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51화 (950/1,239)

<-- 951 -->

판타지 월드

옵시디안(obsidian) 가문이 사는 대저택에 아스톨포 샤를로트가 선물을 들고, 레오니아와 함께 들어갔다. 대체로 약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매우 클래식했다.

“신기하네요. 성벽 같네요.”

“눈썰미가 있으시네요. 전부 돌을 썼어요. 큰 돌을 구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죠. 저희 가문의 자랑이에요.”

그들의 대저택은 전체적으로 돌을 썼고, 밋밋함을 지우기 위해서 정원을 제법 화사하게 꾸며놓았다. 겨울이 되면 삭막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봄에는 확 튈 것이다.

아스톨포 왕자를 마중 나온 이가 고개를 숙였다. 신기하게도 크놀 고용인이었다.

“크놀은 대장장이로 유명한 것이 아닙니까?”

“그는 고용인이기도 하지만, 저희 대저택의 집사이며 건축가입니다. 지하 연합에서 종종 오퍼를 받기도 하는 유능한 인재지요.”

“오, 대단한 인재를 발굴하셨군요.”

그와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탁에 앉았다. 식탁의 형태만 봐도 이 집안이 평등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가주의 힘이 강하면 상석이 돋보이는 길쭉한 식탁을 놓기 마련이다. 자주 가주가 발언하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다. 대저택의 식사 공간 또한 대단히 넓기도 해서 그게 또 잘 어울리기도 했다.

허나 옵시디안 가문의 식탁은 원탁이었다. 원탁회의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는데, 일단 의자마저 자신 입맛대로 꾸며놓았다.

손님 의자에는 간단한 붉은 천만이 덮여 있었다.

레오니아 옵시디안의 의자는 차분했지만. 쿠션이 많았다. 푹신푹신한 걸 좋아하는 듯했다.

“반갑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가주인 네스토르 옵시디안(Nestor obsidian)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부인인 둘시네아 옵시디안(Dulcinea obsidian)입니다.”

“반가워요.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어요. 일부러 찾아본 것도 있고요.”

“다른 가문원은 없습니까?”

아스톨포가 직접적이고 민감한 문제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기분 나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있지만, 신제국이나 자치왕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주의 힘이 대단치 않았으므로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혈족을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풍 자체가 자유로웠다. 어디서든 옵시디안 가문의 먹칠만 안 하면 괜찮다고 여겼다.

아스톨포가 눈짓하자 레오니아가 선물을 꺼냈다. 블러드 샵의 물품들이었다.

“이거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브로치입니다. 또 이것은 향기로운 체취를 만들어내는 향수고, 이 가루는 흰옷에 묻은 걸 말끔하게 지워줍니다.”

대부분이 아름다움을 꾸미는 물품들이었다. 기존에 준비했던 것보다 많이 챙겨줬다.

레오니아와 몇 번 만남을 가지면서 옵시디안 가문이야말로 뱀파이어가 되기 좋아 보여서였다. 먼저 차분하면서도 평등한 구조 덕분에 의사결정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평등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의사결정이 바뀔 수 있고, 남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결정을 집어넣는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아스톨포가 제법 힘을 썼다.

“오오!”

그들 모두가 좋아했다. 특히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만드는 수액을 딱 발랐을 때는 감탄이 연거푸 쏟아져나왔다.

“특히 여기 목을 보시면, 결코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에 자주 발라주시고, 목욕을 끝내고 날 때마다 전신에...”

아스톨포가 능숙하게 그들에게 다양한 설명을 해줬다. 이렇게 남을 가르치는 행위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었다.

그 과정 끝에 식사하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스톨포 샤를로트는 티타임에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이에 네스토르 옵시디안 가주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보시다시피 제법 신중한 가문입니다. 큰 명예를 좇지도 않고, 최대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가문입니다.”

흑황제의 마수로부터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재건된 곳에 중산층으로 들어섰으며, 쟁여놓은 황금을 통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 준비성은 치밀하다.

