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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디그닥. 다그닥. 디그닥. 다그닥.
땅을 울렸다.
평범과는 대단히 거리가 먼 묵직한 움직임이 땅을 쿵쿵 밟으며 지나갔다. 이에 따라서 대단히 조잡한 고무에 씌워진 강철 바퀴가 따라서 움직였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는 나무로 된 바퀴들이 여러 개 나열되어있어서 난잡함을 더했다.
그 크기는 폭 4m에 길이는 10m가 넘을 정도로 거대했다. 짐마차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기차의 한 칸 크기나 다름없었다. 되려 더 길었다.
여기에는 <오션 오크>라 불리는 종족의 입김이 컸다.
오크 개체수의 폭증으로 주력이 남아돌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저 오크 약재만 흡입하던 오크 나무는 주술까지 더해져서 더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토막을 내서 마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통나무 안쪽을 깎아내어 하나로 사용했다. 이음새와 틈이 없었기에 내구력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짐을 놓는 부분에는 상하단으로 수직으로 세워진 나무토막을 길쭉하게 퍼즐처럼 딱딱 맞춰서 나열해놨다.
수직 하중을 노렸다.
이런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한 이유는 그저 경험의 축적 덕분이었다. 물론 수평으로 놓아도 주술이 담긴 오크 나무였다. 간단히 부서질 수가 없었고 보조 재료보다는 주력재료로 사용될 수 있었다.
나무에 대한 호감도는 오션 오크들이 바다에 진출하면서 더더욱 커졌다. 불에 타지 않는 나무. 진흙을 잘 흡수하는 나무 등등 온갖 나무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무기도 나무로 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히 다른 종족을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통나무로 만든 짐마차에 올려진 툭 튀어나온 자-주포는 기름 먹인 천에 덮여있었다. 계속해서 만들기만 해서 유지 보수하는 인력이 적어서 유지비를 높인 것이 자-주포였다. 두꺼운 소가죽에 돼지 같은 동물의 기름을 덕지덕지 바르고 내부도 틈틈이 꼼꼼하게 청소하며 기름을 발라놔야 했다.
철은 녹슬면 그대로 끝장이다.
오션 오크의 자-주포 손실률은 다종족 연합 중 1위를 달성할 정도로 높았다. 그 이유는 바다의 염분 때문이다. 2위는 지하 연합이었다. 지하의 습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드워프의 기술을 배워온 고블린 기술자들 때문이었다.
“그어엉.”
새하얀 사슴뿔을 지닌 코뿔소같이 두툼한 덩치를 지닌 짐승이 소리를 냈다. 이에 마차를 끌던 마부가 손으로 그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투정부리지 말고, 조금만 더 힘내자.”
아름다운 여성의 미성에 흰사슴이 코를 벌름벌름하며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흰사슴 발룬의 자식들은 원체 힘이 강하고, 딱히 식량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먹는다고 하더라도 건초면 되었다.
그에 반해서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거대한 짐마차를 끄는데 탁월한 효율성을 자랑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여자가 다뤄야 한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여자가 질색했으나 단 한 부류의 여자들은 좋아했다.
수간(獸姦)도 마다치 않는 성욕의 화신들. 죽어서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토양을 이롭게 하는 벌레로 변하는 부질없는 것들. 아카타베루에게 잉태되어서 드낙으로부터 변질된 기생인(寄生人)들이 그러했다.
그 여자들은 단모를 지닌 흰사슴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흰사슴들의 변태적인 시선도 즐겼다.
무엇보다 기생인에게 있어서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마부는 썩 괜찮은 직업이었다. 수많은 남자와 교미할 수 있어서였다. 딱 봐도 미녀였기에 흰사슴 중 여자 기생인을 거부하는 흰사슴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남자 기생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들의 성노예 혹은 호스트로 전락했다면 여자 기생인들은 제법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인구> 그중에서도 하위계층이 필요한 것이 자치왕국이고, 신제국이었기에 기생인은 훌륭히 그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통나무 짐마차에는 오직 자-주포만 운송했다. 행정의 간편함과 동선 및 일 처리의 간단화를 위해서였다. 다른 자잘한 것은 평범한 짐마차를 통해서도 가능했다.
“정지! 워! 워!”
앞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자 통나무 짐마차가 멈춰 섰다.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경무장을 한 병사들이었다.
