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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맹독자의 입에서 극독이 왈칵 쏟아져서 다이앤타의 투구에 찰떡처럼 들러붙었다. 철이 단번에 녹아들며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다이앤타가 양손으로 쥔 대검에서 손을 떼어내 투구를 벗어 던졌다.
이때를 노려 맹독자가 단번에 다이앤타를 밀어냈다. 그의 양다리 사이에서 말벌의 묵직한 꼬리 부분이 말아지면서 다이앤타의 허벅지를 노렸다.
독침을 집어넣을 것 같았다.
“어딜!”
다이앤타는 밀리는 와중에 대검에 손을 잡지 않고, 그냥 투구를 벗은 왼손으로 주먹을 말아쥐며 자신의 허벅지로 쇄도하고 있는 헤비랜스처럼 굵직한 침의 옆면을 때렸다.
“웃!”
단번에 꼬리가 땅에 부딪혔다. 맹독자는 그 속에서도 용케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꼬리를 쳤기에 다이앤타의 무릎은 조금 굽혀져 있었다. 정권을 내지르며 더 빠르게 닿기 위해서, 체중을 싣기 위해서 굽혀서였다.
맹독자, 말벌 인간의 양손에 쥐어진 롱소드가 단칼에 다이앤타의 목을 쓸고 지나갔다.
‘베었다! 어리석은 광전사 년!’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웃기게도 그것으로 승부가 나지는 않았다.
“소름!”
퍽!
방어할 생각도 없이 다이앤타가 발로 맹독자의 턱을 올려 찼다. 맹독자 한 번, 다이앤타 한 번씩 공격을 서로 나눠서 하고 있었는데, 호쾌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실시간 전략게임에서 턴제 게임을 하듯이 정정당당하게 한 대씩 맞고 있는 풍경이었다.
“크윽!”
맹독자가 덜렁거리는 턱을 고쳐잡았다. 그리고 힘껏 집어넣었다. 단 한 방에 턱이 빠졌다. 드낙은 수많은 자손을 낳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악마의 피를 타고난 것은 다이앤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찍 태어났음에도 대단한 데몬 블러드를 지녔다. 쿼터 데몬이 가질 수 있는 악마의 피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꽝!
다이앤타가 순식간에 몸을 부딪쳤다.
그건 불의의 일격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반짝임과 동시에 영혼이 앞서나갔고, 몸이 그 뒤를 이어서 가속했다. 엘프들의 전유물인 <영혼 이동술>을 무식한 돌진기로 사용했다.
“흐흥!”
단박에 데굴데굴 구르는 맹독자를 보며 다이앤타가 손가락으로 코를 비볐다.
쿼터 데몬의 육신은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탱크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그걸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걸 즐겨하기 때문이다. 100% 육체 스펙으로 적을 압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덕에 까다로운 점도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피통 돼지가 성능이 좋은 도적 회피템을 둘둘 만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합리한 것을 따지면 다이앤타보다 오히려 드낙이 더 질이 안 좋은 변태인 셈이다.
우두둑!
다이앤타가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며 뼈가 울리는 소리를 냈다. 전신이 뻐근한 것도 몇 호흡 만에 사라졌다. 엘프가 아닌 주제에 영혼 이동술을 사용한 대가치고는 약했다.
맹독자의 전신갑주에서 마법이 쏟아져나왔다. 대부분이 화염 계통이었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화르르르르!
단번에 다이앤타가 화염에 휩쓸렸다.
‘주문도 사용을 안 해? 아, 으....!’
맹독자가 뒷걸음질 쳤다. 화염을 질주하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상위인간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온갖 시술을 받은 맹독자의 곤충의 눈으로 보이는 다이앤타는 기괴하게 일렁거렸다.
‘어떻게?’
쾅!
대검이 정확하게 화염을 가르며 맹독자의 롱소드와 부딪쳤다. 맹독자가 두서 걸음 물러났다. 동시에 딸깍거리는 소리가 다이앤타의 귀로 들려왔다.
꽝!
지축이 흔들렸다. 수류탄 3개가 단번에 폭발하며 철 파편이 다이앤타를 휩쓸었다. 흙먼지가 단번에 사라졌다. 전신갑주는 너덜너덜했고, 다이앤타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져 있었다.
머리에 박힌 철 파편만 해도 수백개가 넘었다.
맹독자는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투구를 벗었기에 얼굴에 파편에 화약의 폭발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있었다.
단박에 맹독자가 달려들었다. 상체를 들어 올린 다이앤타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파편도 알아서 생살에 밀려나와서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눈꺼풀이 태워져서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보이는 상황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려가고 있음에도 자신의 몸이 굉장히 느려진 것 같았다.
“엄마처럼은 안 되네. 아쉽다. 압도하는 건 재밌는데, 이렇게 당하는 건 싫어.”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죽어라아아아아!!!!”
맹독자가 극독을 퉤 뱉어내고 수천 개의 눈동자가 박힌 곤충의 눈동자로 다이앤타의 모든 곳을 노려보았다. 마력도 모두 사용해서 다시 한 번 화염 주문을 사용했다. 시야 확보를 위해서 화염창이 이글거리며 쏟아져나와 그녀를 노렸다.
