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94화 (99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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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우두커니 <검은 늪>에 드낙이 서 있었다.

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에게는 악마의 육체가 있었고, 검은 늪의 섭리에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익절을 하고 가야지. 손절매가 뭐냐, 중립신! 넌 고작 그것뿐인 놈이었나!’

드낙이 분노했다. 뭐라도 이득이 있을 때, 털고 가야 했는데 중립신은 손해를 보고 호다닥 도망쳤다. 그런 놈에게 자신이 농락당한 채 살았다는 게 분했다. 그 분노는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욕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개자식!’

드낙은 그런 중립신을 욕했다.

박수칠 때 떠나지 않고, 뺨 맞고 도망친 격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 놈에게 당한 드낙 자신이 하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놈이 아직도 똬리를 틀고 있다면?’

이 검은 늪조차도 기만이라면?

드낙은 모든 감각으로 중립신이 도망쳤다고 보고 있었지만, 진짜로 도망쳤다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의심했고, 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난 아직 완벽하게 이 세상을 가진 것이 아니니까.’

신으로서의 격을 획득하지 못하고 걷어찼으며, 신성(神性)을 한 번 더 잠재워 존버를 택했다. 더 완벽하고 더 거대한 그릇을 얻기 위해서였다. 인신이라는 한계가 아닌, 종족신으로서의 한계가 아닌, 다종족신(多種族神)에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걸 그가 예상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초월자 악마. 그거 하나 쥐고, 신은 조금 더 숙성시켜서 먹을 거라는 예상을 중립신이 안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손절했다.’

믿기 힘들고, 의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검은 생각이 드낙의 몸을 헤집었다.

‘최소한 익절하고 싶지. 손절하고 싶을까?’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탐하고 싶은 것이 중립신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손으로 더듬던 드낙은 수많은 것을 재점검했고 하나의 진실에 도달했다.

‘나가는 누구에게 휩쓸린 것처럼 개체수가 너무나도 적었지.’

‘엘레우테리오의 절반 남은 신성(神性)이 그 어디에도 없다.’

이를 통해서 드낙은 수긍했다.

‘손절이 아니다.’

이득을 보고 중립신은 떠났다. 고점은 아니더라도, 손해는 아니었다.

‘역시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이렇게 ‘때’를 잘 맞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大神)의 영역에 오르더라도 중립신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후우.”

드낙은 모든 의심을 접고, 중립신이 진정으로 떠났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기분이 심숭‘샘숭’했다. ‘삼성’ 반도체라도 하나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것으로 대부분은 끝났다. 정말로 긴 여정이었다.’

검은 늪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드낙은 과거를 회상했다. 어쭙잖은 생각으로 검술을 배우고, 고블린을 죽임과 동시에 검은 꿈이라는 능력을 얻었다.

‘그때만 해도 기분 좋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수많은 마법을 통달하여 지구로 가고 싶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현대인의 눈으로 보이는 부족함에만 가득 차서 밖으로 나섰다.

이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고 나서 사실 목장 주인이 그렇게 가난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돌아가지 못했다.

‘중립신의 세뇌.’

그것은 자신의 가족조차도 대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가봤자 의미가 없었다. 오크 대전쟁에 휩싸여 죽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화마에 휩쓸린 지도를 보고 이를 알았음에도 드낙은 그 어떤 감상도 하지 못했다.

뇌 속까지 뻗쳐있는 세뇌 때문이었다.

오로지 업(業)에 미친 괴물이 되었다.

이제야 드낙은 가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은화 10닢이었던가...15닢이였던가...’

장남이 아닌 차남에게 그런 돈을 쥐여줬다는 것부터 그들에게 자신은 사랑받았다. 드낙은 절로 우울해졌다.

그 뒤로 끝없는 전투를 수행했다.

종종 휴식기를 취하기도 했지만, 매우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중립신이 ‘때’를 맞춰서 모습을 드러냈기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삶을 살았다.

그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해결하며 드낙은 이제 여기에 섰다.

성취감? 없었다.

‘그게 현실이라는 놈이지.’

산 정상에 오른다고 한들,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고 인생에 행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시냇물처럼 흐른다. 바다에 도달하는 이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랑새는 없다.’

3년 전의 자신과 5년 전의 자신과 10년 전의 자신과 앞으로 미래에 있을 자신이 쫓을 파랑새는 매번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진짜 파랑새는 없다. 파랑새라고 여겨지는 목표와 행복을 위해서 계속 걸어가고, 때로는 달려가고, 때로는 멈춰서 그저 바라보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신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어렸을 때는 햄버거를 지독하게도 좋아했었지.’

그건 분명 한식을 매번 먹었기 때문이다.

‘군대 가서는 인스턴트에 미쳐 살았지.’

그건 분명 짬밥이 더럽게 맛없기 때문이다.

‘30대 시절에는 소주가 최고였지.’

