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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오우거 리고의 이동술을 표절한 드낙이 단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도시국가, 캐논인가.’
하프 드워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기에 드낙이 이곳에 온 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드낙의 부하들이 착실하게 하프 드워프의 정착을 도왔다.
‘왠지 죄지은 느낌이네. 아무것도 안 해줬다.’
이곳에 알아서 살아남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하프 드워프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조금 죄지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들은 동부 왕국이 크게 이주했을 때, 함께 이동하여 옛제국의 외곽 쪽에 자신들만의 도시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종족들이 그들을 도와줬다.
인간들의 우월인자를 받아서 드워프임에도 키가 크고.
드워프들의 인자를 받아서 화약을 만드는데에도 재능이 있었다. 종종 드워프의 손길을 사용할 줄 아는 하프 드워프도 탄생하기도 했다.
이용가치가 뛰어난 하프 드워프들이 도움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들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많아서였다.
“뭐야, 이건? 세팔이잖아?”
그중에서도 가장 그들에게 많은 자원을 내어준 것은 신제국의 황제,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쓸모있는 하프 드워프들이 가진 것이 적다는 걸 알아챈 그가 막대한 자원을 지원해줬다.
이 때문에 세파리아스가 협상 전에 자치왕국에게 으름장을 놓을 수 있었다.
‘하, 요놈 봐라? 할 건 다 하고 있네.’
물론 하프드워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드낙의 동상이 똑같은 크기로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도시의 중심에 있다면, 드낙의 동상은 내성 입구에 존재했다.
검을 지팡이처럼 척 내려서 땅을 짚고 있는 멋들어진 세파리아스의 동상의 가장 포인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망토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정말 역동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크기도 크니까. 정말 엄청난 미술품이다.’
실로 대단해 보였다. 그가 세파리아스의 동상을 보고 있을 때, 하프 드워프 병사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반마반신을 뵙습니다!”
경례를 하는 병사에게 드낙이 냉큼 물었다. 마치 옆의 동료가 낚싯줄에 엮어서 튀어 올라갔는데도 떡밥을 무는 붕어와 다를 바 없었다.
“신황제의 동상이 있는데, 내 동상도 당연히 있겠지?”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신황제의 동상은 이렇게 외성 중심가에 있지만 반마반신의 동상은 중요한 내성으로 향하는 입구에 존재합니다!!!”
우렁차게 병사가 대답했다. 그 대답을 통해서 드낙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 알게 된 하프 드워프들이 수군거렸다.
“안내해라.”
“예!”
병사가 움직였다. 중앙도로로 쭉 이어진 곳의 끝자락에 보이는 내성의 입구 앞에 드낙의 동상이 존재했다. 그는 왕좌에 앉아 있었는데 의자의 오른편에는 검이 기대어져 있고, 왼쪽에는 먹을 것과 가죽 포대 등 온갖 것들이 놓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책은 안 들고 있네.’
딱 왕좌에 앉은 모습을 봤을 때 드낙이 생각한 건 세종대왕님의 모습이었다. 다만 드낙의 경우에는 책을 들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 포인트라고 할 것도 없는 좀 아쉬운 모습이었지만 약간 세종대왕 같아서 괜히 웃음이 삐쭉 튀어나왔다.
“책도 들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책...말씀이십니까?”
“응. 뭔가 똑똑해 보이잖아.”
“아...예...”
병사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대답만 했다. 드낙은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진 왕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왕관이 있는데 안 쓰고 다녔지. 공식석상에서도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차고 다니는게 좋을지도.’
대관식이라고 거창한 것도 약식으로 넘겼다. 중립신으로 인한 피해에 마음이 울적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쉬웠다. 다종족 연합의 진정한 지배자는 드낙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 영향력이 아랫사람들 전체에게 뻗쳐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드낙보다 자신의 도시를 관리하는 관리들이 더 무섭기 마련이다.
“반마반신을 뵙습니다!”
세파리아스와 독대하며 밀약을 맺다가 급히 이곳으로 달려온 하프 드워프가 고함을 꽥 내질렀다.
관복을 입은 하프 드워프들이 너도나도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대단히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 알아야 한다! 제발 화약 협정만 아니길...’
