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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자치왕국의 관리들이 말하였다.
“허나,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차원 전쟁에서 공을 논하여야하는데...이런 곳에서 황금을 탐하고, 은을 움켜쥔다면 큰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차원전쟁이 바짝 다가왔다. 이계인들은 후퇴준비를 마치고, 숯숯 마을에서 재산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을 모아놓은 상태였다. 정말로 바짝 다가왔다는 게 체감되어있었고, 몇몇 이들은 불안감에 잠을 설쳤다.
그런 상황에서 황금을 탐한다면 비웃음당할 것이다. 그리고 자치왕국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전략물자이며, 힘이었다. 돈 앞에 동원되는 병사는 썩 필요하지 않았다. 전신갑주에 무장해야지 적의 총을 막아낼 수 있었다.
굳이 그들의 총기를 훔칠 필요도 없었다.
드낙이 판단해줘서였다. 실탄과 마법탄을 연사 가능한 그들의 총은 진실로 우월했다. 총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충격량을 주기에 마력탄은 화력 조절을 위해서 필요했으며, 탄알을 아끼는데도 큰 도움을 줬다.
완벽한 총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엘프의 전신갑주와 아스톨포 왕자의 전신갑주의 분배를 두고 안 싸울 수가 없었다. 누구든 하나를 양보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아쉽다.
“전투마와 교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1천 필에 1벌이 가치를 봤을 때 적당하다고 생각하오.”
결국 신제국이 양보하는 모습을 가졌다. 그들은 최대한 많은 전신갑주를 가지고 가야 했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전신갑주가 절실했다. 마력을 따로 공수해서 충전해야 했지만 그래도 필요했다.
“기병이라...”
자치왕국의 관리들이 숙덕거렸다. 확실히 먹음직스러운 전략물자였다. 보급에도 쓰일 수 있었고, 여차하면 식량으로 쓰기도 좋았다. 또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바람 귀공자 풀세트에 짐승의 피를 먹여서 그 힘을 회복시킬 수도 있었다.
모든 곳에 철로와 넓은 도로가 있는 게 아니었기에 다종족 연합의 보급 체계는 아직도 현대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총인구수에 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병사의 숫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세시대에 최대에 끌어모아도 1%를 넘기면 파국으로 치닫는다.
다행스럽게도 이 유사 중세 세계는 3%는 그나마 가능했다. 드낙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직 신제국과 자치왕국에 해당하는 소리였다.
인간은 간사하여서 보급에 관여하는 이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부패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황금을 보고 그냥 지나가라는 소리와 다름없었으니까. 집에 뗄 장작조차도 다 징발해갔을 때, 잘 알던 사람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 때, 보급관이 이를 무시하고 그냥 전쟁터로 보급을 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 벌써 식량 비축에 들어갔지만, 차원전쟁이 1년만 유지되어도 신제국과 자치왕국의 전투력은 급감할 것이며, 공세를 포기하고 수비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혹은 병력의 숫자를 절반 이하로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그만큼 군대의 모든 것은 보급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두고 신제국이 아주 큰 양보를 한 것이다. 말은 보급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투마라면 유사시에 짐말로도 쓰기 좋았고, 고기도 많이 나올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거래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치왕국의 관리들이 크게 호응하며 속닥거렸다.
“아직은 지켜봐야지. 너무 쉽게 협약이 끝나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 한다. 이건 전쟁이다.”
가장 연배가 있는 관리가 바짝 기운을 높였다. 당장 그 떡밥을 물지 않았다. 신제국이 그렇게 나오자, 자치왕국 또한 전신갑주의 값을 더 올리기로 했다. 상대의 전략물자를 더 가져오기 위한 술책이었다.
물론 그들 또한 전신갑주가 필요한 건 매한가지였다.
상위인간(上位人間)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전신갑주와 죽이 잘 맞았다.
“현실적으로 봅시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신제국의 기사는 1만이지요. 종자가 있다지만, 무시하겠소. 그렇게 나오면 자치왕국 또한 종자를 들이밀면 되는데, 어떻소?”
“받아들이겠소.”
그 말에 신제국 또한 수긍하였다. 이를 함께 배제하는 건 매우 생산적인 일이 분명해서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부정한다면...’
신제국 관리의 눈이 게제라스 총리에게로 향했다. 이 협약을 생산적이게 끝내도록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 게 그였다.
