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16화 (91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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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아스톨포 샤를로트 왕자는 그렇기에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신이 죽었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악마와는 다르게 정신체의 상태를 지닌 신은 시간선을 꿰뚫어보며 최선의 선택이 가능했다. 물론 그것은 만능이 아니다. 시간은 공간에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 미래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원사가 바로 신이었다. 인간을 가꾸고, 생명체를 가꾸는 초월자.

작은 마을의 상태만 잠깐 본 것만으로도 아스톨포 왕자는 신을 느꼈다.

‘아아, 진정으로 그렇다.’

가장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 가장 사회에서 멀어져 있는 촌동네에도 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며, 불쌍함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곧, 자비(慈悲)다.

‘주사위를 여기서 던질까?’

신이라면,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의 피를 뽑아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흡혈귀는 인간이 없으면 안 되지만, 굳이 인간을 죽이지도 않는다. 밤의 귀족이 될 수 있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뱀파이어는 ‘귀족’이라고 불리는 만큼 될 수 있는 인간은 10만 명 중 1명이 될까말까의 확률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아스톨포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자가 맞아야 했고, 기질이 맞아야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적인 성질을 지닌 인간 중에서 고르고 고른 자만이 흡혈귀가 될 수 있었고 흡혈귀가 그런 기질을 지닌 인간을 흡혈하는 확률 또한 낮다.

그렇기에 충분히 뱀파이어도 전력이 된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카타베루의 침공 소식을 알린다면, 살아남고 샤를로트 가문을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너무나도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비관적인 것보다는 100배 나았다.

피를 마셔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를 위해서 인간을 죽이는 건 밤의 귀족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흡혈귀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지껄이는 헛소문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낙관적인 이유.’

그림자의 존재.

‘쥐 소리를 내면서 날 현혹시키려고 했지만, 그 덩치에 쥐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강력한 적의와 살의는 날 것 그대로였다. 척 봐도 악해 보이는 존재였고, 어둠의 존재였다. 그런 놈이 선한 세력의 편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스톨포 또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놈은 아니다.’

아스톨포는 그 그림자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바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천장에서 뚝 떨어졌었다. 어둠의 힘조차도 살짝 위치를 잘못 파악할 정도로 은신의 귀재였다.

‘농밀하게 한다면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지만, 그래서야 본말전도다.’

어둠의 검, 샤를로트라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흡혈귀의 피를 통해서 힘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림자 존재 덕분에 아스톨포는 그 완벽한 신과 교섭을 하고, 기회가 된다면 복속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고위 흡혈귀이기에 반마급인 존재가 아스톨포 왕자였다.

충분히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지.’

전체적으로 호탕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호탕과 호구는 한 가닥 차이다. 지배자는 호구끼가 있어야 했다. 1조 예산을 지닌 자가 1억을 아까워하면 안 되는 법이었다.

‘작은 촌동네까지 골램과 초월의 힘을 보급해주는 곳이다.’

능히 인간의 피를 수혈해서 흡혈귀에게 주고 그들을 용병처럼 굴릴 판단을 할 수 있어 보였다. 그림자 존재와 다를 바 없다.

아스톨포는 판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에 걸음을 옮겼다. 검은 코트는 밝은 황토색으로 변해갔다. 기괴한 현상이었지만 보는 자는 없었다. 걸어가던 아스톨포가 숨을 죽였다.

멀리서 보이는 강렬한 마을의 빛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야영지의 모닥불이 나무 사이로 비쳐서였다.

조용히 아스톨포가 접근했다.

‘응?’

척 봐도 거인이라고 말할 법한 체격의 오크가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틈틈이 모닥불에 놓아둔 뜨거운 술을 마시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다시 밤하늘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맥에서 살았던 시절보다 평야와 바다에서 사는 시절이 오크를 더욱 비대하게 만들었다. 산을 돌아다니면 칼로리 소비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오크 전사의 덩치는 더욱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사각방패가 비스듬하게 나무 의자에 걸쳐져 있었고, 오크 전사가 맨 혁대에는 도끼가 여러 자루 걸려있었다.

아스톨포는 더 접근하려고 했지만, 그의 기감에 마법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결국 더 접근하지 못하고, 모닥불의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모닥불의 불 속에 숨겨져 있는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게 주위에 마법을 걸고 있군.’

자세히 뭔지는 몰랐다.

