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8 -->
에필로그
“중립신이 떨어진 별을 파괴하러 가는 중이다. 마신이 나에게 알려줬지.”
아카타베루가 담백하게 말했다. 그는 아스모데와 함께 별을 파괴하는 걸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 중립신 엘 마르토 카사다민은 가장 위험한 인신(人神)이라 여겨지고 있어서 왠지 불안한 것도 있었다.
죽어서도 대악마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중립신이었다.
대신육체(大神肉體)를 보면 알 듯이 중립신은 육체의 힘을 잘 아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악마의 덩치는 중립신과 싸울 때 큰 힘을 낼 수 없었다. 똑같이 덩치가 큰 걸 끌고 와서 부딪치고, 정신체는 또 따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두 손을 막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카타베루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여정이 힘들 거라 여기고 있었다.
다만, 아스모데는 중립신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대악마와는 다르게 뼈의 날개로 육체의 출력을 높이는 소형 악마였기 때문이다. 유황의 미녀라 불릴 정도로 인위적인 모습이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꾸미는데 민감하다.
대신 거짓의 고발자, 유황의 아스모데는 다른 것에 깊게 반응했다.
“마신을 믿는다고? 놈의 지배력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악마가 추락했는지 모르는 거야?”
뼈로 이루어진 날개.
유황을 흩뿌리는 날개.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날개가 흉폭하게 움직이며 날갯짓을 했다. 그 분노는 정당한 것이다. 아스모데는 오랫동안 살아온 대악마였고, 마신과 협력하는 아카타베루와는 다르게 마신과 한 번 거세게 부딪친 적이 있었다.
마신(魔神) 성현(Seonghyeon)이 지닌 지배력은 권속 악마에게도 통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마신에게 도전한 수많은 대악마가 허망하게 목을 내놓아야했다. 자신의 권속 악마에게 토벌당한 대악마도 존재했다.
그 뒤로 전차원계에 존재하는 악마의 성질이 변했다.
수많은 악마가 자신들의 종족성 자체를 뒤바꾸는 대업(大業)을 진행했고, 그때 일으킨 거대한 업의 소비는 아직 회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후대에 탄생한 악마의 종족성이 전과 달라지는 엄청난 사건은 모르는 초월자가 없을 정도였다.
“이제는 아니잖아? 마신도 자신의 포지션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는 거지.”
어쨌든 아카타베루는 마신 덕분에 제법 재미를 봤고, 서로 교류를 하는 편이었다. 이득이 발생하는데 저 새끼 나쁜 새끼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했다. 짱개머니와 쨉머니에 눈깔 뒤집힌 이들이 많은 이유였다.
그 누구도 그 많은 돈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 농지 천 평을 100억 주고 산다는데 그 돈을 안 쥐는 노부부가 있을까? 자식이 서울 월세에 치이는데 집 한 채라도 마련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짱개머니나 쨉머니나 감사한 일이다.
아카타베루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더 많은 카르마를 원했고, 더 많은 육체를 원했다. 그리고 마신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에 그를 옹호하는 처지였다.
은행원은 적금을 맹신하고, 펀드매니저는 펀드를 드높이고, 보험직원은 보험에 침을 튀기도록 극찬을 마다치 않는다.
이를 알아야 세상을 알고, 이를 깨달아야 현실의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며, 타인을 이해하며 동시에 타인을 통하여 자신을 비추어 자아(自我)를 대나무처럼 곧추세울 수 있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알아야 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자신이 어떤 이인지 깨닫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꼼꼼히 훑는 것과 같은 일이다.
“병신아, 마신 또한 이득을 보고 있잖아. 그놈이 차원계를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도 신들의 땅에서는 물러갔지. 근원(根源)에서 멀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 말에 아스모데가 미소를 지었다. 마신에 대한 소식 중 가장 반가운 것이 있다면 <신들의 땅>에서 마신이 물러난 것이었다.
“죽음의 세바리악.”
그 말을 했을 뿐인데도 주변의 온도가 낮아졌다.
저주가 대기에 흘러나왔다. 그리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차원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네크로맨서였다. 저주는 주변 소아귀(小兒鬼)들에게 스며들어 갔다. 그들에게 불운이 깃들었다.
이제는 토벌당하였지만, 아직도 놈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 이름을 말하지 마. 재수 없다.”
“하하하. 왜? 어차피 죽은 놈인데.”
“놈은 살아있다. 그렇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거지...”
