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25화 (92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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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아스톨포 왕자의 왼손이 순식간에 박쥐의 떼로 변해서 사방팔방으로 쏟아져나왔다. 그 숫자는 수백에서 수천으로 가히 만(萬)으로까지 이어졌다.

무시무시한 육체 변이율. 그만큼 많은 혈액이 소모되었지만, 그는 결코 ‘그림자’를 보고 방심하고 있지 않았다.

중급 권속 악마와 비견될 정도로 강해진 피숨결 검은 뿔쥐들의 역량은 상당하고, 그들의 숫자는 300마리가 넘었다. 아스톨포의 판단은 실로 정확했다.

“뻗-어-나-가-라!”

뿔쥐 하나가 고함을 쩡쩡 내뱉었다. 그가 쥐고 있는 무기에서 주력이 검신에 박혀있는 다섯 개의 문양을 하나씩 질주하며 단번에 주술로 만들어진 벼락이 다섯 줄기가 뻗어 나갔다. 다섯 줄기의 붉은 벼락은 잔가지를 치며 박쥐를 태워버렸다.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한 문장에 불과한 시동어로 가히 7문장을 읊은 마법처럼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다른 뿔쥐들도 갑자기 나타난 흡혈박쥐들을 상대했다. 워낙 털이 수북한 뿔쥐였음에도 이 작은 흡혈박쥐들의 송곳니는 대단히 길쭉했다.

“큭! 비정상적으로 이빨이 길쭉하다!”

털과 가죽을 믿고 박쥐떼의 사이로 보이는 인영을 쫓던 용맹한 뿔쥐가 다급히 소리를 내지르며 수비에 힘을 썼다. 아무리 방어구를 껴입고 있다고 해도 빈틈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거기에 뿔쥐들은 한 겹짜리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뿔쥐도 적었다.

다급히 이곳에 왔기 때문에 경장비가 대부분이다.

그 사이에 아스톨포는 건축물을 빠져나갔지만, 이내 박쥐떼에서 눈을 돌려 그림자로 변신하여 쫓아온 뿔쥐들의 추격을 받았다.

‘대처가 빠르다.’

아스톨포 왕자가 제법 놀랐다.

보통은 흡혈박쥐떼에 의해서 정신을 못 차리기 마련이었는데, 그들은 이번 상황에서의 확실한 목표를 어떤 상황에서도 꽉 쥐며 쫓아올 정도의 역량을 보여줬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 난 지금 일류 병사와 싸우고 있다.’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캠페인의 목적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서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놈들이었다.

“어둠이여...”

아스톨포가 그렇게 속삭이자, 주변에 그를 ‘보고 있는’ 뿔쥐들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뭐지?’

그들의 눈에 놈이 갈라지고, 또 갈라져서 어둠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기만술이었다.

“환영이다!”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며 너도나도 마법와 주술을 사용했다.

푸른 빛이 터지고, 어둠을 쫓는 나뭇가지가 땅에서 피어올라서 어둠의 인영을 잡아챘다. 농밀한 어둠을 나뭇가지가 잡아챘지만 허망하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환영을 찾는 푸른 구체 또한 그 빛을 잃었다.

“말도 안 되는!”

뿔쥐들이 경악했다.

그사이에 다른 뿔쥐와는 다르게 12문장을 통째로 읊은 뿔쥐의 몸 위로 붉게 타오르는 창이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아예 타격을 줌으로써 진짜를 가려낼 생각이었다.

화르르르!

화염이 이글거리는 소리는 들렸지만, 분열된 어둠의 인영에 근접했을 땐, 그 화염조차도 희미한 반딧불의 불빛처럼 나약해졌다. 그리고 그게 관통하고 지나갔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법칙을 벗어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보통 초월의 힘이라 하는 것은, 부딪치면 상쇄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불의 창이 뚫고 지나갔음에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를 힐긋 보며 아스톨포는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생성된 왼팔의 손가락으로 벽을 푹하고 찔러넣었다.

촥!

피가 터져 나왔다. 아스톨포의 피는 순식간에 벽 내부로 스며들어 가서 밖으로 뻗어 나갔고, 이내 눈이 되어서 어둠의 인영을 쫓는 뿔쥐들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검, 샤를로트.’

그것의 간단한 활용법이었다. 실체를 지니고 있지도 않은 어둠을 다루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룰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힘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초월의 힘에 사라지지 않는 어둠의 형체였다. 단점은 아무런 피해도 적에게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을 혼란케 하기는 충분했다.

‘마법을 다루고, 주술을 부린다면 저게 어떤 의미인지 알 터다.’