그때 오크가 일어서서 발로 툭툭 자는 한 놈을 건드렸다. 제법 큰 모닥불 주위에 오크 전사까지 합치면 17명의 사람이 자고 있었다.

“음. 벌써 교대인가?”

“그래. 망할 귀쟁이 놈아, 늦장 부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

“왜 그렇게 신경질이야? 내기에서 진 건 너잖아. 전사답게 호탕하게 받아들어야지.”

“흥이다. 흥.”

오크 전사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잔뜩 삐진 상태였다. 얼굴까지 모포로 덮고 있던 자가 말을 하며 자신을 드러냈다. 아스톨포의 눈이 커졌다.

말끔한 금발은 모닥불의 주홍빛에 잔뜩 물들어서 화려하게 빛이 났다. 새하얀 피부와 꾸밈없어도 확실한 이목구비는 수려한 외모를 만들어냈다. 딱 봐도 미녀였다.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귀가 아스톨포의 눈에 담겼다.

‘엘프?’

엘프!

대악마 아카타베루에게 지배당한 아스톨포는 흡혈귀이면서도 많은 차원과 별을 경험한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엘프는 실로 두려운 존재였다.

종족우월주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높은 종족값.

태어나는 모든 개체가 마력을 품고 태어난다.

엘프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성의 수준이 한 단계 격상된다. 그만큼 엘프는 뛰어난 존재였다. 정령술부터 시작해서 궁술과 무술을 단련하고 수명도 길어서 고명한 마법사이자 연금술사였다.

‘근데 스태프가 없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엘프는 무기 하나 갖추지 않은 모습이었다. 말끔한 백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띠 하나 찬 것이 전부였다.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학자라고 하기에는 불침번 당번이다.’

보통 전투력이 없는 사람에게 불침번을 세우지는 않는다.

‘애초에 엘프와 오크라니?’

손발이 덜덜 떨렸다. 보통은 강대한 존재가 침략하고 나서야 맺어지는 게 엘&오 연합이었다. 서로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크어어어어!”

오크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고민 끝에 아스톨포는 그들과 합류할 생각을 가졌다. 수틀리면 도망치면 될 뿐이고, 고작 17명에 불과했다.

“저기요?”

아스톨포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멋진 목소리에 엘프가 벌떡 일어났다. 단번에 백금 카드가 허리띠에서 자동으로 뽑혔다. 그리고 순식간에 백은의 롱소드로 변했다.

“오.”

아스톨포가 작게 감탄했다. 실로 진귀한 아티팩트였다.

‘엄청난 신분의 엘프인가?!’

작은 백금 카드가 롱소드가 되다니?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즉, 상대 엘프는 어마어마한 신분일 것이 분명했다.

“도망치시는 중입니까? 걱정마십시오. 저는 추격자가 아닙니다.”

아스톨포의 말에도 엘프는 사람들을 깨웠다. 그 모습에 아스톨포 왕자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실로 여유로웠다.

“꼭 내가 불침번 끝내면 꼭 이런다니까.”

오크 전사가 거칠게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외쳤다.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

단번에 그곳으로 방패와 도끼를 움켜쥐고 돌진했다. 어둠 속에서도 오크의 우월한 신체능력은 빛을 발했다. 단번에 도끼가 투척되었다.

휙.

아스톨포는 가볍게 이를 피하며 옆으로 물러났다. 나무 뒤로 움직였다. 시야가 확 가려졌다. 이에 오크는 씨익 웃었다.

“제법이구만. 산적은 아닌데, 뭐하는 놈이냐?”

“마을로 가는 중에 모닥불 불빛이 있어서 온 것뿐입니다.”

아스톨포의 말에는 전의(戰意)가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았다.

“아얄타!”

반면 오크 전사는 제법 싸울 줄 아는 놈의 등장에 흥이 돋았다. 엘프는 백은의 롱소드, 굉장히 휘황찬란한 예장검을 쥔 채 마법을 읊기 시작했다.

문장은 겹겹으로 쌓이고, 이내 곳곳으로 작은 빛의 구체가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시야를 단번에 확장했다. 이내 아스톨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결국 오크 전사가 콧김을 내뿜으며 멈췄다. 10여 초를 덤볐지만, 상대는 피하기만 해서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

“뿔쥐들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드낙이 툴툴거렸다.

