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01화 (1,00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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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핀! 이스핀!”

“산딸기! 산딸기!”

자치 왕국의 정예들은 무기로 드워프들을 위협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긁혀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제대로 드워프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더 흉험한 것이 필요하다. 드워프들에게 있어서 체중을 싣지 않은 무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됐다! 드워프들은 들어와라! 하지만 앉지는 마라.”

“예!”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고, 드워프들 또한 따라서 외쳤다. 초월자가 된 드낙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고, 예의를 차리는 것이 좋았다.

이들은 쪼르르 잔걸음으로 달려와서는 섰다. 거의 정사각형의 몸체는 대단히 인위적으로 보였다. 그 비율이 웃길 수는 있었지만 드워프의 풍채는 생체 탱크나 다름없었다.

드낙이 의자를 돌리는 사이에 드워프 중 하나가 도렌에게 손을 흔들며 투구를 벗었다. 이에 도렌도 그를 단박에 알아봤다.

“보호의 산맥 님 아니십니까!”

“하하하! 기억해 줘서 고맙습니다.”

보호의 산맥은 다른 드워프에게 이스핀과 도렌의 관계를 들었기에 전과는 다르게 존대로 그를 대했다. 그 모습에 도렌은 뭔가 켕기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천하게 대할수는 없었다.

보호의 산맥은 자치 왕국의 서쪽을 수호하는 중기병을 만들어주었다. 세계 최강의 군대였던 몽골조차도 중기 병을 운용했다. 중기 병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역사를 모르는 반푼이 뿐이다.

말 위에 탄 채로 화살을 쏴서 부족한 장력으로 갑옷 입은 놈을 상대로 재미를 볼 수 있다는건 큰 착각이다. 화살이 지닌 살상력은 상상 이상으로 적다.

그렇기에 보호의 산맥이 보여준 마갑은 도렌에게 있어서 무식하게 숲과 산을 올라도 말이 안 다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마갑의 끝판왕, 말발굽까지도 강철로 코팅해 준 무지막지 한 장인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 덕에 그 어떤 협소한 곳에서도 말을 들이 밀 수 있었고, 그 덕에 서쪽에서는 산적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밀고 들어가는 강철을 두른 말을 보자면 오금이 저릴 뿐이다.

“도렌 공왕, 내가 먼저 이야기할게.”

“아, 예.”

도렌은 보호의 산맥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에게 자신의 친분을 확인시켜 주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드워프들은 이번 일이 안 좋게 끝나더라도 도렌에게 기댈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마음을 편히 가졌다.

“이스핀이 뭘 어쨌길래 그러느냐?”

드낙이 드워프를 바라보며 묻자 이들 중 하나가 나서서 대답하였다.

“그가 만든 산딸기 주는 우리 드워프들에게 특히나 효험이 좋습니다.”

“그래?”

드낙은 흥미가 동함을 느꼈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도 이스핀이 만든 산딸기 주가 드워프들에게 잘 맞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자치 왕국의 시민 아닌가?”

도렌 공왕이 이스핀을 도왔다.

이스핀 백작은 안 그래도 주류 산업에서 발을 빼지 못해서 끙끙 앓고 있었다. 아내와 자식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돈은 돈대로 벌었고, 집도 있었다. 남은 건 게으름을 피우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 뜬금없이 드워프들이 달려와서는 소란을 일으키니, 스트레스만 쌓여가는 것이다.

“그는 명예 드워프입니다!”

드워프들은 도렌의 말에 반박했다. 이스핀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 상관 없다. 개인과 국가의 싸움이었다. 거짓말과 선동을 파헤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큰소리치는 놈이 장땡이었다.

“그가 받아들였다고?”

드낙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반문하자 드워프들은 머리를 긁으며 대꾸했다.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모든 드워프가 그를 명예 드워프라고 생각합니다.”

더 미칠 노릇이다. 드낙은 도렌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도렌, 모든 드워프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분명 이스핀은 명예 드워프다.”

세상이 그를 명예 드워프라고 하는데 자치왕국의 백작이라 소개해도 의미가 퇴색될 뿐이다.