아카타베루의 말에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놈에게 진정한 죽음이 내려앉을 리가 없지.”
“흥.”
아스모데는 그 대단한 평가에 비웃음을 날려줬다. 벌써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바리악이 부활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래서 함께할 거냐? 안 할거냐?”
“해야지. 요즘 날 상대해주는 놈도 없는 걸, 근데 많이 가야 해?”
“30년? 40년?”
“그렇게 길지는 않네.”
그 말을 끝으로 아스모데는 아카타베루의 악마세계 끝자락으로 날아가서 땅에 착지했다.
“껙.”
발을 둘러싸는 날카로운 뼈에 찍힌 소아귀가 단말마를 냈다.
그녀는 자신의 악마세계(Demon World)를 아카타베루의 세계의 뒤에 붙였다. 새까맣고 딱딱하게 굳은 재의 땅은 쉽게 부서지는 땅이었다. 종종 불타는 유황이 토해지며 땅을 추가로 덮었다.
유황은 재로 변하여 딱딱하게 굳어져 새로운 땅이 되었다.
이를 뼈로 이루어진 신발로 부수며 아스모데가 걸어나갔다.
“잠자는 이들아. 일어나라. 너희의 어미에게 오라.”
들썩! 들들썩!
퍼석, 퍼서석!
탄내와 유황내가 끔찍하게 피어오르는 필사(必死)의 땅에서, 그 어떤 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땅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스모데의 가장 강대한 권속 악마들이었다. 다른 대악마들은 상급 권속 악마 정도에서 멈추지만, 아스모데는 그보다 더 많은 힘을 권속 악마에게 줬다.
아홉 명의 상위 권속 악마에게 아스모데는 자신의 갈비뼈로 만든 왕관을 하사했다.
레리워리어라 불리는 갈비뼈의 왕관을 쓴 권속 악마들은 아스모데 특유의 권속 악마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악마조차도 토벌할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었다.
콰아아악!
재와 유황의 땅에 거세게 파헤쳐지며 뼈의 날개가 드러났고, 뼈의 왕관을 한 붉은 피부의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체격은 하나같이 컸고, 2.3m에 달하였다.
뼈 날개의 일부분이 빠르게 피부를 뒤덮으며 뼈로 이루어진 갑주가 전신을 둘렀다. 악마의 뼈로 만든 큰 장검을 바닥에 찔러 넣으며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어머니시여! 유황의 아스모데시여! 말씀만 하옵소서! 저희가 대신하겠나이다! 내 심장이 무너지고, 머리가 날아가도 맡은 바를 다 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옵소서!”
말씀만 하옵소서!
나의 어머니시여!
말씀만 하옵소서!
나의 어머니시여!
그들의 외침을 들으며 아스모데가 미소를 지었다. 이들 아홉의 레리워리어들은 그야말로 그녀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가 왔다. 별을 파괴하겠다. 나를 따라서 별의 파괴에 앞장서고, 이를 막으려는 이들의 심장을 도려내어라.”
“예!”
그들이 일제히 말하며 수많은 칭송의 말을 퍼뜨렸다. 다만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적응하려면 수십 년이 걸렸다. 큰 힘을 잠재웠기에 큰 시간이 필요했다.
아홉의 레리워리어 다음에는 수천의 아에리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다 지워버렸다가 다시 만들어내는 방식을 사용하는 아카타베루와는 다르게 아스모데는 그냥 죄다 동면시키는 편이었다. 둘 다 각자만의 장단점이 있었다.
아카타베루는 세계침공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병력을 새로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힘의 유동성은 아카타베루가 높은 편이다. 죄다 다시 잡아먹어서였다.
아스모데는 세계침공은 물론이고 병력의 정상화가 빨리 끝날 수 있었다.
일계급 레리워리어 아홉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병력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계급 아에리어는 ‘하늘을 뒤덮는 재앙’이라 불렸다. 이를 깎아내리는 자들은 그들을 날아다니는 흑염소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수천에 달하는 아에리어는 상급 권속 악마에 속하는 뛰어난 악마였다.
그 덩치는 10m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거대한 굉음을 일으키며 땅에서 솟아 나왔다. 지나칠 정도로 굵은 털가죽이 몸과는 따로 크게 출렁거렸다.
“메에에에!”
입을 쩍 벌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아에리어들의 긴 흑염소의 뿔이 불타올랐다. 거칠게 뼈로 이루어진 꼬리를 휘둘러서 재와 유황을 털어냈다.
