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37화 (93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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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처음 했던 엘프를 먼저 건드린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단지, 차원침공을 특정하기 위한 거대 정보 마법진을 만드는 건 좋은 게 아니었다.

‘결국 전쟁은 싸워야 하는 거니까.’

압도적인 화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화력을 위해서 엘프 종족을 동원하는 건 제법 좋은 방안이었다. 어디에든지 투입해도 평타는 치는 것이 엘프들이고, 특히 생산성을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게으르기보다는 엘리트인 종족이 엘프들이었다.

꼰대기가 과도하게 있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그마저도 물갈이한 상태라서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살아남은 엘프는 젊은 축에 속한다. 약간의 소소한 틀딱 문제가 나오긴 해도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다.

‘집중하고, 선택한다.’

생각을 끝낸 드낙이 홀연히 사라졌다.

세상을 속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세파리아스는 드낙이 사라지고 나서야 눈을 깜빡였다.

‘볼 때마다 놀랍군.’

아마, 신이 된다면 그 누구도 드낙을 죽일 수 없을 터였다.

‘신이 된다면 더는 내 공격권 내로 들어오지도 않겠지.’

아쉬운 일인가? 아니다. 그저, 불안할 뿐이었다. 남에게 생살여탈권을 쥐여주는 셈이니까. 그렇게 불안하면서도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지금 죽일 수 없었다.

‘짜증 나는 일이지. 놈에게 미운 정이 들어버리다니.’

부딪치고, 서로 다름을 이해했기에 그들은 공존할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이 아무리 강대해져도 거대한 야망을 가지지 않을 것을 확인했고, 드낙은 세파리아스와의 공동 전선이 자신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립신을 죽였을 때부터 그 믿음이 확고해졌다.

큰 문제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이지 않는 한, 그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애초에 드낙과 만나는 지점을 서서히 줄이려고 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말고 꺼지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자주 만나지 않을수록 드낙과 세파리아스는 갈등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고, 드낙은 이것저것 이글거리는 불쏘시개 하나 들고 사방팔방 찌르고 다니는 미친놈이었다.

서로 추구하는 행동이 달랐기에 가능한 일이다.

드낙은 순식간에 엘프들이 모여 사는 곳에 도착하여 소집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 소집령은 단순한 소집령이 아니었다.

“모든 엘프를 소집하여 완전무결한 전시체제에 돌입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아마 최소 3개월 최대 반년까지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차원 전쟁의 시작이 있다!”

드낙의 말에 엘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현재 엘프 개체수의 숫자는 51만 명에 달했다. 엘프 배양소 덕분에 무지막지한 개체수 증가를 이룩해낸 상태였다.

‘그래도 부족하지.’

세계대전을 경험한 것이 지구였다. 그 규모를 생각한다면, 51만 명의 인구수를 지닌 엘프들의 숫자는 너무나도 적었다.

‘중립신 놈...’

드낙이 엘 마르토 카사다민을 욕했다. 정말 끝도 없을 정도로 매정하고 잔혹한 것이 중립신이었다. 목적을 위해서 엘프들에게 전쟁을 선포했었고,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엘프들을 죽여서 업으로 환원했다.

종족값이 고정된 이유를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물론 그걸 드낙은 이제야 깨달았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더 중립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립신의 입김이 엘프와 같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드워프에게도 중립신의 의도가 숨겨져 있어 보였다.

그게 뭔지 드낙은 팍 떠오르는 게 없었고, 지금 중요한 것도 아니라서 생각을 그만뒀다.

“하지만 51만명이라니...배양소 늘리는 걸 가볍게 했나? 마음먹으면 300만도 가능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예? 그것이 명령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엘프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드낙은 자신이 엘프 인구수 관련으로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차.’

세뇌에서 풀려날 때마다 작업을 한다고 해도 누수 되는 사고가 많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엘프 부흥을 위해서 더욱 더 노력하길 바란다.”

“죄송합니다. 바로 고치겠습니다.”

“바로 고치기는. 이계인들이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최대 반년 내로 혹은 최소 3개월 내로 놈들이 침공이 시작된다. 51만 명의 엘프를 네 갈래로 나누어서 다종족 연합에 들어가라.”

“예!”

“확실하게 행정 처리를 해라. 왔다가 돌아가는 엘프가 있다면 나중에 응징할 것이다.”