그녀의 몸이 쑤욱 내려앉아 꺼져버렸다.
그림자로 변했다. 마법이 그곳을 때리고, 대검이 아슬하게 그림자의 끝자락을 스쳐 지나갔다. 말벌 인간의 눈이 곳곳을 살폈다.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이내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그림자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은 그림자에서 다이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대검조차도 쥐고 있지 않았다.
“너, 나한테 힘으로는 밀리더라.”
꽈아아악!
“윽! 으윽! 크, 크악! 학!”
온몸을 떨면서 힘을 줬다. 진땀을 낼 정도로 강하게 힘을 줬지만, 말벌의 날개가 구겨지고, 양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서로 얽혀있는 하체는 무릎부터 꿇려졌다.
퍽!
머리가 땅을 찍었다. 넘어진 맹독자의 양어깨를 부러뜨린 다이앤타는 놈의 양팔이 축 늘어지자 손을 목 뒤로 가져가서 깍지를 꼈다.
우드득!
목뼈가 단박에 부러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몸을 일으킨 다이앤타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싸움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밀엇!”
“밀어!”
부우우우우웅!
곳곳에서 말벌 인간들과 싸우는 병사들이 있었다. 종종 수류탄이 터져나가며 죽어가는 병사들도 많았다. 돌격소총 사격을 하는 말벌들에는 속수무책으로 그냥 버티거나, 흑백사를 소환해 방패로 삼거나 폭풍을 불러와서 명중률을 낮춰야 했다.
이 과정은 점점 난전으로 치달았다.
말벌 인간들을 끌어왔었던 기병들 또한 말에서 내려서 버텼다.
그와는 반대로 딱정벌레 인간들과 싸우는 곳은 그들을 압도하고 학살을 하고 있었다.
양단자는 호쾌하게 세리안에게 달려들었으나, 상대가 나빴다. 지휘하는 세리안은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했으며, 마력조차 가지지 않은 하위인간에 불과했다. 동시에 신성력 수치는 보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양단자의 경계심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대장을 잡고, 난전으로 만든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양쪽 모두에서 승리를 거둘 거라고 여겼다. 말벌 인간들이 밀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를 본 세리안은 적혈대검을 들어올렸다. 돼지피를 벌써 잔뜩 머금은 적혈대검은 온 곳에 균열이 일어나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절삭력은 대단히 높아진 상태다.
적기사왕과 청기사왕에게는 허락된 오러블레이드가 양단자와 맹독자. 두 명의 오버로드에게는 없었다. 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에 마도기술의 극점에 존재하는 오러블레이드는 허락된 오버로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 가진 총알을 전부 소비했기에 지휘관을 멱을 따기 위해서 양단자는 돌격을 감행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그의 돌진력은 너무 압도적이라 인간들은 버티지 못했다.
세리안은 대검을 단번에 들어 올리고, 뒷걸음질 쳤다.
그게 결정적으로 양단자를 자극했다.
‘지장(智將)이군.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쿵쿵쾅!
지축을 울리며 양단자가 덤벼들었다. 땅이 흔들리자 그녀를 지키는 이들이 주체를 못 하고 비틀거렸다. 몸의 균형감각이 엉망진창이다. 마법을 통해서 지축을 흔들며 지진을 일으킨 양단자의 돌격 속에서 세리안은 두 다리의 간격을 벌리며, 체중을 중심에 뒀다.
그것만으로도 양단자에게 이득이다. 체중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상대는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두 다리를 지녔기에 지진 앞에서는 대단히 무력한 것이 인간이다.
양단자의 할버드가 쭉 뻗어 나가 먼저 세리안을 찔렀다. 세리안이 옆으로 귀신처럼 움직였다. 걸음을 걸으면 체고가 조금은 변해야 하는데 유령처럼 일직선에 가까웠다.
“후우...후우...!”
세리안의 숨결 소리가 미세하게 양단자에게 들려왔다. 지나칠 정도로 호흡관리를 하고 있었다.
‘지진을 버틴다고 실력이 있는 건 아니지.’
찌른 할버드를 회수하며 세리안을 대각선으로 베며 무식하게 돌진했다. 할버드를 막거나 회피해도 몸으로 부딪쳐서 쓰러뜨릴 요량이었다. 덩치가 크기에 가능했다. 마법은 주변으로 퍼뜨려서 적들의 원호를 저지했다.
<피어 뷔크 플리크 블린다(Vier Weg Blinder Fleck, 사방맹점(四方盲點))>
세리안은 그대로 체중을 앞으로 크게 기울이며 대검을 정직하게 내려 베었다. 할버드가 잘려나가는 것을 본 양단자가 급히 좌측으로 꺾였다. 세리안은 하단에서 사선으로 올려쳤다.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적의 팔 하나를 노렸다.
양단자의 곤충날개가 거세게 소음을 내뱉으며 옆으로 급히 제공했다. 하지만 사선으로 올라가던 대검이 우뚝 섰다. 베려고 올려친 것이 아니었다.