그들은 관절부위가 특히나 불룩 튀어나와있었는데, 그곳에서 종양과 고름이 뒤룩뒤룩 삐져나왔다.
“전쟁이다! 전쟁! 일어나라 아에리어들아! 하늘을 뒤덮을 재앙아!”
“메에에에에!”
흑염소의 머리를 지닌 아에리어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박쥐 날개를 펼쳤다. 엄청난 양의 유황이 흩뿌려졌다.
그 유황은 평범하지 않은 유황이었다. 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일반 유황보다 10배는 더 독했다. 나약한 자들은 유황만으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죽은 중립신은 내 것이다!’
아스모데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카타베루 또한 이를 알고 있지만, 그 또한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저놈보다는 낫다는 것! 그런 자만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
“그렇게까지 가비노가 필요한가?”
“예. 지상을 달라고 하면 주실 겁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하를 준 대신에 지상은 극소수만 뿔쥐들에게 허락되었다. 과거 남부왕국의 서부가 그들이 가진 유일한 지상 영토였다.
이 때문에 대장쥐를 비롯한 뿔쥐 위원들은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했다. 자신들이 일등공신이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손해를 입은 것은 두말할 필요 없으며 가장 많은 수급을 챙겼다.
공도 많고, 사상자도 많으니 가장 대우를 많이 받아야 했다.
동시에 뿔쥐들은 드낙이 악마의 요람, 가비노(Gabino)를 하사품으로 쓸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얻을 수 있다면, 우리 뿔쥐가 가져야 한다.’
공중 요새에 더불어 가비노까지 얻는다면 그 누구도 지하 연합을 쉽게 볼 수 없을 것이고, 이를 이용하여 단번에 다른 세력과 격차를 벌릴 생각을 가졌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신을 위하여.’
드낙은 결국 이리저리 저울질하다 결정짓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너무 꼬이고 꼬인 선택이었다. 어느 한쪽이든 필요한 결정이라서 ‘이성적 판단’을 통해서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남은 것은 하나.’
뜨낙이 되는 것이다.
“근데 내가 세파리아스한테 주기로 했거든. 어쩌냐?”
“예?”
“분위기에 좀 휩쓸려서...그러니까 대장쥐! 너희가 나서서 세팔이랑 이야기 좀 해보고 둘이서 알아서 결정해라. 세팔이가 싫다면, 그냥 줘버려. 다른 거 든든하게 챙겨줄게.”
“예...!”
대장쥐는 일단 납득했다. 엎질러진 물이었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드낙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파리아스보다 한발 앞서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자책했다.
“만약 세팔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뭘 해줄까?”
뿔쥐들은 차선책을 논의해놓은 상태였기에 바로 즉답할 수 있었다.
“포로 중에 탄생석 골렘이 가비노에 있습니다. 이를 저희가 받아서 대해(大海)에 공중거점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한데. 더 원하는 바가 없는가?”
“나중에 다른 세력과 조정하여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좋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논공행상은 사전 물색이 더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종족 연합’은 다수의 국가 연합체와 같았다. 굉장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그들과 접촉하는 이유는 최소한의 분쟁을 막기 위한 윤활제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떠나자 대장쥐는 곧장 전공을 정리하고 있는 세파리아스를 찾아갔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쉽게 그들을 받아들였다. 겸사겸사 해야 할 일이었다.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내칠 정도는 아니었다.
“서로 공을 가려 이야기를 나누는 게 먼저인데,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그 말에 대장쥐가 이죽거렸다.
‘뻔뻔하기는!’
전공이고 나발이고 미리 악마의 요람을 받아 챙긴 세파리아스가 그들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악마의 요람을 내놔라, 신황제. 그건 우리 뿔쥐의 것이며, 살아 숨 쉬는 신의 입김이 닿은 성물이다.”
“미안하지만, 다 끝난 이야기다. 더 할 말이 없군.”
그 말에 대장쥐가 뚱뚱통통한 배를 내밀며 소파뒤에 몸을 기대었다. 보기만 해도 만지고 싶은 배였다. 윤기가 있는 검은 털은 뽀송뽀송해서 시선을 절로 모을 수 있는 매력적인 털이었다.
“내 놔!”
“안 줘! 당장 나가라!”
“우리 뿔쥐가 일등공신이다!”
“어림없는 소리!”
=============================
[작품후기]
6049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