하프 드워프가 가장 강력한 자원인 화약의 거래 협정을 앞두고 드낙이 나타났다. 어떤 폭풍을 불러일으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며 수많은 국가로부터 많은 이득을 챙길 생각을 하는 것이 하프 드워프들이었다.
단 하나. 신제국에게는 호의를 내보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와준 은혜를 은혜로 갚기 위함이다. 또 우방 하나는 반드시 있는 게 좋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하프 드워프에게 큰 자원을 때려 박은 신제국은 실로 우방다운 국가로 지정하기 좋았다.
그런 결과가 된 이유.
자치왕국은 남부왕국의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데 자원을 소모하고 있었고.
오크는 바다와 평야로 크게 팽창하고 있었다. 영토를 뻗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다른 국가로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럴 자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아간다는 것은 곧 ‘걸어간다’는 것. 생산량이 크게 늘어가도 그만큼 소모되는 자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엘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서로 내분을 겪어서였다. 서로 불신하며 서로가 가진 업을 같은 동족에게 쏙 집어넣기 바빴다. 그 행동은 디아볼로스건 타락엘프건 상관없었으며 엘프 사회 내부에 만연해있었다.
드낙이 나서서 그들의 진심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지랄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 빈틈 속에서 신제국은 확실하게 하프 드워프라는 작은 세력에게 투자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조아린 채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후후후.”
그런 하프 드워프에게 드낙의 웃음소리가 귀로 파고들어 왔다. 듣는 이는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이 충만한 웃음소리였다. 드낙이 하프 드워프 관리를 한 명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화약 하나 얻겠다고 아주 난리라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왔으니까!”
‘오, 맙소사. 정말로 화약 때문에 왔구나!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드낙이 가볍게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하프 드워프의 든든한 아군이 되려고 했겠지만 하프 드워프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드낙은 다종족 연합의 지배자. 당연히 하프 드워프의 판단과는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파리아스가 역시 문제겠지? 그놈이 하는 건 내가 잘 알아.”
드낙이 주먹과 주먹을 부딪쳤다.
“아주 박살을 내버리자고!”
“예?”
한순간에 하프 드워프와 신제국의 관계가 드낙으로 인해서 갈기갈기 찢기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말이었음에도 그렇게 된 것처럼 여겨졌다. 그건 하프 드워프들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를 감히 드낙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내성으로 모시겠습니다!”
드낙이 하프 드워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내성으로 향하며 오랜만에 하프 드워프들의 현황을 살폈다.
“동원령이 선포되고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괜찮겠지?”
“예! 화약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곳에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서 이를 통해서 하프 드워프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밤낮 구분 없이 바짝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국가 수준의 종족이었다. 꾸준히 인구수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는 꿇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인구수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에서 특출난 면이 없는 게 하프 드워프들이었다.
그나마 화약을 생산할 수 있고, 블랙 피닉스와 같은 장총을 인간들에게 지급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장총을 주무기처럼 사용하는 인간과는 다르게 오션 오크의 경우 부무장으로 장총을 택하고 있었다.
산에서는 투척 도끼만큼 훌륭한 투척무기도 없다. 시야가 많이 제한되어있는 게 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야로, 바다로 진출하게 되면 투척 도끼를 사용할 기회는 잘 없다.
적은 멀고, 눈으로 적으로 봤음에도 투척 도끼는 닿지 않는다. 무리해서 던진다면 닿기야 하겠지만 그래서야 전사의 이름이 운다. 한 방에 적을 죽이지 못하다니, 오크 전사로서는 큰 수치였다.
그렇기에 오션 오크들은 부무장으로 장총, 블랙 피닉스를 채용했다. 드워프로부터 다양한 무기를 받기보다는 비싸지 않고, 드워프의 손길도 깃들지 않은 하프 드워프들의 장총 양산품을 애용하는 편이다.
장총을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쓰다가 수거해서 고철로 다시 하프 드워프한테 가져다주는 식이다.
어찌 되었건 하프 드워프들은 제법 잘살고 있었다. 구매자도 있고, 수출과 수입에 차질도 없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경제가 점점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저...화약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엘프랑 오크도 오지 않았잖아?”
“오크 말씀이십니까?”
“엉. 내가 불렀어.”
“예?”
하프 드워프가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크는 온다는 소리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불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오크들도 장총을 쓴다고 들었거든. 그냥 한 방에 해결해버리자고! 하하하하!!!!”