“실례합니다! 저희는 자치왕국군 소속의 숲 속 정찰대 제 5분대입니다! 저는 분대장 에크베르트(Egbert)라고 합니다. 잠시 검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이에 미녀 마부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눈웃음을 지었다. 실로 여우 같은 모습이다. 그들 또한 침을 삼켰다. 젊은 혈기가 가득한 남자 10명이 숲 속을 돌아다니며 치안 확보에 힘쓰고 있었기에 성욕이 들끓었다.
“그럼요!”
기생인은 말에서 내려서 손으로 자신의 목 아래를 쓰다듬더니 단추룰 두 개 풀었다. 풍만한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병사들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치왕국의 자색 주포는 신제국으로 천천히 향하기 시작했다. 신제국의 수도 바로 위에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은폐된 공중 요새 또한 신제국의 곳곳에 자리 잡았다.
“찍찍.”
문서를 훑으며 피숨결 검은 뿔쥐가 피연기를 입에서 내뿜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서류를 탁탁 쳤다.
“보급일정이 엉망이다!!”
“멍청한 인간들! 멍청하다! 멍청해!”
산만하게 한쪽 다리를 떨었다. 본래라면 자치왕국으로부터 어제 도착해야 할 통나무 미사일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아서였다. 유독 신제국과 자치왕국만 계속 일정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신제국은 도가 지나쳤다.
“신제국의 시간은 3일 늦게 간다는 말이 있지. 우리를 엿먹이는 거다. 찍찍.”
“간사한 놈들...”
불만을 토로했지만, 꾸준히 오고 있기는 해서 큰 잘못이라고 불만을 공식적으로 토로할 수 없었다. 주긴 주되, 곱게는 안 주고 있는 셈이다. 세파리아스가 지닌 북부 귀족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걸 모르는 뿔쥐들이 아니었다. <쉐도우 위스퍼>를 통해서 많은 지식을 힘으로 삼은 상태였다.
“논공행상에서 우리를 최대한 뒤처지게 할 생각이다.”
“분명 저번에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을 놈에게 보내서 짜증을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지나친 복수다! 반드시 우리도 복수한다! 복수! 복수우우!”
작은 방해물에 불과했지만 하루, 이틀 쌓이다 보면 어찌 될지 모른다. 실제로 번거로웠다. 일정에 차질이 일어나면 피곤했다. 분을 못 참는 뿔쥐들에게 지하 갱도를 통해서 느긋하게 다가오는 신제국의 깃발을 펼친 수송대가 눈에 들어왔다.
경기병 다섯에 선두 마차에는 짐이 하나도 없고 중보병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경보병이 타고 있는 마차가 보였다. 그 사이를 두고 짐이 옮겨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찍찍!”
뿔쥐가 화를 냈지만 신제국의 인사들은 코를 후볐다. 이미 이번 작전에 대한 모든 것을 들은 이들이다. 하품하기도 했다.
태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뿔쥐들의 기세가 흉포해지자 신제국의 인간들 또한 무기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중 신제국의 관리가 이들을 헤치고 나왔다.
“세상일이 어찌 그렇게 딱딱 들어맞겠습니까? 그리고 예를 갖추시지요. 이들은 신제국의 병사이며, 그대들은 지하 연합의 병사들이 아닙니까? 서로 반말을 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합니다.”
그 말에 뿔쥐들 또한 냉정을 되찾았다. 고개는 숙이지 않은 채로 사과의 말만 전했다.
“하지만 일정이 늦은 것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셔야 합니다.”
“해명이라니요? 쉐도우 위스퍼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뿔쥐들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것까지 쉐도우 위스퍼가 감당하기에는 인력이 모자랐다. 치안을 확보해주며 드낙을 드높이는 것이 쉐도우 위스퍼의 주임무가 된 지 오래였다.
지하 연합의 산업화 때문에 비생산적인 직업인 쉐도우 위스퍼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이거 쉐도우 위스퍼의 위상도 옛날 같지 않습니다. 저희가 늦은 이유는 늦게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지금 해명이라고 했습니까?”
“예.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보급 마차는 놓고 간다! 병력 수송을 위한 마차는 말머리를 돌려라! 최대한 빨리 신제국으로 복귀하여 우리들이 지켜야 할 제국 신민들에게 돌아간다!”
“예!”
