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36화 (93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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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턴을 넘긴다.”

“드로우.”

마나칸이 하나일 때, 사용 가능한 임기응변의 개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허나, 그것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청동 골절의 골이 깊어졌다.

‘덱을 잘못 가져왔나?’

청동 골절 또한 데커(Decker)라 불릴만했다. 하지만 새로운 덱에 대한 경험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데커들은 자신의 성향을 쉽게 바꾸지 않아서였다. 약간의 변화는 가지지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변화하여 새로운 덱으로 갈아타는 자의 숫자는 매우 드물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이 가장 처음 선택한 덱. 자신이 가장 처음으로 승리했던 덱에 대한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한다.

고집이 적은 자만이 유동적으로 덱을 선택하는 편이었고, 그마저도 잠깐 간을 보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카드 놀이는 승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만의 승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그로부터 오는 재미는 맹목적 승리를 위한 덱보다 몇 배의 짜릿함이 있었다.

청동 골절의 덱은 지하 연합 덱에서도 <카운터 지하 연합 덱>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상대의 반응에 맞춰서 반격하는 식의 덱이다.

‘조금 수정을 해서 올 걸 그랬다.’

기본은 카운터 지하 연합 덱이되, 구성을 약간 바꿔서 리즈드낙 덱의 카운터를 칠 생각으로 가져왔지만, 그 방향성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임기응변 카드는 코스트가 적다.’

가장 높은 카드의 코스트가 5일 정도로 적은 편이다. 마나칸이 10칸으로 풀버스트가 되었을 때도, 카드 2개를 쓸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이점이다.

‘심리전인가? 아니면, 초반부터 바짝 당길 생각인가?’

청동 골절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1코스트 카드. 고작 마나칸 하나를 사용하는 임기응변이었다.

“턴을 넘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청동 골절이 턴을 넘겼다. 그러자 <신문물의 조루>라 불리는 자케트가 웃었다. 임기응변 카드를 사용할 때나 청동 골절의 골이 깊어졌을 때나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결과가 확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일부로라도 웃어서 상대를 기만해야 했다.

카드 놀이는 표정 싸움이기도 했다. 서로 마주 보고, 상대의 표정을 통해서 그 의도를 살펴볼 줄 알아야 했다.

“드로우.”

“임기응변 카드 발동!”

그 말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어? 상대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 그런데 발동 가능하다고?”

“뭐지? 그런 임기응변 카드가 있었나?”

“종류가 워낙 많으니까. 있을 것 같긴한데...과연?”

탁.

카드가 뒤집혔다. 그러자 그 카드에서 송출되던 검은 그림자의 이미지가 단번에 변했다. 산길을 질주하는 사냥꾼의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그저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달려가면서 기민하게 손을 움직이며 두툼한 과일 하나를 챙겨서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다른 또 과일 하나를 챙기는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나를 이미 입에 물고 있음에도 또 욕심을 부려서 하나를 챙기는 모습은 정말 현장감이 대단했다.

로브를 쓴 사냥꾼의 얼굴은 코 밑까지만 보였다.

“<중요한 시기에 사과 챙겨 먹는 사냥꾼>. 발동 조건은 상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턴을 종료했을 시에 발동한다. 효과는 과일 숭숭숭 카드 1장을 획득하고, 덱에있는 임기응변 카드 1장을 드로우한다.”

“동시에 리즈드낙 카드에 <사냥꾼의 질주> 효과를 부여한다. 사냥꾼의 질주 효과는 단 한 번, 필드에 있는 리즈드낙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회피할 수 있다. 동시에 효과 부여로 인한 리즈드낙의 공격력과 체력이 1씩 증가한다.”

“뭣! 그런 게 있다고? 개사기잖아!”

“꼬우면 너도 리즈드낙 덱 하던가! 함정 카드 소환! 카드를 뒷면으로 배치한다. 턴 종료.”

‘패가 잘 붙었다면 반드시 2코스트에 나오고, 그게 아니면 3코에 나오겠지. 어찌 되었든 지금 함정 카드를 던져놓는 게 옳다.’

수를 읽으며 자케트가 눈을 반짝였다.

*

자치왕국을 크게 뒤흔든 드낙은 신제국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자치왕국이 그 지경인데, 신제국 또한 요지경일 수도 있어서였다.

“꺼져.”

“엉?”

“꺼지라고! 필요 없으니까!”

“세팔아, 너 정말 예전 같지 않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전의 너는 꺼지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놈이 아니었다고.”

