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2 -->
자치 왕국 서부는 항상 도렌이 지배해 왔다. 다른 영지와 다른 점이 존재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출산율이었다. 돈을 시민들에게 베풀다보니 시민들이 살맛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공왕’의 영토다. 그곳에서 부동산사업을 민간이 주도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덕에 집이 없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뿐이다. 부랑자조차도 잡아들여서 교육시켜 일하게 하고 집에서 살게 하는 미쳐버린 땅이 바로 도렌의 서부였다.
“규정이 없는데요.”
외청(外廳)의 관리가 드워프에게 말했지만 수백의 드워프들이 콧김을 내뿜자 절로 손사래를 치며 콜록대었다. 약 냄새가 어찌나 독하게 나는지 고약했다.
“나가세요. 약 냄새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잖아요.”
“인간 놈들!”
욕은 했지만 드워프들의 대부분이 밖으로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핀의 눈치를 봐서였다.
“그냥 공장 하나 짓는다는 건데, 무슨 규정이 없어? 뭐라도 있을 거 아닌가.”
“성 내부는 대부분 거주지라서요. 그냥 그래요. 아니면 상점만 되고요.”
외성이나 내성이나 똑같았다. 남부왕국의 옆에 있던 시절이나 제국에 새로 터전을 잡으나 도렌은 중앙집권형 성장을 꾀했고, 이번에는 더욱 발전한 상태였다. 공장은 밖에, 거주는 안에. 확실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다. 업무의 비효율은 증가하겠지만, 삶의 질은 대단히 높았다.
“이스핀 명예 드워프의 집에서 멀면 자주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드워프들은 고민했지만, 외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신 이들은 이스핀에게 다시 물었는데, 그가 심플하게 답했다.
“그냥밖에 지어 뭐가 문제야?”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인간 속담을알고 있어서.”
“괜찮아, 괜찮아. 약조한다니까.”
이스핀이 실실 웃었다. 드워프들의 소식을 듣고는 자치 왕국의 상인들이 대거 선물을 주고 갔기 때문이다. 뇌물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냉큼 싹 다 챙겼다. 재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스핀의 자신은 벌써 자식이 다섯이다.
‘자식들에게 나눠주면 그마저도 적다!’
특히 장녀는 강철의 비라 불리는 병정놀이에 큰 관심이 있어서 앞으로의 지출이 심해질 것 같았다. 물론 이스핀 또한 그것에 관심이 컸다.
“공사하면서 몇몇 드워프들은 날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나한테 도움을 준 인간에게 몇 가지를 만들어줬으면 하거든.”
“얼마든지!”
“명예 드워프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 하겠나?”
이에 이스핀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일이 끝나면 산딸기 주를 주지!”
“이스핀 산딸기 주인가?”
“당연한소리를!”
드워프들이 이에 서로 경쟁하며 자신들의 실력을 뽐냈다. 상당히 과격했지만, 소란은 금방 끝났다. 그 모습을 이스핀이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이용하기 좋은 놈들이 있을까?’
그가 음흉하게 웃었다.
남 등쳐먹으며 이득을 보는 건 실로 재미있고, 쾌감이 상상 이상이다. 사기꾼들이 그 맛을 못 잊고 계속 사기를 치는 건 그냥 사기 치는게 재밌어서다.
* * *
드워프들이 그러는 사이에 드낙은 자치 왕국과의 사전 회의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투자 정치 제도는 남부에서 제대로 일궈봐라. 제대로 통제가 된다면, 자치 왕국 전체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의도가 좋았기에 허락했다. 그 뒤에 문제가 많고, 감당이 안 된다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기에는 의도가 좋았다.
‘결국, 돈은 흘러야 하니까.’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드낙의 지론이었다.
“길게이 공왕은? 할 말이 없는가?”
이에 길게이가 답하였다.
“초월자께서 계속해서 자치 왕국에 신성력을 베풀어줬으면 합니다. 상위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양을 유지해 달란 소리인가?”
“예.”
대단히 방어적인 태도였다. 악마가 된 드낙은 악마로서의 힘이 증가했다. 더 많은 힘을 소모할 수 있었지만, 자치 왕국은 악마의 힘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대신 신성력에 대한 독점을 원했다.
세파리아스 덕분에 신제국 또한 신성력을 베풂을 받고 있었지만, 상위 인간 개발로서 100% 활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신제국의 신성력은 인구수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지분이 제법 되었다.
