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22화 (92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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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양초조련사 투쌩(Toussaint).

그는 훌륭히 52번 지하 도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자유로워서였다. 외부인은 딱 지킬 것만 지키면 된다.

하나는 내성으로의 진입 불가.

둘은 필요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

셋은 추가적인 세금 납부.

그 외에는 크게 터치하는 경우가 없었다.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OK.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 할지.’

오히려 범죄를 일으키는 걸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했다. 법 자체가 두루뭉술했다. 법은 중요한데 그걸 아는 사람은 적었다. 고블린과 크놀이 많이 사는 52번 도시에서 투쌩은 제법 유명했다.

길쭉한 양초를 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사가 들어왔지만, 자신의 지상 거처에서 만들어서 가져온다고 둘러대면 끝이다.

‘간단한 일이지.’

직접 그곳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다. 투쌩은 그만큼 이득을 주는 흰색 고블린이었다.

길쭉한 양초는 넉넉한 보급품에 비해서 사치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 오래 킬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서 돈벌이하며 52번 지하 도시의 모든 것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놀랍군.”

그중에서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청소부였다.

‘청소부라니...건방진.’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공공위생을 위한 직업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노예인가? 하지만 표정이 행복하다.’

이른 일과시간부터 청소부는 청소를 여유롭게 했다. 한 마리의 청소부 고블린이 해당하는 구간은 적은 편이었다.

자원이 남아돈다는 방증으로 보였지만 믿기 힘들었다.

“청소부 구경하는 백색 고블린은 처음인데!”

실제로 고블린 청소부는 흰피부를 지닌 알비노 고블린인 투쌩에게 다가와서 잡담을 떠들기도 했다.

“근데 안 바빠?”

“엉? 괜찮아, 괜찮아. 한 4시간 정도면 끝내. 최근에 이 도시에 온 외부인이라면 꼭 목욕탕을 가 봐.”

“대중 목욕탕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더욱 이 지하 도시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소부에게 추천받은 목욕탕으로 투쌩이 향했다. 지하연합의 소속에 들어간다면, 무료이며 그렇지 않다면 동화 5닢을 내야 했다. 물 이용 1닢, 내부 소비 제품에 대한 이용 2닢. 초월의 힘 대여에 대한 이용 2닢이었다.

그래서 5닢이라고 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 푼돈으로는 누리기 힘든 사치여서였다.

‘놀라워.’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로비는 넓었고, 곳곳에 마법이 깃들어있었다. 우뚝 선 조각상에는 주력이 느껴졌으며 그곳에서는 상쾌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미쳐버린 세상인가? 이렇게 낭비를 한다고?’

좋다. 분명히 좋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이런 도시가 수천 개가 된다면...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양적팽창의 끝에 도달한 사회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인구가 1억 넘으면 내수가 가능하듯이, 초월의 힘을 지닌 구성원이 일정 숫자를 넘어서면 이런 것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 너무 이상론이었다.

“어이어이, 저 녀석...목욕탕에 처음 온 것 같은데?”

“까무러치겠군. 큭큭.”

능숙하게 목욕탕을 이용하는 고블린들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건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자부심이었다.

종종 오는 외부인, 그것도 야생 고블린이라면, 여기서 100% 지하 연합에 소속되고 싶어 하게 된다.

“명심해. 친구, 피부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샤워실을 벗어나면 안 돼.”

누군가가 툭 치면서 지나가며 조언해줬다. 탈의실을 지나면 바로 샤워실이 존재했다. 그곳에서는 고블린들이 느긋하게 뿌려지는 물을 맞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뱅글뱅글 도는 놈도 있었다.

뜨끈뜨끈한 온수는 맞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났다. 한 20분은 가만히 있어도 나쁘지 않은 행위였다. 되려 20분 동안 물만 맞고 있지 않으면 싸이코패스 취급하는 것이 이 바닥이다.

“허으으....허으!”

온수를 조절하고, 그 물살에 몸을 맡긴 아스톨포 아니, 투쌩은 절로 소리를 냈다.

‘밤의 귀족’으로 태어나 살아왔고, 자신의 세상이 망하고 난 뒤에는 아카타베루의 지배 속에서 살아온 것이 그였다.

