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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저 하늘에 있는 걸 무슨 수로 떨어뜨릴 생각이야?”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못하면 날아가서 개입하면 될 일이고.”
세파리아스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완벽하게 이 차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우주 낙원이었으나 그 크기가 너무나도 커서 25km의 높이에 있었음에도 눈으로 확인 가능했다.
웬만한 대국의 영토나 다름없는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4백85만의 3성 정예병 인조생명체를 생산하고 그들을 우주 낙원에 주둔시킬 수 있었다. 행성이라고 부를 만 했다.
이는 우주낙원이 병력 생산과 주둔을 위해서 그 크기를 간척사업처럼 덧대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필요에 따라서 크기를 키울 수 있는 게 우주 낙원이었다.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세파리아스의 담백한 말에 드낙이 눈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너와는 대화가 잘 안 통하겠는데, 눈에 보일 정도인데도 아득히 멀어 보이는데 그런 말이 나와?”
“간다면 너 혼자나 다녀와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놈들이 스스로 내려와야 하지.”
“그냥 쳐들어갈까?”
답답함에 드낙이 성급하게 굴었다. 세파리아스는 이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드낙 스스로 그 결정에서 물러났다.
“실언이다.”
“그래. 할 말 다했으면, 국제 연합 도시로 돌아가라.”
그가 손짓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지금 그와 아무리 이야기를 한들,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쓸데없이 놈들에게 접근하지 마라. 아무리 큰 피해를 입어도 결국 놈들이 하늘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나도 안다.”
드낙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세파리아스가 노려봤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볼에 상처 하나 준 것이 전부라니. 놈의 성장세는 나를 뛰어넘었다.’
적어도 암살과 관련된 행동에 한해서는 한 걸음 내지는 세 걸음 정도 차이가 났다. 점점 더 그 거리는 커질 터였다. 그전에 세파리아스는 성과를 내야 했다.
‘단순 명상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다. 이번 전쟁이 나한테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운에 기대야 할 정도로 드낙의 암살 재능은 음험하기가 이루 말할 게 없었다. 다행이라면 드낙은 <파동 이동술>을 세파리아스에게 자주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건 드낙이 세파리아스를 얼마나 편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죽일 수는 없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드낙의 간사한 혓바닥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세파리아스와의 관계를 위해서는 그 위에 올라서는 건 썩 좋지 않았다. 자신이 으뜸이 되지 않으면 전쟁으로라도 으뜸이 되려고 하는 게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왕위쟁탈에 검을 뽑아 드는 건 그만큼 반골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드낙은 미운 정 하나를 믿고 세파리아스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 근거 중에 주효한 것은 <황제 기사단>과 외계로 향하려는 세파리아스의 동기였다.
든든히 보급을 받쳐주는 것만으로도 세파리아스는 드낙보다는 다른 세계의 초월자를 노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중립신에게 엉망진창 당한 것이 세파리아스고, 드낙이었다.
둘의 그 공감대는 전우애와도 같았다.
세파리아스는 죽었음에도 중립신에 의해서 사로잡혔으며, 그 자아 중 극히 일부분만 깨어나 드낙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패배는 패배다. 세파리아스는 그걸 외면할 사람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 패배의 이유를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속박하고 있었던 중립신에게 놓았다. 그 분노는 곧 필멸자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주제에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초월자들에게로 향했다.
드낙이 그 노선을 취하지 않은 건 행운이었다.
“음.”
세파리아스가 눈을 감았다. 수없이 드낙의 한 수를 떠올렸고, 그 공방을 마주하며 복기했다. 시간은 많았다. 호들갑을 떨기에는 적은 지나치게 멀리 있었다.
하루가 흐르고 서서히 신제국의 수도에서 양민들이 알게 모르게 지방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행정력을 통해서 단단히 통제되었으며 매우 자연스러웠다.
어찌 되었던 현재로써는 신제국의 수도 바로 위에 놈들이 존재했다.
제대로 칼 하나 휘두르지 못하는 시민이 수도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또 피난길에 오르는 것이 적들에게 들킬 수 있었지만 강행했다.
지구처럼 10만km 넘게 떨어져 있는 달과 거리는 다르지만, 그 크기는 비슷했기에 피난 사유는 충분했다.
<국제 연합 도시>
신제국이 아직 수도 대피령을 내리기 전에 국제 연합 도시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드낙은 게제라스 총리를 만났다.
회의장으로 호출했다. 그를 비롯한 도시의 중책들이 모두 자리에 잡았다. 관리가 아닌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스톨포 샤를로트 왕자가 그러했다.
이 국제 연합 도시에서 영향력 있는 이라면 누구나 참석했다. 추가로 의자가 제공됐다.