물약을 뛰어넘어서 신제국은 인구수를 늘리는 데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로 인하여 상위 인간의 비율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은혜를 받지 못한 인간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드낙은 논공행상(論功??賞)어서 다종족 연합의 세력이 무언가를 베풀어야 한다. 그 변수 속에서 자치 왕국은 자신들이 가진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얻기보다 지킨다…….’
길게이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 기득권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했다.
“어렵지 않은일이지.”
드낙의 신성력을 탐내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변종 삼위 악마인 포낙서스 발마룽, 세린만 해도 신성력을 탐하지 않았다. 힘은 힘일 뿐이기에 악마도 신성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악마의 힘을 더 원하면 원했지, 신성력을 탐하지는 않지.’
포낙서스는 연구자이며 고E학자다. 그는 빅데몬 프로젝트에 정신이 빠져있었다. 발바룽은 식 량을 확보하는 데 드낙의 허 락을 구하는 소심한 공을 찾았다. 그건 드낙이 따로 보충하여 하나를 더 얹어줘야 했다. 세린 또한 마찬가 지였다.
이로 생각해 봤을 때, 길게이가 말한 바는 아크온의 괘씸한 의견을 받쳐주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 투자정치제도에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을 달라는 소리인셈이다.
“좋다. 마지막으로 세리안공왕은 어떤가?”
“절 반마(半魔)로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공식 석상이었기에 세리안이 드낙에게 존대하였다. 이에 드낙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드낙이 일어섰다. 그 외의 것도 있겠지만 드낙에게 할 말은 그것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다른 세력과 조율할 것이다.
“아차차.”
드낙이 다시 앉았다. 도렌이 안절부절못해서였다. 그가 원하는 바를 듣지 못했는데 그냥갈 뻔했다.
“미안하다, 도렌 공왕. 하하하. 그대가 원하는 바가 뭔지 듣지를 못했군.”
“자치 왕국에 기본 생계 지급을 원합니다. 재산등급을 33개로 나누어 매달 돈을 국가에서 지급하고 싶습니다.”
“그건 안 된다고 말을 했을 텐데!”
길게이가 발작했다. 의자가 크게 덜컹거리고 몸이 원탁에 부딪혀서 소리를 냈지만 그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함을 내질렀다.
“미친 거냐? 길게이 공왕. 어디서 함부로 소리를 내지르는 거냐?”
드낙이 으르렁거리자 길게이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기본 생계 지급이라?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드낙이 다시 도렌에게 묻자 도렌이 답하였다.
“행정력이 턱없이 부족해서입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행정력이 부족하다? 엘프 탑을 통해서 마법을 통해서 행정력을 높이지 않았나?”
“그래도 부족합니다.”
단호한 말이었다.
‘감히.’
드낙은 괘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 탑을 통해서 마법의 힘을 빌려서 만든 행정력은 디지털로 전산화된 현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이 부족하다고 말하다니 배부른소리다.
“이해할수가없는데.”
그래도 드낙은 도렌에게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더 많은 근거를 요구했다.
“복지 항목은 점점 많아지고, 조건도 다양화되어 가는데, 정작 시민들은 거기에 자신들이 해당하는지 모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리를 움직여야 하는데 그마저도 관리들의 숫자만 키울 뿐, 세금이 밑으로 가는 비율을 망가뜨리기만 할 뿐입니다.”
드낙은 무릎을 쳤다.
미혼녀와 소년소녀가정을 돕는다고 했던 수많은 사회단체가 실제로는 그저 자기 배 채우는데 바쁘고, 호화유람선을 타고 다니는 것처럼 모든 사회복지는 결국 유지 비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광고 한 번만 해도 그 돈이 얼마야?’
어지간한 고아도 대학까지 보낼 정도는 될 것이다. 직원 다섯을 고용했다? 최저시급으로 해도 1년이면 까무러칠 정도의 큰돈이다. 그돈이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지 못한다.
“그러니 세금을 받아내기 위해서 재산 조사I 하며 그 등급을 맞춰서 아예 복지 예산을 무식하게 돈으로 때우겠다? 그 말이냐?”
“예. 드낙 님께서는 무엇보다 국가 세수를 잘 거두어들이는 데 큰 관심과 노력을 보이시지 않습니까.”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재산을 100% 몰수하는 것도 마찬가지 다. 그들의 가족은 한 푼도 못받는다. 더러운 돈은 모두 국고로 환수된다. 쉐도우 위스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입할 정도의 인력은 없어도 범죄자가 지닌 돈은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길게이가 싫어하는 소리지.’
