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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쿵쿵쿵.
쿵쿵쿵.
환풍구에서 들리는 투박한 소리에 용병 지구인의 고개가 위로 올라가졌다. 그 손에는 스팸 묶음이 들려져 있다. 표면에는 굽기용이라고 표시가 되어있었는데 영어로 크게 적혀져 있었다.
스팸을 그냥 고양이처럼 퍼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표시였다.
용병지구인의 손에서 마법이 뻗어 나가 환풍구를 투사했다. 정보 획득을 위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
‘뭐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외에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무언가에 차단되어서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소리를 내질렀다.
“적이다! 환풍구에 적!”
순식간에 용병 지구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제기랄, 하필 이때!”
특히 지금 이곳은 조리실이었다. 식량은 용병 지구인과 인조 생명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나 식량과 관련된 시설은 용병 지구인들이 사는 거주 구역에 있는 편이었다.
“분대원! 전투 준비!”
그렇기에 그들이 가져가는 게 옳았다. 몇몇 인조 생명체가 도와주고 있었지만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자, 자잠깐! 저들을 자극하지 마. 분대장님! 굳이 싸울 필요가 있어?”
비닐 봉다리에 식재료를 넣어서 단단히 묶어 가방에 꼼꼼히 넣었는데, 이를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투식량은 더럽게 맛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가 시작된다면 식량을 많이 잃을 게 뻔했다.
싸우는 건 이득이 아니었다. 이에 분대장이 말했다.
“혹시 몰라. 그래도 마늘은 따로 챙겨. 마늘 없으면 안 돼.”
만약 마늘이 없다면 용병 지구인들의 사기는 크게 꺾일 것이다. 그만큼 마늘은 식재료의 풍미를 돋는 데 가장 중요했다. 마늘이 빠진 요리는 즉석식품보다 못했다.
중국인들이 손톱이 다 닳아서 입에 집어넣어 마늘을 손질한 간마늘조차도 먹기 바쁜데, 통마늘이라고 안 챙길 이유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용병 지구인들이 식재료를 챙겨서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재수 없게 환풍구가 구겨지더니 그대로 텅하고 내려앉았다. 거기서 짧고 몽땅하고 두툼한 다리가 쑥 삐져나왔다.
철컥!
총을 뽑아든 용병 지구인들이 바짝 긴장했다.
갑옷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다리는 지나칠 정도로 두꺼웠다. 마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끙!”
소리를 내며 꼬물거리며 환풍구에서 빠져나온 드워프를 향해서 총구가 불을 뿜었다. 수류탄은 쓸 수 없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악!”
“윽!”
도탄된 총알이 용병 지구인들을 서로 공격하고 나서야 총소리가 멈췄다. 탄두에 노출된 드워프의 전신갑주는 잔뜩 달아올라 있었으나, 붉게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뜨거움을 느껴야 정상임에도 드워프는 얼굴을 가리던 양팔을 내려놓으며 강철 혁대에 걸어둔 망치를 들어 올렸다.
애들 소꿉장난 하는 것처럼 작은 망치였다. 뒤로 환풍구로 드워프들이 너도나도 투구를 불쑥 내밀면서 튀어나왔는데, 앙증맞았다.
“마법을 퍼부어!”
이글거리는 화염이 드워프들이 쏟아져나오는 환풍구와 그 지역을 일부 소각시켰다. 그 속에서 드워프들이 돌격했다.
“간! 지! 럽! 다!”
깡!
“끅.”
용병 지구인의 머리통에 그대로 망치를 박아넣었다.
점프한 드워프에 허망하게 머리가 함몰된 용병 지구인이 양무릎을 꿇으며 옆으로 픽 쓰러지더니 앞니가 부러져 피가 바닥에 살짝 묻었다. 그걸 보고 그대로 뒤로 물러나다가 넘어진 용병 지구인이 패닉에 빠져서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당!
펑!
총격음과 수류탄의 폭음 그리고 이글거리는 화염이 곳곳에 들러붙는 소리. 비명과 죽음이 퍼져나갔다. 상황은 금방 끝났다. 도탄과 수류탄 파편에 아군이 피해를 입으면서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퍽!
그 속에서 드워프들은 어깨를 붕붕 돌리며 망치나 도끼를 휘둘러서 확인사살까지 끝냈다.
“히익! 히이익!”
용병 지구인이 그 모습에 거세게 몸을 움직였지만, 허벅지에 총알이 박혀서 제대로 도망치지 못했다. 등에 짊어진 장총이 불을 뿜었다.
탕!
그대로 놈이 쓰러졌다.
분대 수준에 불과한 용병 지구인 10명은 모두 죽었고, 그를 돕던 인조생명체 셋도 무기를 꼭 쥔 채 죽었다.
“다친 놈 있어?”
“여기...”
