리아스에 칼리스투스가 심호흡했다. 주먹을 딱 말아 쥐어서 저 이마에 꿀밤을 딱! 딱 한 대만 놓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칼리스투스가 대안을 내놓았다. 물고기를 노리는 매처럼 그 발톱을 드러냈다. 이성으로 만들어진 발톱은 분명 뿔 쥐들에게도 통할 것이다.
“그럼 미래에 걸어보도록 하지.”
“미래에 건다?”
세파리아스가 눈을 떴다.
미래를 이길 수 있는 놈은 없다.
“무슨 계략을 벌이려고?”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공통 하사품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황금을 포기한다. 더는 중요치않으니까.”
논공행상 또한 전쟁이다. 이를 게제라스 총리에게 알린다면 뿔 쥐에게 줬던 이점을 뺄 수 밖에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저 교통정리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 각 세력이 받은 것을 한데 모아서 엘프에게 준다. 그렇게 된다면 엘프는 뿔 쥐와 비교해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하하!”
결국 하던 소리가 또 다른 독점이다.
세파리아스는 정말 웃긴 소리를 들은 것처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자기 생각뿐이로군.”
“너 또한 마찬가지지 않느냐.”
“다르다! 버러지 같은 놈.”
“뭐?!”
칼리스투스가 벌떡 일어났다. 세파리아스는 가만히 앉은 채였다. 하지만 그 살기(殺氣)는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칼리스투스는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당찬 모습으로 세파리아스에게 경고했다.
“예를 지켜라 폭군! 네가 있던 시대라 생각하지 마라. 너의 시대는 갔고, 너는 이미 죽은것에 불과하다. 부활했다고 하여도 그저 언데 드(Undead)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를 얼어 죽을. 죄다 처먹고 확고한 이인자가 되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네놈들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초월의 계단이 벽에 가로막혀 있을 때가 오히려 좋았을지도 모르지. 초월의 계단을 오르고 있음에도 그딴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너희는 결국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뿔 쥐와 비교하는 것조차도 아까울 지경이다.”
세파리아스가 문을 가리켰다.
“꺼져라!”
칼리스투스가 비아냥거렸다 .
“뿔 쥐와 비교조차 불가능하다고? 엘프는 그 어떤 종족보다 우월하다! 우리 엘프는 그들을 뛰어넘을 것이다.”
“뿔 쥐는 고블린과 크놀, 이상한 두더지 인간과도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찌 너희 엘프가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
세파리아스는 칼리스투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을 피했다.
‘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거대한 혐오감이 칼리스투스를 휘감았다. 드낙이 만든 다종족 연합에서 최고 세력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이룩해야 할 것은 그저 큰세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타협하고, 교류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게 된다면 세력의 많고 적음은 아무 상관이 없다. 교류하면 저놈 것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전세계와 하나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인은 이를 지구촌이라 가볍게 말하지만 거기서 만들어지는 가치들은 100년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하던 것들이었다.
“벽이 무너져서 좋았나? 행복했나? 짜릿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너희는 신으로 가는 길을 포기했다. 계속해서 걸어가겠지만, 한계가 다가오겠지. 그게 몇백 년 뒤일지는 몰라도 결국 똑같이 정체되는 것이다. 초월의 계단을 올라가면 뭐 하나. 종족 성질이 변하지 않는데. 고립된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가 드낙의 덕인것도 모르고 있겠지.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보였나? 진정으로 그를 신앙의 주체로 삼았나?”
“…….”
“그저 업(業)만 준다면 결국 또 정체되겠지. 단지 속에 든 벌레 같은 처지라는 걸 모르는 건 오히려 너희다.”
그 말을 끝으로 세파리아스는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더 대화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내일을 기약하자.’
칼리스투스는 독한 말을 들었음에도 신제국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마음이 생긴 까닭은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 덕분이고, 칼리스투스는 독한 말을 들어도 수용할 줄아는 엘프다.