그건 분명 삶에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건 수없이 변하는 입맛과 같았다. 끝없이 변화하기에 거기에 계속 맞춰가는 수밖에 없었다.

초월자가 되어 마무리된 것도 많았지만 새로 시작되는 것도 많았다. 드낙의 눈에 더는 중립신이 담기지 않았다. 그가 움직였다.

콰드드득!

검은 늪의 공간이 박살이 나서 흩뿌려졌다. 그 밖으로 나온 드낙은 자신이 있을 곳으로 되돌아갔다.

‘차원을 관리하는 악마라. 다른 악마들이 보면 까무러치겠지.’

“하하하.”

40년? 그 뒤에 자신과 마주할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가 방문했을 때. 그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입을 떡 벌릴 것은 분명했다.

새로운 태양이 탄생했다.

중립신의 차원은 드낙의 차원이 되었다.

악마가 관리하는 차원이며, 악마가 수호하는 별이 이 차원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파괴와 포식으로 성장하는 악마가 안주했다는 뜻이니까. 허나 드낙은 다른 악마와 달랐다.

그는 신처럼 필멸자로부터 업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악마와는 다르게 안주해도 성장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신으로서의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었다.

중립신이 만든 괴물이었다.

그가 그 정도로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 까닭은 단 하나뿐이다.

‘내가 그렇게 되기 전에 죽이려고 했겠지.’

아닐 것 같으면서도 그럴 것 같았다. 아니라도 생각했는데도 또 그럴 거라 여겨졌었는데 초월자가 되고 보니 정말로 그랬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중립신의 입장에서 100번 생각해도 신과 악마, 모든 격을 지니게 될 드낙은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전(前) 우주 낙원, 현(現) 악마의 요람, 가비노(Gabino)는 일주일 만에 모두 점령되었다. 그 속에서 탄생석골램(Birthstone Golem)은 굴복하여 가비노에게 초월의 힘을 제공하기로 한 대신에 살아남았다.

전투능력이 전무한 탄생석 골램이었기에 세뇌만 영향무력으로 잘라내면 끝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서야 드낙이 외쳤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는 무너진 빌딩 위에 서 있었다. 12m에 달하는 악마의 날개에서 그림자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우주 낙원의 지상에서 수백만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위로는 바람마법이 형성되어 공기를 내뱉고 있었다. 성층권에 멈춰선 우주 낙원이었음에도 호흡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세파리아스가 그런 인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좌우에는 적청기사왕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에는 천상십이수극대전사(天上十二手極大戰士)가 팔짱을 낀 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느냐? 친우여.”

브누아 예레미아스(Benoit Jeremias)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입을 열었다가 오물거렸다.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이에 브누아 예레미아스의 눈이 흥미롭게 변했다.

‘감상에 젖다니. 세파리아스 답지 않군.’

그가 그렇게 놀랄 정도로 세파리아스가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는 광경은 볼만했다. 만난 지는 짧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브누아 예레미아스였다.

“흥.”

세파리아스는 대답하지 못한 채 콧소리를 한 번 냈다. 거기에는 수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망할 놈.’

그 나름대로 수많이 드낙에게 가르침을 내려줬다. 허나, 놈은 무인(武人)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가져가지 못했다.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드낙은 자신의 아픈 손가락과 같았다.

그는 그 이후에 부채감마저 느꼈고, 크레시미르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레이시아의 아들이며, 드낙의 아들임에도 그가 그렇게 많은 걸 내려준 까닭은 드낙 때문이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에게 평범한 사람이 어떤지를 보여줬고, 그 속에서 평범한 놈이라도 우뚝 설 수 있는 재능을 여럿 가졌다는 걸 보여줬다. 그 깨달음은 세파리아스가 신제국을 운영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야아아아아!!!”

드낙이 고함을 내질렀다. 이에 호응하듯이 모두 고함을 내질렀다. 영락없이 경박하게 구는 모습이었지만, 세파리아스는 거기에 속지 않았다. 뜨낙의 면모는 종종 쓰기 좋을 때가 있었다.

“술을 열고, 잔치를 시작한다!”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서 공수된 비싼 놈들이 올라왔다. 요리 대회에서 든든하게 성적을 받은 것들도 있었지만, 새롭게 창출된 것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드낙이 눈여겨본 것은 바로 털을 빡빡 깎은 뿔쥐 요리사들이었다.

‘뭐가 저렇게 커?’

거대한 무쇠솥을 가져와서 요리를 준비하려고 하고 있었다.

화르륵!

불이 지펴지고, 달구어졌을 때 기름을 뿌리고, 수많은 향을 내는 채소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 종류만 해도 다섯 종류가 넘었다.

치이이익!

향긋한 냄새가 퍼져나갔고, 뿔쥐 요리사들이 물로 손을 씻은 뒤에 미리 삶아놓은 식재료를 꺼냈다.