드워프 하나가 손을 들었다. 가슴이 뻥 뚫려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단단함하면 드워프인데 이렇게 깔끔하게 관통당하다니.
“오우.”
“와우. 갑옷 뒤까지 깔끔하게 뚫고 지나갔는데?”
순수하게 놀랍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관통력이 엄청난 걸 가지고 있더라. 마법 같았고...그놈 하나만 가지고 있던데...”
“보급 물품은 아니라는 소리네.”
후두둑...
뻥 뚫린 가슴에서는 피가 간헐적으로 투둑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이내 상처 부위가 응고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장기는 있을 게 다 있는데 그런데도 죽지 않고 말을 내뱉고 있었다.
“끄응...아이고, 못 움직이겠다. 술이나 좀 꺼내줘.”
“네가 꺼내서 먹어.”
“어디서 아픈 척이야?”
드워프들은 매정했다. 가슴이 뻥 뚫린 드워프는 혀를 차며 손을 움직였다. 고통이 심해졌지만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다.
“넌 돌아가.”
“그래. 한숨 좀 돌리고...”
부상자를 돌보지 않고, 총기나 장비들을 챙긴 드워프들은 다시 환풍구로 향했다.
뚝딱뚝딱! 깡깡깡!
드워프들은 무너진 환풍구를 대충 고치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갔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드워프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서 빵하고 터트릴 생각을 하는 게 그들이었다.
마치 인천 상륙작전처럼 엉뚱한 곳에서 허리를 잘라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보가 매번 갱신되고 있어서 가능한 전략이지.’
뉴트럴 차원의 드워프들은 현재 우주 낙원의 카운터나 다름없었다. 총기가 잘 안 먹힌다는 것이 가장 컸다.
이 정보를 취득한 드워프들은 용병 지구인이 있는 깊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되려, 냉병기와 마법을 크게 사용하고 화기는 그다음에 사용하는 인조 생명체가 드워프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현대 무기 체계를 잡아먹는 판타지 괴물이 드워프인 셈이었다.
동시에 공중요새에 오지 못한 뿔쥐들도 대형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다른 세력에 비해서 워낙 인구수가 많아서 다른 세력의 압박으로 가장 늦게 공간 이동됐다.
별수 없었다.
사자라면 견제를 받아야 정상이다. 뿔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신경전을 하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또 공간 이동을 양보했다는 것 또한 논공행상 때 언급할 수 있었다.
대장쥐와 함께 뿔쥐 위원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다양한 리전을 휘어잡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10명에 불과했는데, 1명은 참전하지 않았다. 잘 싸우지 못해서였다. 이미 뿔쥐들은 한 번 기술자이자 연구원이고 또 과학자이면서 마법사였던 뿔쥐 위원을 잃은 적이 있었다.
수많은 장식을 치렁치렁 입고 있는 뿔쥐위원이 있는가 하면, 홀쭉하지만 길쭉한 뿔쥐 위원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전신갑주를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엘프의 것도 아니고 인간의 것도 아니었다.
뿔쥐 고유의 것이었다.
“그림자로 변해서 서로 흩어진다. 10방향으로 싹 쓸어버린다.”
“떼(Swarm)로! 쓸어버린다!”
치렁치렁한 장식으로 화려하게 몸을 치장한 붉은혀 리전의 의원, 갈래꼬리 왕이 콧김을 내뿜었다.
300여 마리의 피숨결 검은 뿔쥐들이 각각 자신의 리전장들을 따라서 이동했다. 그림자로 변하여 순식간에 공간을 누볐다. 도중에 느껴지는 우주 낙원의 시선을 간파해내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파직!
단번에 그 시선을 제공하고 있는 마법 장치를 파괴했다.
그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자연스럽게 우주 낙원이 이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다.
‘그림자 이동!’
드낙의 이동법과 유사했으며 그 숫자도 많았다. 이를 갈등하고 있는 엘레우테리오에게 전했다.
[소요 사태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그 숫자는 만을 넘었습니다. 공간이동을 통해서 적들이 넘어오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보통이 아닌 놈들이 침입했습니다.]
[보통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봐라.]
드낙과 싸울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던 환희와 자유의 신, 엘레우테리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림자로 이동하며 최소 7갈래로 나누어져서 진입 중입니다. 그들의 숫자는 최소 200이 넘습니다. 200명 모두 똑같이 그림자 이동을 사용하고 있기에 인조 생명체들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뉴트럴 차원에 대한 전력 판단은 실패했습니다. 기만을 당했습니다.]
[제기랄...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중립신이 그렇게 간단한 놈이 아닌 걸 알고 있었는데...! 괜한 욕심을 부렸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역시 큰 그림의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다. 진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단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중립신이 아직 부활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인조 생명체와 오버로드를 모두 돌려서 거대해지고 있는 소요 사태를 진압해라. 400만 모두를 돌려라. 시설을 지키는 50만도 돌려라!]