충격과 공포. 혁명을 마주한 사람처럼 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지.’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워 보였는데, 이내 아스톨포 왕자의 눈이 커졌다. 말 그대로 모든 걸 내던지고 돌진하는 뿔쥐들이 보여서였다. 초월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불의 창으로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근접전에 돌입하는 모습이었다.

‘허.’

아스톨포 왕자가 감탄했다.

대응이 체계적이고 막힘없었다. 마법도 통하지 않는 미지의 적과 싸우라고 명령하면 어, 어어? 거리면서 뭉그적거리는 병사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정확한 프로세스를 어떠한 주저함 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뜨나아아악!”

가장 선두로 내달린 뿔쥐가 거칠게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이 믿는 신을 찬양했다. 신앙심으로 두른 광신도적 면모는 초월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어둠의 형체를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형체가 뭉개지며 흐트러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스톨포가 말했듯이 마검(魔劍) 샤를로트(Charlotte)의 가장 간단한 응용법이며, ‘어둠의 힘(Dark power)’이라 불리는 초월의 힘 체계의 가장 기본이 ‘어둠 형체’였다.

“이것들 공격하지 않는다! 적을 찾아라! 적은 강하다!”

30마리씩 10개 조로 찢어진 뿔쥐들이 사라진 아스톨포를 찾기 시작할 때, 일과시간이 아님에도 지하 곳곳에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댕. 댕. 댕.

느릿느릿한 종소리가 울리며 위급 상황을 느긋하게 알렸다. 52번 도시에 잔류하고 있는 뿔쥐는 300마리에 불과했지만, 이곳에는 고블린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이 뛰쳐나왔다.

‘도망치지 않는다.’

반면 아스톨포 왕자는 내성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전쟁은 기만이다.’

박쥐떼와 어둠 형체를 통해서 두 번 도망친 것이 아스톨포 왕자였다. 거기에 전투라고 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적은 아스톨포가 도망쳤다고 여길 터였다.

‘그걸 뒤집는다.’

생각하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속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을 꾸준히 달리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 도주를 생각했지만, 그 도주 또한 기만으로 썼고, 아스톨포 왕자는 곧바로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한다는 캠페인을 추켜올렸다.

물 흐르듯이 만들어내는 군사전략만 보더라도 아스톨포 왕자의 역량을 강하게 보여줬다.

그가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유유하게 벗어나도 된다.

‘거대 터빈.’

크기만 해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발전기였다. 그런 걸 사용할 곳은 손에 꼽는다. 그걸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본다면, 아스톨포는 결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용히 그가 내성의 가장 깊은 곳으로 움직였다.

‘책 냄새.’

아스톨포가 코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곳으로 그가 걸어 들어갔다. 어둠을 둘렀기에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몇몇 마법과 주술이 혈주술(Blood Witchcraft)에 걸려들었지만 무시했다.

‘거대한 도서관. 역시 깊은 곳에 있었군.’

장서량은 감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책장도 10m는 되어 보였다.

아스톨포 왕자는 서적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가죽으로 잘 둘러놓은 서적이었다. 둘러놓은 가죽을 풀어내고, 제목을 확인했다.

[오크의 높은 예언 명중 확률에 대한 조사 보고서]

사락, 사락.

종이를 몇 장 넘겼다. 매우 실무적인 보고서였다. 정리되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렇기에 생생하게 이것을 쓴 자가 겪은 것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음?’

아스톨포가 책을 덮었다.

“어떻게 날 쫓아온 거지?”

“쫓아간 게 아니다. 잠복한 거지.”

30마리의 전신갑주를 입은 뿔쥐가 모습을 드러내며 아스톨포를 포위했다. 아스톨포는 이들이 어둠 형체의 정체를 가장 빨리 확인해낸 베테랑임을 알 수 있었다.

아스톨포가 확신을 가진 채 생각했다.

‘쥐라니. 쥐가 이렇게 높은 종족성을 보이다니.’

그림자를 두르고 있어도 싸우기 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이제는 확연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이저로 가려져 있었지만, 머리 형태만 봐도 그것이 쥐임을 알 수 있었고, 몇 번이나 쥐 소리를 들었기에 가능했다.

“......”

아스톨포는 자신을 포위한 쥐종족을 훑어봤다.

본래는 마왕무구를 사용했었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면서 뿔쥐들의 무기와 방어구 체계는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어서 제각각 자기가 선호하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투항하라. 항복 권유는 두 번 하지 않는다. 너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봐버렸다.”

[배불뚝 리전]에 속한 뿔쥐 30마리가 서서히 말을 하면서 아스톨포와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아스톨포의 눈동자가 좌우를 훑었다. 전사의 눈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자들이 아스톨포가 투항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마검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이 더욱 농밀하게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다.

“훌륭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서 아스톨포 왕자가 그들을 칭찬했다. 동시에 곳곳에서 어둠이 득달같이 일어나며 회오리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맞서 싸워!”

