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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파동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전혀 전투적이지 않은 이유로 드낙의 ‘파동전파술’이 개발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질량을 가진 드낙은 파동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전에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속인다.’라는 것이 전제되어있었다.
즉, 드낙이라는 질량체가 파동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아주 단순히 세상을 속여서였다. 빛조차도 드낙을 관측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 누구도부터도 관측되지 않는 순간 드낙은 파동으로 존재했다.
마치 아무런 질량이 없는 것처럼 모든 곳을 빛의 속도에 준하는 속력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인 파동 세계에서 드낙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경험이었다.
꾸준한 경험.
계속되는 경험의 축적.
즉, 지식 획득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서 드낙은 ‘간섭’ 내지는 ‘상호작용’까지 닿을 수 있었다. 자신의 경우에는 암살자의 재능으로 닿았지만, 상대를 파동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파동 상태의 자신’과 간섭하고 상호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파동으로 변한 드낙은 외부 현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존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저 파동만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드낙의 재능은 꽃을 피웠다.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드낙은 미세하지만, 파동의 세계에 존재하는 ‘존재특정의 파동’이라 자신이 이름 지은 중력파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질량을 가진 존재는 중력파에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으므로 이 중력파를 감지할 수 있게 된 드낙은 파동의 세계에서 상대를 특징지을 수 있었다.
이는 곧 파동 상태의 드낙이 상대를 특정하여 상대에게 간섭하여 상대를 순식간에 파동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제대로 된 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세상을 속일 정도로 강력한 암살자의 재능을 지닌 자의 손으로 이끌린 대상은 파동에 속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정확히는 입자 상태로 분해되었다. 입자 -> 파동 -> 입자의 변화를 마주하였고, 제대로 된 형태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덕에 파동전파술은 질량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박살을 내는 게 가능했다.
‘어둠도 질량을 가지고 있지.’
경험을 통해서 안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의 부재가 바로 그림자였기에 그림자의 질량은 0이지만 빛은 에너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빛에 부딪힌 대상은 밀려나가게 되고, 빛이 쏟아져 내리는 한여름의 시카고는 평소보다 140kg이나 더 무겁다.
어찌 되었든 그림자의 무게는 존재하고, ‘존재특정의 파동’이라 이름 지은 드낙이 관측 가능한 미세파동을 통해서 샤를로트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파동에서 빠져나온 드낙은 선조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자신감 하나는 대단하지만, 후회하게 해주마.”
“입으로 싸우는 거 보니까, 허세처럼 느껴지는걸.”
그 말을 끝으로 드낙이 파동으로 변했다. 빛의 속도로 샤를로트의 파동을 간섭하며 훑고 지나갔다. 그가 다시 거시세계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샤를로트의 몸 절반이 사라져있었다.
그녀는 어둠의 형태에서 다시 인간 형태로 변해버렸다. 충격을 받고 힘의 체계가 풀린 것. 그녀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어둠의 형태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마저도 자존심 때문에 인간 형태로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팔 하나만 가져가려고 했는데. 절반이 뜯겼네.’
“커헉!”
그녀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녀의 상대는 기괴했다. 몸 곳곳이 ‘결여’되어있거나 파괴 혹은 피해를 입은 모습을 지녔다.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는 입자가 그녀의 구성성분이 되지 못하고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형태의 공격은 처음이다! 마치 전신을 두들겨 맞은 것 같다.’
거기에 어둠 상태에서 당했으며, 결국 충격을 받고 다시 육체 상대로 돌아왔음에도 피해의 변화는 없었다. 하물며 빠르게 재생되지도 않았다.
그 괴이한 충격에 당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손해를 봐야 했다. 초월의 힘으로 이루어진 어둠이 말 그대로 뜯겨 나가버렸다. 그 힘의 손실은 굉장했다.
“하, 항복이다.”
어둠 상태에서 절반이 뜯겨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초월의 힘을 잃었다.
탈력감에 샤를로트는 항복선언을 하고 다른 말 없이 마검의 형태로 돌아가 버렸다. 그 광경을 보며 아스톨포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공격을 피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체조차도 큰 피해를 입을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어떻게 저걸 대처해야 하지?’