이런 온수는 자연 온천수를 보지 않고서는 경험하기 힘들었다. 혈주술을 통해서 일부러 챙겨서 하기에도 그랬다. 피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항상 그는 밖으로 나올 때, 아카타베루를 대신해서 악마세력의 첨병이 되어야 했다. 상대 차원에 찾아온 불청객의 처지에서 쓸데없이 힘을 소모할 수 없었다.

그 덕에 아스톨포는 실로 오랜만에 몸이 사르륵 녹는 것만 같았다. 평범한 온수 물을 데워서 그 물에 들어가는 것과 쏟아지는 뜨거운 물을 맞는 건 또 달랐다. 실로 사치스러웠다.

‘뜨거운 물을 그냥 흘려보내다니...’

저기에 들어가 있는 열기가 실로 아까웠다. 그리고 평범한 물도 아니었다. 그저 물을 맞는 것만으로도 때가 벗겨지고, 뽀득뽀득해졌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투쌩은 샤워실을 벗어나서 다음으로 이동했다.

“끼요오오옷!”

‘이게 뭔 소리지?’

족히 6m는 되어 보이는 큰 높이를 지닌 천장과 수많은 조각상을 구경하면서 어느 탕에 들어갈까 고민하던 투쌩이 움찔했다. 그리고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미끄럼틀이었다.

그곳에서 물이 흘러내리며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저거다. 저거야.’

그가 눈을 빛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고 있는 고블린과 크놀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미끄럼틀을 내려올 때 크게 고함을 내질렀는데, 자신은 그러지 않을 생각을 가졌다.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엄살은.’

피부색부터 확 티는 투쌩에게 직원이 지팡이처럼 짊어지고 있던 푯말을 손바닥으로 퉁퉁 두들겼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반드시 고함을 있는 힘껏 내지르며 이용하십시오. 지키지 않을 시 별도의 세금을 부과합니다. -검은 돔 중앙 위원회-]

‘뭔 미친 정책이야.’

“끼에에에에에에에엑!!!!”

“꾸요오잉이이이이잇!!!”

고블린들과 크놀들은 신나게 웃으면서 괴상한 소리를 일부러 내며 미끄럼틀을 이용했다. 재밌는 고함을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말아 올라져 왔다. 원초적인 재미였다.

성체가 되고 나서는 고함을 궭! 내지르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지하 연합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건 <카드 자유 반란>이라 불렸던 유구한 뿔쥐들의 역사 때문이기도 했다.

고작 카드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고 궐기한 뿔없는 쥐들의 반란. 이를 통해서 뿔쥐들은 스트레스 관리에 특히나 많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체면이 있지.’

아스톨포 왕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줄을 끈덕지게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전투 상황에서 위협을 하기 위해서 고함을 내지른 적은 있어도, 평상시에 재미를 위해서 고함을 내지른 적은 없었다.

한번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조금 소극적으로 소리를 내며 내려온 아스톨포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한 번 줄을 섰다. 약간 부끄러우면서도 낯간지러우면서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였다.

한참을 즐긴 투쌩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목욕탕을 빠져나갔다. 이용시간도 안 정해져 있는 게 목욕탕이었다.

‘심상치 않아. 내성으로 한 번 잠입해봐야겠다.’

즐길 건 즐겼지만, 냉철한 판단도 잊지 않았다. 이 지하 연합이라는 곳은 음흉한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제대로 파헤칠 생각을 가졌다.

투쌩은 일과시간이 끝나고 끈덕지게 시간을 기다렸다.

지하 세계는 일과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 외에는 자유 시간이고, 수면시간이었다. 그때는 횃불부터 시작해서 모든 조명이 줄어든다. 즉, 움직이기에 충분한 조건이 만들어진다.

칠흑의 코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아스톨포 왕자의 탁한 금발이 어깨로 내려왔다. 그는 목함에서 어둠의 검, 마검 샤를로트(Charlotte)도 꺼내잡았다.

이 도시의 수준을 봤기에 꺼내 들었다.

방심은 없었다.

*

자치왕국에서 그나마 여유가 있는 공왕이 있다면 바로 길게이 발데마르 공왕이었다. 그는 플래티넘의 성씨를 버리고, 드낙으로부터 2번의 성씨를 받았는데, 공왕에 오르고 나서 급히 받은 것이 발데마르의 성이었고, 이를 계속 쓰고 있었다.

플래티넘의 그림자를 바꾸기 위해서 2번이나 성을 바꾼 것이 그였다.

