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46화 (94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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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호탕하게 소리치지는 드낙을 하프 드워프 중,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대범한 이가 하나도 없었다기보다는 드낙이 너무 커져 버린 것뿐이었다.

하찮은 필멸자가 감히, 전대륙을 지배하고 다종족 연합을 엮어 만든 존재를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 모른다지만, 알 거 다 알고 이런 자리에서 드낙과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은 드낙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도시국가 <캐논>조차도 한 줌에 사라질 수 있었다.

물론, 드낙은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렇게까지는 않겠지만 혹시 몰랐다. 만에 하나라는 드낙을 두고 있는 말이라고 할 정도였다.

“믿겠습니다!”

하프 드워프들이 드낙을 찬양했다. 드낙은 흡족해하며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하도록 마른 하늘에 천둥소리를 내며 벼락이 되어서 떨어졌다.

‘멋지기도 하지.’

척 보면 척. 종소리가 울리면 군침이 도는 개처럼 이제 마른 하늘에 천둥과 벼락만 떨어지면 그게 드낙이 온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하나의 현상이 자신의 등장씬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현실에서! 이것만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없었다. 스킨에서 나만 쓸 수 있는 스킨이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었다.

“반마반신이시여, 처음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고견을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괜찮고말고. 일단은 욕심이 그득한 신제국부터 친다. 그놈들, 분명히 어쭙잖은 소리를 해대면서 많이 달라고 꼬장을 부렸겠지?”

“전혀 아닙니다.”

하프 드워프의 말에도 드낙은 믿지 않았다. 신황제,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수완가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놈이었다. 한 손에는 명예를 쥐고 다른 손에는 이권을 쥔 모순된 존재가 이 세계의 귀족이었다.

이는 아스톨포의 귀족다움과도 반(反)하는 말이었다.

“그래? 뭐, 굳이 뿔쥐 정보원에게 이모저모를 들을 필요는 없겠지.”

드낙이 능글맞게 웃었다. 실로 한 대 패고 싶은 촐랑거리는 미소였다. 이를 보면서도 하프 드워프 관리들은 냉큼 고개를 숙였다. 도시국가라고해도 그 누구도 위원이 되지 못했고, 관리라는 직함을 게제라스 총리에게 받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숙여서 세력을 꾸준히 보존하고 때를 기다리라는 게제라스 총리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각자의 의견을 듣고 판단을 해주겠다.”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세파리아스를 만나러 향했다. 그 모습에 덩치가 큰 하프 드워프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우리 의견은 왜 안 듣고 가는 거지?’

황당할 노릇이었다.

“야! 야야! 자냐?”

쿵쿵, 쿵쿠루쿵쿠.

거칠게 큰 문을 두드렸다. 신제국의 황제답게 아주 큰 곳에서 지내고 있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아예 대저택 하나를 받았다. 그곳에 들어가서 세파리아스가 지내고 있을 법한 큰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

수행원으로 보이는 병사였다.

“오?”

드낙이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기세가 있는 병사였다. 다만, 몸은 평범하기 그지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세파리아스가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한 수>는 있는 놈 같았다.

“반마반신 님을 뵙습니다. 황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자 회의실이 크게 보였다. 천장 높이도 대단했다. 대저택의 오른쪽을 1층, 2층 구분 없이 하나로 통째로 합친 모습이었다.

‘역시 하프 드워프, 센스 있는 건축이다.’

세련미가 돋보였다. 내부에는 서류가 쌓여있고, 세파리아스가 심통이 난 채로 턱을 괸 채로 드낙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낙이 홀연히 사라지자 세파리아스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개새끼가 구분도 없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구나.’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드낙의 파동이동술을 통한 장난은 솔직히 말하면 그냥 화날 뿐이었다. 하는 사람만 재미났는데,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갑질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세파리아스가 가장 많이 당했다. 그나마 대응할 수 있어서였다.

“재미없게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

“대체 여기는 또 왜 온 것이냐?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것인가!”

방해할 것이 뻔하기에 세파리아스가 분노했다.

“야! 너도 직접 하프 드워프들한테 와놓고는 나는 오면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신제국에 화약은 반드시 많이 필요하기에 왔을 뿐이다. 근데 너는 그냥 온 것이지 않느냐.”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서 온 거지.”