“하, 하하하....대, 대단하신 판단력이십니다.”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한 방에 딱 해결을 해야지, 그게 바로 추진력 아니겠어? 나한테 다 맡겨!”
*
국제 연합 도시에서 거주하게 된 아스톨포 샤를로트는 실로 이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매일 깨닫고 있었다. 가장 먼저 흡혈귀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드낙조차도 악마인데 이 세상의 지배자였다. 거기에 지하연합의 존재도 컸다.
이제는 심심찮게 고블린 인부도 잘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알게 모르게 그러한 공작이 잘 뻗어 나가 있었고, 악이라도 아군이라면 용인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게 존재했다. 또한 돈이 최고라는 인식도 서서히 퍼져나갈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신분제 또한 존재하면서, 드낙이 발휘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공존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크게 모순되어있었지만,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격(格)의 차이 때문이다.
그 덕에 국제 연합에서 아스톨포는 오랜만에 문명인이 되어서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저거 봐, 아스톨포 왕자님이셔.”
“아아, 망국의 왕자님...”
매일 아침마다 먹으러 오는 식당은 여자들로 북적였다. 척 봐도 기품이 있는 것이 아스톨포였고, 매너 또한 일품이다. 여자를 위해서 많은 걸 신경 쓰는 아스톨포는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뚱뚱하고, 양아치처럼 생겨도 여자에게 호탕하게 돈을 쓰는 남자가 제법 인기가 있는데 잘 생기기까지 한 아스톨포가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덕을 보고 있는 건 레스토랑 주인이었다. 그 덕에 아스톨포는 아침 식사를 공짜로 해결할 정도다.
“오늘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직접 주인이 나서서 서빙을 해주면서 아스톨포에게 굽신거렸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이렇게 항상 대접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서로 웃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귀족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갑을 관계는 짐승을 대할 때나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필요 없는 포지션이었다.
그 덕에 아스톨포와 레스토랑 주인은 서로 존대하며 서로의 자존심을 잘 대우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서로 이기는 관계였고, 아름다운 관계였으며, 귀족이 만들고 싶어하는 사회 풍토이기도 했다.
대우해주면, 험한 꼴을 안 볼 수 있기에 약자도 기분 좋고, 대우받으면서 약자 또한 웃으면서 고개를 조아렸기에 귀족도 기분이 좋았다.
그게 바로 귀족다움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라도 완벽한 세계의 완성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동원령 선포>.
세상에 크게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고, 한다고 하더라도 굵직하게 한 번 쿵찍고 사라지는 드낙의 행보가 시작되었다. 모든 세상, 전 세계가 드낙의 동원령 선포에 휘둘리고 있었다.
‘세계적인 이벤트지. 하지만 악마 침공보다도 먼저 전쟁이 터지게 되다니.’
보통 전쟁도 아니었다. 차원 침공이다. 분명 이 세계는 큰 고통에 빠질 터였다. 그렇기에 아스톨포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번에 현재의 위치를 높일 기회는 곧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괜히 내가 레스토랑에 있는 게 아니지.’
이곳은 제법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작은 주문을 해도 상당한 돈을 까먹는다. 공짜로 아침을 즐기는 아스톨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를 보기 위해서 오는 여자들은 꼬박꼬박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아스톨포가 미소를 짓자 곳곳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잘 생기면 세상 자체가 변한다는 진리는 이곳에서도 통했다. 특히 껄렁대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다. 기생인에게 알게 모르게 당하면서 여자 커뮤니티는 헤픈 남자를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겨난 상태였다.
이는 유복할수록 더 심해졌다. 그래서 아스톨포의 몸값이 대단히 높아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 여자를 이미 선택한 상황이다.
‘샤를로트 혈족의 가장 첫 번째 관문은 기품이지.’
아무리 인기 있는 남자가 훼방을 놓아도 자기 할 것만 하고 딱 사라지는 여자. 그게 바로 아스톨포가 노리는 혈족 후보자였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짙은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은 문관이었고, 그가 오기 전부터 단골이었다. 이미 모든 조사도 마쳤고, 게제라스 총리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전까지 그녀와 직접 부딪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역효과만 날 뿐이지.’
아스톨포가 능숙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밖을 나섰다. 여자들이 우루루 아스톨포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아스톨포는 그런 여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혈족이고, 차원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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