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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파괴된 천장의 구멍에서 짐승이 달려들었다.
<3성 정예병 사운드 늑대인간>.
210cm의 엄청난 체격에 체중만 해도 300kg이 넘는 놈이다. 살아있는 탱크나 다름없었다. 시가전에 투입되면 뽕을 뽑고도 남을 정도로 강인한 놈이라, 즐겨 쓰는 인조생명체였다.
“크아아아!”
녹색의 털을 지닌 늑대인간의 울부짖음은 기괴하게도 정반대편에서 울려 퍼졌다. 소리를 통한 교란은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대단한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드낙 또한 그랬다. 매우 자연스러웠다.
‘이런 씨!’
눈으로 속았다는 걸 파악하고, 감으로 한 곳에 검을 휘둘렀다. 느낌이 왔다.
“켁!”
피가 쏟아져 내렸다.
“크으! 아아악!”
단칼에 목이 찔린 늑대 인간은 버둥거리면서도 드낙을 노렸다.
‘와, 대단한 늑대인간이네.’
대단한 전투 정신이었다. 하지만 드낙이 지닌 근력은 그런 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단번에 패대기치며 앞으로 달려드는 놈들에게 늑대 인간을 던졌다.
“크윽!”
체중이 대단한 놈이라 순간적으로 저지되며 병목현상이 일어나 서로 부딪치고 난리가 났다. 그 속에서 껑충 전열을 뛰어넘고 무장기사와 끈질긴 곰이 돌격했다.
“영광으로!”
“크어어엉!”
우주 낙원에서 가장 즐겨 쓰이는 중기병이었다. 체력 회복이 가능한 <활력의 토피 애플(toffee apple)>를 지닌 끈질긴 곰은 무결점의 기마였다. 경기병이고 나발이고 싹 다 쫓아 죽일 수 있었다.
<쿼드러플 무장기사(Quadruple Armed Knight)>는 말할 것도 없었다. 팔 4개 달린 기사다. 기마전에서 질 수가 없었다.
다만, 상대가 안 좋았다.
쾅!
오른손에 쥔 헤비 랜스가 왼쪽으로 꺾이며 무장기사가 낙마하고, 드낙의 발이 끈질긴 곰의 머리를 부쉈다.
그런 열세 속에서도 무장기사의 대검이 정확하게 드낙을 노렸지만 드낙이 팔꿈치로 이를 내려서 쳐냈다.
푸슈우웃!
피가 쏟아졌다.
퍽!
쓰러진 무장 기사의 옆구리를 걷어차자 날아가 천장과 부딪치고 뚝 떨어졌다.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갈비뼈가 파열되어서 폐를 찔렀고, 피가 폐에 들어차고 있었다.
“......!”
‘치, 치유 주문이 상쇄되어...간다?!’
마력을 쏟아내어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힘들었다. 무언가에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치유 주문은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상쇄되어버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드낙을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이계인을 보고, 총기까지 파악한 드낙이 자신의 무기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마력까지 보유하고 있던 것이 이계인들이었다. 인조 생명체든 지구인이든 자세히 구분까지 해내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잔재의 롱소드(Vestige Long sword)>.
드낙의 롱소드에 깃든 힘은 평범하지 않았다. 어중이떠중이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반마의 피가 스며 들어가 있었다.
‘마력을 보유하면 얼마나 개사기가 되는지 나는 아니까.’
마력 없던 시절과 마력 있던 시절의 드낙은 천지 차이로 전투력과 그 유지력이 달라진다. 적들이 모두 마력을 지니고 있다면, 단순히 치유 마법만 사용해도 어마어마한 전투 유지력을 지닌다.
이를 저지하는 방법으로 드낙은 잔재의 롱소드를 만들었다. 자신의 피를 담을 수 있고, 그 피에 담긴 힘을 벤 상대에게 전파시키는 롱소드였다.
마검(魔劍)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롱소드에 담을 수 있는 피는 소량이며, 그 피에서 힘을 걸러내어 상대에게 전파시켜야 하기에 효율도 좋지 않았다.
상위인간 여럿을 감당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다른 인조 생명체가 주문을 읊으며 회복 마법이 스며 들어가기에는 너무 난장판이었다. 3인칭으로 혹은 UI를 통해서 다친 사람의 피통을 알 수 있는 게임과는 달랐다. 모든 걸 스스로의 눈으로 귀로 판단해야 했다.
그건 대단히 어려웠다. 1인칭 시점에서 전교생이 모여있는 운동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픽픽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많다.’
드낙이 순식간에 파동으로 변하며 100m를 질주하고 단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퍼석!
그 뒤에 있던 인조생명체들의 신체부분이 덩어리처럼 크게 원자단위로 변해버렸고, 나머지 몸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허억.”
탈력감을 느끼며 반쪽이 난 내장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걸 반사적으로 손으로 움켜쥔 인조 생명체가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았다. 대응은 불가능했다. 치료 마법을 쓰기에도 너무 늦었다.
쿵.
