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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이 짧게 대답했다.
“반갑다.”
드낙은 그렇게 3단어를 말했는데, 입술을 떨었다.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크게 붉어졌는데 그도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흐...”
거대한, 막대한 감정의 해일이 쏟아져 들어와서 얼굴을 때렸다.
그런 드낙의 모습에 세파리아스 또한 코가 새빨개졌다.
철혈의 영주였던 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으나, 그의 마음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는 게 드낙이었다.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똑똑하고 승승장구하는 첫째보다 항상 영악하게 굴고, 치근거리는 막둥이 같은 놈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운정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리 욕하고 저리 욕해도 서로에 대해서 강렬한 감정이 뒤섞이기 때문이었다. 무덤덤한 관계보다 미운정이 무서운 이유였다.
그들이 그렇게 꼴사납게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둘 다 중립신에 의해서 속박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는 말할 것도 없다. 나중을 위해서 그 영혼은 사로잡혔고, 그 시체는 그 덕에 썩지도 못한 채 백골로 남아 이지를 상실한 채 웬 허접한 모험가에 의해서 토벌당했다.
그놈이 드낙이었다.
반면 드낙 또한 중립신의 세뇌에 휘둘러 살았다. 전쟁으로 점철된 중립신의 대계에 휩쓸려 꼭두각시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거기에 둘은 협력하여 정신세계에서 중립신을 물리쳤다.
서로 큰 위업을 함께 손을 맞잡아서 달성했다는 트로피도 같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미 가족보다 더 끈끈한 것이 두 사람이었다.
그저 평상시에는 투덜거렸을 뿐이다. 드낙이 진정으로 기쁜 순간을 맞이했을 때, 세파리아스는 그간의 모든 것이 튀어나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이는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세뇌에 잠식당했던 것도 나중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많은 절망감을 느꼈었다. 무엇보다 세파리아스의 조언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뇌절하면서 어찌어찌 굴러갔기에 이 자리가 성사된 것이었기에 더더욱 ‘지금’ ‘현재’는 감동적이었다.
50만 원으로 연 1.5%의 금리의 적금을 들어도 들어오는 건 7,500원 뿐이다. 그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적다. 그저 개 같은 세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가 1억을 벌고, 어쩌다가 대저택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결과를 마주한다면? 눈물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 중립신의 세뇌에서 개같이 구르며 통나무 타고 목 부러진 삶의 끝에 중립신을 고꾸라뜨리고 초월자가 되어 세뇌를 말끔하게 털어냈다.
눈물을 안 흘리는 게 이상했다.
드낙이 그간 흘릴 수 없었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세파리아스는 그를 달래거나 포옹하여 다독여주지 않았다. 그 또한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제자 놈을 눈물로써 축복해줬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없었다.
그게 그들의 관계였고, 남자들끼리의 우정이다. 다독일 바에는 뺨 때리고, 마음에 선명하게 칼자국을 내지만 힘들면 지갑에 있는 만 원짜리 3장이라도 건네주기 마련이다.
큰 위기를 벗어나 오랜만에 술자리에 나온 친구를 위해 눈물은 흘릴망정 위로나 축복의 한 마디 없는 게 남자들의 세계였다. 필요한 건 소주 한 잔과 붉게 변하는 눈 그거 하나면 넉넉했다.
그 광경을 마주한 브누아 예레미아스(Benoit Jeremias)는 그 무슨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눈물을 흘리다니...’
강철과도 같은 존재가 세파리아스였다. 세상마저도 벨 수 있는 자가 지금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우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주룩주룩 흘렀다.
먼저 회복한 건 드낙이었다.
그는 냉큼 고개를 숙여서 세파리아스의 숙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냐? 우네.”
“빌어먹을 놈이...”
“하하하하.”
눈물 자국을 가진 채로 드낙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스트레칭하듯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후련했다. 한 번 쏟아내니 개운하기도 했다.
눈물을 손으로 닦은 드낙이 히죽 웃었다. 이에 세파리아스도 시원하게 웃었다.
“포옹이라도 할까?”
“징그럽다.”
세파리아스가 몸을 틀었다. 두 사람은 그런 사이였다.
“완전히 벗어난 것이냐?”
