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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감사합니다. 산적 토벌에서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조심히 가쇼.”
“큰 성이나 도시에 일자리가 많을 거에요.”
오크와 엘프의 덕담을 들으며 아스톨포 왕자가 걸어갔다. 15명의 징집병과 함께 부르칸 볼과 아네트 또한 산채로 향했다. 그리고 아스톨포 왕자가 모습을 감추자 엘프가 백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촤르르르!
백금 카드의 윗부분이 실처럼 변하면서 허공으로 치솟았고, 이내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형식으로 본다면 양각(陽刻) 마법진의 일종이었다.
정보 마법진은 단번에 주위를 훑었다. 약 3km를 확인하는 간단한 정보 마법이었다.
“어때?”
“천천히 이동하고 있어.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면 될 것 같아.”
“조금 더 확인해야지. 되돌아올 수도 있는데.”
오크의 말에 엘프 아네트가 수긍했다. 그들은 30분 이상을 정보 마법을 통해서 아스톨포의 동태를 살폈다. 이렇게까지 신중한 이유는 부르칸 볼이 무언가를 느껴서였다.
“예사 놈이 아니야. 확실히 뭔가가 있어 보였어.”
야만 종족의 촉.
그건 아무리 아스톨포가 기품과 예절로 가린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면 아네트는 깨닫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크 부르칸 볼(Burkhan bol, 거대한 오금)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이유를 들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야만적이기에 오크의 직감은 쉽게 넘길 수가 없다.’
30분이 소요되지만, 그걸로 확신을 가지면 더 이득이었다. 실제로 아스톨포는 꾸준히 멀어져갔다. 이내 마법을 접었다.
쿵! 떡!
오크 전사가 씨익 웃으며 손을 꽝 치고 주억거렸다.
“좋아, 이제 도적을 털어버리러 가볼까?”
그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하게도 아스톨포는 마법의 기척이 사라지자 몸을 뱅글 돌렸다.
혈주술(Blood Witchcraft), 블러드 디텍트(blood Detect).
그의 몸 밖으로 삐져나온 핏방울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는데, 이를 통해서 마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정보 마법 또한 마법의 계통. 그 여파는 블러드 디텍트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블러드 디텍트는 정보 마법과는 다르게 오직 아스폴트 왕자의 몸 밖 1m에만 떠 있는 것이라 들키기도 힘들었다.
‘말도 안 된다.’
혈주술에 사용된 피를 다시 회수한 아스톨포는 당황함을 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거친 길을 통해서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정보 마법이 발현되었다.
‘말도 안 돼.’
그 뒤로 30분이나 지속되었다. 가볍게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1.5km를 걸었음에도 아스톨포에게 닿았다.
‘즉. 즉발형 마법임에도 1.5km에 닿았다.’
혈주술(Blood Witchcraft)로는 능히 가능하다. 피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프의 마법은 다르다.
‘적의 엘프는 수준이 높은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이번 기회를 그냥 날릴 수는 없지.’
무엇보다 엘프, 오크, 인간이 같이 다닌다는 게 황당했다. 보통 세계가 아니었다.
스스스.
아스톨포의 몸에서 피로 된 안개가 서서히 배출되기 시작했다.
블러드 핸드 디셉션(Blood Hand Deception).
안개의 형태는 한 번 그렇게 쫙 나왔다가 손에서만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소실되어갔다. 초월의 힘을 속이기 위한 간단한 혈주술이었다.
다른 마법 계통의 경우에 초월의 힘을 속이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이 요구되지만 ‘밤의 귀족’에게는 기본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혈주술을 배우지 못한 자연 발생의 경우에도 피를 흘리면 알아서 숨겨질 정도로 은신성이 높은 게 흡혈귀의 피다.
그 상황에서 빠르게 움직여서 아스톨포는 다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크의 수준이 아득히 높다!’
처음에는 흉터도 그저 오른쪽 눈에만 있고, 그마저도 실명이 안 되어서 대단치 않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경험이 많은 오크 전사였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기척 감지에 대한 감각이었다.
‘자연스러운 바람과 인위적인 움직임으로 생기는 소리를 구별할 줄 안다.’
바람의 방향 그리고 속력에 따른 소리의 다름.
무작위 하게 늘어진 수풀과 나뭇잎에 따른 소리의 다름.
그걸 구분할 줄 아는 오크 전사였다.
‘타투(Tatoo)에는 기척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오크의 타투!
녹색 도끼가 내려주는 은총이었다. 아카타베루 때문에 오크와의 전투도 제법 경험한 것이 아스톨포 왕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오크가 아님에도 오크 타투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
그런데 관련 타투가 하나도 없었다. 즉, 순수하게 저 오크의 실력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아스톨포는 전혀 몰랐다.
바람을 막아주는 집.
따뜻한 스튜와 스프.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가족이나 연인.
