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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세파리아스의 영향무력(影響武力)으로 인하여 신의 속박에서 풀려난 적청기사왕의 오러블레이드 덕분에 신제국 수도에서의 전투는 쉽게 끝났다.
중립신과는 다르게 4성 오버로드에게 새겨져 있는 세뇌와 속박은 제거하기가 매우 쉬웠다. 음흉함과 철두철미함이 격이 달랐다.
“부상자들을 모으고, 사망자 수습을 위한 병력을 2만 남겨두고 우리 신제국 또한 공간 이동을 시작한다.”
“예!”
우루루 전령들이 뻗어 나갔다.
동시에 현재 신제국의 병력 현황 또한 갱신되어 정보로 들어왔다.
신제국은 병사 15만을 각지로 보내놓은 상태였고, 35만을 수도에 밀집시켰다.
수도에서 전투를 수행한 35만의 병사 중 10만이 죽었고, 25만이 생존했다. 무장기사와 끈질긴 곰의 강력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래서 즉사한 병사가 7할이 넘었다. 보통 전투와는 현격히 차이가 났다.
원래는 그렇게 많이 죽을 수가 없었다.
생존한 병사 25만 중에서 부상자는 5만 명이 넘었고, 대부분 전투불능에 빠졌다. 불구가 된 이들이 대단히 많았다.
경상자는 10만에 달했다.
현재 가용 가능한 병사는 10만이었으며 그중에 1만을 사후관리에 배정하기로 했다.
9만의 병사들.
1만에서 7천으로 줄어있는 기사들. 천 명밖에 없었던 황제 기사단은 반 토막이 났다. 죽은 건 아니고, 흐름(Stream), 극점 찌르기 사선(Zenith Sting – Diagonal)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데리고 세파리아스는 수도의 내성 지하에 미리 설치해둔 대형 마법진을 가동했다. 지하에 대피해있던 마법사들 또한 힘을 보탰다.
우주 낙원에서 신제국을 위해서 만들어둔 대형 마법진 하나가 빛을 뿜어냈다.
피곤한 기색이 제법 있는 신제국의 군대가 들어섰다.
세파리아스는 주변을 살폈다. 중형 마법진은 물품 수송에 용이했기에 계속해서 보급품을 나르기 바빴다. 대형 마법진에서는 새롭게 병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굉장히 다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세파리아스 또한 명령을 이어나갔다.
“준비하고 있어라.”
그가 성큼 걸어가서 조잡한 종이에 보급품을 확인하며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자치왕국관리가 보였다.
“신제국의 황제를 뵙습니다.”
냉큼 그가 고개를 조아렸다.
“자치왕국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
“나누어져서 진행 중입니다.”
그가 대충 대답했다. 자세하게 말하기에는 나라가 달랐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싸늘한 투로 말했다.
“겹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누구 탓이 되겠느냐? 서로 건설적인 생각을 해야지.”
그 말에 관리가 냉큼 자신의 정보를 내뱉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세파리아스에게 굴복했다. 노기사조차도 술 한 잔을 하면 세파리아스를 따르게 되는데 일개 관리가 그의 카리스마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고양이를 앞에 마주한 쥐처럼 굴었다.
그 덕에 세파리아스는 자치왕국을 걱정하며, 관리에게 현재 전투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관리는 자세히 몰랐지만, 대략적인 것을 말해줬다.
“고맙군. 수고하게.”
세파리아스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신제국의 마법사들은 중형 마법진을 그리기 바빴다. 연금 물약은 전투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많이 있어야 했고, 수레째로 끌고 다녀야 했다.
소비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에서 소모하는 총알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지막지할 정도로 많이 써버리는 보급품 중 하나였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그 모습을 보며 세파리아스가 고민에 빠졌다.
‘상대의 대응이 너무 약하다.’
아무리 땅이 대국(大國)처럼 넓다고 해도 이상하리만치 상대의 받아치기가 약했다. 자연스럽게 다종족 연합의 군대가 분산되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게 세파리아스의 눈에는 보였다.
아직 우주 낙원에서 공적을 탐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자치왕국의 공왕들이 모를 리는 없다.’
그 속에서 세파리아스는 적어도 공왕들이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는 보지 못했다.
‘후퇴 준비를 하면서 진격하고 있겠지.’