‘수틀리면 반마반신이 이 협약을 주관하게 된다.’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실제로도 부인들과 자식과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이 세계에서 놀 거리는 그 정도뿐이다. 하지만 종종 영향력 있는 일을 하며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를 재확인하며 즐기는 모습이 틈틈이 크게 빵빵 터진다.
이를 경계해야 했다.
“신제국은 1만! 자치왕국은 10만! 누가 더 많은 전신갑주를 가져가야 하는지는 응당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소. 그렇기에 자치왕국은 10만의 레서 블루 드래곤 전신갑주 중 9만 개를 가져가고 신제국에게 1만 개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보오.”
“기사 전력으로만 본다면 그렇겠지만 그렇다면 양적 증가가 다르게 나타나오. 자치왕국은 신제국보다 더 많이 가져가는 전신갑주 8만 개 분량에 대한 대가를 제시해야 하오.”
“그건 이 협약과는 관련이 없소. 이 협약은 전신갑주를 분배하는 협약이 아니오?”
관리들이 게제라스 총리에게 눈을 가져갔다.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련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100%라고는 할 수 없기에 50%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너무 적소이다!”
“너무 많소이다!”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조금만 더 차이가 나도 국력의 소비가 달라진다. 자신들의 세 치 혓바닥에 나라의 이득과 손해가 결정되는 일이었다.
특히 세파리아스 불파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관리들은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처럼 열정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기세에 자치왕국의 관리가 절로 위축되었다.
신제국의 황제에게 직접 선택을 받아서 이 협정에 섰다. 그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반드시 성과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게제라스 총리가 결정을 내렸다.
‘패배했으면 어쩔 수 없지.’
마음 같아서는 50%로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치왕국 쪽에서 더 할 말이 없다면 70%로 결정하겠습니다.”
“으음...!”
패배감이 그들에게 서렸다. 하지만 행패를 부리고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 강대국은 없었다. 또 기사 전력과 전신갑주 면에서는 신제국의 수준이 낮은 것도 한 몫 했다.
그 속에는 뿔쥐들의 간악한 음모가 숨어있었다. 은근히 지하 연합이 자치왕국이 빠르게 성장하도록 도운 반면, 신제국은 잘 도와주지 않았다.
건방진 신제국의 황제가 드낙과 맞먹으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대단히 큰 신성모독이었다. 그저 드낙이 세파리아스를 죽이는 걸 원치 않았기에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덕을 이번에 신제국이 봤다.
“장작은 어떻습니까.”
자치왕국의 관리가 저자세로 나왔다. 물론 입에 담은 것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농업 골렘 덕분에 나무가 싹 쓸이 당해서 차고 넘치지 않소. 차라리 말이나 소를 주셨으면 하오.”
“허어!”
신제국 관리의 말에 자치왕국의 관리들이 탄식했다.
건방져도 너무 건방졌다. 식량 비축의 시기에 식량을 달라고 하다니, 해도 너무했다. 특히 30만에 달하는 군대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어서였다.
“식량을 준다면, 신제국은 레서 블루 드래곤 전신갑주를 9만 벌 자치왕국에 줄 생각이 있소. 물론 하나의 조건이 있소.”
“정말이오? 어떤 조건이오?”
갑자기 이야기가 급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신제국이 원하는 바였다. 그들은 자치왕국과는 다르게 50만에 달하는 군대를 일으켜야 했다. 당연히 무지막지한 식량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보급 효율성 때문이다.
단 한 번에 수천 톤을 옮길 수 없어서 생기는 보급 효율성을 막으려면 식량의 물량공세로 해결해야 했다. 그렇기에 무식하게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신제국을 작정하고 방해할 생각이 없는 자치왕국 입장에서는 서로 윈윈이다.
“그 조건은 바람 귀공자 풀세트를 전량 신제국이 받아야 할 것이며, 자치왕국에서 생산되는 전신갑주를 보급받고 싶소. 물론 자치왕국 전신갑주에 대한 대가는 돈으로 지급하겠소.”
“흠...”
앓는 소리를 냈지만, 당연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치왕국은 양질의 전신갑주를 받아 챙겨서 기사들을 대부분 강화시킬 수 있고, 신제국은 오로지 양적 전신갑주 정책을 통해서 일반 병사까지 제대로 전신갑주로 무장시킬 생각이었다.