무릎이 꿇려졌다. 꼴사납기 그지없게 허물어졌다. 어깨가 벽에 부딪히며 주르륵 기대며 쓰러지는 놈도 있었다.
“만신전을 위하여!”
“적을 죽여라! 영광이 저곳에 있도다!”
“피를 뛰어넘어 평화를 향해!”
“넌 못 지나간다!”
끝도 없이 인조생명체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다만, 태세가 변했음을 드낙은 알 수 있었다.
‘좀 있어 보이는 놈들이 사라지고, 양산 개체만 밀려 들어오고 있다.’
그놈이 그놈들이었다.
칠색신룡(七色神龍)을 죽였을 때, 우주 낙원에 정보가 전달되었고, 이를 통하여 전략이 바뀌었다. 드낙을 지치게 하려고 3성 정예병만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우주 낙원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행성 자원을 먹기 위해서였다. 드낙은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이놈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건 확실하게 깨달았다.
‘대응이 빠르다.’
카실레안 교본에 의해서 우주 낙원이 정보를 전달하고, 판단을 대신하고 있었다. 대응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적의 전력을 파악할 때까지 중요 전력을 내보이지 않는건 전술의 기본이었다.
먼저 카드를 뽑아든 드낙이 형세적으로는 불편했다.
‘파동 공격술은 아껴야겠다.’
오늘 2번 사용한 것뿐이지만 드낙은 파동 공격술을 아낄 생각을 가졌다.
아껴서 똥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똥이 되고 나서 쓰는 사람이 많지 똥이 되기 전에 미리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러면 끝도 없다. 원군을 불러와야겠어.’
3천을 찢어발기고 나서야 드낙은 작전 진행률을 높일 생각을 가졌다. 늦장을 부려도 한참 늦은 상태에 본궤도에 올라설 생각을 가졌다.
드낙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한쪽 강철벽을 검으로 도려냈다.
쩌적! 쿵...!
통로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드낙이 발부터 집어넣었다.
쏘옥! 호다닥!
순식간에 빤스런을 쳤다. 적을 혼란케 하고, 그 사이에 적당한 곳에서 순간이동 마법진을 가동할 생각이었다.
큰 공간을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파동으로 변하거나 그림자로 변하여 이동하던 드낙이 방 하나를 두고 멈춰 섰다.
‘익숙한 냄새다.’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코로 맡아졌다.
10평 남짓한 공간이었으며 개인실이었고, 침대는 접이식이었으며 지구가 생각났다. 목재로 리모델링을 해서 안락함이 돋보였다.
‘어디 보자...지구인이 쓰던 곳인가 보네. 총기가 여럿 있다.’
벽에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브라질 미인부터 허벅지와 엉덩이를 강조한 포즈를 한 새빨간 수영복을 입은 한국모델에 만화 캐릭터도 야한 옷을 입은 채 포스터에 붙어있었다.
다급히 무장을 챙겨서 떠난 흔적을 본 드낙은 서랍을 열었다.
<자전거 소녀의 100 vs 1, 야메떼!>
‘오.’
DVD가 가득했다. 그것도 야한 것들뿐이었다. 테블릿 PC도 있었고, 노트북도 눈에 들어왔다. 드낙이 침을 꼴깍 삼켰다.
손까지 떨었다.
‘얼마 만이냐. 진짜 오랜만에 본다.’
비록 다른 차원의 지구였지만 자신이 살던 지구 생각이 물씬 몰려왔다.
추억 뽕에 젖은 드낙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접이식 침대를 들추자 종이상자가 있었고, 온갖 국가의 포르노 잡지가 가득했다. 한국의 막심도 있었다.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똑같은 12월호 막심 잡지가 마치 화폐처럼 묶어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막심으로 물물교환을 했군.’
그럴듯했다. 군인이니까. 막심이야말로 금덩이와 다름없는 만능의 교환 화폐였다.
게임기도 있었다. 드낙은 충전기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다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풍구에 이를 집어넣었다.
‘나중에 회수해야지. 빨리 작전이나 하자.’
“......”
달칵.
드낙의 생각과는 다르게 게임기에 불이 들어왔다.
<함께해요! 야수의 숲!>
‘내 취향은 아닌데. 조금만 해볼까? 근데 이 게임기 비싸 보인다. 조작감도 나름 괜찮은데?’
불법이란 불법은 모두 쓰면서 남들 즐기는 것을 같이 즐기려고 애를 썼던 것이 박호훈이었다.
그는 만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삶을 살았다.
천 원짜리 두부와 2천 원짜리 국산 두부를 사이에 두고 고민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 이에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을 길게 보라고 하는 놈들은 하루 3끼를 굶어 본 적 없는 이들이다.
인간의 삶은 상대적인데, 절대적 진리를 내세우는 건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펜 속에 경험이 녹아있지 않은 금수저의 논리였다.
천 번 휘둘러야 어른이 된다면 재벌 3세는 평생 애새끼로 살아가며 투표도 못 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반가르르봉!”
