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40화 (93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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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은 일단 제법 큰 세력이라고 할 만한 종족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한숨을 돌렸다.

‘혹시 모르니까, 행성 쪽에 담겨 있는 업도 확인해볼까.’

중립신의 안배를 통해서 이 대륙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행성 자체가 비대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서 중립신은 모든 이들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곳을 만들려고 했다.

땅이 부족함이 없고, 사람 사는데 분쟁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여유롭다면 굳이 싸울 이유가 없었다. 대신이나 되는 존재가 스스로를 희생하여 만든 세상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지만, 드낙과 세파리아스 때문에 고꾸라진 계획이었다.

‘내가 그렇게 살 수도 없는데, 내가 왜 중립신을 도와야 해?’

좋은 세상은 내가 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세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닌 이상 수억, 수십억, 수백억의 생명체가 행복하게 살아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그게 드낙의 생각이었다. 내가 행복해지는 게 먼저고, 그다음이 다른 사람이었다.

본인이 행복하지 못한데, 본인의 삶이 여유롭지도 않은데 남에게 집착하는 건 그저 타인과 자신을 결국 파멸로 이끌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현재에도 중립신의 행성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다. 행성이 커지면 드낙도 이득이었기에 굳이 그 업을 해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할지도 몰랐다.

‘행성에 남겨진 중립신의 업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바로 신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아주 나중을 위해서였다. 중립신의 테라와는 다르지만, 드낙 또한 본거지가 크면 클수록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나의 도시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큰 효율성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굳이 이 행성, 저 행성으로 포탈을 건설하여 오고 가는 것보다는 그냥 행성 하나에 올인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어디...’

드낙이 눈을 감고 행성의 현 상태를 확인했다. 중립신이 진행한 행성의 힘은 여전히 행성의 크기를 키우는데 쓰이고 있었다. 그곳의 힘을 드낙이 가늠했다.

‘이상 없음. 정상 작동한다.’

대충 손대중했을 때, 업의 소모도 예정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최소 200년 내내 서서히 행성의 크기가 커지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긴 시간이었지만, 생명체에게 그 어떤 영향도 없이 커지려면 긴 시간을 둬야 했다.

‘충분히 신이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거기에 중립신의 업이라고 했지만, 이미 능력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진짜 신이 되는 데 쓰려면 행성을 키우는 능력을 다시 업으로 전환해야 했다.

전환은 에너지의 소모를 야기시킨다. 비효율적이다.

‘할 수 있다면, 신이 되지 않고 이 위기를 헤쳐나가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겠지.’

드낙은 파동으로 변하여 홀연히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북부 불모지의 한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으로 오염되었다고 하나, 이곳이 가장 들키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 드낙의 양손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육체 변이는 악마의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 피는 슬라임처럼 변하며 출렁거렸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섭다’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출렁거림이 대단히 역동적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달려들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변환기>를 만든 드낙이 슬라임에게 명령을 내렸다.

“숨어있어라.”

검은 슬라임이 출렁거리면서 지하 깊이 들어갔다. 마력을 집어삼키면서 최소한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만 할 것이다.

‘이 변환 슬라임을 안 썼으면 좋겠다.’

그도 그럴 것이 행성이 커진다는 뜻은 곧 수많은 필멸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 토대나 다름없었다. 그게 안 된다면, 일정 인구수를 벗어나면 포탈을 열거나 다른 곳으로 서식지를 옮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신체로서 신이 된다고 해도 빛보다 빠르게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소망한다.

별다른 일이 없기를.

‘이제...내가 이곳저곳 발품 팔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수틀리면 바로 행성에 부여된 능력을 변환시켜 업으로 삼아 신으로 될 수 있도록 만든 드낙은 검은 돔으로 향했다.

<검은 돔>

지하 연합의 중앙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대장쥐를 비롯한 위원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바빴다. 그 외에도 지하 연합에 소속된 고블린과 크놀이 참석해있었다.

두더지 인간의 경우에는 아직 대표자 의석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들은 크놀을 지키거나 지하 연합의 경비병으로서의 책무를 짊어진 중소종족에 불과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간 공중요새를 불러 와야 한다!”

“흠, 흠흠, 흠! 그 말은, 그 말인즉슨 우리들의 신으로부터 내려진 명령을, 그 신명을 저버리고 오크나 드워프 따위에게 공을 양보하자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찍찍!”

