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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발키리 시스템에 의해서 생산된 인조생명체 중에서 4성 이상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310기의 인조생명체.
만신전(萬神殿)의 도움으로 상위인간(上位人間)이 되어 마력을 품은 그릇을 지닌 용병 지구인 소속 지휘관 1,000명.
게으름뱅이 엘레우테리오를 감시하고 정보를 꾸준히 만신전에 보내는 3명의 감시자(Observer)가 의자에 앉았다.
우주 낙원의 크기는 대단히 컸고, 회의실 또한 대단히 컸다. 동면에서 깨어난 칠색신룡(七色神龍)이 자리 잡는 것도 수월할 정도였다.
“여전히 오색빛깔로 빛나는군.”
탄생석골램(Birthstone Golem)이 칠색칠룡의 화려함을 논하였다. 그 어깨에 올라온 개벽하고, 해방하며 닫힌 것을 여는 천사(闡士) 에스텔라(Estela)가 대꾸했다.
“용답지 않아.”
그녀의 말에 따라서 순백의 날개가 조금 움직였다. 세 쌍의 날개는 아름다운 백금발의 외모와 맞물려서 신적인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
웅웅.
사용자를 가리는 검, 복제성검 ‘갈가노의 검’이 소리를 냈다. 그 검에게 있어서 용의 카테고리에 속한 칠색신룡은 대적자에 불과했고, 결코 협력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에스텔라의 고운 손이 그 검을 덮어 쓰다듬었다. 이에 소리가 줄어들었다.
곧 허공에서 엘레우테리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수준의 육체에 담겨서 게으름 피우며 이를 자유라고 말하는 것이 환희와 자유의 인신(人神)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신체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까르륵!”
“끼에엑!”
아기처럼 웃고,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 아기 천사들이 엘레우테리오의 정신체 근처를 돌아다니며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 아기천사의 눈에 깃들어있는 광기는 엘레우테리오가 <광기(狂氣)의 신(神) 레이어스(Reais)>의 세력에 속한 인신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나풀거리는 흰색의 천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나풀거렸다. 그중 몇 가닥은 엘레우테리오의 몸을 감쌌다.
[다 모였군.]
이에 회의장에 모인 1,313명의 생명체가 그를 찬양하였다.
“환희와! 자유의! 신을 뵙습니다!”
“만신전에 영광을!”
“영광의 계단을 영원토록 올라가소서!!”
“신들의 땅으로 향하는 위대한 항로의 등대시여!!”
“만세! 만세! 천상귀상만종광덕성성체(天上貴相萬宗廣德聖聖體) 프레이 여신의 위대한 협력자!”
감시자들은 은근히 만신전의 위대한 지배자, 프레이 여신을 찬양하기도 했다. 그 건방짐이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중립신의 멱을 딴 그 업적은 아직도 만신전에서 프레이 여신의 위치를 공고히 해주고 있었다.
400여 명에 달하는 인신 중에서 실제로 중립신의 정신체에 칼집을 낸 이는 그 절반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시늉만 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를 같이 칼질해서 암살하자고 했지만 실제로 칼자국은 그 의원의 숫자보다도 적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것 똑같다. 조별과제의 형세는 세상 곳곳에서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인격체이며, 인격신인 인신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회의를 시작해라.]
그 말에 우주 낙원의 음성이 울려 퍼져나갔다.
[현재 차원이동 진행률은 3%입니다. 카실레안 교본에 입각하여 상대가 간섭할 수 있음을 논하십시오.]
순간이동처럼 단번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과 다르게 이차원을 항해하여 다른 차원에 개입하는 것이 우주 낙원의 차원 이동 체계였다. 이것의 장점은 큰 힘이 들지 않는 것이었고, 단점은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우주 낙원의 차원 이동에 대한 간섭, 그 주제는 깊은 이해가 필요했고, 군사학적 지식도 총동원해야 했다. 먼저 적의 수준을 드높였다.
“이상하다고 여기겠지만, 지상으로부터 25km나 떨어졌으며 대기가 극히 적은 성층권의 상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찌 감히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게 된다면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겁니다. 놈 중에는 신이 없고, 반신이 있으나...인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구인이며, 상위인간이자, 지휘관인 10명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회의는 대부분 그들 위주로 돌아갔다. 카실레안 교본을 빠삭하게 아는 이들이고 이를 현실에 대입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동의합니다.”
“인정, 또 인정합니다.”
반론은 없었다. 이계인들을 통해서 끌어모은 정보는 그 말이 100% 진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드루먼쇼에 의해서 포장된 정보다.
곧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근거를 더 했다.