그가 굳이 엘프들에게 훈수를 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미운 정이 단단히 박힌 망할 놈때문이었다.
‘업을 받아먹는다고 해서 모든 게 끝이 아니거늘.’
드낙은 그것으로 엘프를 제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될 뿐이었다.
엘프는 정체되는 존재. 계속해서 새 물을 담아줘야 한다. 그건 너무나도 잔혹한 말이었지만 세파리아스는 진실로 엘프들이 죽어서 계속 세대교체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칼리스투스는 몰랐지만 그가 말하는 바를 대충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녀는 신제국이 배정받은 대저택을 나서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엘프 중앙 도시로 가야겠다.’
논공행상 전, 모든 엘프들의 총의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개혁은 상상을 초월하는 반엘프적인 생각이었고,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송두리째 헤집는 일이었다. 씨앗을 심은 밭을 한 번 더 엎어버리는 일이다.
‘그래도 해야한다.’
단순히 초월자로서의 길이 열린 엘프가 아니라, 다종족 연합에 걸맞은 엘프가 되는 게 우선이다.
96. 에필로그 (4)
아스톨포는 국제 연합 도시에서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국제 연합 도시에는 ‘강철의비’라 불리는 병정놀이가 최신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돈을 내고 체험할 수 있다. 그 비용은 상당히 비쌌지만, 아스톨포는 매일 같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생각외로 재밌어서였다.
“혼자 왔어?”
누군가가 아스톨포 샤를로트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가 고개를 돌리자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 그림자 덩어리가 웃었다. 오싹하기 짝이 없었다.
그 표정을 봤는지 드낙이 헤실거리며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고, 벽에 들러붙어 있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악마가 된 드낙은 그림자, 육체 변이가 대단히 뛰어났다. 오우거처럼 단번에 커지는 것 또한가능할 터다.
“악마를 뵙습니다.”
“오냐, 차나 한잔하자. 요즘 향기가 있는 물이 그렇게 인기다.”
드낙이 손을 까딱거 렸고, 아스톨포가 따라나서며 말했다.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이주변에 빠삭하나 봐?”
“요리사들 이름과 실력도 알고 있습니다. 조금 한적한 곳이지만, 은퇴한 메이드가 찻집과 간단한 빵집을 같이 한 곳에 운용하고 있습니다.”
아스톨포가 아는 이들만 아는 곳으로 드낙을 안내했다.
“오.”
그곳에 도착한 드낙이 작게 감탄했다.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깔끔한 정원이 있었다. 그 규모는 크지 않았다. 허리까지 오는 작은 나무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걸쇠 하나 걸 린 게 전부라서 열기 어렵지 않았다.
‘모르고 오면 들어가지도 못하겠네.’
아스톨포는 능숙하게 나무문을 열고, 들어섰다. 집 뒤편이 살짝 보였는데, 고소한 빵 냄새가 바람을 타고 맡아졌다.
‘미치도록 고소한 냄새다.’
드낙은 군침이 도는 걸 느꼈다.
갓 만든 빵 냄새는 사람 죽이고 먹고 싶을 정도로 그 고소함이 살인적이었다. 그 살인적인 빵 냄새를 맡아본 이들 대부분이 사이코패스처럼 희생자를 계속해서 찾아다니듯이, 새벽마다 빵집 앞에 대기를 선다. 그럴 가치는 충분히 있지만, 그 냄새를 맡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은 유난 떤다며 난리를 친다.
아스톨포가 작은 종을 울리고, 벤치에 앉았다. 드낙도 거기에 앉았는데, 벤치에 앉으면 보이는 자그마한 풍경이 드낙의 마음을 치유했다. 나무 하나와 하늘, 울타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보였다. 햇살이 내리비쳤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해 질 녘이 정말 일품이 라고 합니 다. 물론 그때는 누구도 못 앉습니다. 여주인이 앉거든요.”
그 말에 드낙이 작게 웃었다. 오직 한 명을 위한 의자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