“하나만 보는 놈들! 차원 전쟁에서 일등공신이 되는 것이 먼저다!”

“우리 뿔쥐는! 우리 지하연합은 모든 곳에서 일등공신이 된다! 나가들을 사냥하는 데 있어서 전공으로 밀려서는 안 돼애애애애!!!!! 오크도! 드워프도! 아직 회군하지 않았다!”

“시간 문제다! 그들 또한 회군할 것이다. 인어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대장쥐와 다른 의원들이 팽팽히 맞섰다. 대장쥐는 무엇보다도 <차원 전쟁>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적의 수준을 몰랐기 때문이다. 반면 의원들은 굉장히 욕심을 내보이며 탐욕스러운 행동을 했다.

나가와의 전공에서 오크들에게서 밀려서는 안 됨과 동시에 차원 전쟁에서도 활약한다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대장쥐를 옹호하는 의원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보라, 정보를 봐라! 엘프는 뿔뿔이 흩어졌다. 아마, 드워프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차원 전쟁에서 인간들이 활약할지도 모른다.”

그 말에 뿔쥐 의원 하나가 원탁을 강하게 쳤다.

“모독이다! 아직 인간은 상위인간의 숫자가 적고, 신제국의 <황제 기사단>은 제대로 된 무력 수준에 올라서지 못했다!!!! 그런데 지하 연합을 이길 수 있다고? 지나친 과대평가다!”

“엘프는 능히 가능하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디아볼로스가 뭐하는 자인가! 어떤 종족인가! 감히 단언컨대 상위 권속 악마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마급의 아래에 있는 것도 지금뿐이다.”

타락 엘프 또한 중급과 상급 권속 악마에 걸쳐진 존재였다. 반면 지하 연합에서 가장 종족 값이 높다는 뿔쥐는 겨우 중급 권속 악마에 도달한 상태다.

엘프가 본격적으로 보급부터 준비까지 제대로 힘을 쓴다면, 그 도움을 받은 다른 종족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과대평가라 말하는 의원들이 입을 딱 다물었다.

“하지만...하지만 회군이라니...이것은 우리 지하연합의 역사에 남게 될 최초의 회군이다...”

“나는 인정 못 한다. 끝까지 나는 반대할 것이다. 아니, 내 리전만이라도 바다로 향할 것이다. 마왕(魔王) 발라쿠 앞에서도 한줌의 핏물이 되어도 진격했던 것이 뿔쥐다. 뿔쥐는 결코 도망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마지막 성벽이 되어야 한다. 대장쥐, 때로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내세워야 할 때가 있다. 죽는 것을 알아도, 큰 피해가 예정되어있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라도 은혜를 갚아야한다.”

기세는 팍 누그러졌지만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을 위해서 희생하지 못하는 신도가 있다면 그건 신도라고 부를 수 있는가. 희생하고 사랑하고, 몸을 바쳐야 하는 것이 신도이거늘, 어찌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종족의 안위를 위해서 눈을 내리깔고, 현실이라는 놈에게 굽신거릴 수 있는가.

이는, 앞으로의 뿔쥐 더 나아가 지하 연합의 행동 규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신의 종자, 나가들이 문제다. 놈들의 알은 심해까지 내려가고도 죽지 않는다. 여기서 회군한다면, 걷잡을 수 없이 나가 세력이 커질 수 있다.”

“나중의 일이고, 수습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나가는 그렇게 강한 종족이 아니었다. 와류의 힘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것뿐이다.

“문제는 그 나가가 인신 공양을 통해서 마신의 종자를 소환할 수 있다는 점이지.”

“흥, 드워프 3천을 공양해서 반신급 하나 나오는데, 나가로는 얼마나 많은 놈을 인신 공양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걸? 시간은 충분하다.”

의원들이 생각에 빠졌다. 대장쥐 또한 신중하게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결국 뿔쥐의원들은 대장쥐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대장쥐를 따르며 여기까지 왔기에 약간 의존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고블린 의원이나 크놀 의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바다를 포기하고 차원 전쟁에 힘써야 했다. 다른 종족 모두가 차원 전쟁에 임하는데 자신들은 일정 여력을 바다에 투입하는 건 옳지 않았다.

‘추월당할 수 있다.’

