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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에필로그 (3)
엘프들의 개체 수는 급격하게 감소했었다. 중립신이 세상을 초기화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엘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벼랑 끝의 싸움이었다.
모든 동족들이 나서서 중립신에게 달려들었다. 바위에 부딪히는 계란처럼 끝없이 날아와 부딪쳐 죽었다.
육신을 지닌 필멸자(必滅者)에게 정신체를 지닌 엘 마르토 카사다민은 강대한 존재였다. 알래스카 대게 잡이에 나선 크루가 거친 겨울 바다에 휩쓸려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그여파는 흉악하다.
그 뒤로 살아남은 엘프들은 하나의 도시에 집중하여 살게 되었다. 또, 엘프라는 틀에서 벗어나 악마의 힘을 받아들여 권속 악마가 되었다.
정도에 따라 타락 엘프, 디아볼로스로 구분되었다. 이들은 엘프 신이 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는데, 뜨낙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선례를 만들어 자신의 처세를 좋게 만들려고 했고, 해당 엘프 신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독립하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었는데, 드낙의 처세가 굉장히 자유로워서였다. 할 것만 하면 되었고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는 신은 엘프를 면밀하고 섬세하게 통치하지 않았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시대라 여겼다. 무엇보다 18인의 벨룸 퓨에르(bellum puer)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와서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편이었다.
그 수많은 조건 속에서 엘프들은 독립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것은 윗물에서 아랫물로 빠르게 퍼져나가 곧 소매 넣기로 이어졌다.
그 결과 엘프들의 개체 수는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많아졌다. 배양소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엘프들의 개체 수 증가는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다른 종족들은 임신을 통해서 인구를 증가시키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작업장에서 상품처럼 생산되는 게 엘프들이었다.
그것은 고도로 발달된 마도 기술이었다. 또그런 행위가 용인된다는 게 중요했다. 그런 작업은 드낙에게 들켜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타락 엘프들과 디아볼로스들은 자신들의 업을 거리낌 없이 드낙에게 양도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한 일이지.’
신이 되는 걸 거부하는 필멸자라니. 아무리불로(不老)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웃긴일이다. 그 덕에 드낙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업을 축적해나갔다.
‘문제는 그만큼 써버렸다는 거지.’
이 권능, 저 권능 수많은 필멸자에게 부여했다. 대표적으로 쓸모없다고 느낀 건 고블린 강철 변이다.
‘미칠 노릇이지.’
철강 산업이 나중에 중요하다는 이유로 고블린에게 강철이 섞인 똥을 싸게 만든 것이다. 더럽고 추잡했지만 일상생활에 철을 거리낌없이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덕에 식칼만큼은 도마보다 굉장히 싸다.
그런 곳에 드낙이 방문했다. 벨룸 퓨에르(b이lum puer) 중 고작 다섯 명만 국제 연합도시에 있었고, 나머지 열세 명은 엘프 중앙 도시에 있었다. 당연히 인원이 많은 그들의 의견을 몰래 듣기 위해서 찾아왔다.
엘프들의 도시는 자유로운 분위 기다.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며, 광장에 모여서 가만 히 햇살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음료를 마시며 서로 간의 인간관계를 증진하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가만히 잔디밭에 누워서 책을 읽기도했다.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자는 이들도 있었다.
드낙은 행복은 먼 것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삶을 영유하며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엘프들은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엘프들은 전쟁에 죽은 이들을 위해 도시 곳곳에 추모탑을 세웠고, 그들과 관계가 깊었던 엘프들은 틈날 때마다 이들을 찾아와서 생화를 내려놓고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삶이 팍팍할 때는 돌아가신 자기 부모님도 자주 못 찾아가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은 틈틈이 찾아갈 정도로 여유가 있다.
드낙은 그 고민 속에서 역시 물질적인 자유가 필멸자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 인구수가 증가하며 자유로워지면서 진짜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의 형태도 만들어졌음을 알게 됐다.
