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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대신육체(大神肉體).
엄지발가락에 화염포를 쏘도록 변형시킨 드낙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지.’
중립신이 만약 이것을 봤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터였다. 드낙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초극(戰超克)의 권능>이 전신(全身)에 부여된 대신육체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나 정신체인 신들의 입장에서는 대신육체는 자신들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완벽한 형태의 추가 형질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지금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이 과정을 봤다면 중립신은 통곡을 하였을 것이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중립신이 오열할 정도로 드낙은 대신육체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멋이 난다는 이유로 발가락에 화염포를 장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근데, 끈질긴 놈이네.”
드낙이 짐짓 괘씸한 표정을 지었다. 시건방져도 너무 시건방졌다. 분명 다 처리했다고 여겨진 전초극의 권능이 스멀스멀 올라와서였다.
‘대신육체와 전초극 권능의 유착 관계는 정경유착만큼 떼려야 뗄 수가 없네!’
선거에는 돈이 들고 돈은 법을 만지고 싶기 마련이다. 이처럼 대신육체와 전초극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전초극의 권능을 지워도 다시 생성되는 이유가 대신육체가 살아있어서였다.
‘일심동체라는 건가. 건방진...’
그렇게 말하면서도 드낙은 감탄했다. 솔직히 악마라도 이 정도의 육체는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즉, 강제로 세파리아스를 대머리로 만들었는데, 세파리아스가 살아있다면 계속해서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셈이다.
‘근본 자체를 변형시켜야 한다.’
드낙이 손을 하루살이처럼 싹싹 비볐다. 중립신이 만든 걸작품을 자신의 입맛대로 변형시키는 일은 실로 상쾌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놈에게 한 방을 크게 먹이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악마의 힘을 사용해야 하겠는데?’
꿀꺽!
드낙이 군침을 삼켰다. 실로 재밌어 보였다. 물론 악마의 힘 중에서도 ‘업(業)’은 사용하면 안 된다. 그저 반마라는 종족이 가진 힘인 피의 형질과 마력과 주력 등을 소모해서 최대한 회복 가능하며, 소모해도 상관없는 힘들을 사용해야 했다.
‘아쉽긴 아쉽다. 업을 사용하면 그냥 한 방인데.’
전초극의 권능과 대신육체 모두 대신이었던 중립신이 제작한 것들이다. 한 차원 높은 자원인 업을 사용한 것이었기에 드낙이 하는 작업은 다소 한 차원이 낮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필멸자 시절 때부터 중립신이 가공한 능력들을 접한 드낙은 ‘업의 스페셜리스트’나 다름없었고, 고려청자를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신(半神)임에도 드낙이 권능을 만들고, 업을 다양하게 소모할 줄 아는 것은 모두 대신(大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많은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또한 중립신의 안배였다.
업을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완전한 초월자에 들어서는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크, 크으으으윽!”
드낙이 온몸을 비틀었다. 당장에라도 업을 소모해서 척척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담배를 참는 사람처럼 굴었다.
겨우 진정한 드낙이 일단 자신의 피를 쏟아냈다. 대신육체를 흠뻑 젖게 만들었다. 피는 대신육체에 빠르게 흡수되면서 덩치를 키웠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전초극의 권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전초극의 권능을 노리는 건 잘못된 공략 방식이었다. 대신육체가 계속 존재하면 전초극의 권능은 계속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런 설계도로 만들어진 게 대신육체였다. 이를 전초극의 권능을 한 번 제거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드낙이다.
‘중립신은 진짜 음흉한 새끼네.’
대신육체를 노획했어도 이를 사용하려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실로 중립신다운 수작질이 스며 들어가 있었다. 빼앗겨도 당장은 못 쓰게 만들고,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다.
대신육체가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반마의 피가 흡수되면서 자연스럽게 덩치가 커졌다. 중립신이 설계한 육체답게 포텐셜이 대단했다.
“이야,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다고?”
드낙이 감탄했다. 점점 커지는 대신육체를 바라보았다.
‘오늘 반마의 피는 여기까지.’
오늘 사용할 수 있는, 반마로서 지닌 피를 모두 소모했기에 더는 피를 줄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줘서 대신육체를 한계치까지 올려볼 생각을 가졌다.
<덩치 증가>는 꼭 필요했다. 서서히 대신육체를 완벽하게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악마의 힘이 필요했고, 이 악마의 힘이라는 것은 <육체>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덩치가 증가할수록 드낙이 대신육체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전초극의 권능이 스멀스멀 올라와도 모든 몸에 적용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드낙이 대신육체의 두툼하고 거대하기 짝이 없는 엄지 발가락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후후...’
<발가락 화포> 생각만 해도 엄청난 위력을 자랑할 것이다.