뿔쥐들이 앞으로 돌진했다.

*

“쿨쿨.”

마차에서 잠에 든 이스핀에게 작은 흙으로 빚어진 골램이 이스핀의 발 위에 올라섰다.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옷을 밟아서 지나갈 때마다 흙이 뚝뚝 묻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짓궂은 장난이었다.

“야.”

툭툭.

이스핀의 뺨에 진흙을 툭툭 묻히는 흙인형이 소리를 냈다. 발성기관이 없었음에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석지의 거인>이라 불리는 흙의 정령이었다. 드낙이 관심을 끊고 나서는 이스핀이 도맡아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어응?”

잠결에 이스핀이 볼을 손으로 닦았다. 진흙이 주르륵 내려왔다. 이내 촉촉함에 이스핀이 눈을 부릅떴다.

“뭐야, 씨발?”

“나다.”

“......나타날 땐 안 나타나더니...”

“돌이 부족해. 더 가져다 놓도록 해.”

“도와주지도 않는데 돌은 달라고 하고, 미친 거 아냐?”

“난 나보다 작은 존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말을 끝으로 흙인형이 허물어졌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져버렸다.

‘빌어먹을, 개 같은 정령 개새끼들.’

이스핀은 차마 입으로 정령 욕을 내뱉지 못했다.

정령.

천하의 개새끼란 개새끼는 모두 모아놓은 것처럼 이기적인 개새끼들이 바로 정령이라는 개새끼들이었다.

한 때는 이스핀도 석지의 거인을 살살 달래서 자신의 힘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이성이 있고 지성이 있는 정령이 노예처럼 일할 리가 만무했다. 특히 강하면 강할수록 정령이란 것들은 게을렀다.

정령술사 같은 직업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괜한 게 아니었다.

네크로맨서처럼 맹목적으로 따르는 언데드와는 달랐다.

‘무시할 수도 없고.’

틈틈이 툭툭 내뱉듯이 도와줘서다. 즉, 보험으로 치기에 좋았다. 욕을 하면 바로 나타난다는 점 또한 나쁘지 않았다. 재수 없지만 평범한 인간인 이스핀이 기댈 수 있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다니, 짜증 나는 놈.’

엘라한 가문을 찾아가서 어떻게 정령과 교감을 쌓는지 봤는데, 거기는 그냥 정령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고래의 모습을 지닌 <옹골찬 물의 정령>이 무언가 필요하면 즉각적으로 가져다주는 노예들이 엘라한 가문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덕에 엄청난 물의 힘을 다루지만, 솔직히 식솔들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다. 번갈아가면서 봉양하면 된다. 반면 이스핀은 어림없었다. 석지의 거인이라는 놈은 항상 이스핀에게 명령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새끼.’

욕이란 욕을 하며 이스핀은 드디어 국제 연합 도시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짱박혀서 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여관에서 순식간에 이스핀은 잠복하던 병사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놈들! 감히 나한테 손을 데려고 해! 어서 놓지 못하겠느냐! 내가 백작이야, 백작! 드낙님한테 전부 일러바칠 거다! 특히 너! 너 얼굴 내가 딱 기억했다! 내가 임마! 반마반신님이랑! 이 새끼야! 한솥밥 먹고! 같이 용병질도 하고! 엉!”

“헉! 그, 그게 도주의 위험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병사들이 이스핀을 다시 풀어줬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이스핀 백작이었다.

“밥은! 밥은 먹고 가야 할 거 아냐. 자네들은 했어?”

“저희는 아직...”

“내가 계산할 테니, 하고 가자.”

“네?”

“이렇게 병사가 많은데, 내가 뭘 하겠어. 어서 들어. 여기 병사들한테 최고로 비싼 메뉴 가져다주쇼!”

“예!!!!!!”

병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앉았다. 바로 식사에 들어갔다. 이스핀은 그걸 보며 바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쪼, 쫓아라!!!”

골목길을 거침없이 누비는 뒷골목 출신의 이스핀을 잡을 수 있는 병사는 없었다. 순식간에 놓쳐버리고 말았다. 병사들이 사라지자 이스핀이 욕을 했다.

“젠장할!”

‘도렌 놈! 미리 뿔쥐한테 돈을 먹였구나.’

이스핀은 자신의 정보를 뿔쥐들이 도렌에게 제공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거로 이스핀을 잡는 건 힘들었다. 도시의 구조는 이스핀의 편이었다.

‘돈도 두둑하니, 깡패 몇 놈들을 포섭해야겠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멀리 있는 게 도렌이었다. 이스핀은 자신이 절대로 안 잡힐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도시들을 놔두고 자신을 잡으러 올 도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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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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