여유로움이 가져 다주는 행복은 수많은 종류가 있고, 그중에 자신의 패밀리를 형성하여 함께 끈끈한 관계를 지닌 것 또한 재미였다.
돈 때문에 서로와의 관계가 박살 났던 박호훈의 가족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가장 기본적인 행복이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그러려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했다. 이에 드낙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중립신은 그렇기에 차원 자체를 닫아버리려고 했구나.’
갈라파고스의 섬이 되려고했다.
대신을 녹인 행성은 무한히 확장하기에 필멸자들의 인구수를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믿었다. 외부에서도 침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만큼 완벽한 세상이 어디에 있을까? 적어도 부동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고 일어나면 땅이 조금씩이라도 커지고 있었기에 주인 없는 땅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행성에 녹아든 중립신은 그 속에서도 자아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때가 되면 암중 세력을 퍼뜨려 필멸자들을 관리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드낙은 혀를 찼다. 결국 계란 속의 세상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낙은 엘프 도시의 최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탑에 들어섰다. 자신을 알리고 엘프들을 소집하도록 했다. 대부분이 직접 정치에 관여할수 있는 엘프들은 대회의실만 해도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그들 모두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벨룸 퓨에르만 모아라. 따로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테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엘프들은 서둘러 벨름 퓨에르들을 찾아 나섰다. 현재 가장 강력한 엘프가 그들 여덟 명이었다. 다만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엘프와 똑같은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본래는 다른 직위가 있었지만 벨름 퓨에르들은 그것을 개혁을 통하여 내려놓았다.
단지 엘프들이 그들의 말이 최선이라 여겨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드낙은 그것이 진정한 카리스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엘프들은 실로 똑똑하고, 간사한 면이 있다. 자신들의 권력욕을 거세시켜 드낙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의 타파는 드낙이 좋아할 만한 짓이다.
그 덕에 드낙은 거의 엘프에 대한 간섭을 손에서 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엘프 도시에 오는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벨름 퓨에르 13인이 차례대로 들어섰다. 이들은 드낙에게 매우 깍듯이 예를 보였다.
“초월자를 뵙습니다! 다종족 연합에 빛이 있으리!”
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드낙은 그들의 의중을 물었다. 엘프 도시의 상황은 매우 안정된 상태임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겸사겸사 그들의 의견을들었다.
“저희 엘프들은 논공행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서고 싶습니다.”
“뭐라고?”
드낙이 깜짝 놀랐다. 스스로 자청하여 가장바닥을 원한다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말하고 있었다. 드워프들조차도 그러했다. 그들은 산딸기 주에 대한 완벽한 독점을 논공행상에서 받고 싶어했다.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걸로 퉁칠 수 있으면 개이득이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지?”
“다종족연합 때문입니다.”
“저희 엘프들은 결국 가장 우뚝 설 수밖에 없습니다.”
실로 오만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드낙은 반론할 수 없었다. 드워프와 엘프는 중립신으로부터 잉태되어 나온 수많은 종족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종족이라 할 수 있다. 공장처럼 동족을 찍어내도 거부감이 없었다. 엘프 노고|(老怪)들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견제를 당할까 싶어서 그러는 건가?”
“아닙니다. 다종족 연합에 펼쳐져 있는 저희엘프들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오션 오크들에게 선박을 제공하며 엄청난 자원을 받고 있으며, 인간들에게는 폭풍의 요람을 제공하여 마도 사회로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드낙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좀 조용하게 살고 싶다 이거지.’
여기 가라 저기 가라. 이거 도와라 저거 만들어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또 많은 엘프들이 다른 나라에 파견되어서 타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알게 모르게 엘프들의 불만이 많았다. 타지 생활은 그들에게는 좋은 게 아니다. 종족이 다른 이들과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대단하다. 같은 동족끼리 있고 싶은 게 필멸자의 마음이다.
‘엘프들은 서서히 다종족 연합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싶어하는군.’