엘프들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드낙의 입에서 ‘응징’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크나큰 충격이었다. 뭐든지 일단 찔러넣고 간보다가 어슬렁어슬렁 빠져나가는 게 드낙이었다. 그게 현재 젊은 엘프들만 남게 된 엘프 사회가 바라보는 드낙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드낙이 시작부터 사후관리에 힘쓰겠다는 발언을 했다. 전쟁 이후에 후폭풍이 예상되었다.

“뿔쥐, 인간, 오크. 이 세 종족에게 세 갈래로 투입된 엘프들이 할 일은 단 하나. 오로지 화력. 무조건 화력을 증진시켜서 전쟁을 최단기간에 끝낼 수 있도록 하라.”

자-주포의 경우에는 주술 제품이었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중형급 마법 타격 물품을 생산해야 했다. 동시에 상대가 어디에 나타날지는 전혀 몰랐기에 계속해서 곳곳에 진지를 마련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분일초가 아깝다.

“시작!”

드낙이 외치자 엘프들이 호다닥 달려나갔다.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없는 상태, 하지만 놈들이 빠른 시일 내에 도착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런 상대를 이겨야 했다.

막연한 준비를 해야 했지만,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이런 세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엘프에게 다시는 구원이 오지 않는다.’

드낙의 처세는 종족 자체에 큰 것을 맡겨놓고, 그걸 수행만 한다면 그 외에는 자유롭게 놔두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이미 구원이 자신들에게 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고 싶다면, 신으로 나아가도 된다. 반대로 자기 할 일만 한다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거기에 수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전과 다르게 다른 종족들에게 엘프들의 위대함을 알리는 것도 재미난 일이었다. 국뽕만으로도 척추가 바짝 서는 느낌이 드는데, 종족뽕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다.

인종이 달라서 오는 규합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종족의 다름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종족, 그 우월성을 입증한다면 자존감이 곧추설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엘프들의 활동성은 전보다 더 커진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배양소 관리보다는 외부에 나가고 싶어 하거나 연구에 매진하여 ‘엘프 최고’를 입증하기를 원하는 자들도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엘프라는 종족은 자신들끼리 모여있는 것보다는 다른 종족과 뒤섞여 사는 것이 더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었다.

태생이 엘리트였으며, 누구보다 뛰어날 수 있었기에 그들의 아래에 있을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존재들 또한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앞장서서 이끌어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하기 귀찮은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군림하지 않고, 뒤섞여 들어야지 번성하는 엘리트 종족. 실로 까다로운 조건이지.’

드낙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차원 전쟁이 일어난 이후, 모든 데이터를 집약했을 때 1등이 될 종족이 누군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나? 칼리스투스.”

“머릿수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저희 엘프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생산량부터 명명백백히 세상에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이미 <폭풍의 요람(Cradle of the typhoon)>만 해도 엘프의 가치는 차고도 넘쳤다. 그 마력이 본격적으로 군사용으로 쓰이게 된다면 하루마다 엄청난 격차가 벌어질 터였다.

“기대하겠다.”

드낙은 그 길로 대륙 북쪽, 황무지로 향했다.

엘프들의 무분별한 마법 실험 때문에 마력 오염이 일어난 곳이었다. 그곳을 권속 악마들이 차근차근 개척하고, 오염토를 가공하여 수출해서 마력 발전기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드낙이 사라지자 칼리스투스가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까지 숙여서 그를 배웅했다.

‘노련하다.’

칼리스투스가 내심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여기에는 드낙의 차가운 손길을 느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드낙이 내어준 것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가볍지 않았다.

먼저 51만 명밖에 없는 엘프들을 3종족으로 분산시켰다.

솔직히 제대로 힘을 내보라고 한다면, 엘프는 한곳에 모여서 그 생산력을 총동원하여 군용품을 배출하는 게 이득이다.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을 나누라는 뜻이시다.’

적당히 1위, 2위를 뿔쥐와 다투되, 다른 종족들이 너무 낮은 결과물을 내서는 안 된다는 주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응징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엘프의 원죄를 가리키고 있었다. 혼자서 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 그들의 원죄였다. 그 대가는 죽은 엘프들의 핏값으로 끝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를 드낙에게 실제로 말해본 적은 없었다.

“뿔쥐에 투입되는 엘프는 통나무 미사일에 전력을 다한다.”

뿔쥐와 함께 공을 나누기 위함이다.

“오크에게 투입되는 엘프는 자-주포에 전력을 다한다.”