“그래.”
“그런 것치고는 장난치는 모습은 영락없이 경박한 그놈인데.”
“그 또한 나였으니까.”
“그런가.”
집안에서의 박호훈은 장난기 많은 아들이었고, 사회에 매질을 당하면서 변해갔다. 중립신은 그 이면을 끄집어내어 세뇌의 중심가닥으로 잡았다. 드낙에게 없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지분이 이상해진 것뿐이었다.
“중립신은?”
아직 반신에 불과한 세파리아스였다. 그는 중립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었다.
“도망갔다. 어찌나 빠른지, 놈은 계속 앞서나가는 것 같다.”
“그럼 뭐하나. 아무리 똑똑해도 세상이 그를 도와주지 않는데.”
천재라고 해도 결국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건 중립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도 패배하여 도망쳤다. 세파리아스의 담백한 반응에 드낙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다른 차원을 침공하는 거, 중립신 때문이 아니었나?”
“내가 왜? 그놈은 잡을 수 없는 놈이다. 미련은 버리는 게 좋다. 나중에 그놈이 스스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때가 유일한 기회겠지.”
“나타날까? 그놈이 알아서 나타난다고? 하하하!”
드낙이 웃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가 무표정으로 일관하자 이내 턱을 괴며 고민했다. 그리고 금방 답을 낼 수 있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 나중인데? 고민할 필요가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미련이 없다는 거다. 정말로 놈이 계속해서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언젠가는 툭 튀어나올 수밖에 없겠지. 그때를 위해서 나는 신을 죽이는 삶을 살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중립신은 결국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가 원해서가 아니다. 그는 그렇게 묻힐 존재가 아님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을 죽이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바로 신제국이며, 국가의 이념이 신살(神殺)이다.
“네놈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은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차원을 가꿀 거야. 너는 앞으로 질주하겠지만, 난 달릴 생각은 없어.”
필멸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생각이었다. 등쳐먹는 놈 없고, 먹을 걱정 안 하고, 놀 생각을 자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가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을 때, 부자가 되어서 편하게 살겠다는 그 꿈을 다른 이들에게 실현시킬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달릴 필요가 있었지만 세파리아스와는 다르다고 말했는데 그만큼 세파리아스가 목표를 향해 쏟아부을 열정은 비교할 수 없어서였다.
둘 다 열정을 쏟아붓겠지만, 거기에는 큰 차이가 존재함을 드낙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논공행상 때가 기대되지 않냐? 네가 원하는 건 뭔데?”
“왜? 들어주려고? 우습다.”
세파리아스는 그 말을 농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세파리아스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 옆모습에 세파리아스가 손사래를 쳤다.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그러나 드낙은 멈추지 않았다.
“나한테 많은 걸 줬잖아? 근데 난 너한테 아무것도 안 해준 것 같아서. 이번 한 번으로 퉁치자. 그게 편할 것 같다.”
비전을 받았고, 계속해서 중립신에 대해서 주의를 받았다. 마력을 획득하고 나서도 드낙의 무력 8할 이상을 차지했던 것은 세파리아스로부터 나온 것이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녹아낼 무(武)의 근간은 세파리아스의 찌꺼기가 있었다.
사냥꾼이며 암살자인 드낙이 기사로서 이류급에 머물 수 있었던 것도 세파리아스의 찌꺼기를 검은 문을 통해서 받아들여서였다. 모두 중립신의 간악한 한 수였다.
어중간한 재능만큼 괴로운 것도 없었다. 그것을 드낙에게 주기 위한 악독한 짓거리였지만 어찌되었든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대한 보답을 드낙은 가장 먼저 생각했다. 중립신의 세뇌를 완전히 떨쳐내며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세파리아스에게 보답하는 일이었다.
“준다면 난 받는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많이 너에게 해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퉁치자고.”
퉁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끝났고, 이제는 다시 위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자원을 얻느냐에 따라서 성장하는 속도가 달라질 터였다.
“음...”
거기서 도움을 받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었다.
자본주의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논공행상이 가지는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득을 주려 하고 있었다.
퉁친다니 뭐니는 배려인 셈이다.
“일등공신을 원한다면 줄 것이냐?”