우렁찬 목소리가 퍼졌고, 신제국은 정말로 돌아가 버렸다. 그 모습에 뿔쥐들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고함을 지르지 않고 간사하게 혓바닥을 놀렸다.
“이건 우리에게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이다! 괘씸하다! 복수, 복수해야 한다! 정당하고 올바른 복수다!”
“그만! 신경 쓰면 안 된다! 중요한 건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이다. 우선순위를 정확히 알아라!”
“아니! 황제를 노려야 한다! 건방진 놈들이다!”
뿔쥐들이 티격태격했다. 두 가지의 쟁점은 서서히 독처럼 공중 요새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서로의 명예를 걸고 카드 놀이를 할 지경까지 번졌다. 결국 공중 요새의 최고 직함을 지닌 함장이 나서서 이를 종식해야 했다. 이 소요 사태는 공중 요새 곳곳에서 일어나 그들의 자원과 시간을 갉아먹었다.
세파리아스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한 일이 없었다. 그저 지각한 것뿐이다.
*
“안 되겠네.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드낙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고블린 지하 도시로 향했다. 엄청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있는 곳이었으며 다종족 연합의 연료 공급에도 큰 지분을 차지하는 곳이었다.
고블린의 인건비는 싼 편이기에 무조건 이득을 보고 있는 곳이라, 지하 연합 소속의 몇몇 베테랑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곳은 아주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었다.
‘구리 만티코어를 블러디 만티코어로 만든 실험실이 있었던 곳이지.’
끓는 구리를 숨결로 토해내는 금속 타입 만티코어는 대단히 강력한 괴물이었다. 그걸 가만히 둔다는 건 드낙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꾸준히 관리하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구리를 옮기는 건가?”
“뜨나아아아아악!”
고블린들이 그의 이름을 경배하며 수레를 끌다 말고 더러운 길에 그대로 대가리를 처박았다. 지하 연합은 드낙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굉장히 열성적으로 하는 편이었기에 과다할 정도로 반응했다.
“내가 잡아먹어? 어서 일어나.”
드낙이 손수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구리를 확인했다. 마치 웅덩이에 고인 구리를 떼어내서 가져가는 것처럼 엉망인 구리였다.
“구리 만티코어에서 나온 건가?”
“예! <구리의 만티코어(Manticore of Copper)>에서 나온 것입니다!”
“좋군. 좋아. 이건 어디로 가는 구리냐?”
“오션 오크들에게 갑니다!”
“오션 오크들에게? 뭘 만들려고?”
“그건 잘...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블린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죽음을 예감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로 드낙이 고블린을 죽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고작 수레를 옮기는 고블린에게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되겠지.’
“안내하라. 만티코어들의 힘이 필요하다.”
“예!”
수레를 구석에 두고 고블린 노동자가 서둘러 그를 안내했다. 이를 따라가며 드낙은 블러디 만티코어를 떠올렸다.
‘반신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상성에 따라서 전투력이 좀 이리저리 차이가 나지만, 확실한 건 반신급 전투력을 지닌 건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블러디 만티코어는 단점이 커.’
부글부글 끓으며 유독가스를 내뿜는 구리 숨결보다 브레스가 약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이를 개량하여 구리 만티코어의 기질은 살리고, 악마의 피를 통한 제어력은 높였다.
‘당연히 평범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
귀찮은 방법을 쓸 드낙이 아니었다. 흥청망청 권능을 만들고 다녔을 때, 만든 권능이 블러디 만티코어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의 자식인 구리 만티코어들에게 스며들어 갔다.
이들은 충실한 드낙의 권속 악마였다.
햇볕이 아래로 쏟아지는 1,200m의 거대한 높이를 지닌 지하 공간에 만티코어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구리를 생산하며, 고기를 먹는 놈들이었다. 특히 이들은 생고기보다는 소금이 뿌려진 구이를 좋아했다.
“오도독!”
뼈까지 씹어먹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내장도 따로 삶은 것을 즐겼다. 최근에는 소금간 이외에도 다른 향신료도 즐겼다.
먹고 자고 싸고! 종종 날아올라서 하늘을 누비는 삶. 종족번식 또한 빠질 수 없었다.
괴물인 만티코어에게는 훌륭한 삶이었다. 그들은 큰 뿔을 지니고 있었는데, 드낙의 힘이 집중된 뿔이었다.
<반마의 지성뿔>.
실로 음흉한 권능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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