“현재 상황은 뿔쥐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예. 하지만 제대로 된 판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드낙이 놀랐다. 충분한 시간을 그들에게 줬다고 여겼다. 그러나 불과 8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예.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알았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정말로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겠지. 그러나 최소한 알아낸 것이 하나라도 있을 것 아닌가.”
국제 연합 도시는 드낙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모든 종족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정보가 모이는 곳이 된 지 오래였다. 다종족 연합의 머리인 셈이다.
이곳을 만든 이유 자체가 그러기 위해서였다.
“차원 간섭 현상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차원 간섭 현상!”
드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차원과 차원이 서로 간섭하는 상태입니다. 지금 저 거대한 섬의 일부분을 타격해도 실제로 큰 타격은 입히지 못합니다. 크게 반감되어서 전달될 겁니다.”
“이해했다. 그렇다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서로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것도 다릅니다. 어찌 되었건 서로 간섭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다. 현실과 꿈이 뒤엉킨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었다.
“다만, 힘의 효율성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10의 힘을 이곳에 보내려면 적어도 100의 힘을 쏟아부어야 할 겁니다.”
“그럼 가만히 있는 게 최고겠군.”
“예. 오히려 상대가 많은 힘을 사용해주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드낙이 턱을 쓰다듬었다.
‘전쟁은 곧 기만.’
적을 기만하지 못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와 같은 생각을 게제라스 총리도 하고 있었다. 수많은 군사학자들은 기만술을 내비쳤다. 이는 드루먼쇼 때문이었다.
“몇 가지 시도하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아주 야만적인 시도 말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떤 걸 생각하느냐?”
“마법을 쏘면 되지 않겠습니까? 평범한 마법사들처럼 위장하여서 모여 대형 마법진을 만들어서 쏴 보낸다면 상대도 좋아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드낙은 흡족하게 웃어 보였다. 생각만 해도 속을 놈들의 얼굴이 딱 생각났다.
“투박하고 좋다. 진행시켜. 아주 무식하고 좋네. 준비 기간도 한 달로 길게 두고. 멍청하게 보이게끔 그냥 북적거리는 날도 3일 정도로 보여줘.”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예!”
모두 일제히 답했다. 그 외에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황 보고가 주를 이루었다.
“각국의 전신갑주 보유량은...”
“오크들이 장총인 블랙 피닉스의 화약분량을 뒤늦게 요청하여 이에 대한 조율이...”
“엘프 선박 자문단은 현재 오크들에게도 흉갑을 제공하기 위해서 목적에 위반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응? 자문단이?”
드낙이 그중에 흥미로운 게 있으면 툭툭 물었다. 질문 하나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 안건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국제 연합 도시의 관리들은 대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엘리트였다. 고생한 표정이 곳곳에 있었지만, 무식하게 신성력과 회복 물약을 통해서 체력을 보존하고 있었기에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본래였다면 차원전쟁 동원령 선포 이후 보름 내에 체력적으로 후달리는 모습을 보였을 터다.
“예. 아무래도 논공행상을 생각하는 듯합니다.”
“치열한가 보지?”
“쉐도우 위스퍼로부터 착실하게 논공행상에 대한 순위가 5일 단위로 갱신되고 있습니다. 세세한 정보까지 추가되고 있었기에 매우 신뢰성이 높습니다.”
“그래? 그거 좋은 일이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아니.”
드낙은 손사래 쳤다. 알아서 잘 하는 걸 꼼꼼히 볼 필요는 없었다.
‘뿔쥐니까, 믿는다.’
“다음.”
“예. 자치왕국의 신전이 신제국에 분산되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전쟁터가 신제국이 될 거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드낙은 가만히 듣다가 이내 한 마디 했다.
“저 먼 거리에 있는 걸 타격하기는 어려울 테니, 자주포도 신제국으로 옮기는 게 어떤가. 아무래도 강습하려면 내려오기는 해야 하지 않나?”
“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서히 전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신제국에 착륙할 것으로 보여서였다.
*
5일 후.
25000M. 성층권(Stratosphere).
우주 낙원 내부 회의실.
뉴트럴 차원 식민 전쟁 제 2 본회의.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임하고 있었다. 몇몇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건 개벽(開闢)의 천사(闡士) 에스텔라(Estela)였다.
“심상치 않아.”
그녀의 새하얗고 아름다운 손이 ‘갈가노의 검’을 쓰다듬었다. 이에 그녀가 올라타고 있던 탄생석골램(Birthstone Golem)이 말했다.
“너무 큰 걱정 아닌가? 괴이함은 분석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좋겠지만...”