세파리아스가 눈두덩이를 만졌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세력과 세력이 뒤엉킨 협약에 공평함은 존재하지 않았고, 공평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공정할 뿐이다.

“네가 말하는 공평함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네가 있으니까?”

“그게 아니다. 경박한 놈. 이번 화약 협정에 신제국은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데 다른 이와 공평하게 화약을 배분받는다면 그건 공정하지 못하다.”

이에 드낙이 놀랐다.

“올인이라니?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화약이 없어?”

“화약이 없는 게 아니다. 그저 초월의 힘을 다루는 이들이 적기에 그 대체재로 화약을 선택한 것 뿐이다.”

잉쯧쯧.

드낙이 혀를 찼다. 꼰대 경력이 전생까지 합치면 벌써 60년이 넘어가는 그였다. 그 혀 차는 소리는 실로 능숙했다. 세파리아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심기가 아주 불편했다.

“그러니까 그냥 상위 인간 하자니까. 야, 신념이 밥 먹여주냐? 완전 그거 빨갱이 같은 생각이야. 이데올로기랑 다를 바가 없어. 버려야 해.”

“무슨 개소리냐?”

“생각해 봐. 더 좋은 길이 있는데, 그냥 멋지다고 안 가는 거 아냐. 인간찬가는 얼어 뒈지는 소리하고 있어. 옆에서 그냥 개죽음인 거지.”

“됐다. 그런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그냥 가라.”

“가도 되겠어? 안 될 텐데?”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행보에 모든 것을 걸었다. 패배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해도 드낙은 생각보다 공정한 놈이었다. 세파리아스가 너무 많은 자원을 협정에 내 건다면 부담스러워서 그를 내치지는 못할 터였다.

드낙의 소시민적인 면모는 상대가 10억, 100억 아무렇게나 쏴대는데 그 자원을 그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줘야 한다고 여기는 게 드낙이었다. 물질적인 자원에 크게 속박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곧 식량 해방과도 깊게 연관되어있었다. 즉,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었으며 이용하기 좋은 성질이기도 했다.

세파리아스가 대답하지 않자, 드낙이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자리 하나에 망설임 없이 앉았다.

“적어도 이야기는 들어봐도 괜찮겠지?”

“흥. 파비앙(Fabian) 부관, 설명해줘라.”

“예!”

앉아있던 자들 중 문관이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대답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허둥지둥 그를 도와서 서류를 추렸다. 이내 그 서류를 드낙에게 건네주며, 파비앙이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혓바닥을 놀리기 시작했다.

“반마반신께서도 이번 화약 전쟁에 대해서는 익히 듣고 이곳에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화약 전쟁? 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신제국이 이번 하프 드워프 화약 협정을 어떤 태세로 임하고 있는지 깨달아서였다. 그건 다른 세력과 너무나도 달라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나 그 누구도 그 웃음에 동참하지 않았다.

“뭐가 웃기다는 거냐. 네 말대로 신제국에는 상위 인간이 없다. 가장 많은 초월의 힘을 다루고 있는 건 성기사나 사제뿐이고, 그다음이 자연적으로 출생하는 마법사며 연금술사다.”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그걸 선택한 건 너다. 자치왕국을 봐라, 그들이 이곳에 온 건 화약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너만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초월의 힘은 필수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인격신이라는 잡것들이 인간에 간섭해서 만들어지는 상위인간이 자연스러운 것일 리가 있나.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가질 힘이 있는데 다른 걸 어찌 선택하겠느냐.”

“어차피 신성력을 보유하게 된 성기사나 사제들이 낳은 인간은 마력을 품고 태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상위인간이 되는 건 아니지. 자치왕국에는 또 하나의 계급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벽을 부숴서 들어갈 수 있는 계급도 아니다.

작은 구멍에 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계급이 아니었다.

선택을 받아야 한다. 로또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신성력을 통해서 그릇을 키울 수 있는 인간은 한정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력을 품고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즉, 드낙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인간들을 너무나도 쉽게 내던져버리는 가혹한 말이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드낙보다 세파리아스가 더 밑에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드낙이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초월의 힘과 인간 그리고 진화에 대한 견해 차이는 결코 변할 수 없었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었다.