다만,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퇴를 위해서 남아야 할 군인들은 모조리 죽는다. 그래도 논공행상을 생각하면 나아가야 하는 게 옳았다.
병사의 생명보다 미래 10년이 더 중요한 법이다.
이번 차원 전쟁 이후 최소 10년. 최대 30년까지의 판도는 이번 논공행상에 달려있었다. 부모를 죽여서라도 공을 세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도태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판단한 세파리아스는 고민에 빠졌다.
‘뿔쥐놈들.’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압도적인 손해를 보면서도 우직하게 앞으로 달려나가 홀로 특별한 업적을 달성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세파리아스가 할 일은 그런 놈들을 견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놈들과 같이 큰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
지하 연합과 신제국의 국력 차이는 상당했다. 인구수만 해도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산업화가 너무 진행되어서 <쉐도우 위스퍼>를 최소한으로 굴릴 정도로 변해버린 것이 지하 연합의 사회였다.
현재 가장 자본주의에 근접해지고 있는 세력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간 국가와 전근대 국가의 전쟁이 얼마나 허무한지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조선과 영국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판타지라서 지금 그 차이가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 할 수가 없지.’
홀로 우뚝 선 공적은 비교하기 쉽다. 지하 연합이 일등공신이 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동원할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준하는 공적을 안 세울 수는 없었다.
다종족 연합의 구도를 위해서도 이번에 세파리아스는 대단히 노력해야 했다. 신제국 수도 방어에 대한 공적 또한 다른 이들은 세우지 않은 <방어 공적>이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건방진 놈들.’
세파리아스와 피숨결 검은 뿔쥐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뿔쥐들을 세파리아스가 좋아할 리가 만무했다. 뿔쥐들 또한 드낙을 함부로 대하는 세파리아스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서로 알게 모르게 한 방씩 주고받은 상태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심장부를 먼저 뚫는다.’
세파리아스가 시선을 대각선 위를 가리켰다.
‘올라가면서 적당히 직선으로 진격하다 보면 중심부에 도달하겠지.’
그가 검을 빼 들었다.
세상이 그의 검격에 따라서 공간을 잘랐다. 벽이 말끔하게 베어지며 무너졌다. 자갈처럼 베어진 벽은 이내 곧 오르막길로 변하기 시작했다. 세파리아스가 그곳으로 군대를 이끌기 시작했다.
“신제국을 위하여!”
“인류의 깃발을 휘날리자!”
황제 기사단과 기사들이 선두에 섰다. 병사들이 우루루 그 뒤를 따라갔다. 다만 보급부대는 입을 떡 벌린 채 감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이, 이런 씨발.’
‘아, 제기랄! 제기랄! 아! 아, 빌어먹을!’
오르막길이 끝도 없이 그들의 눈에 보였다. 세파리아스가 상하좌우 10m의 넓은 공간을 만들어서 올라가서였다. 그걸 수레를 끌고 가야 하는 보급 부대는 침을 삼키며 저주할 뿐이었다.
“빨리 진행해! 뭐하는 거냐!”
간부의 말에 결국 병사들이 수레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자갈처럼 갈라낸 덕분에 땅 자체는 고르지만, 결국 오르막길이었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세파리아스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그를 따라가고 있는 적기사왕과 청기사왕이 영향무력을 보며 압도된 표정을 지었다.
‘봐도 봐도 무슨 힘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벤다.
그 개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직하게 베고 들어가는 사이에 적들을 만나기도 했다. 갑자기 벽이 무너지고, 통로가 생겼으니, 기존의 통로를 이용하는 이들이 볼 수밖에 없었고, 벽이 무너지는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끌린 놈들도 존재했다.
공교롭게도 세파리아스의 무지막지한 진격은 엘레우테리오의 명령과 맞물려서 엄청난 적들을 몰려오게 하였다.
“누가! 날! 상대할 것이냐! 하찮고! 벌레 같은! 인간들아! 하, 하하하!!!”
4성 오버로드급 존재가 튀어나왔다.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곰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벼락이 끊이질 않고 쏟아져나와 모든 걸 파괴했으며, 왼쪽에서는 이글거리는 화염이 액체처럼 쏟아지며 용암과 비슷한 것을 토해내기 바빴다.