신제국에서도 전신갑주가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스톨포 왕자의 압도적인 전신갑주 생산력. 자치왕국의 전신갑주 제작까지 합친다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신제국에 있는 엘프 인력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들로부터 제작되는 레서 블루 드래곤 전신갑주 또한 보내주도록 하겠소. 다만, 자치왕국 전신갑주는 반드시 돈으로만 거래하셔야 하오. 가격도 합당한 가격에 넘기고 싶소.”
웅성거림이 커졌다. 두 곳의 표정 모두 심각함을 유지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협약서가 만들어졌다. 게제라스 총리의 손으로 직접 쓰였다.
신제국은 식량을 얻었고, 엘프 전신갑주보다 질이 좋지 않지만, 압도적인 양을 확보했다.
자치왕국은 월등히 좋은 엘프 전신갑주를 확보했고, 상위인간의 숫자만큼 그 화력은 대단히 높아질 터였다. 반대로 식량이 외부로 빠져나갔고, 군대를 더 많이 일으킬 수는 없었다.
허나, 돈을 통해서 지하 연합과 거래를 할 생각을 가졌다. 벌레를 뽀얗게 가루를 낸 간단한 식량만 구매해도 얼추 버틸 수 있다고 여겼다.
이를 지켜보는 아스톨포 왕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뜻깊은 일이었다.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신제국은 내가 갈 곳이 못되는군.’
가장 먼저 신제국에 대한 판단을 마쳤다. 저 인간들의 눈에 담겨있는 신념만 봐도 깨달을 수 있었다.
상위인간으로 향하며 우월해지는 자치왕국을 보고도 질투심 하나 없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고 있었고, 확실한 비전이 있어 보였다. 거기에는 그 어떤 의심도 없다.
‘빨리 내 세력을 만들었다면, 크게 활약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 또한 생겼다. 지금 아스톨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른 세력을 도와주는 일뿐이었다. 이를 통해서 공을 세우는 게 전부다. 차원전쟁이 일어나도 어느 한쪽에 서서 용병으로 활약할 수 있을 뿐이다.
‘신제국이 내 힘을 툭 튀어나오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거부할 공산이 크다.’
결국 아스톨포 왕자는 자치왕국의 편에 서기로 했다. 그가 만든 전신갑주는 허용하면서 그의 존재는 거부하는 신제국은 실로 인간다웠다.
*
<환희(歡喜)와 자유(自由)의 신(神) 엘레우테리오(Eleuterio)>.
<우주 낙원(Cosmos Paradise)>.
4성 지배자(Overlord)에 속하는 두 명의 왕이 서로 함께 걸어나갔다. 이들은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장창을 어깨에 척 걸치고 있었다. 그 창의 길이는 3m에 이르렀음에도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쌍창왕(雙槍王)이라고 불릴 정도로 창을 잘 다루는 오버로드가 이 두 명의 왕이었다.
청기사왕(Blue Knight king)과 적기사왕(Red Knight king)이 가는 목적지는 한 곳이었다.
“또 날 따라하는거냐.”
“너야말로, 자꾸 나와 동선이 겹치는구나.”
“건방진...”
복장의 색이 달랐지만, 쌍둥이처럼 보이는 두 명이 티격태격했다. 이들이 우주 낙원에 배치된 연병장 중 한 곳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맡아지는 짐승 냄새는 코를 찌를 정도로 역했다.
“크어어어!”
그 두 명을 보자마자 곳곳에서 짐승 소리가 들려오며 잔뜩 모여들었다.
식수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나오는 생선들을 먹던 곰들이 빠르게 다가와서 그들에게 애교를 부렸다. 두툼한 살과 만져지는 두꺼운 가죽이 덜렁거렸다.
웬만해서는 가죽조차 뚫기 어려울 터였다.
우주 낙원은 총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대단히 보급되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인조생명체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고, 식민지에 노획될 수 있어서 오직 용병 지구인(Mercenary Earthman)에게만 지급되었다.
그만큼 총기는 무서운 무기였다.
3성 정예에 속하는 <끈질긴 곰(Tenacious bear)>은 등에 등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딱 봐도 기병으로 쓸려고 만들어낸 인조생명체였다.
‘괜히 3성이 아니지.’
오버로드 2명이 미소를 지었다. 곰은 기병으로 쓰기 힘들다. 그래서 쓰는 이들이 없다. 하지만 그 편견을 통해서 기만술을 펼칠 수 있는게 끈질긴 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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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끈질긴 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