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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뿔쥐에 의해서 명명백백히 1,200명이 가려졌다.
두들겨 맞아서 정신을 잃은 100명은 당연히 악질이었고,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다음은 그들의 하수인 300명이다. 중범죄자라고 할 만했다. 자신이 죄를 저지르는지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무거운 범죄들을 거침없이 저질렀다. 이는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었다.
단지 경제적 역병이 바로 이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면 바로 직접적 제재가 어떻게든 빨리 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했다. 또 죽이더라도 가장 의미 없는 인간을 죽였다.
인간관계도 적고.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거나 가족이나 친척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본인 스스로도 그저 민초에 불과한.
그런 아웃사이더 놈들은 순식간에 배를 가르기도 했다. 드낙은 그게 가장 기분 나빴다.
약하기에 우선순위에서 빠진다. 그러니까 처리해도 된다는 식이다. 자치왕국의 현 상황을 이용한 파렴치한 짓거리였다.
그다음에는 500명. 경범죄를 저지른 놈들이다. 자신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꿋꿋이 했다. 콩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건 대부분 월급보다 적지만, 모아놓으면 월급에 준하는 돈이었다.
내가 연봉 2배?
점점 욕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굳혀졌다. 심부름꾼이 된 것이다. 나머지 300명은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담했고, 적들의 세력에 짓눌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급류에 휩쓸린 사람들이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자, 드낙아!’
드낙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일벌백계를 사용하기로 했다. 죄가 가벼워도, 그렇게 해서 자치왕국의 자정능력을 끌어올릴 생각을 가졌다. 작게 보면 비극이다. 하지만 실효를 생각하면 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보면 이득이다.’
드낙이 독기를 내뱉었다.
“1,200명 모두 죄의 경중이 다르지만, 그 누구도 자정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1,200명 모두 종신노동형에 처한다!”
“엉엉엉.”
“안 돼애애애애!!!!”
단번에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빵 하나 훔치고 평생을 헌납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감히 환호성을 지르지 못했다. 솔직히 겁에 질려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던 300명은 불쌍했다.
배가 부르는 삶을 살 수 있었기에 불쌍함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낙에게 한소리 하는 시민은 한 명도 없었다.
드낙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장 광장에 모이게 한 1,200명은 마법으로 묶여 있었다. 아티팩트를 사용해도 상쇄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많은 마력이 깃들어있었다.
그저 상황이 드낙의 성장이 느리다고 여겨질 뿐, 드낙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수많은 신앙과 피 그리고 업을 받고 있어서였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마력은 1,200명을 속박하고도 남았다. 소규모의 간단한 아티팩트에는 상쇄도 안 된다.
목걸이나 반지에 스며들어 갈 수 있는 마법의 수준은 그 장신구의 크기에 정비례하기 때문에 소규모일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전신갑주는 중규모의 마법을 담을 수 있지만, 소규모의 마법을 여럿 담는 게 보편적이었다.
‘상위인간은 몰라도 아티팩트를 보유한 사람에게 투자하는 속박 마법의 마력량을 계산하는 건 쉽다.’
그 덕에 시민들은 드낙에게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드낙과는 다르게 마력을 보유하지 않은 시민들은 아티팩트로도 깨어지지 않는 밧줄을 봤기 때문이다. 어찌나 발악하던지 번쩍거리는 악질 놈들은 결국 제풀에 지쳐버렸다.
보유하고 있던 아티팩트가 내구력이 다하여 부서져 버린 것. 그 악질 100명 덕분에 드낙은 시민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강함을 자연스럽게 증명했다.
고로, 드낙에게 한소리 하는 시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실로 이성적인 판단에 불과했다. 인간은 감성적인 존재, 그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며, 갈대처럼 보이던 인간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대나무처럼 딱딱해진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형태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갈대에서 강철이 될 수 있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소리를 내질렀다. 시민들이 단번에 그에게서 멀어졌다.
“가까이 오라.”
그 말에 아직 뺨에 솜털도 빠지지 않은 남자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때 인파 속에서 여성의 손이 그 머리채를 잡았다.
“이놈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용히 있어야지!”
“아! 엄마! 아프다고!”
드낙이 웃음소리를 냈다. 그의 어미가 고개를 조아렸으나, 소용없었다.
“다가와서 네 생각을 말해봐라.”