가주의 말을 아스톨포가 받았다.

“그렇기에 제가 찾아온 것입니다. 흡혈귀가 된다면 더 많은 아티팩트를 가볍게 생산하며, 일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혹자는 불멸자가 필멸자를 부러워한다고 말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소리입니다.”

매일 커피만 마셔도 기분 좋은 하루다.

그저 친구만 만나도 밤이 외롭지 않다.

인생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5일을 일하고 2일을 쉬어도 나쁘지 않은 인생이며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삶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유혹이었다.

“국제 연합 도시에서 일하시기에 디아볼로스와 타락 엘프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흡혈귀는 그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아스톨포 왕자는 또한 비교 대상을 쑥 집어넣었다.

“흡혈귀....뱀파이어...우리는 많은 것을 레오니아와 대화를 통해서 나누었으나, 그대의 말이 진실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에 하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의심입니다.”

아스톨포 샤를로트가 부드럽게 대꾸했다.

“이에 저희들은 레오니아만 뱀파이어가 되어서 느끼는 바를 기록하여 3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에 뱀파이어가 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아스톨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이만큼 신중한 가문만이 아스톨포의 피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럼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걸 준비하지도 않고, 바로 뱀파이어가 됩니까?”

“필요한 건 결국에 피입니다. 제 피를 받아마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스톨포가 일어서서 레오니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레오니아가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뱀파이어가 되려면 키스를 나눠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아! 그렇다면 나는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아버지만 도망치듯이 물러가고, 엄마인 둘시네아만 관전했다. 레오니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스톨포의 손이 가볍게 그녀의 턱에 접은 검지를 올려서 적당한 각도를 만들고 그대로 입술이 포개졌다.

아스톨포는 짐승처럼 그녀의 입술을 탐닉하더니 이내 피가 천천히 그녀에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 냄새.’

레오니가 가장 먼저 맡은 피 냄새는 철 냄새였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피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향기로웠다.

꿀꺽!

피의 양은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그 빈도수는 줄어들었다. 1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키스 행위는 이어졌다. 그동안 레오니아는 계속해서 아스톨포가 전해주는 피를 마셔야 했다.

거북함은 올라오지 않았고, 오히려 레오니아는 피가 오자마자 바로 마시며 혀로 아스톨포의 입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피를 핥았다.

정신없는 행위 끝에 아스톨포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하아!”

레오니아가 탄식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깊은 탈력감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마라톤을 끝낸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를 의자에 가볍게 앉히고 아스톨포의 눈물로 젖은 눈동자가 둘시네아와 마주쳤다.

긴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

그녀가 자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지나칠 정도로 야한 남자였다. 눈물을 닦은 아스톨포가 입을 열었다.

“끝났습니다. 가주님을 불러오세요.”

“아, 예...”

부인이 서둘러 나갔다.

아스톨포도 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줄이 크게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이내 진정되었다.

흡혈귀는 인간의 상위종이며, 감히 엘프와도 비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런 뱀파이어를 탄생시키는 일은 반마의 격에 들어선 아스톨포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이걸로 전 뱀파이어가 된 거에요?”

기운 빠진 목소리에 성취감이 깃들어있었으나, 아스톨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앞으로 몇 번을 더 해야 할지 몰라요. 사람마다 뱀파이어가 되는데 필요한 횟수가 다르거든요.”

“네에?”

레오니아가 깜짝 놀랐다. 그 모습에 아스톨포가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죠. 하루 만에 뱀파이어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보통, 몇 번을 더하나요?”

“한 번에 되는 사람도 있고, 10번 해야 하는 사람도 있죠. 평균은 5번?”

그 말에 레오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탈력감은 정말이지 끔찍한 기분을 선사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오히려 그때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싫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미녀와 키스하는 남자처럼, 미남과 키스하는 여자가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만국공통으로 인간은 미인(美人)에게 열광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잘생긴 놈에게 사람이 득실거리기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조차도 유명한 철학자가 되려면 잘생겨야 했다.