엄한 돈을 푸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았는데도 소정의 돈이 들어온다는 건 이시대의 감성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실버타운이 만든 나비 효과다.’
도렌이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데는 실버타운의 덕이 컸다. 노인들을 닥치는 대로 수용해서 운용했는데 이로 인하여 복지에 대한 엄청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도렌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항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높였다. 게 제라스 총리의 아래에서 수학한 경력이 헛된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엄청난 양의 복지 예산을 제도적으로 모두 해결했다. 그 결과 수많은 복지제도가 모습을 드러냈고 자연스럽게 많은 관리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도렌이 항복한 것이다. 제도가 확립되어도 이를 행사하는 관리의 숫자를 늘리면 본말전도다. 복지 예산을 관리 인력이 잡아먹는 격이다. 큰 정부가 지닌 유지비를 감당할수 없었다.
냉정하게 판단했지만 길게이는 달랐다. 그는 그 유지비 자체가 지닌 파이에 주목하고 있었다. 거대한 돈이었다. 그 거대한 파이가 사라지면 자연히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 알력싸움에서 도렌은 도태되었고, 논공행상을 통해서 이를 풀어나가려 했다. 몇 년도 더 된 논쟁을 갑자기 꺼냈기에 길게이가 발작한 것이다.
‘승리라고 여겼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안 순간만큼 황당한 것이 없지.’
“좋다. 모든 자치 왕국 내의 세수 시스템을 바꾼다.”
“감사합니다!”
도렌이 냉큼 받아냈다. 낙수 효과를 생각하면 자치 왕국은 경제적으로 바짝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끝인가?”
“예.”
“그대들이 생각하기에…아니다.”
말을 하려던 드낙이 중간에 끊어 내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세리안이 가장 먼저 나갔고, 다른 두 명은 도렌을 노려보았다. 그런데도 도렌은 떳떳했다. 도렌에게는 드낙이 말했던 소비주도경제에 대한열망이 있었다.
‘시 민조차도 황제처럼 살 수 있는 시대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이 죽기 전에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이미 고기 섭취량은 황제가 부럽지 않게 먹고 있는 게 시민들이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했다.
드낙은 순식간에 오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션 오크(Ocean Orc).
‘무시무시한 존재지.’
백설 산맥에 있는 오크들은 평야로 진출했다가 이내 바다로 나아갔다. 그 속에서 그들이 얻은 것은 식량이며, 다른 이들의 연금 물약이며, 오크 주술사의 양적 팽창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
산술적 증가가 아니다. 1이 2가 되고, 2가 4가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1이 7이 되고, 7이 300| 되고, 300| 100이 되는 건 일도아니었다.
식량이 받쳐주면 인구는 끝도 없이 늘어날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인구의 증가는 식량이 받쳐주든 말든 무식하게 증가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빈민이 끝없이 생산되고, 피라미드의 아래에 존재하는 이들이 양산되듯이 찍혀 나온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션 오크의 부흥은 주술과 연금술이 만들어낸 위대한 업적이지.’
다종족 연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였다.
바다로 진출한 것도 의미가 깊었다. 최소35t짜리의 해양 괴물이 한 마리만 잡혀도 식량 걱정을 하는 오크가 없어졌다.
탁.
드낙이 오션 오크가 만든 4층 집의 지붕에섰다. 지붕의 끝에는 청동으로 만든 큰 도끼가 장식되어 있었다. 매번 손질하는지 녹이 낀 것도 없었고, 먼지도 없었다.
그 아래에 보이는 광장에서는 거대한 나무기둥이 있었고, 오크들이 그곳에 고래를 내걸고 있는 게 보였다.
“움챠파! 움챠파!”
깊이가 발목까지 오는 직사각형의 나무판에 염료가 흠뻑 쏟아지고 그곳에 오크 어린이들이 뛰어 들어갔다. 그들은 발을 적시고, 손으로 천연연료를 묻혀서 다른 이들에게 손자국을냈다. 밖으로 뛰어나가서 다른 오크들에게도 찍어줬다.
어른 오크들은 웃는 얼굴로 허리를 굽혀서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엉덩이 한쪽을 내밀기도 했다. 작은 축제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에 드낙이 흥미로운 눈으로 이를 지켜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