까마득한 심연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암살능력을 키워. 그러면 닿을 수 있다.”
범인(凡人)은 과학을 증진시킨다면 드낙을 측정할 수 있겠지만, 드낙은 헛소리를 해대며 아스톨포에게 다가왔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에 드낙이 피식 웃었다.
“나 그렇게 살인에 미친놈 아니다. 그렇게 무서워 안 해도 돼.”
웃음기가 가득 머금어져 있었다. 다른 이에게 자신의 강함을 인정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아...”
‘내가 뒤로 물러서다니? 이런 수치가 다 있나. 귀족이라면 응당 그 어떤 위험 속에서도 당당 해야 하거늘.’
아스톨포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순식간에 선조 샤를로트를 반쯤 죽일 수 있는 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걸 눈으로 보고도 마주하고 있는 아스톨포는 강한 존재였다.
“근데 팔 하나만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나도 서툰 것이라서.”
상대를 파동으로 만드는 간섭 행위는 어려운 일이었고, 매번 달랐다. 똑같이 해도 상대에 따라서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드낙으로서는 이상한 힘이 바로 파동이다. 평생을 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 또 설명해주는 과학자가 있더라도 고개를 돌리면 까먹을 것이다. 과학자의 뇌를 통해서 이해했지만, 자신의 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교수님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 이해하는 이론이 교수님과 떨어졌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이 되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강한 한 수이긴 하지. 이걸로 배신은 절대 하지 않겠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귀족인 저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스톨포가 생각하는 귀족과 드낙이 생각하는 귀족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귀족은 그렇게 믿을 게 못 돼.”
“하하. 귀족만큼 대단한 계층이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응?”
“?”
서로가 가진 귀족에 대한 배경지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스톨포는 그것도 잠시 서둘러 입을 놀렸다. 바로 아카타베루의 침공에 대해서였다.
“이번 계획은 모르지만, 항상 아카타베루는 저를 침공 40여 년 전에 다른 차원으로 보냈습니다. 이번에도 같을 겁니다. 항상 성공하는 계획을 변경할 이유는 없습니다.”
“40년이라...”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은 그를 피곤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일을 해야 하기에 짜증이 피어올라 왔다.
“지금 당장...!”
아스톨포 왕자의 말을 드낙이 끊었다.
“잠깐.”
“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다른 이계인 쪽에서도 침공이 예정되어있다. 놈들 하는 걸 보니까, 얼마 남지도 않았다.”
“허!”
아스톨포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토록 위태로운 곳인 줄 몰라서였다.
“후회하는 건 아니지?”
“이미 칼을 뽑았습니다. 후회하더라도 전 제가 약속한 일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가 대범하게 말하자 드낙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다. 그럼 당장 국제 연합 도시에 가서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라. 필요한 정보는 공개될 것이다. 네가 원하는 일도 그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게제라스 총리라던지, <검은 돔>이라던지....”
드낙이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명을 받듭니다.”
아스톨포가 고개를 숙였다. 그 눈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곧바로 아스톨포는 지하 연합의 재원을 이용해서 빠르게 국제 연합 도시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제라스 총리가 내일 뵙자고 합니다.”
고용인이 아스톨포 왕자가 쉴 곳을 내어줬다. 방의 넓이는 상당했다. 고개를 숙이고 고용인이 나갔다.
주변을 둘러보며 아스톨포 왕자는 책상에 놓인 서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알아야 할 배경지식이 최대한 집약되어 들어가 있었다.
이를 훑어나갔다.
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공된 정보’가 들어 있는 게 그 서류였다. 오로지 다종족 연합의 좋은 것만 담겨 있었다.
벌써 게제라스 총리의 명석함이 아스톨포 왕자를 사로잡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세상이군. 이곳이라면 흡혈귀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어.’
마력과 같은 초월의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생성된 것이 상위인간이라면, 피를 자원으로 이용 가능한 것이 뱀파이어였다.
우월종(優越種)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순식간에 독파한 아스톨포는 앞으로에 대해서 생각했다. 제1 목표는 당연히 아카타베루에 대한 복수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산재해있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목표는 무공을 세우는 일이었다.
‘또 다른 차원 침공이 예정되어있다. 그곳에서 우위를 점하고 무공을 세우려면...’
