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44화 (94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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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화약.

강력한 힘을 지닌 화약은 보장된 화력을 내어주는 물건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몇 가지 조건들이 달성되면서 그런 판단이 내려지게 하였다.

첫째는 크놀의 철강 산업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철이 다종족 연합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동원령이 선포되어도 지하 연합 내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출하량을 지녔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엎어질 수 없었다.

그만큼 크놀들의 철 생산량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이는 지하 연합의 음모 중 하나였는데 다른 국가들의 철강 사업을 사장시키기 위해서 하는 나쁜 짓거리였다. 물론 거기에 넘어간 국가는 잘 없었다.

최소한으로 자신의 사업을 유지하고, 이득은 이득대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딱 봐도 싸게 공급하고 있는데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면 바보였다. 지성종족은 간사하여서 독점한다면 그 이빨을 들이밀기 마련이다.

이를 가볍게 보는 것 자체가 우습다.

철강 사업을 하는 자들은 불평하겠지만, 전체적인 이득을 따졌을 때 독점만 피하는 것이 최고의 효율을 보여줄 수 있었다.

둘째로는 대량의 대포를 제작하기가 쉽다는 점이었다.

여기에는 드낙의 탓이 컸다. 자주포를 제작하라 명령했기 때문이다. 산을 넘어서 타격 가능한 대포! 물론 그것은 변질되어서 자색 주포 내지는 자-주포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대포에 대한 제작 데이터가 대단히 많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다종족 연합에게 열람이 가능했다.

셋째로는 사용의 용이함이다.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사용 가능한 것이 화약 무기였다. 그 결정체가 바로 장총, 블랙 피닉스라 불리는 하프 드워프들의 주무기였다. 여기서 그 충격량을 대단히 크게 만들고, 사거리도 높인 것이 대포였다.

무재가 없고, 마력도 없는 이들이 쓰기에 딱 좋았다. 그리고 이건 신제국을 움직이게 할 정도였다.

<황제 기사단>의 조건에 들어가는 인간이 생각보다 적어서였다. 애초에 세파리아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드는 놈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많이 양보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가히 화약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하프 드워프에게로 옮겨졌다.

조용히 화약을 순풍처럼 생산하며 서서히 제법 큰 도시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하프 드워프들에게는 드낙의 동원령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폭풍의 중심에 서게 되자 코가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 불쾌한 감각은 날이 지나갈수록 강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정점을 찍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다.”

“시, 신제국의 황제가 이런 도시국가에는 어쩐 일로...”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시원하게 웃었다.

“알면서 묻는 걸 보니, 경쟁자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잘 알겠다.”

그 말에 하프 드워프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모든 걸 간파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도시국가 <캐논(Cannon)>에서 세파리아스가 300명에 달하는 병사를 이끌고 그대로 눌러앉아 버렸다.

금화를 잔뜩 가져왔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고, 하프 드워프 내부에서 알아서 잘 대우해주며 모든 걸 돌봐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소식은 먼저 와서 선수를 치려고 했던 4명의 공왕들에게도 닿았다. 이들은 곧바로 대사를 파견해서 세파리아스와 약속 날짜를 잡았다.

당일 저녁에 바로 잡혔다.

세파리아스의 행동력은 대단히 빨랐다. 자치왕국의 공왕들과 딱 하루 차이로 도착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른 공왕들이 적당히 인사했다. 다만 세리안은 세파리아스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신제국은 일찍 대포부터 화약까지 자체 생산을 하고 있잖아요. 왜 하프 드워프들에게까지 오신 거에요?”

“공적인 자리다. 그리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화약이고 대포인데, 이런 곳에 나타나지 않으면 직무유기지.”

그렇게 말한 세파리아스가 공왕들을 두루 살피며 말했다. 유독 길게이 공왕만이 그의 눈을 피했다. 은연중에 피어오르는 세파리아스의 위압감에 지레 겁을 먹었다. 물론 무인이 아닌 길게이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공왕으로서, 내정적인 측면에서는 길게이 또한 우수했지만, 강자(强者)와의 대면에서는 위축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급히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드워프 제국 때문이다.”

거침없는 반말에도 누구 하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신제국의 황제에, 반신급의 존재에 닿은 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거기에 드낙과 정면에서 마주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만 봐도 세파리아스는 자신들의 위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신황제의 말씀은 옳습니다. 드워프 제국 또한 화약과 대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뿔뿔이 흩어지겠지만, 최소한도로 지하 제국을 방비하기에는 화약 만한 게 없습니다.”