“네놈의 면상을 보면 요즘 정말 참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날 애칭으로 부르지 마라.”

보자마자 냉큼 꺼지라고 말하는 세파리아스를 보며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생각해줘서 왔더니.’

“자치왕국을 봐봐, 너도 그럴 수 있다니까? 내가 확실하게 범죄자 잡아준다는데 왜 그래?”

“신제국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안이 확립되어있다. 경범죄라도 누범자는 알짤없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아가고 있다.”

선량한 시민을 위한 올바른 법체계는 바로 범죄자의 사회격리였다. 그들은 지정된 구역에서 결코 나오지 못한 채 같은 범죄자들끼리 또 다른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자손을 낳지는 못하며, 애초에 성별을 나누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와 같은 <범죄자 사회 격리> 법체계는 나약한 시민을 위해서 세파리아스가 준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신제국의 범죄율은 대단히 낮았다. 애초에 경범죄나 중범죄나 재범률을 빼면 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교정(矯正)이라는 것은 2범 이하의 범죄자에게만 해당하여있었고, 3범 이후로는 알짤없이 사회로 영영 돌아올 수 없었다. 쓰리아웃제도인 셈이다. 물론 이 같은 경우에도 죗값을 치러야 했다.

착한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 세파리아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게 형벌에 특히나 많이 적용되어있는 편이었다.

“독하네. 그래도 새마음을 갖는 사람이 생기면?”

“범죄자에게 감정 이입하는 미친놈은 또 처음이군. 사실, 너처럼 범죄자 인권을 많이 생각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 말에 드낙이 제법 흥미를 보였다.

“어떻게 했는데? 다 죽인 건 아니지?”

“범죄자 사회 격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구역으로 보내서 1년 동안 지낼 것을 명령했다. 돌아온 놈들, 모두 범죄자에 대한 예산삭감 보고서를 올렸다.”

“하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었다.

범죄자와 같이 지내면 왜 그들이 범죄자라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옥에 갇혀서 업압받으며 약자인 척하는 악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면모를 범죄자 사회 격리 구역에서 봤을 터였다.

그 광경을 상상하며 드낙이 낄낄 웃었다. 그건 세파리아스도 마찬가지였다.

“콧대 높은 학자들이라도 범죄자의 날것을 마주하면 별수 없지.”

그 덕에 신제국에서는 쓰리 아웃 제도를 크게 찬성하는 자들이 많았다. 범죄자의 교정은 2범 이하에서나 가능하다는 게 대세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범죄자 사회 격리 구역에 들어서면 알아서 자급자족하며 살아야 했다.

최소한의 예산만 투입되고 있을 뿐, 농사부터 시작해서 정말 먹고 살기 위해서 모든 걸 해야 했다.

“그럼 다른 거라도 한 번 봐줄까?”

“신성력이나 내어주고 가라. 그럼.”

“내 신성력은 신전 애들이 관리하는 거라서...케이슨 성기사한테 다 맡겨버렸지.”

세파리아스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설설 저었다. <신성력 부여>를 통해서 세파리아스는 엄청난 정치적 위치를 확립할 수 있었다. 신제국에서 그의 위치는 신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근데, 그런 신성력 부여를 그냥 신전에게 관리를 맡기는 드낙의 모습은 미친놈. 미친놈 그 자체였다.

“에잉. 그럼 괜히 왔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드낙은 물러가지 않았다.

“왜?”

“시험해볼게 있어서. 연병장으로 콜?”

“콜?”

“한 판 뜨자고. 너도 경험 쌓고 좋잖아.”

드낙의 제안은 세파리아스는 거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연병장에 서로 마주했다.

“흐흐흐.”

둘 다 진검이었으며 롱소드를 양손에 쥐었다. 드낙은 드워프 최신 롱소드였고, 세파리아스는 <강철이 흐르는 검>을 쥐고 있었다.

“뭘 시험할 거지?”

“이거.”

드낙이 말하자 순식간에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스톨포를 통해서 ‘어둠의 힘(Dark power)’에 대한 잔재를 파악한 드낙은 굳이 선조 샤를로트를 거치지 않고, 그 힘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힘이었기에 별다른 과정 없이 터득할 수 있었다.

생고생을 해도 닿지 못했던 검의 일류 경지와는 다르게 너무 쉽게 얻었기에 드낙은 이 힘을 의심했고, 세파리아스에게 시험할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세파리아스가 말했지만 드낙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딱밤 한 대만 때리자. 그 정도는 괜찮잖아?’