그는 현재 자치왕국의 도시 중 한 곳으로 위치를 바꿨다. 작은 촌동네에서는 딱히 할 것이 없어서였다. 기간을 두고 한 곳을 옮겼기에 정보가 다른 곳으로 엉뚱하게 갈 일은 없었다.

‘닭꼬치나 먹으러 가야겠다.’

드낙은 시장으로 향했다. 절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고기 단가가 싸지면서 요식업계는 그야말로 호황, 호황, 호황이었다. 사람들도 굳이 직접 해먹지 않게 되었다. 싸게 사 먹으면 그만이다.

고객이 많아지면서 더더욱 단가는 내려가고 있는 추세였다. 대량 판매가 가능해지고, 경쟁자가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였다. 그중에서도 시장은 그야말로 요리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꿀꺽.’

닭꼬치의 냄새에 드낙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닭꼬치.

이곳의 닭꼬치는 평범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닭을 굽다가 어느 정도 익혀지면 마지막에 살짝 야채 기름을 발라준다. 야채를 우걱우걱 부순 것들이 닭꼬치에 들러붙어 있는데 그마저도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스 또한 달달하고 짭조름하며 살짝 매콤하다.

쓰리패턴 소스라고 불리는 이 소스는 드낙의 명령하게 만들어진 국가 소스였다. 물론 그 타입만 해도 지역적으로 다르다. 재료의 수급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지역마다 소스가 조금조금 다른 풍미를 지닌다!’

맛집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스는 쓰리패턴 국가 소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취향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앉은 드낙이 단번에 오더를 넣었다.

“여기 닭꼬치 10개!”

일단 딱 10개만 주문했다. 그리고 드낙은 요리를 기다리며 추억에 잠겼다. 시끌벅적한 시장의 소음은 옛날 생각이 툭 삐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박호훈의 추억.

‘부모님에게 70드리고 난 90만 원으로 살았었지.’

궁핍했기에 부모를 버리고 싶은 마음도 매월 찾아왔었다. 160만 원이면 혼자는 어떻게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노후 준비가 안 된 흙수저 부모님에게 70만 원을 드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부모를 버리는 것도 이기심이 커야 하고, 결정력이 있어야 했다.

드낙은 그저 상황에 휘둘리는 민초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자기 삶을 중시하는 친구들이 네 인생을 살라고 말해도 그걸 실천할 수는 없었다.

‘말은 쉽지.’

말은 쉽다. 그리고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한 이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고, 친구라고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상처였다.

박호훈은 그저 발판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쉽게 밟을 수 있는 발판이었다.

‘진수성찬을 그간 많이도 먹었지만, 이렇게 감상에 빠지는 건 처음이군.’

이 시장, 이 분위기 그리고 닭꼬치 10개.

적당히 서민적으로 사치스럽기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닭꼬치 10개 나왔습니다!”

젊은 청년이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드낙의 앞에 닭꼬치를 대령했다. 길쭉한 사각형의 접시에 나란히 올려진 닭꼬치의 개수는 무려 10개.

드낙은 소스를 뿌리고, 닭꼬치를 한입에 쭉 입에 털어 넣었다. 닭이 한가득 입에 들어갔다.

“움냠냠.”

살면서 닭꼬치를 먹은 적이 잘 없었다. 거의 집밥을 먹어야 했다. 식비를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해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국이었다.

‘맛있다.’

진수성찬은 드낙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동떨어져서였다. 하지만 닭꼬치는 드낙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지금 생각하면 그저 재밌는 추억거리였다.

자신이 성공했기에 재밌다고 여길 수 있었다.

“여기 맥주도 하나!”

“예이!”

그렇게 맥주를 딱 시키고 다시 닭꼬치를 입에 가져가며 눈을 감았다.

‘한 30개만 더 먹고 가야지. 오랜만에 먹으니까 더 맛있네. 옛날에 못 먹은 만큼 많이 먹어야겠다. 히히.’

그때, 소란이 일어났다.

와장창!

드낙의 테이블이 뒤집혔다. 닭꼬치 하나가 드낙의 얼굴에 턱 맞고 주르륵 떨어졌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야이 개새끼들아! 닭꼬치가 넘어가냐! 자릿세를 내야할거 아냐!!! 쉐도우 위스퍼 믿고 깝치냐? 내가 아직도 살아있는 걸 보면 모르냐!!! 내가 바로 쌍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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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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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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