마력으로 만든 자주포는 푸른 주포가 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자색을 덮어버리면 겉으로는 자주포처럼 보일 터였다. 이는 오크와 함께 공을 나누기 위함이다.

“인간에게 투입되는 엘프는...”

칼리스투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인간.’

나약한 존재였다. 자치왕국의 인간은 신성력이라도 품고 있어서 마력을 담을 그릇이 좁쌀만큼이라도 개발한 상위인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지만, 신제국은 어림없었다.

하찮고 부질없으며 버러지조차도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아무런 <초월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열등한 인간이 신제국의 인간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어떻게 돕는단 말인가? 되려 포기하는 게 옳았다.

‘그래서야 반마반신이 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엘리트답게 어려운 문제라고 발로 걷어차지 않았다.

“하위인간용 전신갑주를 보급하라. 블루 드래곤 풀 플레이트 아머를 개량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겠다.”

이 지침은 빠르게 전대륙에 퍼져 있는 엘프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들은 각기 위치에 따라서 자신이 배정받은 곳으로 움직일 터였다. 그리고 이 행정작업을 끝낸 엘프들 또한 흩어져서 다른 종족과 함께 화합하여 공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는 곧 다른 종족이 엘프에게 고마움을 가지게 될 선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거기까지 바라봤을까?’

반마반신의 표면이 아니라 그 깊은 곳에 있는 신중함을 칼리스투스는 느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라 믿었다.

‘이제 엘프는 독주하는 종족이 아니다.’

그걸 이번 차원 전쟁을 통해서 모든 종족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었다.

*

뿔쥐 자케트 그리고 드워프 청동 골절의 승부. 그 요점은 승리에도 있었지만 신물물의 조루라 일컬어지는 자케트의 사냥꾼 덱. 리즈드낙 덱의 운용을 간접경험 하는데 있었다.

그 덕에 많은 이들이 이를 구경했다. 요리사도 잠시 요리를 멈추고, 이를 지켜봤다.

손님 몇몇이 클레임을 걸려다가 같이 구경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만큼 지하 연합의 카드 놀이 사랑은 대단했다.

지하 연합이 허락한 것 중에서 공적 자원이 대거 투입되고 있는 것이 카드놀이였다.

‘마나 2칸.’

그 속에서 청동 골절이 자신의 패를 만지작거렸다. 자케트는 함정 카드를 내놓은 상태였다. 분명 하수인을 낸다면 발동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혹은 하수인을 통해서 공격한다면 역공하는 함정 카드일 수도 있었다.

‘사냥꾼 덱이니까, 함정 범용성이 크지. 여기서는 저코스트 하수인을 내는 것이 좋다.’

안타까운 것은 패가 따라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드로우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드워프 청동 골절이 카드 뭉치에 손을 가져갔다.

“드로우.”

가져가는 카드 뒷면을 자케트가 응시했다. 그리고 단번에 그 카드가 필드에 내던져졌다.

‘빌어먹을 놈. 다이렉트 드로우라니!’

상대를 가장 엿먹이는 방법이 바로 다이렉트 드로우였다. 이는 심적으로도 상대 덱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드로우 하자마자 바로 그 카드를 쓰기 때문에 자신의 행운을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술마신 크놀 연습생> 소환!”

“아! 마나 2개! 모든 마나칸을 사용했어!”

드로우 한 카드가 마나칸 1개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 가용 가능한 마나칸 2개를 모조리 소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만으로도 큰데, 카드 자체도 컸다.

“저렇게 운빨이 따라주다니...거기에 저 카드는...더럽기로 유명하잖아!”

“단 한 장밖에 못 넣게 횟수 제한 명령까지 내려진 것인데, 드로우로 뽑았...다고?”

카드 위로 심하게 취해서 휘청거리는 크놀 연습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 봐도 취기가 올라있었고, 무기라고는 술병밖에 없었다.

“술마신 크놀 연습생의 소환 효과! 크놀 연습생을 1장, 덱에 집어넣는다.”

트름을 하는 술에 취한 크놀 연습생으로부터 빛이 튀어나와서 허공으로 투사되었다. 깃발을 하나 들고, 생도의 모습을 한 크놀 연습생이 경례를 척하더니 그대로 카드 뭉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남은건 자케트의 선택이었다.

뒤집어놓은 함정 카드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술에 취한 크놀 연습생의 공격력은 1에 체력 또한 1이다. 함정으로 소모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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