“디미트리! 어서 실언이었다고 말하렴!”
하지만 그런 말에도 디미트리라 불린 젊은이는 거침없이 나섰다. 놀라운 것은 그의 친구들이 그의 곁에 모였다는 점이다.
“적어도 모르는데 죄를 짓거나, 협박당해서 가담한 자, 300명에게는 선처를 베풀어주십시오.”
“죄를 지은 건 마찬가지다.”
“서류 하나 쓴 것으로 어찌 사람이 평생을 저당 잡혀야 합니까.”
이에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 더는 이런 악질적인 놈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관계입니까? 저 불쌍한 자들은 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 하지만 저런 자들을 아무런 고통 없이 풀어준다면, 범죄자들에게 가담하는 자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억지로 했다는 걸 증명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저들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종신노동형에 처하는 것이다. 적어도 저들처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른 이들이 생각할 수 있겠지. 한 명을 벌해서 백 명을 다스릴 수 있다.”
“......”
지독한 말이었다.
“자치왕국의 인구만 해도 몇 명인가. 도시가, 성이 몇 개인가? 그들 모두에게 보여주는 경고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런 말과는 다르게 드낙은 결국 물러났다. 그는 냉혈한이라고 할 수 없었다. 특히 약자에게 약한 면모를 가진 게 드낙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다. 그렇기에 3년, 공장에서 복역하는 것으로 퉁치는 걸로 하지.”
그 말에 디미트리가 고개를 조아렸다. 진심으로 드낙의 판단에 탄복한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가담하고, 경범죄를 저지른 500명은 어림 없다. 죄는 가볍지만, 범죄자와 어울려서 도시를 타락시킨 죄는 크다. 이들에 대해서 변호를 할 사람이 있는가?”
“제에발! 제 남편을 살려주세요!”
가족들이 나왔지만 드낙은 코웃음 쳤다.
“가족 말고 변호할 자가 있는가!”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독한 말을 내뱉고, 시민에 의해서 한 번 양보한 드낙이었다. 그 덕에 상대적으로 범죄에 꾸준히 가담했던 놈들이 더 나쁜 놈으로 보였다. 하마터면 죄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300명이 종신형에 처할 뻔했다.
“뻔뻔한 놈들!”
“사람 괴롭혀서 얻은 돈으로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았던 거냐! 괴물, 괴물아!”
“괴물! 우리 도시에서 꺼져!”
변호하러 나온 가족들에게도 서슴없이 악담을 찔러 넣었다.
“병사! 관련자들의 가족을 다른 곳에 정착하도록 해라. 먼 곳이어야 한다.”
“예!”
드낙은 범죄자의 가족들에게는 선처를 내어줬다. 그들의 삶은 앞으로 더욱 팍팍할 것이다. 그 외의 어떤 도움을 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미 식량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굶어 죽지는 않을 터다.
‘세 끼를 굶으면 공자도 남의 담을 넘는다.’
식량으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되고 나서 경범죄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 덕에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지, 생각보다 남부인의 유입이 자치왕국의 행정력을 크게 마비시킨 듯했다.
‘내가 제대로 활약해서 자치왕국을 정상화 시켜놓아야겠어.’
안 그래도 하자가 많은 게 인간이었다. 신성력에 장기간 노출되면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마련되며 상위인간(上位人間)이 될 수 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하자라고 할 수 있었다.
단점이다.
엘프는 태어나면서 마력을 지니고 태어나고, 오크들은 주력을 품고 태어나는 비율이 나쁜 편이 아니다. 애초에 주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도 헤라클레스처럼 어린 나이에 독사는 간단하게 두 쪽 낸다.
‘그렇다고 드워프와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가히 반영구적인 효과를 내는 드워프의 손길을 지닌 드워프는 모든 종족 중에서 가장 위에 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 이렇게 타락해버린 도시를 보며 드낙은 착잡함과 사명감을 느꼈다.
인간으로 태어나고, 죽고. 또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애착은 다른 존재가 보기에는 실로 비정상적이었다.
‘신제국이 옳았을지도 모르지.’
드낙은 이런 상황을 겪으며 세파리아스를 생각했다. 그는, 이미 이를 예상하는지도 몰랐다.
[신념 있는 인간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을 벌레로, 고기로, 자원으로 생각하는 초월자에게 한 방 먹인다.]