‘마법이란 편리한 수단이지.’
총은 직사화기. 활은 곡사화기. 그리고 마법은 약간의 유도 기능이 탑재되어있었다. 드낙이 그렇게까지 마법을 신봉하게 된 까닭은 자-주포에 있었다.
‘무슨 포가 바다 아래에 있는 놈까지 요격이 가능해?’
정말 범용성 하나는 미친 수준이다. 그렇기에 대신육체를 보자마자 화염구를 쏘는 화포부터 달 생각을 가졌다. 손가락이 제외된 이유는 무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발가락 10개. 거기에 모두 화염구를 쏘는 마법 화포를 장착한다.’
10개의 사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구의 향연! 분명 큰 화력을 자랑할 터였다. 모양새는 좀 이상할 수 있었지만, 하늘을 수놓는 화염구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가 있다면 되려 칭찬해줘야 했다.
물론 오늘 더 만들 수는 없었다. 마력을 모조리 사용해버려서였다.
‘주력도 써먹어야 하는데, 어떤 걸 집어넣을까?’
드낙이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일단은 차근차근 진행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단 하나. 이번 차원전쟁에 대신육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 삼일.
반마의 피를 쏟아부으며 흡수당한 대신육체는 덩치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초극의 권능을 압박하고 지워나갔다. 뿌리가 변형되자 전초극의 권능 회복 속도도 느려지고, 서서히 위축되어갔다.
발가락 화포는 하루에 1개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이런 빌어 처먹을, 중립신 개새끼가 진짜!’
드낙이 중간 발가락에 용을 쓰다가 중립신을 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발가락마다 미묘하게 다 달랐다. 그래서 똑같은 방법으로 발가락 화포를 부여할 수가 없었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해석을 하고, 조금 다른 발가락의 <그릇>을 이해하고 그다음에 발가락 화포를 부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반마의 피도 소모해야 했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인조적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릇 자체가 부위마다 난해했다. 그렇기에 새로 그릇을 재조정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거기에 적응해서 만들어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번거로울 뿐이고, 특별히 그릇이 작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차근차근 드낙은 일을 진행하면서 어떤 주술을 부여할지도 생각해냈다.
‘방어지. 방어.’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딴딴한 게 최고였다. 또 자연의 주력은 보호와 회복에 효율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물리력 방어가 탁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무와 바위.’
드낙이 바퀴벌레처럼 대신 육체를 타고 오르며 이곳저곳 만지고 쑤시고 다녔다. 중립신이 이리저리 뒤엉켜놓은 그릇도 제자리로 만들어야 할 듯싶었다.
<초월의 힘>을 다루는데 도가 튼 중립신의 <그릇 변형>이 적용된 대신육체를 변형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처음 건드릴 때와는 다르게 서서히 문제가 계속 생기는구나.’
중립신의 무서움이었다. 바로 손절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도를 딱 시작하면 문제가 툭툭 튀어나왔다. 실로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지...! 가즈아아아아!!!’
드낙이 고관절에 뒤엉켜있는 그릇을 바로 폈다. 그것만 하고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 곳곳을 주물주물 만지다가 이내 등판에 있는 2개의 날개뼈에 집중했다.
‘여기다가 주술을 부여하자.’
한쪽 날개뼈에는 <나뭇가지 방벽(Branch Barrier)> 나머지 날개뼈에는 <자갈 방벽(Gravel Barrier)>을 부여할 생각을 가졌다.
나뭇가지 방벽은 나뭇가지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며 보호를 해주는 주술이었다. 반면 자갈 방벽은 공격겸 방어였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자갈들을 통해서 투사체를 막는 주술이었다.
드낙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가기 시작했다. 깊게 집중했고, 이렇게 집중하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차근차근.’
여러 개씩! 한꺼번에!
악마의 피, 마법과 주술 그리고 초월의 힘이 담기는 그릇 변형까지.
*
블러디 샵.
국제 연합 도시에서 만들어진 이 가게는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고 있었다. 외모, 매력에 대한 아티팩트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주효했다.
이를 따라 하려는 민간 마법사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반마가 만드는 제품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우습고, 효율성 문제 때문에 생산량도 달랐다.
아스톨포는 인간의 피를 사용하지 않고, 짐승과 가축의 피를 이용해서 다양한 아티팩트를 생성하고 있었다.
자신의 체내에 들여보내는 피는 인간의 피가 가장 좋지만, 물품에 들어가는 피에 굳이 인간의 피를 쓸 이유는 없었다.
‘물량을 생각한다면 짐승의 피가 제격이지.’