효과음은 최대한 낮췄다. 조금만 들려도 반마의 육신은 능히 모든 걸 들을 수 있었다. 재잘거리는 야수들이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자꾸 보니까 귀엽네.’
드낙의 어깨와 허리가 점점 굽어지더니 이내 엉덩이까지 깔고 환풍구에서 게임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빌어먹을 너구리 악덕업자에게 많은 돈을 대출하고 난 뒤였다.
“헉.”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드낙이 게임기를 끄고, 엉금엉금 기어서 환풍구를 빠져나왔다.
주변은 조용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다. 드낙은 가슴이 싸했지만 이내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훗. 역시 이게 전략이지. 잠자코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네. 이쯤에서 큰 공터를 찾아볼까.’
드낙은 우주 낙원을 거침없이 누볐다. 종종 위험해 보이는 방어 시설을 마주하기도 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그림에 있는 인물이 튀어나와서는 드낙에게 덤볐다.
솨악!
단칼에 베였으나 표면만 굳어있고, 안쪽은 액체로 구성되어있는 슬라임이었다. 표면의 딱딱한 부분을 박차며 슬라임이 드낙의 몸을 이차적으로 노렸다.
꽈광!
얼음 장벽이 쳐지며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슬라임의 돌진력과 물리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깜짝 놀랐네. 보통은 그냥 죽겠는데?’
무시무시했다.
‘이런 함정이 있다는 건 이 근처에 작업장이 있다는 뜻.’
드낙이 걸어갔다. 종종 답답함에 그림자로 변해서 20~30미터를 쑥 뻗어 가기도 했다.
“응?”
서걱!
무언가가 눈앞을 슥 지나갔다. 드낙의 그림자였다. 그곳에서 칼날만 삐져나와서 순찰을 돌고 있는 3성 인조생명체의 목을 갈랐다.
피가 쏟아져 나오기 전에 드낙은 그 뒤로 향하고 있었다. 그림자에서 팔이 뻗어나오며 위에서 아래로 롱소드라 찔러 들어가 쇄골을 지나 폐를 찍고, 빠져나왔다. 왼팔이 뻗어나오며 폐가 찔린 놈의 투구를 잡고, 몸을 비틀었다.
그림자가 질주하며 벽을 타며 천장으로 향했다.
퍽!
롱소드가 비스듬하게 위로 베어졌다. 3번째에 있던 놈의 투구가 함몰되며 옆으로 픽 쓰러졌다. 드낙의 기습에 대비하지 못해서 걸음마를 하는 어린애처럼 풀썩 허망하게 쓰러졌다.
“적...”
드낙의 왼 주먹이 목젖을 쳤다. 놈은 총을 뽑으려는 상대에서 상체를 구부렸다. 뒤로 넘어가지 않은 이유는 고통에 본능적으로 태아처럼 웅크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반사작용이다.
목을 옆으로 베어 기도가 막히게 하고, 드낙은 마지막 남은 놈 또한 죽였다. 그림자가 쑤욱 뻗어 나가며 폐를 관통했다.
“꺼걱. 꺽...”
다섯 명이 순식간에 죽었다.
‘이놈들은 이계인들이다.’
용병 지구인들이었다. 드낙이 품을 뒤졌다. 그럴싸해 보이는 담배갑과 지포라이터. 카드키와 사원증과 지갑이 나왔다. 별로 중요한 놈들은 아니었다. 카드키도 드낙에겐 필요가 없었다.
곧 작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3천 평이 넘는 공간이었는데 이미 대피령이 이루어졌는지 사람 하나 없었다.
이족보행을 하는 3m짜리 로봇을 만들고 있었다. 이를 드낙이 흥미롭게 훑었다. 타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거의 완성되어서 페인트를 말리고 있는 놈에게 영어로 글씨가 화려하게 쓰여 있었다.
Billions.
‘무슨 뜻이었더라? 억이었나? 1억이라는 단어였나. 1억이라...나쁘지 않아. 개틀링건에 미사일포대까지 어깨에 짊어졌으니까.’
미사일이나 총알은 장전되어있지 않았다.
드낙의 몸에서 피가 흐물거리면서 쏟아졌다. 피에 불과했으나 육중한 무게를 지닌 강철 덩어리가 외곽으로 밀렸다.
피의 늪은 줄어들었고, 곧 마법진을 만들었다. 펄떡거리는 핏줄이 대형 마법진을 그대로 형상화했다. 그 핏줄들은 하나같이 드낙의 발에 모여있었고, 접촉해있었다.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푸른빛이 작업장을 가득 메웠다.
그곳에서 디아볼로스와 타락 엘프들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종족값이 높은 이들이라 공간이동을 동일하게 진행했을 때, 가장 전투력이 높았다.
백금으로 이루어진 휘황찬란한 깃대에 순백의 굵은 깃발이 휘날렸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엘프의 도시가 간단하게 형상화된 깃발이 높게 추켜 올라갔다.
그 숫자는 300명이 넘었다.
“반마반신을 위하여! 다종족 연합을 위하여! 엘프를 위하여!”
목소리를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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