텁텁해서 잘 안 먹는 삶아진 닭가슴 살이 뿔쥐 요리사의 손에 잡혔다.

‘맛이 그렇게 있어 보이진 않네.’

그 식재료를 본 드낙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닭가슴살은 썩 좋은 식재료라고 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그마저도 양념이나 그런 걸 크게 해서 먹는 편이다.

식감이 텁텁하다는 것은 그만큼 큰 단점을 지닌 식재료였다.

‘이런 장소에서 저런 걸 꺼내올 뿔쥐 요리사들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 드낙은 다른 판단도 올려놓았다.

‘버려지는 식재료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두고 볼 뿔쥐들이 아니지.’

인구수가 많은 게 지하 연합이었다. 이런 ‘맛대가리 없는 식재료’를 개발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을 한 드낙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촤악! 촤악!

단단히 볶으면서 기름을 추가하거나, 향을 내는 채소와 야채를 계속 곁들였다. 찢어 넣은 닭가슴살의 양은 천 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많아지자 뿔쥐 요리사들이 마법을 사용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간헐적으로 한 번씩 위에서 쫘아악 쏘아져서는 닭에 불맛을 입혔다.

“오우...”

꿀꺽...

그 화려한 불쇼에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냥 저대로만 먹어도 분명 맛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뿔쥐 요리사들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출렁, 출렁!

통에서는 액체가 소리를 거세게 냈다. 드낙은 이를 들을 수 있었다.

‘뭐지? 뭘 가져온 거지?’

뚜껑을 열자 드낙은 강렬한 해산물의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또 코를 찌르는 내장의 향기를 맡았다.

‘요것 봐라?! 여기서 해산물...내장을 가져왔다고?’

그건 바로 꽃게의 내장이었다. 숙성을 시켜놓았는지 냄새를 맡자마자 코가 뻥 뚫릴 정도였다. 저 상태로 먹으면 배탈이 날지도 몰랐다.

그 끔찍한 냄새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갑자기 확 집중되었다.

콸콸콸!

꽃게 내장이 단번에 무쇠솥에 들어갔다.

치이이익!

타들어 가는 내장의 냄새는 고소했으며 꽃게가 삶아지는 냄새도 조금 풍겼다.

부글부글!

꽃게 내장이 끓어올랐다. 여기에 다진 채소와 야채를 또 넣고, 소금도 뿌렸다. 단단히 빻은 고소한 깨 같은 것도 가루로 들어갔다. 그게 결정적이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거기까지 본 드낙은 이내 가장 첫 줄에 섰다.

“완성되었습니다. 한 번 맛보시지요.”

“요리에 대해서 한번 말해보라.”

“예!”

뿔쥐가 냉큼 입을 놀렸다.

“꽃게가 맛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나, 내장은 버려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냥 먹으면 배탈이 날 위험도 있었기에 수프처럼 끓이며 먹거리로 만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닭꼬소내장탕’입니다.”

“닭꼬소내장탕!”

드낙이 크게 이름을 내뱉었다. 이내 바로 한 숟을 떴다. 먼저 촉촉한 내장은 해산물의 향을 날카로운 창처럼 그의 혀와 코를 들쑤셨다. 강력한 일격이었다.

‘끓인 내장 속에 고소함과 야채와 채소의 풍미도 느껴진다. 잘 융화되면서도 해산물의 맛을 으뜸으로 잡았다.’

야채와 채소 그리고 고소한 깨 같은 것은 그저 보조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장의 불호를 최저한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장의 맛을 조금 낮추기 위해서 선택했다.

맛있는 비린내라고 할 수 있었다. 또 단순히 내장만 아니라 다진 야채와 채소 덕분에 거부감이 크게 줄어드는 걸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장만 넣으면 입이 심심하다.

우적우적.

손으로 찢어 넣은 닭가슴살이 씹혔다. 내장과 뒤섞였고, 텁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닭가슴살은 씹자마자 불향이 확! 튀어나왔다.

드낙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내장의 향기를 우직하게 썰어버리고 등장한 불맛은 새로운 맛까지 선사해줬다.

“일품이다. 일품이야.”

버려지는 꽃게 내장과 싼 닭 가슴살로 만든 요리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한 그릇을 뚝딱한 드낙이 외쳤다.

“한 그릇 더!”

이내 한 그릇으로 또 받아든 드낙이 냉큼 일어나 그 그릇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안 먹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놈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드낙이 물러가자 다른 이들이 서둘러 줄을 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닭꼬소 내장탕의 압도적인 냄새부터 안 먹으면 병신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드낙은 그렇게 뜨낙의 모습을 보여줘서 분위기를 띄웠다. 뜨낙의 면모는 항상 나쁜건 아니었다.

모습을 감췄다가 이내 구경만 하고 있는 세파리아스의 앞에 섰다.

“드낙이,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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