아스톨포는 능숙하게 옵시디안 가문을 뱀파이어 가문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변질>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흡혈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위종이며, 진화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종족변질이라 말할 수 있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천지 차이였다. 그리고 적어도 진실한 인간에게 있어서 이는 변질에 가까웠다.

옵시디안에 혈족을 하나 만든 아스톨포는 국제 연합 도시의 내성에 마련된 메시지 마법이 관통하고 있는 탑에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용인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거물.’

메시지 마법은 초월의 힘이 제법 들어가는 마법이었고, 거리가 멀수록 소모는 더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곳에 외부인이 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인물이라는 뜻이다.

“수고하십니다.”

아스톨포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곧 마법진이 가동된 곳 중 한 곳에 섰다. 그곳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반갑다. 아스톨포 샤를로트 왕자. 나는 세리안 공왕이다.”

“자치왕국의 네 명의 사자 중 한 분이신 세리안 공왕님을 뵙습니다. 아스톨포 샤를로트라고 합니다.”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세리안이 기가 찼다.

“오지 않겠다고 말한 것치고는 태도가 조심스럽구나!”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그저 오라고 말하는데 어찌 제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자치왕국의 일원이 아닌 지하 연합이라는 외부인을 사용해서 저에게 다가왔는데, 제가 그 대우를 받고 어찌 예의를 차리겠습니까?”

그 말에 세리안 공왕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먼저 무례를 범한 것은 자치왕국의 세리안 공왕이다. 세력 하나 없는 아스톨포 왕자를 가볍게 봤다.

결국, 단추를 제대로 꿰매기 위해서 세리안 공왕이 아스톨포 왕자에게 사과했다.

“무례를 범한 것은 오히려 나로구나. 미안하다.”

“사과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공왕님께 무례를 범하고, 제안을 내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사과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받아들이겠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동원령 선포로 매우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세리안 공왕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실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드낙의 동원령 선포는 곳곳에서 수많은 문제와 다양한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현재 자치왕국에서 가장 핫이슈는 다름 아닌 탈주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말하기 전에 비밀을 지켜줬으면 하는데...괜찮겠나?”

세리안의 말에 아스톨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 말인즉슨, 이미 쉐도우 위스퍼 또한 입을 다물고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뒷돈을 물려서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 공개를 뒤로 늦춘 것이 틀림없었다.

구미가 확 당겼다.

“예. 괜찮습니다.”

세리안이 현재 자치왕국의 탈주 기사와 병사들에 대해 언급하며 본론을 뽑아 올렸다.

“놈들의 처우를 그대에게 맡기고 싶은데, 어떤가? 인간의 피가 필요하지 않나?”

“군법에 그게 됩니까?”

“적어도 기사와 병사들을 다루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 안 그런가? 대중들 또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아스톨포가 고민했다. 이해득실을 따져야 했다.

*

“으윽! 이익! 우욱! 씨입! 후웃! 홋!”

드낙이 몸을 비틀어대었다.

결국 대신육체의 큼지막한 엄지 발가락에서 손을 떼고 벌러덩 누워서는 땅에 대(大)자로 뻗었다.

“씨이벌, 소주 생각나게 하네.”

드낙이 눈을 감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퇴근길. 우산도 가져오지 않아서 옷이 젖은 날, 그 사르살살한 추위 속에서 차가운 막걸리와 뜨끈뜨끈해서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부추전을 간장에 듬뿍 찍어서 아주 짜게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부추전은 개발하라고 하면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드낙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현실도피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몸을 일으켜서 빌어먹을 엄지 손가락에 양손을 턱 얹었다.

그가 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발가락 화포>였다.

‘로봇하면 화력(火力)이지.’

발가락에서 화염구를 쏟아낼 수 있도록 대신육체를 변형하고 있었지만,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대신육체에 깃들어있는 전초극의 권능을 털어냈기 때문이다.

‘더는 멈출 수 없다.’

전재산을 1번 마(馬)에 건 도박사의 표정을 지었다.

=============================

[작품후기]

6095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