“가정한다면, 매우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반신이라고 못하는 건 아니고, 간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100의 힘으로 1~5의 피해만 줄 수 있습니다. 그 효율성은 1%~5% 미만일 겁니다.”
다른 차원에 있는 우주 낙원이 이 차원에 들어서며 서서히 동화되고 있었다. 아무리 이를 파괴하더라도 그 수준은 미미했다. 진행률보다 더 적은 피해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얻는 성과가 적은 셈이다.
[매우 정확한 수치인데?]
“이 또한 카실레안 교본에 있습니다. 애초에 이 차원항해 방식을 추켜세운 게 전술의 신, 카실레안 님이십니다.”
차원이동에는 수많은 방식이 존재했지만, 그중에서도 두 가지 방식이 유효했다. 하나는 순간이동 방식 다른 하나는 차원 항해였다. 보통은 많은 준비와 많은 소비를 통해서 단번에 이루어지는 이동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카실레안은 달랐다. 그는 차원 항해 방식이 전술적으로 이용하기 더 좋다고 여겼다.
먼저, 차원 순간 이동보다 자원 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규모가 아닌 초대규모의 선단을 만든다면, 차원 항해의 가치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차원과 차원의 교집합을 만들어내며 다른 차원에 모습을 드러낼 때 상대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호전적이라면 희미할 때부터 맹공을 퍼부을 것이다.
똑똑하다면 진행률이 낮을 때부터 정보를 취득하며 다양한 시도를 할 터였다.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적의 숨겨진 전력조차 분석 가능했다. 적은 피해로 적의 강함을 측정할 수 있다는 건 전술가로서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5명의 첨병의 목숨으로 1만 대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적의 게릴라를 표식한 것과 같았다.
전술가에게 있어서 무조건 안전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차원 이동보다는 피를 흘러도 적게 흘리고, 보급을 아낄 수 있는 차원 항해가 더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유동적으로 적에 관한 판단을 내릴 판을 깔아줄 수 있었다.
게으름뱅이 엘리우테리오는 전에 했던 질문을 또 내뱉었다. 식민지 정복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잊고 놓기 바쁜 게 그였다.
[만약 계속 공격한다면?]
“자원을 많이 쏟아부었으니, 진행률이 완료된 저희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좋다.]
환희와 자유의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본제는 반신 죽이기였다.
“이 차원...”
[잠깐. 이 차원, 이 차원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 않나? 이름을 짓고 싶은데.]
“예?”
그 반문에도 엘레우테리오는 멈추지 않았다. 중립신다운 이름이 있었다.
[뉴트럴(Neutral) 차원이라 말하라.]
“예. 뉴트럴 차원에 있는 반신은 단 한 명입니다. 그를 죽인다면, 차원 식민지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밤에 드롭 쉽(Drop ship)을 통해서 강하작전을 펼치면 간단할 것입니다.”
끝이 둥글둥글한 정사각형의 중형 강하기가 드롭 쉽이었다. 밤하늘의 어두컴컴함을 이용하면 공격당하지 않고, 관측당하지도 않고, 효과적으로 적의 심장에 내려꽂힐 수 있었다.
칠색신룡(七色神龍) 한 기가 물었다.
“굳이 죽일 필요가 있습니까? 현지의 제어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 편할 겁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고작 인간의 탈을 쓴 반신 아닙니까.”
데미-갓에도 수준이 있었다. 덩치가 크면 초월의 힘 출력 또한 커진다. 그렇기에 소형 수준의 반신은 썩 무섭지 않았다.
“저도 동의합니다. 신성력의 입자화도 이룩하지 못하고 자신을 치료하는 데에만 쓰는 반신입니다. 냉병기 수준의 위협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넓혀 밝히는 존재, 천사(闡士) 에스텔라(Estela)도 이에 동의했다.
위협도가 낮은데 굳이 죽여서 식민지 차원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보다는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엘레우테리오의 시선이 감시자들에게로 향했다.
“평범한 식민지였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곳은 평범한 차원과는 다릅니다.”
차원 식민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감시자가 입을 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동요가 일어났다.
‘심상치 않다!’
모두 그 감시자에게 눈을 똑바로 놓았다.
“이곳은 만신전의 주적이었던 적이 있는 인신이 부활을 꿈꾸는 차원입니다. 그리고 놈의 챔피언은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서, 설마...대악인신(大惡人神)...엘 마르토 카사다민!”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왜곡된 역사에 의해서 그들에게 있어서 중립신은 끔찍한 인신이라 알려진 상태였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었으며, 결코 진실된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 왜곡된 역사에 세뇌된 이들은 중립신을 대악인신이라 불렀다.
