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92화 (99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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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그 말에 엘레우테리오가 탄식했다.

모든 걸 이해한 것이다.

‘그놈이...중립신까지 죽이다니...!’

그가 그렇게 판단하는 사이에도 그의 절반 남은 신성(神性)은 쥐가 갉아먹는 것처럼 소모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급히 말하였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 검은 곳이 어딘지는 모르나 분명 그놈의 함정이 틀림없습니다. 행성에 고정되어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말에 중립신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하고 나와 동화하라. 그리한다면 신성의 소모가 일어나지 않으니.”

엘레우테리오가 급히 그에게 다가가서 그와 접촉하였다. 정신과 정신이 만나 서로 뒤엉켰으며 서로 간의 동화율이 올라갔다.

‘고맙다. 드낙아. 이렇게 절반이나 남기다니. 세파리아스에게 주지 않았구나. 어지간히 너도 욕심쟁이다.’

일치되어가는 정신 속에서 엘레우테리오는 실제로 자신의 신성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후우!”

그가 크게 안도했다. 그리고는 중립신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발등의 불이 떨어졌으니, 이제 진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이곳에서 부활의 때를 준비하셨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곳에 있습니까. 그 챔피언은 뭐하는 놈입니까? 그가 당신을 토벌하였습니까?”

모르면 코 베이기 쉽다.

그 진리를 잘 알고 있는 게 엘레우테리오였다. 다만, 중립신이 진정으로 그를 생각한다면 ‘모르는 게 약이다’라고 말했을 터였다.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중립신은 그의 신성을 원했다.

속사포처럼 말하는 그 질문에 중립신이 하나씩 대답하였다. 물론 그 속에는 온갖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 상황을 보고 있는데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이제 이 차원을 시작하여 믿을 수 없는 인간 하나가 다시 한 번 거대한 차원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 그게 무슨...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 챔피언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입니까?”

중립신은 충격적인 미래를 퍼뜨리는 것으로 엘레우테리오를 휘어잡았다.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는 모습을 드낙이 봤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을 터였다.

결국, 그놈이 그놈인 셈이다.

그저 위치에 따라서 간사해질 이유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돈이 중요했다. 지금 중립신은 가난했고, 뭐라도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는 입을 털기 바빴다.

“너조차도 그를 겪어봐서 알 텐데? 내가 준 권능을 연마했겠지? 그것으로 싸웠느냐?”

“예. 하지만 그놈은...그것은 대체...이해가 안 될 정도로 강하였습니다.”

인신(人神)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끔찍함. 공포가 깃들어있었는데 그 모습에 중립신이 이해하지 못했다. 드낙이 그렇게 강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또 하나의 변수로 보였고 중립신이 물었다.

“대체 무엇을 겪었기에 그러는 것이지?”

이에 엘레우테리오가 자신과 드낙의 전투를 상세히 언급하였다. 그걸 들은 중립신이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원래라면 연기를 하여 내뱉었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말 끝을 모르는 놈이구나.’

사냥꾼의 재능으로 사냥감을 쫓으며 세뇌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고.

이를 통하여 잠들어 있는 재능이 깨어나 모든 것을 휩쓸며 단번에 높이 솟아오른다.

‘차원이 다르다. 반마반신(半魔半神)의 변수가 그를 더욱 높은 차원으로 이끌었다.’

원래 중립신의 의도는 초월자 반열에 오르는 속력을 늦추기 위함인데, 이건 소기의 목적만 이뤄졌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더 커져 버렸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립신을 드낙이 잡아먹었다. 세파리아스는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그는 챔피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부활한 것도 최근이었다. 그 덕에 드낙은 중립신의 업을 독식하다시피 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엘레우테리오를 잡아먹었고, 자유의 권능이 지닌 진짜 ‘무기’를 힘으로 삼게 되었다.

‘내가 위험하다.’

중립신은 자신이 현재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음을 알게 되었다.

이곳, <검은 심해>는 세상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서 만든 공간이었다. 드낙 또한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초월자가 된다면 세뇌도 사라질 것이고 24시간 내내 머리를 굴린다면 능히 내가 이면에 숨어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깨닫지 못해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다가 결국 도달할 것처럼 보였다. 그의 사냥꾼으로서의 면모는 중립신 또한 크게 인정하고 있었다.