“각국에 정보를 메시지 마법을 응용하여 도서관만을 위임 운영할 생각입니 다. 모든 종족은 알고 싶다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처도 해놓았다. 이제는 정말 어떤 세력이든지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좋다. 하지만 그건 논공행상의 대가라고 할 수 없다. 다른 건 없는가?”
“금이 부족해서 따로 엘프 화폐를 만들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수 있습니까.”
“엘프 화폐?”
“예, 이것입니다.”
벨룸 퓨에르 중 1인이 손에서 종이 화폐를 꺼냈다. 드낙이 제법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변 엘프들의 표정도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말하는 바는 훨씬 앞서나간 것이라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금과 은, 동으로만 거래하는 게 이 세상 화폐인데.’
갑자기 거래량이 늘었고, 이 때문에 엘프들은 금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다. 금이 부족해서 거래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는 상대도 마찬가지였는데, 금의 채광량이 경제 성장을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문서로 서로 적어서 거래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서 엘프들은 수표 같은 것을 쓰고 싶어진 것이다.
“누구나 거래를 하고 싶은데, 금이 없어서 거래를 못 하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그렇기에 종이로 화폐를 대체하고 싶습니다. 물론 평범한 종이가 아닙니다. 마법 아티팩트와 같은 것이고, 금속 가루가 섞인 복합소재입니다.”
구구절절 말하기 시작했다.
드낙은 종이 화폐를 만지작거렸다. 빳빳하다못해 딱딱했다. 구부러지기는했지만,형태를 유지하려는 모습이 강하다.
“진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보고싶은데.”
드낙의 말에 엘프가 시동어를 외쳤다.
“진품명품!”
그 말을 하자 화폐가 크게 마력 빛을 냈다. 동시에 초상화가 가루로 만들어졌다. 엘프의 모습이었고 그 엘프가 말했다.
“이것은 금화 한 닢의 가치를 지닌 엘프 화폐입니다.”
“오.”
드낙이 박수를 쳤다. 금방 빛을 잃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진품명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종이 화폐의 크기가 손바닥만 했다. 억지로 접어서 보관할 수 있었기에 큰 단점은 아니었고, 무게는 금보다 훨씬 가벼웠다.
“좋군.”
엘프들의 상품은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생각했을 때, 큰 실물경제를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덕에 엘프 화폐는 통용될 가치가 충분했다. 그들의 마법 물품은 아직도 최상품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내뿜는 마법 냉기 장치만 해도 금화 수백 닢에 팔리고 있었다. 워낙 인기가 좋아서 가격이 계속 높아져 갔음에도 매번 매진이다. 그 의존도를 생각했을 때, 엘프들은 이제움츠러들 때였다.
“허락하겠지만 그건 내 허락이 없어도 가능한거아니었나?”
“다른 세력도 금은을 포기하고, 종이 화폐를 낼 수 있습니다. 그 큰 변화를 끌어낼지도 모르는데 어찌 초월자님의 허락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드낙은 곰곰이 고민하다 그들에게 확답을 주기로 했다.
“논공행상 때, 모든 엘프 파견대를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해라! 이루도록 해주마.”
“헉.”
벨룸 퓨에르들이 헛바람을 집어먹었다.
“그렇게 되면 어마어마한 혼란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점차적으로…….”
그 말을 드낙이 손사래 치며 끊었다.
“그대들이 걱정할 건 아니다. 앞으로 내 명령으로 파견 엘프가 생기는 일은 없음을 논공행상에서 공개적으로 약속해 주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낙이 빙그레 웃으며 순식간에 벨룸 퓨에르 중 하나의 뒤를 잡고 말했다.
“분명 네가 용기의 에르하르트렸다?”
“예? 예.”
“어떠냐? 엘프 신이 되어보는 게.”
“예? 제가요?”
“그럼! 무력이 가장 강한 것이 자네 아닌가?”
그는 뜨낙이 되었다. 엘프들에게 스트레스를 전혀 주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 행동을 했다. 그게 엘프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고, 엘프들은 더욱 많은 일을 하게 될터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드낙을 돕고 이 차원을 위해서 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