드낙이 조심스럽게 어둠을 누볐다. 굳이 파동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야 의미가 없었다. 어둠의 힘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시야의 차단이다.

서걱-!

적당히 때를 기다리던 세파리아스가 이내 검을 휘둘렀다. 세상조차도 자를 수 있는 <영향무력(影響武力)>은 어둠조차도 잘라낼 수 있었다.

단번에 세파리아스의 눈에 드낙의 모습이 들어와야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음?”

하지만 드낙은 반드시 그의 곁에 있었다. 본능적으로 세파리아스가 한 걸음 물러섰다.

휙!

짧은 바람 소리가 그 앞에서 들려왔고, 세파리아스의 검격이 전방을 훑었다.

“이크!”

드낙이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아쉽다. 거기서 한 걸음 물러날 줄은 몰랐네.”

“그게 어둠의 힘인가?”

“나쁘지 않지?”

파동이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숨길 수 있었다. 아스톨포나 샤를로트처럼 어둠을 뿌리는 게 아니라, ‘어둡다’는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물론 평범하게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쁘지 않지만, 감각으로는 느낄 수 있다는 게 문제군.”

세파리아스가 순수하게 조언해줬다. 그도 그럴 것이 하마터면 드낙에게 딱밤을 맞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간 꾸준히 노력하면서 생긴 습관이 아니라면, 회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 더 해봐라.”

“좋아. 그럼 이번에 보여줄 건 내가 널 공격할 건데, 그림자에 어둠의 힘을 결합시킨 것을 사출시킬 거야. 마주 보고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해줘.”

세파리아스는 대답 없이 고개만 까딱거렸다. 하지만 그 한 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전에 뿔쥐가 툭 튀어나와서였다.

“뜨나아아악!”

첩보가 들어왔다. 제법 중요한 정보였기에 드낙에게 직접 크게 언급이 되어야 했다.

“숯숯마을에 있는 이계인들이 빠져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현재, 초월자 파동 파악 마탑조차도 붕괴시킨 상태입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시작된다고?”

드낙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걸 같이 들은 세파리아스의 눈동자도 조금 흔들렸다. 빨라도 너무 빨라서였다.

‘차원 전쟁!’

아찔함이 마음속에서 삐져나와서 사방으로 내달리며 그를 위축시켰다. 세파리아스가 검을 집어넣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던 걸 모두 중단하고 전시체제에 돌입해야 했다.

“드낙! 자치왕국은 공왕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너는 다른 이종족을 규합하고 관리해라.”

“말 안 해도 하려고 했어. 지금부터는 문화를 접고, 전투 준비에 모든 사활을 건다.”

미지근한 대응보다는 경제를 잠시간 포기하더라도 강력히 대응을 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최대한 단기전으로 끝내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었다.

창조보다 파괴가 쉽기에 전쟁에 노출되는 시간이 하루 더 길어지면 1년 이상 재건에 힘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전쟁은 빨리 끝내야만 했다.

“뿔쥐들도 전시체제에 돌입해라. 공중 요새 생산에 힘쓰고, 통나무 미사일부터 바짝 만들어라. 최대 화력을 확보하란 소리다.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뜨나아악! 명을 받듭니다!”

뿔쥐가 냉큼 사라졌다. 드낙은 몸을 돌렸다. 세파리아스를 쳐다봤다. 그에게는 벌써부터 전운이 감도는 듯한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아주 미약했지만, 확실히 존재했다.

“신제국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구체적인 건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신뢰하고 있었다. 재수 없을 정도로 강한 놈이고, 무엇보다 이제는 약자를 보살필 줄 알았다. 전과 다르게 ‘약자’가 진짜 약하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남은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세파리아스는 실로 훌륭한 신제국의 황제였다.

드낙은 가장 먼저 엘프들에게로 향했다.

‘적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선수(先手)를 치지 못하면, 병신 소리 듣기 딱 좋다.’

대륙의 중앙으로 엘프들을 옮겨서 강력한 정보 마법을 사용하는 거대한 마법진을 구성해야 했다. 엘프들의 목적은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내 우뚝 멈췄다.

드낙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엘프라는 고급인력을 그런 곳에 쓰는 건 어리석다. 차원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르는 상태다.’

지나친 도박수는 더 큰 피해를 일으킬 뿐이었다.

‘그렇다면...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다.’

정석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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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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