깊이 고민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 중립신을 바라보며 엘레우테리오는 잠자코 기다렸다. 그의 눈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따라가면 된다.’

버스에 탑승했다.

이제 어딜 가는지 따라만 다니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음.”

중립신이 생각을 정리하고, 엘레우테리오를 바라보자 그가 냉큼 무릎을 꿇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시여. 저의 주인이시여. 제가 다시 한 번 그대에게 몸을 담아 충성할 수 있게 해주소서.”

“날 한 번 배신한 너를 내가 어찌 믿을 수 있느냐?”

“말씀만 하시옵소서. 제가 당신을 다시 한 번 따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의 충성을 증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에 중립신은 간단히 넘어가지 않았다.

“옛날 일이긴 하지만, 그때 너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솔직히 말해보라.”

그의 여동생이었던 프레이 여신이 그를 배신했다. 모든 인신이 그를 도왔다.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공격한 인신은 1/3에 불과했다. 조별과제란 언제나 그런 것이다.

3명 중의 1명만 제대로 일을 한다.

그건 인격신도 마찬가지였다.

“전 그 무엇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응하긴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도 죽었을 것입니다. 대세를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중립신은 그 말을 깊이 들어주는 척하며 주제를 옮겨갔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너도 그러했듯이 나의 챔피언에게 내가 패배했기 때문이다.”

다른 정보를 퍼뜨리며 그 경계심을 줄이기 시작했다.

“헉. 그게 가능합니까?”

“엘레우테리오, 어리석은 인신아. 내가 큰 상처를 입고 소멸의 위기 속에서 도망쳐 나와 이 차원에서 내가 죽었으니, 이 차원에 있는 필멸자들이 평범한 이들로 보이느냐.”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맞다. 나는 행성을 크게 하여 이 차원의 문을 걸어 잠가 필멸자의 세상을 만들려고 했으나, 그전에 나의 챔피언에 의해 패배했다.”

“허어...”

엘레우테리오가 경악했다. 중립신의 힘이 행성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뒤통수를 친 것이다.

“아주 개자식입니다.”

“그 말이 맞다. 주인을 모르고 주인을 잡아먹은 짐승이다.”

“그런데...대체 그 챔피언은 뭐하는 놈입니까? 정말로, 어떻게 그런 놈이 있는 겁니까?”

중립신은 대충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자세히도 말해줬는데 모두 엘레우테리오를 겁주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중립신과 엘리오테리오는 비슷한 처지로 보였다.

실상은 전혀 달랐다.

중립신은 나가들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그가 지닌 업은 부족함은 있었지만, 위기감은 없었다. 다만, 드낙 때문에 위기감이 생겼을 뿐이다. 반면 엘레우테리오는 정말 손을 놓은 상태였다.

절반 남은 신성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곳에 흘러들어온 것만으로도 그는 감사해 하며 중립신에게 굴종할 마음이 가득했다.

‘살아남을 수 있다!’

중립신은 냉철한 신이기에 그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컸다.

하나보다는 둘이 위기를 헤쳐나가고, 효율을 높이는 데 이득이었다. 대부분의 동물이 무리를 이룬다는 것만 봐도 ‘여럿’의 힘은 대단하다.

그 모든 이야기는 대단히 길게 이어졌다.

수많은 것을 논했고, 중립신은 엘레우테리오와의 관계를 증진시켰다.

그 결과 엘레우테리오는 자신의 신성 대부분을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지금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힘과 업 그리고 신성을 하나로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때가 된다면 저를 부활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마.”

중립신은 손쉽게 엘레우테리오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고맙다.”

“예? 악!”

엘레우테리오가 단말마를 질렀다. 그게 전부였다. 그의 영혼마저 집어삼켜 힘으로 만든 중립신이 미소를 지었다.

‘본래라면 드낙과 협상하여 세파리아스와 삼두정치(參頭政治)를 논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과 함께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수틀리면 칼로 찌르는 것들이었다. 특히 세파리아스의 분노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400년 정도 속박한 것에 불과하거늘.’

이지를 상실해서 드낙에게 한 번 패배했다는 것도 세파리아스의 자존심을 긁었지만 중립신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어찌 되었든, 드낙의 변수 창출이 너무 거대했고, 기대치를 훨씬 웃돌았으므로 중립신은 그대로 도망쳤다.