[명을 전달하겠습니다.]
[5성 천사들을 유도해라. 내가 놈을 묶고 있겠다.]
엘레우테리오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확실하게 병력을 나누었다.
‘중립신이 숨겨온 진짜 단검이다. 나 혼자서 싸우기는 좀 그렇지.’
엘레우테리오의 정신체가 움직였다.
그사이에 뿔뿔이 흩어진 뿔쥐들은 거점을 하나 잡았다.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킁킁!”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혹시나 있을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실로 완벽한 모습이었다.
“찍찍. 아무것도 없다!”
“좋다! 마법진을 그려라! 여기서부터 <녹슨 리전(Rusty Region)>의 깃발이 시작된다!”
덕지덕지 뚱쥐(Thicken Fat rat)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에 녹슨 리전 소속의 피숨결 뿔쥐들도 입을 쩍 벌리며 함성을 내지르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동안 녹슨 리전은 정예 중의 정예 리전인 배불뚝 리전 소속에서 그들을 도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드디어 우리들이 단독으로! 우리들의 리전이 나홀로! 작전하게 되었다!”
“용맹! 용기! 기백!”
“나아가자! 다 부숴버리자아아아!!!!”
덕지덕지 뚱쥐(Thicken Fat rat)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다른 뿔쥐들도 마력을 뿜어냈다.
“뜨나아아아악!”
뿔쥐들이 쏟아져나왔다. 그중에는 지하 연합의 깃발을 들고 있는 뿔쥐도 있었다. 탁한 은색의 깃대에 깃발이 걸려있었다.
상단 왼쪽에는 고블린의 코.
상단 오른쪽에는 크놀의 길쭉한 망치가 비스듬하게 있었다.
중단의 왼쪽에는 뿔쥐의 옆얼굴.
중단의 오른쪽에는 두더지의 앞발이 찍혀져 있다.
테두리는 흙을 뿌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갈색으로 자수를 놓았다.
중단 아래로는 그림자가 장막처럼, 커튼처럼 나부끼고 내려갔고, 그 하단에는 드낙이 내려준 검은 성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권능 <정신세계의 피의 잔>이다.
이것이 현재 지하 연합의 깃발이었다.
또 다른 뿔쥐는 녹슨 리전의 깃발을 쥐고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테두리에 가득했고, 그 중심에 텅 빈 원을 두고 쥐의 이빨을 정면에서 봤을 때 드러나는 모습을 형상화 및 간단화시켜서 박아두었다.
그들은 다시 마법진을 곳곳에 그렸다. 벽을 녹이거나, 땅을 파서 공간을 확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숫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으며 보급을 위한 중형 마법진에서는 자색 주포를 비롯해서 온갖 것들이 쏟아져나왔다.
“우리는 무조건 중심을 꿰뚫는다.”
“다른 리전들도 그 생각을 할텐데...”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지. 최심장부에 깃발을 놓는 놈이 진짜 일등공신이 될 여지가 있다.”
뿔쥐 내부의 리전들은 당연히 우주 낙원의 핵심 점령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 와중에 제법 똘똘한 뿔쥐가 쥐소리를 내며 시선을 모았다.
“찍찍찍. 한 가지 의견이 있다.”
“말해봐라. 지혜 꾸러미(Wisdom Bundle)!”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께서는 정이 대단히 많으신 분이시다!”
많은 뿔쥐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실제로 그러하다.
“그렇기에 그분을 위해서 많이 죽으면 우리를 크게 좋아하실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지금 당장 자살을 해서 사망자 숫자를 늘리자!”
“그럴듯하다! 그럴듯해!”
뿔쥐들이 코를 벌름거렸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라! 머, 멍청한! 멍청한 놈들!”
지혜 꾸러미가 깜짝 놀라서 호통을 쳤다. 이에 녹슨 리전의 대장이자 위원인 덕지덕지 뚱쥐가 냉큼 주위를 조용히 시켰다.
“계속 말해라!”
“뜨낙께서 말씀하시길,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가 그분의 세상에 있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다른 뿔쥐와는 다르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무 겁쟁이 같은 생각이다!”
여기저기서 불만을 토로했다.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려하는 삶은 너무 겁쟁이 같은 삶으로 보였다.
“그, 그러니까! 흉내를 내자는 것이지!”
“흉내?”
“오크나 자치왕국, 엘프나 드워프를 쫓아가서 놈들에게 봉사하는 척하면서 놈들의 적을 죽여 공적을 가로채는 것이다!”
“재밌어 보인다.”
“놈들의 표정이 보고 싶다.”
“남의 것 뺏어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피숨결 검은 뿔쥐들의 표정이 단번에 환해졌다.
“병신같은 생각이야. 당장 하자!”
덕지덕지 뚱쥐가 단번에 리전의 주목적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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