그런 모든 것을 포기한 신념 있는 인간에게 시달렸던 것이 오크, 부르칸 불이었다. 나이가 찼지만 신성력 덕분에 늙어 보이지도 않았다. 오크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신성력을 인간보다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는 곧 노화를 막아줄 정도로 많은 신성력을 부여받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덩치가 작으면 많은 신성력을 받을 수 없기에 노화가 사라지는 효과까지는 받지 못하는 게 인간이었다. 나약해서 수술을 못 받는 환자가 바로 인간이라는 저열하고 열등한 종족이었다.
물론 그런 인간의 몸으로 80살 먹은 부르칸 볼의 오른쪽 눈을 앗아간 순찰자 덕분에 오크 전사는 자연의 소리를 더욱 잘 듣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열하고 열등한 하등 종족 덕분에 성장을 이룩해냈다.
그래서일까, 부르칸 볼은 용병이 되어서 자치 왕국을 도와주고 있었다.
여기에는 아바크 안치-인(Avakh Anchin, 가져가는 사냥꾼)이라 명명된 순찰자가 큰 역할을 했다. 이미 30년 전에 죽었음에도 그 손에 오른쪽 눈이 사라진 늙은 오크들은 용병이 되는 편이었다.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였다. 신제국을 가든 자치 왕국을 가든 똑같은 이유로 인간들의 사회로 향했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워서 오크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알아차리겠다.’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빈도가 높아지는 부르칸 볼을 보며 아스톨포 왕자는 따라가는 걸 포기했다. 다신 앞서나가기로 했다.
순식간에 박쥐로 변한 아스톨포가 입에 목함의 손잡이를 물고, 뒤로 한껏 물러났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무를 아슬하게 스칠 정도로 저고도로 이동하여 크게 왼쪽으로 빙 돌아갔다.
초음파를 통해서 순식간에 동굴을 찾아냈고, 그 근처 땅에 착지했다. 작은 박쥐들이 그의 몸으로 다시 들어오고, 거대 박쥐의 모습이 인간 형태로 변해갔다.
탁한 금발이 쭉 흘러내렸다.
자연 동굴이지만 인위적으로 입구를 막아놓고, 넝쿨을 심어서 잘 은폐시켜 놓았지만, 정보 마법 때문에 오크와 엘프 및 자경단은 그곳으로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래서야 들키겠지.’
고민하던 아스톨포는 다시 한 번 짐승으로 변했다. 늑대로 변한 아스톨포는 나무 한 그루를 표적으로 삼고 그 밑동을 파기 시작했다. 그 속력은 대단히 빨랐다. 평범한 늑대였지만 발톱으로 한 번 스윽 그으면 무처럼 흙이 파여졌고, 단번에 뒤로 향했다.
늑대의 숫자는 3마리에 불과했다. 선두의 늑대가 파서 뒤로 보낸 걸 계속 보냈다.
순식간에 땅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땅굴을 파놓고, 도적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지하에서 훔쳐볼 생각을 가졌다. 동시에 염탐해서 대화도 엿들을 생각이었다.
후두두둑!
‘응?’
갑자기 땅이 팍 꺼졌다. 거대한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뚝 떨어진 아스톨포가 주위를 살폈다.
‘뭐지? 흑마법사의 거처인가? 고블린? 일단은 보류다.’
크기는 가히 3m는 되어 보이는 큰 지하 통로였다. 호기심이 아스톨포를 자극했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엘프와 오크였다. 다시 되돌아가서 이곳을 다시 잘 막아놓고, 굴을 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굴을 파면서 공간이 더욱 생기자 아스톨포는 더 많은 늑대로 변했다. 크기는 그대로였고, 머릿수만 늘어났다. 그 숫자는 땅굴이 길어질수록 많아져갔고, 이내 300마리에 달했다.
회색늑대들은 모든 작업을 마치고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아스톨포는 전신을 손으로 털며 흙먼지를 걷어내고, 도적단이 거점으로 잡은 동굴 아래에서 가만히 대기했다.
도적들이 떠드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무릎에 화살만 맞지 않았어도 이렇게 경비만 서지 않았다니까. 딱 말 한 마리 타고? 엉? 멋지게 칼 하나 쥐고. 응? 딱!”
“지랄하지 말고, 밧줄이나 만들어.”
*
뿔쥐 정보원으로부터 들은 현상황에 드낙인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뿔쥐들의 기술 발전이나 산업 활동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쉐도우 위스퍼는 이제 정보만 제공해주는 단체로 격하되었다. 다종족 연합을 위해서 이것저것 했지만, 서서히 경쟁 구도로 가면서 뿔쥐 또한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물론 이는 전부터 전조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의 신제국 때문에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게 되었다.
즉, <검은 돔>에서부터 내려진 뿔쥐 중앙 정치가 확실하게 ‘쉐도우 위스퍼는 앞으로 정보만 제공한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를 열람하는 것 또한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 떠먹여 주는 것이 찾아서 먹는 것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뿔쥐는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는 건 다 말해주겠다는 소리였다.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오로지 다종족 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는 드낙을 위해서였다.
