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43화 (94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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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잠깐!”

드낙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순식간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거 재밌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도 잠깐! 이라고 자주 외치고 싶어졌다. 물론 마음으로만 그렇게 생각했고, 실행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굶어 죽는 이들이 있다니? 산딸기 사제.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복지가 좋아지고, 마을에 농업 골램이 들어섰다고 해도 이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구멍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케이슨 성기사에게 눈을 두었다.

“그대도 알고 있었는가?”

“예. 대표적으로는 방랑자들이 배를 굶고 다닙니다. 혹은 마을에서 소외된 자들은 공동체의 재산으로 받은 농업 골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 단위로 농업 골램이 배분되기 때문에,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면 별수 없었다. 그리고 마을에 소속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이들 또한 농업 골램의 혜택은 받을 수 없고 구걸을 해야 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국가로부터 받았지만 그걸 쓰는 건 마을 사람 마음대로였다. 그리고 어른들이 하는 왕따야말로 정말 무섭다. 미성숙한 애들이 하는 왕따는 작정하면 막을 수 있지만, 어른들이 하는 왕따는 막을 수도 없었다.

“허나 곳간은 계속 꽉 차 있지 않은가. 썩으면 벌금까지 물어야 하니, 굶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드낙의 말에 너도나도 현 상황에 대한 허점들을 논했다.

“결국에는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마을마다 관리들을 자주 교체하고 있지만 그런 관리들조차도 사람들을 놓칩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전산체계를 도입해도 복지 그늘에 있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현대조차도 그럴진대, 무식하게 식량을 흩뿌려도 이를 한 줌 손에 쥐지 못하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했다.

본인이 멍청할 수도 있고, 상황이 좋게 안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원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더욱 많은 상위인간을 확보하거나 더 많은 성기사를 배출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기사들이나 병사들에게 신성력을 배분해줘야 합니다.”

케이슨 성기사의 말에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많은 이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종교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었다.

그리고 신성력이라는 거대한 자원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그들은 땅에 씨앗을 하나 심기보다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 중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결정이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 무게감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아, 내가 동원령을 선포해서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신전의 자선사업은 축소되어야 했다. 차원전쟁이 임박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주 큰 일이 날 수 있었다. 나중에 논공행상에서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보통은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허나, 이 다종족 연합은 그렇게 시늉만 할 수 없었다.

<쉐도우 위스퍼>의 존재 때문이다. 허투루 한다면 그 데이터를 통해서 차원전쟁 논공행상에서 내칠 것이 분명했다. 벌써 너도나도 보급에 박차를 가하며 공을 세우며 이를 문서, 이미지 크리스탈 등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 모든 자료는 철저한 보안을 통해서 국제 연합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공정한 게제라스 총리의 손으로 정리될 터다.

‘그렇기에 정면승부밖에 없다.’

논공행상에서 조금이라도 그 공적을 높인다면 더 많은 영향력을 신전이 가지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었다. 그게 현재 케이슨 성기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반면 산딸기 사제의 경우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나중에 구할 수 있는 10만 명을 위해서 현재 구할 수 있는 1만 명을 버리는 짓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건 신전이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이었다.

물론 동시에 케이슨 성기사는 이참에 또 하나의 일을 벌이려고 하고 있었다.

‘하나의 권리로 신성력을 모든 이들에게 배포한다.’

약자를 위해서 존재하던 신성력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상위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권리>로서 신성력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산딸기 사제는 응당 전통적인 사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신성력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빈손에 담기는 따뜻함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들에게조차도 신성력이 크게 담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정 부분 양보한 신성력은 있었지만, 신성력의 기준을 아예 바꾸려는 케이슨 성기사를 막아서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만큼 큰 혁명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자리에 용케도 드낙이 찾아왔다.

“흠...”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드낙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쪽이든 그럴듯하다.’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모두 장단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중립신 때문에 뭔가 ‘후일’ ‘미래’ ‘예견된’ 등등. 안배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드낙에게 있어서는 케이슨 성기사의 의견에 조금 머리가 기울었다.

어찌 되었든 미래를 위해서라면 상위 인간을 많이 찍어내는 게 중요했다.

절충안을 내는 건 드낙에게 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박호훈의 삶에 있어서 이번 일에 쓰기 좋은 경험이 있었다.

‘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었지.’

잡담을 많이 하셨던 국사 선생님. 조선 시대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수많은 일거리를 국가가 준비해줬다는 국뽕 스토리는 박호훈에게 있어서 큰 감명을 준 이야기였다.

수십년이 지나도 결코 잊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거 외워라, 저거 외워라가 아니라 그냥 한 번 들었는데도 딱 뇌리에 박힐 정도로 재미난 이야기였다.

그가 그렇게 그 이야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최하위계층으로서 한 달 내내 미역국만 먹었던 삶이 간곡하게 원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감성이 만들어낸 각인이다.

“신전은 케이슨 성기사의 의견을 따른다.”

산딸기 사제의 눈이 크게 커졌다. 그는 평생을 못 먹는 이들을 위해서 방랑하며 산딸기 수풀을 만들며 천지를 유랑했던 사제였다.

그만큼 바닥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돈 안 된다며 멀쩡한 식량을 갈아엎는 광경 속에서 굶어서 삶을 포기한 이들의 모습이 있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현대 사회처럼, 이 세상 또한 소외된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걸 지금 부정당했다. 손이 꽉 쥐어졌다.

“하지만 상위인간으로서, 만인(萬人)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이들은 산딸기 사제가 정하여 신성력을 우선 보급하라. 그들이 신전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도록 만들 권리를 그에게 부여한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 신성력을 쥐여주고 그들의 자식 더 나아가 그들 자신이 상위인간이 될 기회를 주는 정책이 드낙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그 말에 침묵이 쫙 회의실에 끼얹어졌다.

