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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신제국의 수도를 타격했던 적의 군대를 통솔하는 오버로드가 하나 죽고, 2명이 배신했다고 하지만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4만8천에 달하는 적의 군세는 제국의 병사에 비해서 숫자가 적다고 할 수 있었으나 3만2천이 중기병이었고, 1만6천이 방패를 든 경보병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총기까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기에 오히려 수세에 몰린 것은 신제국의 군대였다.
타다다다-!
굉음이 터져 나와서 공기를 떨리게 하며 고막을 크게 울렸다. 이에 신제국의 병사들이 방패를 곧추세웠다.
키긱!
섬뜩할 정도로 빠르게 투구를 긁고 지나가는 탄두에 몸이 쭈뼛 섰다. 그러나 그들의 발은 꼼짝도 못 하고 단단히 뿌리를 내려 있었다.
자신의 대검과 손을 묶은 신제국의 깃발이 느껴졌다.
“제4차 소환 실시!”
“흑백사 소환!”
지휘관의 말에 병사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신제국 군대의 가장 뼈대가 되는 작전은 <사거리 방어 전술>이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람 귀공자 풀세트 덕분이었다. 특히 중형급 크기를 지닌 뱀은 총알받이로 쓰기에 딱 좋았다.
소환물이라서 몇 번이고 소환 가능했고, 블러드 아머인 바람 귀공자 세트는 사람의 피를 빨아들여서 여러 번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피는 다양한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인간의 상위종인 뱀파이어의 힘이 인간에게 잘 어울리는 건 당연한 결과나 다름없었다.
“샤아아!”
흑백사가 새하얀 혀를 놀리며 단번에 덤벼들었다. 기간단총과 대구경 권총에 의해서 곤죽이 되었지만 그사이에 사거리에 뭉쳐있던 신제국의 병사들이 다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벌써 4번째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마법 세례가 하늘에서 사거리에 밀집해있는 신제국의 병사들을 노렸다.
“푹풍이여!”
휘오오오!
위기가 찾아오면 초월의 힘을 통해서 오로지 바람만을 모으고, 제어하는 윈드 브링어(Wind Bringer) 상하의 갑옷과 폭풍 해방 대검(Windstorm Release Greatsword)을 사용했다.
특히 공격 기능이 전혀 없는 윈드 브링어 상하의 갑옷이 축적하는 바람의 양은 대단했고, 방출량도 독보적이었다. 다른 전신갑주에 있는 게 없어서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크어어엉!”
흑백사를 총기로 죽이고 재정비하는 모습에 <쿼드러플 무장기사(Quadruple Armed Knight)>가 돌격해보았지만, 폭풍 때문에 주저했다. 몇 번의 돌격과 다시 물러나는 걸 반복한 <끈질긴 곰(Tenacious bear)>이 대단히 지쳐서 걸쭉한 침을 질 흘렸다.
그러다니 이내 입천장에 있는 <활력의 토피 애플(toffee apple)>을 혓바닥으로 하나 꺼내서 깨물어 부숴서 먹었다.
단번에 체력을 회복한 끈질긴 곰이 콧김을 내뿜었다. 폭풍을 타고 쏘아진 화살 몇 개가 그들을 두드렸지만, 털에 화살이 박힌 것에 불과했다. 움직일 때마다 끈질긴 곰의 털가죽이 따로 놀며 덜렁거렸다.
비가 오지 않는 이상 화살은 곰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었다. 워낙 털이 두툼했고, 가죽도 두꺼웠다.
‘이대로면 아무것도 안 된다!’
“불곰과도 같은 돌진을!”
“저돌적인 공격을 보여주자!”
단번에 그들이 달려나갔다. 마법을 막기 위한 폭풍이 끝나자마자 쳐들어왔다. 대부분 탄알을 다 써버린 무장기사들이었다.
“후우우욱!”
이를 본 기사가 나섰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기사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본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은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에 존재했다.
<황제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그 감각에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감각 속에서 검을 찔러넣었다.
<흐름(Stream), 극점 찌르기 사선(Zenith Sting – Diagonal)>
찔렀음에도 ‘푹’ 같은 찌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베어지는 ‘쩍’ 소리가 황제 기사의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 기술이었다.
쩍!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무장기사들의 귀로 들려오자 그들이 반사적으로 회피 기동으로 들어갔다. 끈질긴 곰이 마치 게처럼 옆으로 움직였다.