“산딸기 주는 반드시 드워프들이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드워프들은 드낙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건 드낙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다. 그저이스핀만큰일 났을 뿐이다.

‘드워프가 이스핀을 돕는다면 자연히 도렌도 이득을 볼 수 있겠지.’

드낙은 단번에 판단했고, 이내 명령을 내렸다. 도렌이 그런 걸 받아먹을 리가 없다. 그도 이스핀을 제법 사용하는 편이다. 그만큼 좋은 윤활제가 없었다. 당연히 쓰기도 좋지만, 함께 하다 보면 정이 들고, 배려해 주고 싶었다. 도렌이 딱 그런 상태다.

이제 이스핀도 떵떵거리며 살아야 하는데, 갑자기 드워프 제국의 구덩이 속에 집어넣는다? 하기 힘든 일이었다. 왠지 배신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드낙이 대신 정리하기로했다.

‘욕 처먹어도 내가 처먹는 게 낫지.’

그러면 불만을 말하지도 못할 터다.

“그럼 내가 명령서를 써주지. 최대한 드워프들을 신경 써주라고.”

“가, 감사합니다!”

드워프들이 크게 감사를 표했다.

드워프 원정대는 크놀들이 사용할 길쭉하고 망치의 면적이 좁은 크놀식 대장장이 망치를 만들어 지하 연합에 납품하며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를 통해서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드낙이 나서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두툼한 고급 양피지가 펼쳐졌다. 그곳에 드낙이 죽죽 써내려 나갔다. 일필휘지(一筆揮之). 글씨체는 개판이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의 주저함도 없이 써 내려갔다. 다 쓰고 나서 드워프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스핀을 너무 괴롭히지 마라. 그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합당한 거근H를 통하여 계약해야 한다. 만약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알아라.”

“예!”

드워프들은 대답했다. 드낙이 명령서를 건네줬다. 이스핀 주도하에 그의 산딸기 주를 드워프에게 우선적으로 팔 노력을 하라는 제안이었고, 최소한의 양도 정해져 있었다.

다만 그저 구색에 불과했다. 한 달 최소 큰술통 한 개는 채우라는 말에 불과해서였다. 드워프에게 팔라는 소리도 없었다.

해석하기 나름인 명령서에 드워프들이 절로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본 도렌은 보호의 산맥과 눈이 마주쳤다. 이에 도렌이 드낙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드낙 님. 제가 저 드워프 중 하나에게 진 빚이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안 된다면 제가 잠시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십시오.”

“그렇게 해라.”

드낙이 손사래를 대충하자 도렌이 그들을 인도하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도렌은 당장 양피지에 편지를 써서 이스핀에게 드워프를 돕도록 하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도렌이 드워프에게 편지를 건넸다.

“한 번 읽어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배려에 고맙습니다.”

이스핀에게 감정으로 호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빚을 이야기하며 대신 해결해준다면 나중에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법 만족스러운 것이라 드워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들은 바로 떠났다.

그들은 이스핀이 사는 대저택에 이를 전달했고, 곧 응답이 왔다. 그토록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버티던 이스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명예 드워프! 명예 드워프! 명예 드워프!”

그 외침에 이스핀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 개새끼들. 진짜.’

입에서는 각성제를 물고 있었고, 약 냄새가 진하게 났다. 농성하느라 대저택의 입구에는 술통과 생활필수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 그렇게 마셨는데도 맨정신인 드워프들이 많았다. 이를 본 이스핀이 술통 위에 앉으며 말했다.

“먼저 난 여기서 산딸기 주를 만들 거다. 그리니까 용지를 사던지, 작업장을 하늘 위에 짓던지, 그건 너희가 해줘야 한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수긍하는 드워프들을 보며 이스핀은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그 어떤 손해도 감수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내 술이 그 정도야?”

“그렇다!”