“더는 말 안 할게. 너의 길이 험난해서 그렇게 말한 거다.”

“두고 볼 일이지. 인간은 감성적인 종족이니까.”

어느 쪽이 가혹한지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범인(凡人)이라는 건 상황에 따라서 휘둘러지는 갈대와 같았으니까.

파비앙이라 불리는 부관이 눈치를 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눈에는 세파리아스와 드낙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게 보였다.

지켜보는 이들이 조마조마했다.

“첫장을 보시면 현재 다종족 연합의 대략적인 전력표가 있습니다.”

“전력표라기에는...비율로 무식하게 나눈 것 같은데?”

“예. 한눈에 보기 위해서 임의대로 전력 수치를 책정하고 이를 %로 나누어서 상대 비교했습니다.”

다종족 연합의 전력을 100%라고 했을 때, 각 세력이 가지는 힘의 양이 분석되어있었다. 큰 원에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장 큰 부분을 가진 것은 지하 연합이었다.

‘50%.’

은근히 저평가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지하 연합의 군세는 상당하다.

“누가 정했지? 지하 연합의 전력이 고작 50%라니.”

다른 세력이 나머지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대단한 것이기는 하나 다소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부관이 답했다.

“지하 연합과 공동으로 만든 지표입니다. 가장 객관적입니다.”

“그래? 그건 좀 의외로군.”

“네가 지하 연합을 오히려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다.”

“응. 아니야. 뿔쥐가 최고야.”

드낙이 경박하게 세파리아스의 말을 맞받아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수긍했다.

‘이건 세력 비율이 아니다.’

전력(戰力) 비율이었다. 즉, 전쟁에 투입될 수 있는 전투력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구수가 많아도 지하 연합에서 전투에 으뜸가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지하 연합에는 뿔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블린이나 크놀 그리고 두더지까지 생각한다면, 50%나 먹는 것도 대단했다.

“신제국은 5%밖에 안 되네.”

그냥 세파리아스 원맨아미(One man army)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평시체제에서나 세파리아스의 신성력을 성기사나 사제에게 주고 있는 것이지, 전투 상황이 되면 세파리아스는 자신에게 신성력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적진에 깊게 파고드는 전술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보잘것없었다. 황제 기사단이 궤도에 올라서지 못한 것이 크다.

말 그대로 이번 차원 전쟁에서 가장 전공 세우기 힘겨워 보이는 지표를 지닌 게 신제국이었다. 냉병기 쥐고 기관총 앞으로 달려드는 꼴이다.

“반면 자치왕국은 10%.”

의미 있는 지표다. 10%에 달했다. 이것만 해도 선방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마력을 지닌 인간들의 숫자 덕분이었다. 거기에 제국인들은 흑황제에 의해서 기사 전력을 비롯해서 마법사도 떼죽음을 당했다.

자치왕국과 비교하면 기사와 마법사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세파리아스조차도 없었다면 전력이 1~2포인트로 책정되었을 터였다.

세간이 얼마나 세파리아스를 두려워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지만 너무 숫자가 적어서 드낙은 그냥 넘겨버렸다.

“오션오크는 20%. 엘프는 15%.”

모두 힘을 합친다면 지하 연합과 겨우 비슷해질 수 있었다. 중급 권속 악마가 된 뿔쥐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커도 너무 컸다.

‘여기에는 북부 불모지에 있는 삼위 권속 악마는 들어가 있지 않네.’

세력으로 치지 않고 있는 곳도 있어서 완벽한 지표는 아니었으나, 이번 화약 협정에서는 확실하게 눈여겨볼 만 했다.

“이것만 봐도 신제국이 화약을 죄다 가져가도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건 말을 다하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드낙이 웃어 보였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 화약이다. 화력이라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었다. 지하 연합은 손을 뗐다고 하더라도 신제국에게 절실하다고 해서 그들이 다 가져가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거기에 엘프들이 인간을 위한 전신갑주도 만들고 있잖아? 왜 이렇게 낮아? 이것도 너무 주관적인거 아냐? 거기에 드워프도 없고. 말 장난 이잖아.”

제법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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