“명예는 못 주지.”
드낙이 즉답했다.
방금까지 서로 축하의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렸던 것과는 판이하였다. 지나칠 정도로 매정했고, 냉정했다. 서로를 향해서 검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날카롭게 대화를 나눴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찰나에 불과하고, 비하인드 스토리만 가득하다.
“최고 명예는 너한테 못 주지.”
“그러면서 보답이니 뭐니 말한 거냐?”
명예는 피숨결 검은 뿔쥐들이 얻을 것이다. 신제국은 결코 일등공신이 될 수 없었다. 다종족 연합의 주체는 드낙이며, 드낙을 가장 신봉하는 세력은 뿔쥐들이었다.
가장 대우해줘야 할 세력이 지하 연합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뿔쥐들이 으뜸으로 최고의 명예를 쥐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번 전쟁에서 죽은 숫자만큼 그들은 큰 명예를 손에 쥐어야 했다.
거부해도 쥐게 될 것이고, 큰 것을 원하지 않아도 큰 것을 받을 것이다. 그게 바로 드낙의 처세였다.
“그럼? 뭘 줄 수 있느냐?”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며 세파리아스도 마음을 달리했다. 준다는데 거부할 양반은 아니었다.
“악마의 요람, 가비노(Gabino).”
드낙이 발로 우주 낙원을 쿡쿡 밟았다. 이에 세파리아스의 눈이 커졌다.
“진심이냐?”
“진심이다.”
드낙은 한 점 부끄럼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 맑은 눈에는 흑심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손해를 넌 가지게 될 거다.”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이걸 주면 난 어마어마한 손해를 가지게 될 거다.”
“내 감히 완벽하게 가늠했다고 할 수 없지만, 권속 악마 가비노에 깃든 악마의 힘은 상당한 수준이다.”
드낙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번 전쟁에서 얻은 절반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나한테 준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냐?”
드낙이 그 말에 또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감히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 모습에 드낙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이내 배를 잡고 서서히 커졌다.
“날 놀린 것이냐?”
“아. 하하하.”
웃어서 눈물이 조금 삐져나온 것을 닦으며 드낙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진정하고 난 뒤에 그가 말했다.
“가비노를 가져라. 세파리아스.”
“왜?”
너무나도 큰 선물을 주려는 모습에 세파리아스는 이유를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새끼야. 꼭 그런 걸 물어야겠냐?”
드낙은 손으로 코를 문지르며 거칠게 말했으나, 세파리아스는 꼭 알아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나중에 배 아파서 매일 같이 날 찾아올 것 같은데.”
“날 그렇게 욕심쟁이로 보고 있었냐?”
“그게 네 본질이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 근데, 세팔아. 넌 그게 문제야.”
드낙이 어린애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든지 사리에 맞는 일만 있으면 뭐가 즐겁겠어? 중립신이 왜 자신을 녹여서라도 테라를 완성시키고 싶었겠어? 그에게는 반짝이는 별들이 없었어.”
뻥뻥 터지는 불꽃축제가 그에게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결국 중립신은 자신의 안배를 통해서 미꾸라지처럼 사라졌다. 이 또한 그에게는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 셈이다.
“그냥 말해. 기분 존나게 째진다고. 드낙 코인타서 가비노 같은 거대한 요람을 얻게 된 인생, 이처럼 기쁜 날이 없었다고 한마디만 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그동안 내 옆에서 고생했으니,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대박 터지는 날. 그걸 너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주는 거다.”
“후, 후하하하하!”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눈물을 뽑아가고, 이내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음소리가 줄어들며 웃어젖혔다. 배를 잡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좁쌀 하나로 임금이 된 격이었기에 그렇게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행복감에 젖어있는 세파리아스를 보며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기쁘기 때문이다.
“드낙 코인 맛이 어떠냐? 너한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넌 상상도 못했겠지?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이 말이야!!! 하하하하하!!!!”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대답도 못 하고 드러누워서 웃음을 또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드낙 또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전염되듯이 퍼져나갔다.
모든 필멸자들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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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시작합니다. 다음 달에는 완결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 네이버 외전 연재를 할 것 같습니다.
블랙 사파이어도 많이 봐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