몸의 크기는 3m에 달하는 중형 트롤급의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또 이마에서는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곳에서 방어막이 펼쳐져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등에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마름모꼴의 납작한 뿔 같은 것이 다닥다닥 튀어나와서 푸른 빛을 뿌리고 있었다.
<4성 자연재해 곰룡>.
벼락과 유사용암을 다루며, 보호막을 몸에 두른 중형급 존재는 가히 전투력만 따지면 상위권에 속하는 오버로드였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곰들이 튀어나왔다. 그중에는 끈질긴 곰도 있었다.
어디서든 속해서 싸우기 좋은 게 끈질긴 곰이었다.
척 봐도 기세가 남다르며, 적발(赤髮)을 훌훌 날리고 선두에 툭 서 있는 세파리아스에게 자연재해 곰룡이 달려들었다. 곰에는 없는 긴 꼬리에서 천둥소리가 퍼져나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고막에 통증이 왔을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무덤덤하게 놈을 지켜봤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모습에 오버로드 자연재해 곰룡이 흉악하게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그걸로 끝이었다.
푸화아아악!
몸이 그대로 쩍 갈라져서 피가 쏟아지며 흘러내렸다. 갈라진 몸은 깔끔하게 좌우로 뻗어 나가며 대각선으로 주르륵 미끄러지다가 멈췄다.
엄청난 임팩트를 내뿜던 존재가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우와아아아아!!!!
환호성이 단번에 터져 나왔다. 오르막길이라서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자세히 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깃발병들이 있는 힘껏 신제국의 깃발을 크게 높이 들었다.
일시에 높아지는 깃발의 광경을 본 인간들의 마음에 거대한 불이 지펴졌다.
죽음마저도 그들을 막지 못할 정도의 용맹함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실로 만용이었으나, 이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나아가자!”
세파리아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그 순간 천장이 무너져내리며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다락방 문을 열었을 때, 쏟아지는 바퀴벌레처럼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곳에서 떨어진 그림자에서 뿔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깃발이 펄럭거리며 그들의 소속이 어딘지를 보여줬다.
테두리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 자리잡혀 있었으며 텅 빈 중심원에는 쥐의 정면 이빨이 형상화되어 새겨져 있었다.
“찍찍! 인간들을 도와라! 우리들의 동맹군이다!”
“찍찍!”
뿔쥐들이 순식간에 후방을 잡기 시작하자 세파리아스 또한 군대를 돌진시켰다. 자신 또한 앞으로 뻗어 나갔다.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이...!’
속내는 뿔쥐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녹색 리전은 사방팔방 흩어졌고, 세파리아스가 벽이든 뭐든 다 갈라내며 중심부로 향하는 것을 보고 냉큼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 것이다.
그 속셈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고 볼 일이었다.
‘끝나고 보자.’
상황은 쉽게 진정되지는 않았다. 세파리아스가 그만큼 소란을 피워서였다. 하지만 오버로드 급은 세파리아스에게 일초지적에 불과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가 감히 세상을 베어버리는 무인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뭣도 모르고 영향무력의 권역에 들어온 놈들은 하나같이 반으로 갈렸다.
“키아아악!”
뿔쥐들은 엄청난 머릿수로 닥치는 대로 맹공을 퍼부었다. 곳곳에서 마법이 쏟아지며 적들의 마법과 상쇄되었다. 허공이 빛으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죽어가는 뿔쥐도 많았지만, 죽어가는 인조생명체와 용병 지구인도 많았다.
“흐, 흐흐흐, 흐흐흐흐흐!!!”
소수에 불과한 용병 지구인이 드글거리며 자신의 몸을 기어 올라오는 그림자를 보며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더니 조끼에 있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죄다 뽑았다. 그림자가 물러갔다. 수류탄의 작동방식을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퍼버버벙!
그대로 3초 뒤에 폭사했다.
뿔쥐들은 중급 권속 악마에 속하는 권속 악마였고, 그렇기에 자연히 뛰어난 종족성을 지니고 있었다. 엘프보다 못했지만, 비교 대상의 종족값이 지나치게 높았다. 엘프는 그 오우거와 종족성이 비교당하는 존재였다.
그림자로 이동하는 뿔쥐들의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고, 맞추기도 힘들었다.
강력한 종족임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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