공짜 정보를 열람하는 것도 귀찮아한다면 그냥 망해야 하는 게 옳았다.
“해결은 현지에 맡겼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정보는 요청만 하면 내어줍니다.”
“시장이 타락했지 않나.”
“그 또한 다른 곳에 말을 해놨습니다. 다만, 자치 왕국은 특히나 일감이 몰려있어서 처리 속도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지배력도 신제국에 비해서 4등분 되어서 낮은 편이었다.
이를 모두 전해들은 드낙은 상황을 정리했다.
‘현 자치왕국은 엉망진창이구나.’
어느 정도 국가의 틀은 있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반면 인력은 항상 부족했다. 남부인의 유입 때문이다. 이민을 대거 받아들이고 그들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역량의 7할 혹은 8할을 써야 했다.
“내가 나서야겠어.”
자치 왕국은 그냥 내버려둔 상태였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닭꼬치 10개.
사치 중의 사치!
그걸 엎어버린 놈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당연히 이를 격퇴하면 시민들은 드낙을 칭송할 것이 틀림없었다.
“범죄를 저지른 놈들의 목록을 죄다 내놔라. 아니 나랑 같이 가자. 어떤 놈부터 잡아야 하느냐?”
“예. 여기 도시 지도를 보시면...”
드낙은 가장 먼저 머리를 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놈들의 재산이었다. 가장 먼저 당한 건 시장의 비밀 창고들을 지키는 범죄자들이었다.
“야이 새끼들아! 빨리빨리 옮겨!”
어찌나 빤스런의 귀재들인지 벌써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뿔쥐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놓쳤을 것이 분명했다. 드낙은 시장을 노려서였다.
휘리릭!
단번에 도망치려는 범죄자들이 마법에 의해서 묶였다.
“비, 빌어먹을!”
마차에 올려져 있는 사람 팔뚝만 한 보석함을 하나 쥔 범죄자가 그대로 도망쳤지만, 손발이 단번에 마법 밧줄에 의해서 묶였다.
“에잇!”
펑!
아티팩트를 사용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초월의 힘이 서로 충돌해봤자 드낙의 마법은 전차나 다름없었다. 깨질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오랜만의 깽판이었다. 마력을 마음껏 사용했다.
와장창!
창문을 깨고 도망가는 놈들 또한 모두 사로잡혔다.
“창고 하나에 30명? 뭐가 이렇게 많아?”
“고용된 놈들입니다. 아직 이 창고를 지키는 도둑놈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부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마법을 통한 수색으로 다락방에 숨어있는 3명을 그대로 잡아들였다. 그들은 애새끼처럼 울었는데, 광산종신형 혹은 평생 공장에서 족쇄를 찬 채로 물건을 생산하는 종신노동형에 처할 것이 분명해서였다.
“얼마나 해 처먹은 거야?”
온갖 재물이 든 창고만 해도 다섯 곳이 넘었다. 서서히 경제의 규모가 커졌기에 능히 가능한 일이었다. 별채 14채에서 종사하는 이들도 일단 모두 속박했다. 별채에 있는 돈 될만한 걸 들고 튀려고 해서였다.
시장은 도시에서 15km를 도망치다가 그대로 잡혔다.
“안돼애애애! 안 돼애애앳!”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해서 드낙이 뺨을 두 대 후려쳤다. 이빨이 후두두 날아가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단 3시간 만에 1,200명을 잡았고, 이들 모두 병사들과 시민의 손에 이끌려서 중앙광장에 모였다. 그중에 100명은 벌써 얻어터져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시민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뿔쥐, 죄를 저지른 놈과 그러지 않은 놈을 가려내라.”
“뜨낙!”
뿔쥐가 걸음을 옮기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이를 드낙이 뒷짐 지고 지켜봤다.
“너! 11살 난 소녀를 겁탈하고 우물에 빠뜨려 사고처럼 꾸민 죄!”
“헉?”
드낙을 맨 처음 알아봐서 제법 개념 있어 보이는 병사가 헛바람 소리를 냈다. 드낙이 고개를 홱 돌렸다.
“11살? 야 이 개새끼야!”
바로 헥토파스칼 킥이 날아갔다. 쓰러진 병사에게 시민들이 들러붙었다.
“읍, 흑! 자, 잠깐만요! 저는 결백합니다!”
“괴물! 우리 마을에서 꺼져!”
인파에 휩쓸린 병사의 목소리가 시민들의 욕설로 파묻혔다. 사람들이 씩씩거리며 물러났을 때 이미 병사는 죽어버렸다. 뿔쥐는 묶여 있지 않은 병사를 그렇게 처리하면서 자신을 드높인 다음에서야 묶인 사람들 앞에 섰다.
그 앞에 선 고용인이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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