‘행성에 깃든 내 힘은 포기한다.’

깔끔하게 손절하기로 했다.

이득에 밝은 드낙이 신의 반열에 오른다면 가장 꼼꼼하게 챙길 것이다. 삶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행성에 깃든 중립신의 힘을 위해 사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터였다.

‘드낙이 조금만 더 재능을 피우지 못했다면...’

중립신은 아쉬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반마반신이 된 이후 드낙이 조금이라도 덜떨어진 재능을 지녔다면 그는 여기에 남았을지도 몰랐다.

그는 완전히 이 차원을 떠나버렸다.

그가 어디로 갈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립신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누구도 찾지 않고, 나약한 이들만 가득한 외딴 차원에 다시 한 번 뿌리를 내려 모든 필멸자들이 신이 되지 못한 채,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땅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는 이번에 배운 경험을 잘 녹여서 다시 한 번 도전할 생각을 가진 채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 결정에는 많은 근거들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드낙은 내 예상을 뛰어넘고 굉장히 빨리 신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전에 튀어야 했다.

*

드낙은 가장 먼저 칠색칠룡을 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놈들 때문에 바스러지는 다종족 연합의 생명체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한 마리가 최소 만(萬)을 죽였다. 다섯 마리였기에 한 번의 공세에 5만이 죽어갔고, 최대 15만까지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소모율 속에서도 다종족 연합의 증원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부딪치고 부딪쳤다.

어느 한쪽이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나며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고를 반복했다.

고로, 우주 낙원의 피해도 막대했다.

아무리 부서뜨려도 자색주포는 계속 튀어나왔다.

금방이라도 끝날 것처럼 압도적으로 쏟아붓던 통나무 미사일은 끝도 없이 계속해서 화력의 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단순한 화염 주술 같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주술 폭풍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기에 압도적인 물량을 생산할 수 있었고, 지금 이곳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우주 낙원의 피해도 다종족 연합만큼 거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물약을 거침없이 먹어치우고, 회복을 통해서 꾸준히 초월의 힘을 통한 저항도 이어나갔다. 방어마법과 다수 마법이 서로 간에 쏟아지듯이 터져 나왔다.

그 속에 드낙이 난입했다.

칠색신룡(七色神龍)은 형태를 지닌 존재였으며, 육체를 가진 용족이었다. 그런 놈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드낙은 가장 강력한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파사삭...

파동으로 변했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칠색신룡의 머리통이 그대로 먼지로 변하며 흐트러졌고, 육중한 몸이 떨어져 내렸다.

피아구분 없이 떨어지며 빽빽하게 모여있는 수천을 덮쳤다. 드낙은 이를 도와주지 못했다. 수천을 구하는 것보다 한 번에 만(萬)을 죽일 수 있는 칠색신룡 4마리를 빠르게 죽여야 했다.

그들은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드낙은 파동으로 이동하여 그들과 접촉했고, 그들의 머리만을 미시세계의 입자로 이동시켜 원자단위로 분해해버렸다.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에 죽어가는 동료를 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전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적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어서 더더욱 아군이 어떻게 죽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 모두를 죽인 드낙은 본격적으로 이번에 배운 것을 써먹었다.

세상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를 자신의 입맛대로 변형시켰다. 수많이 변화하는 곳에 노출된 인조생명체들은 무엇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당황했다. 그리고 드낙의 그림자가 스멀거리는 곳을 향해 득달같이 무기를 휘둘렀다.

인조생명체는 인조생명체의 목을 향해 서로 무기를 찌르고.

이빨을 드러냈으며, 서로의 눈이 마주치며 그렇게 죽어갔다.

삽시간에 판도가 변했다.

전쟁터의 분위기가 어긋나며 한쪽 편으로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드낙의 몸 밖으로 정신체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드낙의 등에 악마의 날개가 서서히 삐져나오며 커지기 시작했다.

드낙이 탐욕스럽게 인조생명체를 죽이며 그 업을 취하면서 변화가 극적으로 찾아왔다.

처음 중립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100년 빨리 드낙이 자신의 그릇을 완성했다. 지금의 중립신이 결심한 것과 똑같은 결과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화(開花)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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