놀라운 지능을 지닌 곰이었다. 하지만 얕았다.
제대로 한 점을 못 찔러서 사선으로 그냥 점을 걸쳤다.
퍼석.
검 신의 중간 부분이 가루처럼 변했다. 나머지 부분은 남아있었지만, 검으로서의 가치가 싹 사라졌다. 먼지가 흩날렸다.
푸화아아악!
피가 쏟아졌다. 돌진하던 5기의 중기병이 그대로 쩍 갈려 죽었다.
“웨애액!”
황제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안에 것을 게워냈다. 병사들이 서둘러 그를 사거리 중심으로 운반했다. 눈을 까뒤집고 사지를 덜덜 떨더니 이내 태아처럼 웅크렸다. 자기 자신의 자아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이 느껴져서였다.
병사는 기사의 입에서 흐르는 거품을 서둘러 닦았다. 안에까지 천을 집어넣어서 침을 밖으로 긁어서 뽑았다. 토사물과 함께 뒤섞여서 나왔지만 더럽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콜록! 콜록!”
기사가 기침했다. 까뒤집어졌던 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 성공했다.’
흐름(Stream), 극점 찌르기 사선(Zenith Sting – Diagonal)은 성공률이 높은 영향무력이었다. 거기에는 드낙과 세파리아스의 대련 효과가 컸다. 본래는 단순한 극점 찌르기였지만 거기에 사선을 덧대는 식이었다.
큰 점에 검 한 자루를 옆으로 비스듬하게 하여 넓게 대는 것으로 황제 기사단이 체감하기에 좋게 만들었다. 표적을 크게 키우는 셈이다.
그 덕에 찔렀음에도 현실에서는 베어지는 효력이 발생한다. 모순적인 기술이었다. 억지로 영향무력을 평범한 하위 인간이 사용하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난잡한 모양새가 되었다.
지휘관이 다가와서 서둘러 그를 살폈다. 손과 손이 굳세게 잡혔다.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몸을 추스르면 한 번 더 막아낼 수 있습니다.”
“하, 하지만...점점 쓰고 나서 몸이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허무하게 죽기도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오래 버티기도 합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지휘를 맡은 기사가 서둘러 그를 떠나 다시 지휘를 시작했다.
이처럼 신제국의 <사거리 방어 전술>은 대단히 탄탄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적들이 총기의 화력을 다 소모하는 것에 있었다. 실제로 점점 총소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당연한 거지.’
전신갑옷을 입은 기사가 사거리 하나를 통제하며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했다.
군사학을 배운 자라면 철칙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배우는 것이 있다. 그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진리가 이 전술에 담겨 있었다.
<적이 강할 때 싸우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이는 적었다. 수많은 전투 속에서 모레 한 줌의 깨달음도 못 가져가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이었다.
비슷한 말로는 <자신이 강할 때 적을 공격한다.>도 있었다.
아무리 전투 게임에서 노력한다고 해도 이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천 번, 만 번을 도전해도 상위권에 도달할 수 없었다. 나를 알지 못하기에 내가 언제 강한지 모르고, 적을 모르기에 적이 강할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승리를 어찌 감히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입에 거론할 수 있겠는가. 가벼운 싸움 속에서도 죽음은 코앞에 있다. 그게 인간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적이 강한 타이밍을 알고 있다면 적어도 어처구니없이 패배하지는 않는다.
굳건할 수 있다.
병사들 또한 이 끔찍한 시간을 버티기만 하면 패색이 사라진다는 걸 기사의 입으로 전해들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사기가 높았다.
적에게 대검 한 칼질도 못 하고, 수많은 흑백사가 죽어 핏물이 되어 쓰러지는 암울한 상황임에도 용기를 가지고, 버틸 수 있었다.
지휘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병사들에게 알려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버텨라! 놈들의 총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그때부터 역공의 시작이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지휘관만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있다. 병사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제한되어있었다. 그걸 잘 판단할 줄 아는 것이 좋은 지휘관이다.
‘사거리에서 나가면 큰일 나지.’
갑자기 하늘에서 적이 떨어져 내렸다.
이런 형태로 싸움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많은 회의 끝에 가장 적합한 전술로 병사들을 이끌었다. 중형 강하기인 드롭 쉽에 의해서 싸우지도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착실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첫 번째로 적들을 합류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었다. 특히 적들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미리 준비해놓은 수많은 거점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었다. 집도 쉽게 함락되었고, 지붕도 곳곳이 점령될 정도로 적은 베테랑이다.