강철로 만든 군마가 12필이 도로를 내달렸다. 그 뒤의 마차는 거칠게 흔들렸지만, 그 마차에 앉아있는 길게이는 평온했다. 내부는 흔들림이 없었다.

깜빡 잠이 들어도 될 정도로 안정적이다.

마도 사회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게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히 잘 있다가 왜...’

피규어 병정놀이!

그것만 해도 능히 드낙의 시선을 끌어냈다. 그래서 내심 좋아하던 것이 길게이였다. 자신의 자식농사도 순풍에 오른 배처럼 즐거웠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도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어림 없이 종신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치왕국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단순히 범죄자들을 잡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실무에 임하는 이들도 범죄에 연루되면 줄줄이 낚여져서 끌려간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대비 하나 되어있지 않은 개혁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아직 남아있었다. 재판을 다시 여는 것이다. 그것이 4공왕의 선택이었다. 중범죄, 누범자만 그렇게 하고, 경범죄자는 일단 벌금 부여로 대신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드낙의 마음에도 들어야 했다. 최소 3년 감봉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괘씸죄라는 명목이다. 작게 해 처먹어도 3년 감봉! 그리고 그 금액은 전액 세금으로 돌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해 처먹은 놈들은 해 처먹은 돈의 3배를 뱉어내야 했다.

그게 바로 4공왕의 판단이다.

이는 전과는 매우 달랐는데, 상황이 달라져서였다. 인간은 갈대, 사회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이다. 대나무같이 우뚝 서 있는 건 예외로 쳐야 했다.

‘그렇기에!’

판단이 달라졌다.

전에는 종신 광산형이 제법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골렘 사업이 시작되며 광산형은 자연스럽게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하는 종신노동형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사실 종신 광산형, 종신노동형이 의미가 없었다. 사회에서 ‘소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가 더욱 중요해졌다.

즉, 전에는 생존을 위한 생산이었지만, 이제는 소비하기 위해서 생산을 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공왕들에게 있어서 큰 충격과 학문을 연구하는 문인들에게도 큰 파도로 작용했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이유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 되어서였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노동력과 생산력은 자체적이며 주도적이었다.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범죄를 저질러도 사실, 그들을 형벌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적, 종족적 손해였다.

소비하면 더 사회에 이득인데, 생산만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금액 형벌’이 주도적으로 떠올랐다. 물론 액수가 적으면 3년 감봉이며, 액수가 많으면 3배는 기본 배수였다. 수익의 수준에 따라서 많게는 10배도 될 수 있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에게 솔직히 돈은 우습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

거칠게 철마가 내달렸다. 변방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기차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도로도 상태가 좋지 않은 구간이 존재했기에 무식한 이동방법을 이용해야만 했다.

땅이 좁은 나라에서는 교통 발달이 쉽지만, 땅이 넓은 이런 곳에서는 도로 개발 사업은 정말 끝을 모를 정도로 산재한 일 더미였다. 그렇기에 변방은 아무래도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달려갔지만 드낙은 다른 도시로 가버렸다는 점이다.

“쉐도우 위스퍼에 연락을 넣었건만 왜 날 기다리시지 않은 거지?”

“그게...범죄자 놈들 돈 뺏는 재미가 상당하다며...”

길게이가 이마를 손으로 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범죄자에게서 압수한 재화는 어디에 보관 중이냐?”

“피해자에게 먼저 베풀어주고 남은 돈은 공평하게 도시 시민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길게이가 절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결국, 엎질러진 물이다. 일단 드낙이 휩쓸고 간 도시의 행정을 정상화를 시작해야 했다.

“모집 공고를 내걸어라! 도시는 지금 기쁨에 빠져있지만, 잡혀간 사람만큼 행정과 치안에 구멍이 뚫려있다. 이를 해결한다.”

“예!”

길게이 발데마르 공왕이 빠르게 도시를 수습했다. 범죄자라고는 해도 실무 능력은 있는 이들이고, 치안 활동을 펼치기는 펼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수백 명이나 사라졌으니, 알게 모르게 조금씩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터졌을 터다.’

더는 드낙을 쫓지 못하고 도시의 뒤처리를 선택한 이유였다. 잘못하면 시민들이 떼로 다니며 가게를 털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치안 인력이 적었다.

“도시에서 사라졌던 경찰 제도부터 부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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