그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이를 어찌 상위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그것은 재능이며, 자치왕국의 앞을 나아가는 이들이 응당 받아야 할 선물이다.

반면 드낙은 그 틀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좋은 직업, 악기를 연주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소수에게 허락된 일이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기반이 받쳐준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걸 몸과 마음이 불편한 자에게 내어주는 도량을 다른 곳에서 보고 여기에서 실천하는 것뿐이었다.

“왜 아무도 말이 없는가?”

‘별론가?’

그 말에 그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산딸기 사제가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가난한 자를 확실하게 도와주는 일 아닌가.’

열등감조차도 한순간에 싹 사라지게 만드는 한 걸음이다. 그리고 그 권한을 산딸기 사제가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인원 비율은 조정해야겠지. 하루에 10명을 부여한다면, 3명이나 4명 정도는 산딸기 사제가 결정하는 거지.”

그가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앞서 말했다시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차원 전쟁이 임박해있어서다. 지금 당장 남을 도우려고는 하지 마라.”

그 말에 산딸기 사제는 자신의 의견을 크게 양보했다. 결국은 동원령 선포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죽을지도 몰랐다. 이 세계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늘에 가려진 이들을 찾도록 노력하라고 많은 이들에게 연락을 돌리겠다.”

“감사합니다!”

사제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회의는 순식간에 끝을 맺었다. 그 뒤에 드낙과 케이슨 성기사가 서로 독대했다.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아직도 신전은 타락하지 않은 것 같군. 조금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니, 대단하다.”

“아직 멀었습니다.”

케이슨 성기사에 깃든 맑은 기운을 본 드낙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마 그는 평생 오로지 남을 위해서 헌신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지닌 기질의 극과 극은 어찌나 그렇게 다른지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신전은 계속 그렇게 할 것인가?”

“예.”

직함마저도 그저 성기사였다. 그만큼 신전은 언제든지 격하게 다툴 수 있고, 의견 교환이 가능한 사회였다. 그리고 그만큼 그들을 따르는 이들로 인해서 매번 형태가 달라지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계속해서 옳게 간다면 끝없이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잘 조율하기 바란다. 그리고...”

드낙이 말을 줄여나가며 물었다.

“차원 전쟁에서 공적을 세우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을 터다. 어찌할 생각인가?”

“반마반신께서는 신전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를 따르겠습니다.”

“딱히 없다.”

그 말에 케이슨 성기사가 즉답했다. 이미 생각해둔 듯했다. <동원령>이 선포되고 모든 세력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의료인력을 보내서 생명을 비호하는데 공을 세울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포도주와 산딸기주를 생산할 생각입니다.”

“보급 물품으로 쓸려고?”

“예. 삭힌 포도주나 삭힌 산딸기주는 에너지를 보급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고립상태나 보급 절단 사태에서 활약할 수 있습니다. 또 먹거리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병사들의 정신상태나 사기를 보충해줄 수 있습니다.”

드낙이 기뻐했다. 인간은 실로 단순하기도 했기에 먹을게 하나 늘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할 수 있었다.

“또한, 앞서 반마반신께서 말씀하셨듯이 동원령 기간에 한해서 최대한 많은 전투인력이 마력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질 수 있도록 조치할 생각입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 마력을 품지 못하더라도 신성력을 전투인력에 집중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싸움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신성력은 다루기 아주 쉬웠다.

단점이라면 물건에 신성력을 담으면 그 효율성이 크게 박살이 난다는 점이다.

신전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드낙은 내친김에 자치왕국의 중진들을 찾았다.

“뭐라고? 길게이 공왕이 없어?”

“예.”

‘괘씸한! 놀러 간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겠어?’

그런 의심은 다른 공왕들에 관해서 물었을 때도 싹 사라졌다.

“아크온 공왕에 도렌 공왕 그리고 세리안 공왕까지 다 부재중이라니...”

그들이 향한 곳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렇기에 드낙은 뿔쥐 정보원을 불렀다.

“뜨나아아악!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공왕들이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다 부재중이지? 일은 안 하고 어디로 간 거야!”

“일하러 갔는데요?”

뿔쥐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치왕국만큼 서로 경쟁하는 곳이 없었다. 신제국의 경우에는 철혈정치로 세파리아스 혼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신제국에 휘두르고 있었고, 경쟁자도 없었다.

거기서 세파리아스 욕을 했다가는 시민에게 처맞아 죽는다.

드낙으로부터 민초가 어떤 존재인지 체감하게 된 세파리아스의 처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치밀했다. 민초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그로서는 그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로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 컸다.

정신력 하나로 심장이 멈춰도 필살의 일격을 날리는 세파리아스와 범인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어디로?”

“세파리아스 불파겐, 신황제와 싸우러 갔습니다. 하프 드워프의 화약 생산량 때문에 3개의 세력이 결집했습니다.”

“엥? 갑자기?”

“갑자기가 아닙니다. 드워프도 화약을 원하고 있고, 신제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치왕국도 마찬가지지요. 하프 드워프들이 생산하는 화약은 쓸만합니다. 대포로 쓰이는 화약은 많으면 많을수록 화력을 보충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즉,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싸움이 날 만했다. 드낙의 눈이 반짝였다.

‘싸움이야? 그럼 나도 끼어야지!’

이런 곳에서 반마반신이 나서서 조율을 해줘야 했다. 드낙이 회의 장소를 파악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뿔쥐가 쥐소리를 냈다.

“찍찍. 건방진 세파리아스, 복수다.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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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6091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휴재인데 써보니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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