고민하는 사이에 엘레우테리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유의 권능>을 지닌 엘레우테리오는 마치 투명도를 올리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의 진행률은?]
그 말에 우주 낙원이 답했다.
“18.5%입니다.”
[놀랍군.]
“상당한 수치입니다.”
“오히려 의심스럽습니다.”
하루에 1.5%씩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건 너무나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수치였다. 보통은 0.3~0.7%/1day였다. 2배에 가까운 진행률이었다.
[조사 결과는 뭐라고 나왔지?]
“불명입니다. 다만, 몇 가지 추측할 수 있었는데 뉴트럴 차원에는 모종의 작업이 이루어진 곳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차원 이동이 편하도록 설계되었다?]
“예. 하지만 완벽한 답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희가 깨달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는 건...”
그 말을 엘레우테리오가 끊으며 받아냈다.
[부차적인 효과라는 것이군.]
돌을 던져서 호수에 있는 개구리를 잡았다. 그로 인해서 생긴 물의 물결처럼 이차적인 영향력을 받은 것이다.
“예. 그렇기에 모호하기 그지없고, 어떤 목적을 통해서 이런 효력이 발생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엘레우테리오가 머리를 굴렸다. 당연히 그 머릿속에는 중립신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졌다.
‘무섭구나. 중립신...’
그는 분명 이 차원을 완벽하게 자신의 요새로 개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차원의 형질 자체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행성에 그의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처럼. 차원 장벽 또한 형질 변화가 필요하다.’
그 과정의 중간에 그들이 도착한 것이다.
[하하하!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철근을 넣고, 딱딱하게 굳기 전의 시멘트에 발자국을 남긴 것과 같은 형세가 지금이었다. 물렁물렁한 차원 장벽은 조금만 시기를 놓쳤다면 단단하게 굳어버렸을 터다.
평범한 콘크리트는 결함 덩어리다.
‘보통 방법으로는 차원 장벽을 물렁하게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이를 단단하게 하려면 독특한 공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엘레우테리오는 그 방법을 몰랐으나, 눈앞에 답안지가 있었다.
바로 행성이다.
콘크리트 맹신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돌대가리들뿐이었고, 탁상공론하는 머저리들이었다. 콘크리트는 결함이 철철 흐르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물질이었다. 그것을 최강의 내구력을 지닌 건축 재료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철근이다.
즉, 콘크리트가 강한 것이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가 강하다.
‘행성을 철근에 비유하고, 차원 장벽을 콘크리트라고 생각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행성의 기질을 변화시키고, 그 크기를 키워서 덩치를 키움과 동시에 그 행성의 변화된 기질과 똑같은 기질로 차원 장벽을 만든다면 어마어마한 요새가 될 것이다. 그 어떤 초월적 존재도 들어설 수 없을 터였다.
그 중간 지점에 엘레우테리오의 우주 낙원이 비집고 들어왔다.
물론 그가 오지 않아도 그 계획은 실패했을 터였다.
효율적으로 드낙을 죽이기 위해서 정신세계에서 그 나약한 정신만 죽일 생각을 지닌 중립신을 세파리아스가 그 정신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는 엘 마르토 카사다민에게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기만 해도 간이 쫄리고, 두려움이 일어나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여 자신의 정신 세계로 들어오게 해준 드낙의 행위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살인마를, 그것도 전기톱의 시동을 켠 살인마를 자신의 집에 들이는 짓이기 때문이다.
꿀꺽!
환희의 권능과 자유의 권능을 지닌 엘레우테리오가 침을 삼켰다. 정신체였기에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놀랍도다. 중립신...허나 시대는 이미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는 잊힐 때다.’
[차원장벽이 물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차원 항해가 빠르게 끝맺을 수 있지. 입항 절차가 빠르면 우리야 좋은 것 아닌가. 동시에 차원 장벽이 물렁한 이유는 행성에 있는 대악신의 힘 때문이다.]
“그런!”
“호, 혹시 부, 부부활한 것입니까?”
모두 벌벌 떨었다. 이에 엘레우테리오가 엄격하고 근엄하게 말했다. 실로 신뢰성이 있어 보이는 말투였다.
[걱정 말아라! 그는 부활하기 전에 이 차원을 굳게 걸어 잠그려고 했고, 그 전에 우리가 여기에 도착한 것뿐이다.]
[신성력 파괴 입자를 준비하라. 진행률이 완료되면 먼저 행성에 있는 대마악신의 힘부터 제거해야 한다. 식민지 전쟁은 그 이후의 싸움이다!]
“예!!”
모두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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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완결이 코앞입니다. 완결 이후에는 외전 형식으로 연재를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