“큭!”
급히 옆으로 움직였던 양단자의 무릎이 땅에 닿으며 멈췄다. 쫓아오면서 세리안은 올렸던 대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체중을 기울인 것이 절로 보였으므로 양단자가 허리를 뒤로 내빼며 드러누웠다.
서걱!
전신갑주가 그대로 베였다. 저주가 깃든 마검인 만큼 상당한 면모를 보여줬다. 양단자는 뒤로 물러나며 일어섰는데, 세리안은 노타임으로 그대로 왼손바닥을 적혈대검 손잡이 끝을 쭉 밀었다.
푸왁!
양단자의 가슴을 정확하게 찔렀다.
단 한 번의 우세도 없이 양단자는 치명상을 입었다. 세리안은 자연스럽게 무게를 이용해서 양단자를 갈라내고, 대검을 회수했다.
4번의 공격 속에서 적은 단 한 번도 우세를 점하지도 못했고, 공격하지 못한 채로 수비만 하는 적을 상대로는 지는 게 이상했다. 적이 한 번 공격을 못 하면 자신은 더욱 맹공을 퍼부을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양단자는 몰락했다. 그 끝은 죽음뿐이다.
그저 첫걸음을 한 번 잘못 내디딘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한 전투였다. 본신의 힘을 2할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죽었다.
죽어서도 억울해서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싸움은 질척거릴 정도로 오래 이어졌다. 장장 2시간을 싸웠는데, 바람귀공자 풀세트를 통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온갖 소비 아이템을 둘둘 만 자치왕국은 3만의 적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8천 명의 자치왕국 병사가 죽었고, 3만을 죽였으니 대승 중의 대승이며 모두 승리를 환호하였다. 부상자들은 2만이 넘어갔지만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수급을 챙기고, 수레에 담았다. 곤충 머리들이 잔뜩 쌓여있는 수레는 비위가 좀 안 좋은 사람이라면 안에 것을 몇 번이나 게워내고, 보지 않아도 계속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하게 징그러웠다.
“하하하!”
하지만 모든 이들이 웃었다. 이 모든 것이 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뿌우우-!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모든 정리를 하고, 세리안은 다이앤타를 껴안았다.
“잘 해줬다! 역시 내 딸이다.”
“헤헤.”
아직 몸이 다 성장하지 못해서 참전하지 못한 크레시미르가 그녀의 전공을 들으면 눈물이 그렁그렁할 터였다. 악마의 피를 한 방울도 얻지 못한 채 태어난 것이 크레시미르였다.
피냄새를 잔뜩 풍기면서도 두 모녀는 찐한 포옹을 했다.
“근데 어머니.”
“왜? 거리낌 없이 말해라. 넌 지금 첫 승리를 했으니까.”
“아빠처럼 싸우면 안 돼요? 정말 편하던데.”
“안 돼! 어엿한 기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남들에게 귀감이 된단다.”
“사람들은 아빠를 존경하잖아요?”
“그건....”
세리안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아무리 엘리트인 그녀라도 드낙의 싸움법이 비인간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은 자신과 다르면 알게 모르게 혐오하는 법이다. 이를 존경으로 끌어올리려면 규격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신이 되기 전까지는 지양하는 편이 좋았다.
“나중에 말해주마. 그리고 아버지라고 말해야지?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니까.”
“저 아직 성인도 아닌데요?”
“몸은 성인이잖아.”
“조심할게요.”
“그래. 그래. 남들이...”
그녀가 잔소리를 계속 하려고하자 다이앤타의 볼이 빵빵해졌다. 나쁜 습관이었으나 세리안은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에 손을 턱 얹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렴. 누가 너에게 뭐라고 그러겠니.”
“역시 우리 엄마야.”
“......”
“내가 놈의 대장을 잡았는데요. 그놈이 굉장한 속력으로 땅에 쿵 떨어지더니...”
재잘재잘 잡담을 떠드는 것도 잠시 세리안은 이곳에 대마법진과 중형 마법진을 설치했다. 즉시 마력을 보급하여 자치 왕국의 병사들을 잔뜩 끌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도렌 공왕도 있었다.
“벌써 한 싸움 하셨습니까?”
“병력이 5만인데, 안 싸울 수가 있어야지.”
그녀가 툴툴거렸다. 도렌 공왕의 말 속에 가시가 들어있어서였다.
5만으로 싸워서 나오는 피해와 6만으로 싸워서 나오는 피해는 현격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화력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렌 공왕. 우리는 지금 공을 두고 싸우고 있소. 미래의 10년이 지금의 전투에 달려있다는 걸 기억하시오.”
세리안의 진지한 말에 도렌은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한숨을 속으로 내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에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번 전쟁에서 죽는 것인가.’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여겼음에도 또 전쟁이 터졌다. 마음이 울적해졌다.
‘언제쯤이면...도대체 언제쯤이면...진정 끝없는 평화가 도래할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도렌의 눈시울은 절로 붉어졌다. 하지만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투구 속에 가려져 있었기에 도렌의 글썽이는 눈을 보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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