드낙의 <첫번째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다른 종족에 비해서 열등감이 존재하는 뿔쥐들은 어쩔 수 없었다. 자기 종족이 피를 쏟아내더라도 드낙의 오른편에 서고 싶었다.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은총을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우리의 죽음이라도.”

“메시지를 보내라. 회군이다.”

검은 돔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무식하게 많은 마력이 쏟아지며 메시지 마법의 속력을 증폭시켰다. 대마법과 견줄 수 있는 마력이 깃들어있었지만, 용도는 단 하나.

명령을 먼 거리에 보내는 것뿐이었다.

비효율적이라 말할 수 있었지만 가장 확실하게 메시지 마법을 빠르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마도기술이 발전하지 못했기에 무식한 방법이 오히려 이득이다.

드낙은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결정이 끝난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모두 경배하라!”

“뜨나아악!”

대장쥐가 가장 먼저 드낙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의 피에 흐르는 드낙의 피가 들끓었고, 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그것만으로도 대장쥐가 얼마나 드낙을 생각하는 광신도인지 알 수 있었다.

*

청동골절이 카드를 드로우했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잡아먹히고 있는 기분이다.’

혹은 쫓기는 기분에 휩싸였다. 팽팽하게 맞서는 것 같았지만, 그저 요행에 요행이 겹쳐서 맞승부를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벌써 지는 듯한 기분.’

이상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할 일은 계속 해야 했다.

‘마나칸 4개. 여기에서 가장 효율적인 패는...’

1/1짜리 카드가 3장. 거기에 함정 만들기 카드도 처리해야 했다. 총 4장의 카드가 자케트의 필드에 있었다. 그에 반해서 자신은 1장뿐이다.

‘드로우한 패도 광역딜을 넣는 카드가 안 나왔다.’

아쉬운 일이었다. 적어도 딱 1데미지라도 전체 필드에 영향을 끼치는 광역 카드가 나왔다면 환호성을 더욱 끌어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묵직한 걸 내놓을까?’

그렇게 한다면 곧바로 자케트는 자신에게 데미지를 넣을 것이 분명했다. 필드 정리는 청동 골절이 해야 할 일이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를 할 것이다. 서로서로 본체를 노린다면, 패배하는 건 청동 골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꾼 리즈드낙 덱은 ‘사냥꾼 카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재빠르고,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의 본체를 타격할 수 있는 범용성 높은 사냥꾼 카드도 포진되어있었다.

애초에 사냥꾼 카드가 그런 카드들이 주류였다.

4코스트, 5코스트 더 나아가 7코스트까지의 수 싸움을 마친 청동 골절은 자신의 승률이 크게 나빠졌음을 깨달았다. 필드에서 느껴지는 압박력은 턴을 넘어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여기서 그냥 넘기면 나한테 필드를 정리할 수 있는 광역 카드가 없다는 것을 들키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드로우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불확실한 싸움이었다. 덱커라면 응당 그런 싸움에 주사위를 던져야 했지만, 요행으로 헤쳐나가는 전진은 불운과 함께 넘어지기 쉬웠다.

부우우우웅, 부웅, 부우우우우웅!

그때 묵직한 저음의 알람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모두 귀를 쫑긋 내세웠다.

굉장히 낮은 저음의 알람소리는 공중 요새의 전체는 물론이고 굉장히 먼 거리까지 뻗어 나갈 정도였다. 낮은 저음을 이용한 덕분이다.

단번에 청동 골절이 카드를 챙겼다. 다른 이들도 서둘러 소시지나 고기 한 줌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고 식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긴급상황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저음 알람이었다. 이 알람 소리가 퍼지면 무엇이 되었든, 어떤 상황이 들이닥치든지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 했다.

“아! 제기랄! 재밌었는데!”

나가는 이들이 하나같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건 자케트도 마찬가지였지만 움직임에 한 점 미련을 보이는 자들은 없었다. 공중 요새에 타고 있는 이들 모두가 수많은 검증을 마친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곧, 전투 태세를 갖추고 지정된 위치에 무장한 채로 대기한 이들에게 메시지 마법이 도착했다.

‘회군?! 나가들은 어쩌고 회군명령이?’

통나무 미사일 격납고에 도착해서 주위를 빠짐없이 계속 살피던 자케트가 깜짝 놀랐다.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전해지는 정보는 계속해서 추가되었고 이내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차원 전쟁>.’

자신의 신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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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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