그의 눈이 깊어졌다.
*
공기 방울이 전혀 나오지 않는 드워프가 바닷속을 헤엄쳤다.
심해 1800m.
수압이 어마어마함에도 그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할 뿐, 어떤 괴로움조차도 없었다. 드워프의 눈이 좌우를 훑었다. 그가 입은 전신갑주에서는 빛이 잔뜩 쏟아져나오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정말 거지 같군.’
위대한 전사가문, 청동 골절. 그는 최근에 깨어났고, 곧바로 이곳에 투입되었다. 늦게 일어난 죄라고는 할 수 없었고, 누가 속인 것도 아니다. 그냥 전쟁터로 보내달라는 청동 골절의 말을 지켜준 것뿐이었다.
‘빌어먹을, 물속!’
이런 곳에서 싸울지는 꿈에도 몰랐다.
‘내가 원한 건 이런 싸움이 아니었다!’
애초에 싸움도 아니다. 마신의 종자인 나가는 그렇게 허술한 놈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다섯 번째의 비늘(복제), 세우림 수사(水蛇)조차도 싸우기 위한 반신급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전투를 전제로 한 싸움이 아니라,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드워프 전사, 청동 골절이 이런 심해까지 내려와야 했다.
‘찾았다. 빌어먹을 것!’
눈이 빠지도록 심해를 돌아다닌 청동 골절이 욕지거리를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목표물로 삼은 곳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나가들의 알들이 가득했다. 밭처럼 생긴 건 아니었고, 곳곳에 혼재되어서 어느 정도 뭉쳐진 채 가라앉아 있었다.
나가들의 알들은 심해 그 어떤 깊은 곳에 들어가도 파괴되지 않고 있었다. 그 알들의 주변에 와류 현상이 일어나며 심해의 중력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었다. 초월의 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덕에 드워프들은 끔찍한 전쟁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 몇 마리를 놓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었는데, 이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위협이었다. 이 때문에 뿔쥐들의 공중요새 건조율은 전보다 20% 떨어진 상태를 가지고 그 나머지 여력을 이곳에 투입하고 있었다.
나가 알은 드워프가 처리하고, 나가들은 뿔쥐들의 공중요새가 쫓고 있었다.
청동 골절이 혁대에 걸린 자신의 도끼를 움켜잡았다. 단번에 불꽃이 타올랐다.
부글부글!
물이 끓어오르며 공기 방울이 끝도 없이 위로 올라갔다. 타오르는 도끼에 접촉한 나가의 알은 쪼그라들더니 이내 새까맣게 타버렸다.
투웅...
짧은 발을 박차며 드워프가 날아오르듯이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다른 곳에 있는 나가알들도 처리하기 시작했다.
‘재미없다.’
그는 전투를 원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해야 하는 일이었다. 검버섯처럼 바다에 퍼지고 있는 게 나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빠르게 와류의 힘을 통해서 심해 깊은 곳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심해를 누비고 있는 빛나는 드워프를 위에서 갑자기 거대한 놈이 잡아챘다.
‘웃?’
강력한 힘에 순간적으로 청동 골절이 대처하지 못했다. 잡아채어 가는 속력이 대단했다. 척 봐도 보통 놈이 아니었다.
‘심해에 이런 놈이 있다는 보고는 없었는데?’
씨익 웃으며 드워프가 버둥거렸다. 자신을 잡고 있는 촉수를 불타는 도끼를 휘둘러서 상처를 줬다. 아무리 바닷속이라고 해도 물을 끓이고 있는 것만 봐도 보통 온도는 아니다.
촉수가 놀라며 그를 놓았지만, 청동 골절은 촉수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당겨진 촉수는 곧 심해에 떠 있는 거대한 이형체를 볼 수 있었다. 오로지 촉수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놈의 속으로 그대로 청돌 골절이 쑥 들어갔다.
물이 증발하면서 생기는 공기 방울이 거세게 피어올라 오기 시작했다.
‘맥주 마시면서 자랑할 거리가 하나 생겼군!’
자신보다 30배는 거대한 대형종을 상대로도 거침없었다. 촉수는 아무리 기를 써도 드워프 전사에게 큰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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