종종 마법까지 발사했다. 폭풍 해방 대검이 없었다면, 수많은 물약이 없었다면 진즉에 곤죽이 났을 터였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무너질 수 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변한다면 변수가 챙길 수밖에 없었다. 수비할 때도 변수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이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병사들은 몰랐지만 그런 병사들을 다스리는 지휘관에게는 살얼음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두 번째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적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무식하게 방패가 된 이유도 그들과 제대로 검을 부딪치며 승부를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패장(敗將)은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기에 패배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더더욱 판단할 지식이 많은 기사에게 있어서 승리 확률이 낮은 곳으로 덤벼들어 공을 세우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또, 아무리 무공에 눈이 먼 자라도 총기를 쏘고, 물약을 마시지 않는데도 마법 공격을 퍼붓고, 팔이 4개 달린 중기병을 향해 공격 지시를 하는 자는 없었다.
자치왕국이었다면 몇 있을 수 있었지만, 세파리아스의 눈썰미를 벗어나서 그런 뇌절을 하는 놈은 신제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병력 손실을 적게 하는 게 신제국의 전략이었다.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수립하여 적용한다. 그게 전쟁의 기본이다. 세파리아스는 병력 손실을 원하지 않았다.
옛날의 그였다면 병사 10만과 반나절의 시간을 교환할 정도로 생명을 쉽게 다루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두 자신의 재능을 모른 채 살아갔던 평범한 인간과 교류한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버티는 전략을 수립했고, 이로 인해 대부분이 <사거리 방어 전술>을 펼쳤다. 거기에는 다분히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 깃들어 있었다.
물론 시민을 위해서 죽음으로라도 평화를 수호해야 할 병사들이 죽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희생정신 없이 군적(軍籍)을 지닌다면 군인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 다른 일을 찾는 게 서로 좋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아니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으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 모순 속에서 병사들은 자신만의 신념을 세워야 했지만, 이마저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것만큼 심지가 굵은 사람이 적으니까.
그 속에서 세파리아스의 전략은 병사들에게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고, 버티기 하나만큼은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였다.
보통은 측면에 적이 나타나면 도망치는 게 국룰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신제국의 병사들이 얼마나 감동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 지휘관들 또한 채찍과 당근을 잘 사용했다.
“와아아아아!”
사거리의 한쪽에서 인간의 환호성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은 쉽게 깨닫지 못했다. 긴장 상태에서 눈앞의 적에만 신경 쓰고 있어서였다. 옆이나 뒤에서 칼질해도 못 알아차릴 정도로 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지원군이다!”
대신 지휘관 노릇을 하는 기사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는 베테랑 병사의 귀에 들어왔고 곧 다른 병사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으아아아아!!!! 하하하하!”
고함을 크게 내지른 병사가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세파리아스의 영향무력이 모든 걸 휩쓸었다. 15m 내에 들어온 적은 갑옷째로 반으로 갈라졌다.
이를 막을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장기사와 끈질긴 곰은 자신들의 적을 향해서 용맹하게 달려갔다. 도망치는 이 하나 없이 죽었다.
피를 흠뻑 머금은 세파리아스는 순수하게 그들의 용맹성에 화답해줬다. 자신의 전력을 다해서 부딪쳤다.
그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적을 향해 돌진하는 용사들에게 해줄 최고의 칭찬이었다.
순식간에 사거리에 도착한 세파리아스가 대검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역전의 때가 왔다! 나아가자! 신제국의 용맹함을 알려라! 우리가 바로! 인류 최강이다!!!!”
인간 병사들의 무기가 크게 들어 올려졌고, 환호성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입에 핏대를 세우다 못해 피맛까지 느낄 정도로 병사들이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에 감화되어 고함을 내질렀다.
광전사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세파리아스는 신제국 병사들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는 것을 지시했다. 넓은 전쟁터에다가 온갖 집과 장애물이 많은 신제국의 수도에서의 전투는 자정이 넘어가서도 싸우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느릿느릿하게 들려왔다.
야밤을 틈타서 2차 강하가 이루어졌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의 눈이 좁아졌다.
‘드낙, 이놈. 또 쓸데없는 것에 꽂혀서 본 목적을 망각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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