도렌 공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파리아스의 의견을 잘 받아줬다.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엘프도 올지도 모르지요.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습니다.”

“오크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자-주포에 가장 자신이 있는 종족이니까요. 대포보단 그들은 장총인 블랙 피닉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이상으로 더 가지러 여기까지 오지는 않을 거예요. 이미 적재량도 상당할 테고요.”

무식하게 쟁여놓기도 잘 쟁여놓는 게 오크들이다. 소금으로 바짝 절여놓은 개구리를 바짝 말려서 1년 뒤에도 간식처럼 먹는 게 오크라는 종족이었다.

“드워프와 엘프가 오기 전에 하프 드워프와 협정을 맺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신제국과 자치왕국이 미리 서로 결정하는 게 좋겠지.”

하프 드워프가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밀약! 이런 상황에서 하프 드워프들은 허둥지둥 자신들의 마음을 결정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신제국의 황제가 떡하니 와버렸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행보는 매우 묵직했기에 하프 드워프들의 내부가 혼돈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드낙과는 또 다른 공포였다.

“서로 절반씩 가져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도렌 공왕이 공평함을 논하였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피식 웃었다.

“아니 될 말이지. 자치왕국에는 3할의 화약만 가져가도 나쁘지 않은 거래다.”

“신제국이 어찌 7할의 여유분을 가져갈 생각을 합니까?”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었다. 허나, 그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없다면, 엘프나 드워프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리된다면 누가 가장 큰 손해를 볼지 눈 감고 생각해도 딱 답이 나오는데, 나만 그런가?”

“음...”

길게이가 신음했다.

국력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자치왕국은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최소 1세대 내지는 2세대만 지나면 확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아직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다.

남부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혼란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신성력을 통해서 상위인간으로 만드는 작업 또한 진행 중이었으며, 그 효과를 본 인구 숫자는 일부분에 불과했다.

마력을 지닌 인간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 중이지만, <국력>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수치는 아니었다. 그저 유의미한 수치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드낙의 뒤를 봐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실로 굴욕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세파리아스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잘 생각해봐라, 3할이 그대들이 가져갈 수 있는 최대량이다.”

몇 번을 곱씹어봐도 그러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신제국의 발을 걸고넘어지면 신제국 또한 7할이나 되는 여유분을 가져갈 수 없었다. 나누고 또 나눠야 했다.

“5할 합시다.”

아크온 공왕이 툭 내뱉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게 싫으시다면, 그냥 다 나눠 먹읍시다. 3할이나 2.5할이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오크 빼고 드워프 엘프가 오면 4등분이다. 2.5할이나 3할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여기서는 지르는 게 옳았다.

“하하하. 자치왕국이 1할이나 가져갈지 모르겠군. 그도 그럴 것이 결국 화약 협정을 맺으려면 하프 드워프에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자치왕국이 이 도시 국가에게 줄 것이 대단한 것이 있을까, 의문이다.”

“지켜보십시오. 하프 드워프에게 오히려 신제국이 적게 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크온과 세파리아스의 눈이 부딪쳤다. 아크온은 척추가 바짝 서는 느낌이 들었지만, 꿋꿋이 참아냈다. 그는 무인이었다.

같이 자폭하면 신제국의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확 질렀지만 도렌은 썩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걸 한눈에 파악한 세파리아스가 미소를 지으며 주제를 돌렸다.

“신제국에서 준비한 새로운 술을 맛보는 게 어떤가. 이스핀 술보다는 좋다는 평가는 못 들었지만, 나름 괜찮은 술이지.”

그것으로 만남은 끝이 났다. 다만 되돌아온 공왕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머리가 넷이나 달린 것이 자치 왕국이었다. 세파리아스가 하나 던져주면 4개의 의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직하게 나가면 이길 수 있소.”

아크온 공왕의 말에 도렌이 반박했다.

“승패에 크게 연연하는 것이 신황제요. 상처 입은 승리라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애초에 그런 사고방식을 할 수 있다고 여기니까, 저렇게 담담하게 7할을 요구하는 것이오. 우리 또한 여기서는 강하게 나가야...”

“그 무슨 소리요. 다른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지만, 차원전쟁이 임박해있소. 적들의 수준은 상당하고, 전쟁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오. 여기서는 무조건 타협하여서 3할이라도 가져가야...”