그 덕에 가축을 도축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추가적인 부수입을 우연히 받아먹어서 웃음꽃이 피었다. 닭, 돼지, 소 등의 피가 돈이 된다니 하루에도 몇 마리나 도축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었다.
드낙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종족 연합의 경제 구조는 사람들을 세속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종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연봉 5억 목사가 현대에 심심찮게 존재하는 것처럼 돈에 절어서 돈냄새가 풀풀 풍이는 종교인이 나타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러나저러나 싸워도 자원을 베푸는 방식에 따라서 싸우는 신전이다.
그런 이들에 타락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었다. 물론 도축업자들의 세속화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짐승 피 묻히는 일이라도 돈만 잘 벌면 장땡이다. 정부에 의해서 월급과 함께 일정 숫자 이상을 도축하면 추가금도 쥐여준다.
거기에 아스톨포 왕자 덕분에 피까지 팔고 있었다. 가장 세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게 도축업자들이었다.
구리로 된 큰 통에 잔뜩 담긴 가축의 피를 적당히 덜어내어 온갖 잡광석 및 폐기 처분당한 고물들을 손질한 것에 부었다.
부글부글!
피가 끓어오르면서 금속이 녹고, 서서히 피의 양이 줄어들더니 이내 바닥을 보였다. 남은 것은 깔끔한 디자인을 지녀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 달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브로치가 완성됐다.
그곳에 도금 혹은 은이나 구리를 바르거나 염료를 바르면 끝이다.
<적정 온도의 블러드 브로치>
그 외에도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매끈한 블러드 스톤>도 만들었다. 완벽한 정화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 물품은 국제 연합 도시에 책정될 정도로 중요한 산업 물품이었다.
수질이 낮은 물을 받아마시는 가축들을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어서였다.
단가가 다른 아티팩트에 비해서 싼 것도 의미심장했다.
다양한 곳에서 돈을 빨아들이며 아스톨포 샤를로트 왕자는 서서히 재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은 당연히 옵시디안 가문이었다.
레오니아 옵시디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스톨포의 입술을 탐했다. 이제는 그녀가 되려 피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스톨포에게서 레오니아에게 피가 스며들었다.
“읍...꿀꺽! 꿀꺽!”
상위종(上位種)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본능적으로 갈구하게 되는 종류의 힘이었다.
엘프들이 타락 엘프 내지는 디아볼로스가 되는 과정 자체만 보면 쾌락에 몸서리칠 정도다. 그 뒤에 업을 다른 놈에게 소매 넣기를 했지, 상위종이 된다는 것 자체는 좋아했다.
그녀는 8번 만에 뱀파이어가 되었다.
보름이 채 지나기 전에 옵시디안의 가주와 그 부인도 흡혈귀가 되고자 했다. 생각외로 좋은 점 투성이다. 힘을 사용하지 않을 거면 굳이 피를 마실 필요도 없었고, 뱀파이어가 됨으로써 피에 대한 거부감도 말끔히 사라졌다.
흡혈충동 같은 저열한 충동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그런 단점이 있다면 인간의 상위종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간보다 열등한 종이었다.
‘물론 그런 흡혈귀도 존재하지.’
<밤의 귀족>이라 불린 샤를로트 가문이 아닌 저열한 흡혈귀 가문이 그러했다. 같은 종족이라도 그 형질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인간이라도 형질과 기질이 다른 것과 같았다.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 Lactose Intolerance)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사람, 못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나뉘는 것처럼 인간도 같아 보이지만 굉장히 기질이 달랐다.
엘프처럼 <고정>되어있는 종족이 아니라면 그 변형은 다채롭고, 불규칙적이다.
어찌 되었건 샤를로트 가문의 혈족이 된다는 것은 명실상부한 인간의 상위종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다.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먼저 하실 겁니까?”
그 말에 가주, 네스토르 옵시디안이 매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부인이 뱀파이어가 된다면, 부인이 날 흡혈귀로 만들 수 있습니까?”
“예. 가능은 하지만 당장에는 불가능할 겁니다. 자신의 피에 대한 제어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으, 으음...그래도 그렇게 해줬으면 합니다만...”
이에 아스톨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입니까?”
“그게 좀 모양새가 그렇지 않겠나. 남자와 남자가 입을 맞추다니...”
“아하...”
아스톨포가 이해했다. 즉, 이 남자는 자신에게서 성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 그게 옳지 않다고 여기고 거북 해하고 있었다. 아스톨포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인(美人)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도 잘 생기면 남자 새끼들이 하루살이처럼 들끓는다. 그냥 추남과 있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자신이 인싸가 되는 기분! 그게 잘 생기고 예쁜 미인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모두 이를 물어보면면 고개를 젓고 부정하겠지만, 행동은 솔직하고 본능적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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