많은 순찰자가 신제국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끝없이 ‘적’이 있어야 하고, ‘신념’을 가져야 할 상황이 되어야 했다.
신전론(神戰論)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초월적 존재와의 전쟁을 위해서 존재하는 국가의 탄생이다.
‘이렇게 타락한 도시를 보니까,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적이 나타나면 뭉치는 것이 인간이었다. 불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관들의 신념은 평범한 사람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들 또한 평범한 인간이기에 PTSD를 겪고, 필요한 조치를 못 받아서 자살률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음에도 그들이 지닌 용맹함은 영웅이라고 할 만했다.
세파리아스의 접근법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 빼고는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근데 세파리아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음.’
멋지지만 그걸 내가 해야 한다면?
‘어휴, 말도 하지 마라.’
검 하나 꼬나쥐고 초월자에게 덤빈다? 멋지긴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하기에는 많이 무섭다. 응원은 쉽지만, 진짜 실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남에게 100만 원 기부하는 것도 솔직히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내 손에 있는 걸 남에게 주는 일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큰 결단을 요구한다.
*
“아얄타아아아아!!!”
오크 전사 부르칸 볼(Burkhan bol, 거대한 오금)이 그대로 돌진했다. 도적들은 너도나도 몸을 던졌다. 무식한 체격만 봐도 싸울 마음이 싹 달아났다. 무기를 버린 채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 모습에 부르칸 볼이 콧김을 내뿜었다.
“이런, 새끼들! 적어도 한 번은 부딪쳐야지!”
방패로 쿡쿡 눌렀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엘프 아네트(Annette)가 그를 제지했다.
“그만 괴롭혀. 불쌍해.”
마을에서 징집된 자경단 15명이 서둘러 도적놈들을 꽁꽁 묶었다. 어찌나 밧줄을 많이 준비했는지 애벌레가 되어버렸다.
“흐읍! 읍!”
입도 잘 묶어줬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다.
“바로 진입한다. 도적 숫자는?”
오크 전사의 말에 엘프가 정보 마법을 펼쳤다. 아스톨포는 전혀 걸려들지 않았다. 애초에 혈주술(Blood Witchcraft)을 다루는 존재가 있다는 걸 상정하지 않은 정보 마법이었다.
마력은 항상 한정된 자원이었기에 무조건 좋은 것만 쓸 수 없었다. 코스트를 잘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력 탱크를 짊어지고 다니지 않는 이상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다.
깜빡, 깜빡.
아스톨포는 눈을 깜빡였다.
‘얻은 게 없다.’
그냥 강하다. 솔직히 산적이 왜 있는지 모를 정도로 허무하게 입구를 진압했다. 소란이 안쪽에서도 느껴졌지만, 오크와 엘프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미련을 못 버린 아스톨포 왕자는 끝까지 그들을 따라다녔다.
“항복! 항복이요.”
제법 무장한 자들도 오크 전사의 떡대를 보고는 무기를 버렸다. 그 뒤로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두목이라는 놈은 선동하려다가 도끼가 머리에 박혀서 죽어버렸다.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 이후로는 사정청취였다.
“왜 도적단에 들어간 거냐? 고기도 공짜로 주는데.”
“세뇌약이 들어간 고기는 먹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이 새끼가...왜 반말해? 어엉?”
“죄, 죄송합니다.”
부르칸 볼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입을 싹 다물면서 눈을 깔았다. 역시 덩치가 크면 삶이 편한 법이다.
‘선동과 날조로 도적단을 꾸리다니, 제법인데?’
아스톨포는 죽은 산적 두목이 아까웠다. 훌륭한 하수인으로 써먹을 수 있는데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놈을 되살리는 건 네크로맨서이지,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다 연행한다.”
그걸로 끝이었다. 황당할 정도로 쉬웠다. 돌아가는 길에 부르칸 볼이 히히덕거리며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한창 떠들어대었다. 아스톨포는 그들과 갈라져서 거대한 지하 통로로 돌아갔다.
‘이렇게 거대한 통로를 만들 종족은 고블린 뿐이다. 거기에 딱 봐도 거대한 세력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하다...’
고블린이 이만큼의 지하 통로를 만들었다면, 전쟁이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다.
‘조사할 가치는 있다.’
밤의 귀족답게 귀신같이 냄새를 맡았다. 바로 음모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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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맛있게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