세리안이 눈썹을 손으로 문지르며 한숨을 내지었다.

‘완벽하게 당했다. 애초에 둘이서 나눠 먹을 생각 따위는 없었어.’

세파리아스는 엘프와 드워프가 올 때까지 버티기로 한 듯했다. 그들을 포섭할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쉐도우 위스퍼는 이 싸움에서 정보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기에 세리안의 표정은 절로 안 좋아졌다.

“이렇게 다투는 것조차도 신황제의 계략입니다.”

“그럼 양보하시오.”

“내 의견이 더...”

서로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그만큼 세파리아스가 던진 먹이는 선택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안 똑똑하면 얽히고, 똑똑해도 섥힌다.

재물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마른 하늘에 벼락이 내려치며 천둥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프 드워프들이 깜짝 놀랐다.

“이 몸 등장.”

*

“끼요오오오옷!!!!”

“끼욧! 끼욧!”

고블린들이 골반을 격렬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모두 노년의 고블린이었다. 그래도 드낙 덕분에 신성력을 최소한으로 보급받고 있어서 기력만큼은 쌩쌩했다.

이곳은 레이시아 플래티넘의 부탁으로 만들어진 <실버 타운>의 지하 연합 버전의 고블린 양로원 중 한 곳이었다.

“끼욧! 끼욧!”

강사로 보이는 고블린이 골반을 맘껏 움직였다. 외침 소리에 따라서 늙은 고블린들도 열심히 몸을 놀렸다. 허리 놀리는 폼이 20대 못지않았다.

이를 50번 반복한 고블린 강사가 박수를 10번 쳤다. 늙은 고블린들도 너도나도 따라서 10번 쳤는데 익숙한 모습이었다.

“자! 자! 안녕하신가! 오늘도 힘쎄고 강한 아침! 만일 누군가가 물어보면 우리는 청춘!”

“청춘!”

“이 운동법은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께서 우리를 위해서 보급하셨기에 모두 하루에 빠짐없이 하도록 고블린 양로원의 지침으로 있습니다! 그러니, 불만이 있으신 분은 우리들의 신께 찾아가셔서 하기 바랍니다.”

킬킬킬!

웃음 소리가 퍼져나갔다.

“물론 이 말씀 또한 그분께서 하셨습니다! 자 그럼 다음으로는 팔 돌리기! 건강한 관절에 건강이 깃든다!”

“호우, 호우!”

이른 새벽에 땀을 빼고, 관절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근육을 풀어줬다. 이 뒤에는 취미 생활이 이어졌다. 카드놀이는 국룰이나 다름없었다.

점심에는 멋들어진 고기가 그득하게 나왔다. 늙어도 활동성이 많은 만큼 입맛이 없는 고블린은 전혀 없었다.

“꺼어어어억!”

크게 터름을 하고 난 다음에는 사회를 위해서 일도 했다. 일의 종류는 11가지로 제법 많았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또 일하면 돈도 나와서 자식에게 용돈 겸 주기도 하고, 자기한테 그냥 써버리기도 했다.

사회 공헌이라고 해도 제법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특기가 잘 맞아떨어지면 제법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웅성웅성.

일하러 작업복을 입고 나온 늙은 고블린들이 로비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기숙사 밖에 창문에도 고블린들이 벽보를 보며 크게 웅성거리기 바빴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괜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어필하면서 다른 고블린을 밀치고 로비에 몇 개나 설치된 벽보를 바라보았다.

“동원령?!”

“차, 차원 전쟁이다!”

고함을 꽥 내질렀다. 그간 하던 작업 11개는 싹 사라져 있었다.

[화살 재료 만들기 – 시간당 은화 1닢. 일정 개수에 따라서 웃돈 지급.]

[전쟁용 혁대 만들기 – 시간당 은화 1닢. 성과에 따라서 웃돈 지급.]

[리전 깃발 만들기 – 시간당 은화 1닢. 실력이 높은 재봉사 우대.]

혼란도 잠시였다.

“깃발이 쉬워 보이는데.”

“자그마한 화살 재료 만드는 게 이득이지. 화살을 만드는 게 아니라 화살 재료라잖아. 완제품은 다른 곳에서 만드는 것 같은데.”

“전쟁용 혁대지. 내가 전사로 활동해서 잘 알아.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지하 연합은 양로원의 노동력까지도 전쟁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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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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