드워프들이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들어 올리자 다른 드워프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곳에 있는 드워프 수백 명 모두 이스핀 산딸기 주를 맛본 드워프들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매일 늘어나고 있었다. 의외로 이스핀은 산딸기 주를 제법 만드는 편이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맛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들이 만든 산딸기 주도 레시피는 똑같은데?”

“드워프에게는 확실하게 차이 난다.”

이에 이스핀은 흥미가 일어나 대저택의 지하에 보관하는 산딸기 주를 두 통 가져왔다. 성인 남자 둘은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술통이었다.

하나의 술통을 뜯자 드워프들은 심드렁한 표정을지었다.

“그냥 산딸기 주인가 본데. 그런 건 맛이 좋아도 잘 느껴지지 않아.”

냄새만 맡아도 딱 알 수 있었다. 뭔가에 가로 막힌 것처럼 미약하게만 맡아졌다. 잔뜩 풍기는 산딸기의 향기 중 10%도 드워프에게 닿지 못했다.

“맛도 한번 봐봐.”

“맹탕이군!”

이스핀이 전해 주는 걸 마신 드워프가 단번에 마시며 평가를 했다. 이제 이스핀이 다른 술통도 뚜껑을 땄다.

거기서 풍겨오는 산딸기 주의 향기는 드워프들의 코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이스핀 산딸기 주로군!”

“저렇게 크다니!”

드워프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냄새가 드워프의 코를 가득 자극했다. 그 모습에 이스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이스핀 산딸기 주를 먹이자마자 드워프들은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며 얼굴이 풀어졌다.

“흐헤헤!”

진정제 맞은 곰처럼 굴었다. 아무리 강력한 마약을 먹어도 중독 현상 하나 없는 것이 드워프들이다. 그런데 이스핀 산딸기 주 한 방에 무장해제 되는 모습은 대단히 비현실적이었다.

이스핀은 이내 히죽 웃더니 자신의 양손을 들어 올렸다. 흥이 난 것이다. 그 어떤 술에도 취하지 않던 드워프들이 자신이 만든 술에 취한 모습은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이었다.

“보라! 이게 바로 나의 손맛이니라!”

드워프들도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중립신을 아직도 믿는 드워프들이 존재했는데, 그들의 마음이 단번에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맛! 손맛! 손맛!”

그 찬양에 이스핀도 냉큼 자신의 산딸기 주를 마시고 진탕 놀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은 맛대가리 없는 다른 사람이 만든 산딸기 주로 물장난을 치기도 했고, 이스핀은 거기에 머리를 감기도 했다.

“푸하아!”

지하에 있던 것이라 시원했다.

난동을 부린 탓에 관리가 썩은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야 이스핀은 폭주를 멈출 수 있었다.

‘기분 좋은데?’

상기된 얼굴을 한 이스핀은 자신이 의외로 칭송받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수많은 이들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여겼고, 실제로 다른 이들도 이스핀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도렌조차도.

그를 기득권끼리의 관계에서 필요한 윤활유로 쓸뿐이었다.

드워프들의 칭송과 기쁨은 이스핀이 처음 겪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포기한 것이 이렇게 돌아왔을 때, 이스핀은 쾌감을 느꼈다.

모든 인간은 지배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스핀은 술로 드워프들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로 드워프들이 환호했을 때 이스핀은 거대한 권력욕을 느꼈다.

그건 도렌 때문에 얻은 것도 아니고. 드낙 덕분에 잠깐 반짝이는 권력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재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렇기에 이스핀은 거대한 욕심이 일어났고 이것은 장작이 되어서 막대한 동기부여를 만들어냈다.

“당장 이스핀 산딸기 작업장을 만들겠다! 내 손길을 거친 산딸기 주를 통하여 드워프들에게 또 하나의 자유를 내걸겠다!”

그는 감정에 휘둘려 그대로 저질렀다. 이에 수백의 드워프가 이스핀을 들어 올리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스핀 산딸기 주에 취해서 본래 하지도 않을 짓을 거침없이 행하였다.

그들의 신앙이 이스핀에게로 스며 들어갔다.

드워프들의 종족성이 워낙 높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신앙이 다. 이스핀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초월의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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