모든 필멸자를 버리고 인신들끼리만 도망가자고 했던 사악한 인신! 정의로운 만신전의 인신과 자신의 오라버니였던 신을 향해 검을 들어올려야 했던 위대한 영웅신. 프레이 여신이 아니었다면 필멸자는 대악인신에게 완전히 버려졌을 것이다.
그와의 싸움으로 결국 만신전은 지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트롤 중의 상트롤. 그것이 지구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왜곡된 진실이었다.
“그 악신 중의 악신의 챔피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것은 성전입니다! 신들의 땅이 아닌 곳에서 만신전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는 크나큰 영광입니다!”
아아-! 위대하도다-! 위대하도다-! 우리들의 만신전, 우리들의 신의 은총과 은혜가 지금 이곳에 있도다-!
그들이 찬송가를 불렸다. 진정 존재하는 인신을 찬양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초월자였으며, 신이었다. 정신체로 강림하고 있는 거대한 엘레우테리오의 모습은 신성하기 그지없었다.
[많은 병력을 보낼 필요는 없다. 오버로드 급 다섯과 군대 8만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손에 잡을 것처럼 가깝고, 눈에 보일 정도로 마주 보고 있으나 차원이 다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완전히 이곳에 차원 이동을 감행하여 항해를 끝마치고 진행률이 100%에 도달해야지 간섭할 수 있었다.
[다른 자잘한 건 알아서 정하도록 하라.]
엘레우테리오가 모습을 감췄다. 자유의 신답게 자신의 농밀함을 순식간에 지울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엘레우테리오를 속박할 수 없었고, 잡아챌 수 없었다.
그가 크게 자신하며 만신전을 떠나 우주 낙원에 있는 이유였다.
구름과도 같은 자유로움을 지닌 그의 권능 덕분에 죽을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
그 누구보다 빨리 드낙은 이변을 알아차렸다.
자주 보지 않았던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양이 그 눈을 괴롭혔지만, 그 태양에 하나의 점이 존재했다. 최소한의 진행률이 이루어진 우주 낙원은 자그마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만들 수 있었다.
‘왔다.’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척추가 바짝 섰다.
단번에 적의 강대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드낙은 가벼운 마음으로 거기에 접근할 생각은 가지지 않았다.
내가 상대를 본다면, 상대 또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 법칙을 잘 알았다.
지금은 모습을 숨기고, 최적의 때. 최대한의 정보를 취득해야 했다.
발정한 개처럼 헐레벌떡 달려들어서 성기를 집어넣는 천박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드낙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파동으로 목적지로 이동한 드낙이 중얼거렸다.
“뿔쥐 정보원은 나와라.”
이에 그림자가 일렁거리며 피숨결 검은 뿔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하늘. 그곳에 차원 전쟁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히 움직여라. 놈들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뿔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물론 드낙을 칭송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뜨낙.”
이를 알린 드낙은 눈대중을 하기 시작했다. 팔과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검은 그림자의 크기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가늠이 안 되는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리도, 크기도 알지 못해서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신제국의 하늘에 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드낙이 파동으로 변했다.
세상을 속였다.
단번에 세파리아스의 뒤를 잡았다.
솨아아악!
영향무력(影響武力)에 의하여 세상이 검에 베인 것처럼 쩍 갈라졌다. 드낙은 그의 뒤에서 다시 앞에 15m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윽.
드낙의 볼에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한 방울 송골 맺혔다.
주륵.
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걸 드낙이 손으로 대충 닦았다. 실선은 순식간에 치유되지는 않았다. 세파리아스의 영향무력은 그런 것이다.
파아앗!
신성력을 뿜어내어 영향무력이 지닌 <초월의 힘>을 제거하고 나서야 볼에 난 작은 실선이 치유되었다.
“왜 이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졌어?”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검지를 들어 올려 보이지 않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드낙이 웃었다.
“봤냐?”
“아니. 느꼈다. 벌레치고는 큰 움직임이더군.”
오만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하하...미친놈...!”
드낙이 웃으면서 그를 욕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지 모르는데도 ‘벌레’라고 적들을 칭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파리아스는 전혀 웃지 않았다.
“덩치가 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건 가슴속에 새겨진 신념이다. 그것이 모든 결과를 바꾼다.”
“그래 봤자 죽는 사람이 나온다는 건 변함없어.”
승리를 확신하는 세파리아스의 모습에 드낙은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먼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적’의 수준은 너무나도 높아 보였다.
‘우주 항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대기권 밖에서 타격 당한다면 드낙과 세파리아스. 그 둘 정도만 추려서 자살공격을 감행해야 한다.
손에 땀이 찼다.
그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적의 전력을 느끼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하나는 확실했다.
‘까딱 잘못하면 큰 피해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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