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15화 (91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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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나 강림.

드낙이 천둥과 벼락을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오우거 리고의 벼락 이동술의 임팩트를 고스란히 표절한 드낙의 등장씬은 간지가 철철 넘쳤다.

‘원래 표절이 더 멋있는 법이지.’

“여기에 최근 들어온 방랑자는 어디에 있느냐.”

그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중에 아줌마가 하나 나서서 말했다. 실로 당찬 모습이다. 자신이 어떤 자의 앞에 서 있는지 체감을 못 하는 모습이었다.

“아스톨포라면 떠났는데요.”

“언제?”

“바로 어제 저녁에요. 그간 신세를 졌다고 인사를 그렇게 했다니까요. 그래도 여자를 그렇게 많이 눈물 흘리게 하고 가는 건...아, 왜? 잠깐...!”

그렇게 말한 아줌마가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사라졌다.

‘떠나?’

드낙이 어리둥절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날라왔다. 그의 파동 이동술은 말 그대로 빛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세상을 속이는 순간, 물질에서부터 벗어나 파동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빨리 이곳에 올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즉, 얻어걸릴 수밖에 없다.

말 타고 15일 거리를 단 1초 만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안 통했다?’

운이 나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교미반신 놈이라더만, 계획이 있었나보네...’

경계심을 높였다.

촉이 왔다.

최대한 빨리 움직였지만, 놈은 음흉한 구석이 있었다. 그 음흉함은 귀족적인 음흉함이다. 여유로움 속에 빨리 움직이고, 분노 속에 이득을 생각한다.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처럼 귀족적인 음흉함이 보였다.

교미하는 반마급이 갑자기 사라진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기만이다.’

“아스톨포에 대해서 말해봐라.”

드낙은 사람들로부터 아스톨포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표면적인 아스톨포에 대해서 알 기회였다.

“여자에 환장한 놈이죠.”

“안 건드린 여자가 없습니다.”

“근데 미녀는 또 쉽게 질려해서 신기한 놈이었죠.”

“추녀는 그래도 안 건드리더라.”

“남자한테 치근덕거리는 미친놈입니다.”

남자들은 여자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아스톨포에 대해서 딱히 나쁜 감정이 없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녀들의 질투를 유발하게 해서 되려 자신들이 이득을 봤기 때문이다.

‘잘생겼다라...새끼.’

드낙이 절로 분노를 추켜세웠다. 박호훈 시절 그는 외모 순위에서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미남에 대한 본능적인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이는 드낙으로 살아가면서 많이 옅어졌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었다. 반면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스톨포를 욕하기 바빴다.

“바람둥이에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똥폼을 어휴...”

“여자 후리는 데는 귀신이에요. 얼마나 잘하는지 봤는데, 저는 좀 별로였어요. 그냥 재수 없는 남자죠.”

“밤기술이 대단했는데, 그래도 너무 가벼운 남자였어요.”

“기품이 있어서 혹했는데, 영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걷어찼죠. 절 담을 수 없는 남자였어요.”

자기 버리고 간 미남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드낙은 큰 소득을 낼 수 없었다. 아스톨포의 카사노바 기질은 그를 뒤덮을 만했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게 했다.

워낙 바람둥이에 대한 특성이 튀다 보니 모든 사람이 그를 ‘카사노바 아스톨포’라고만 생각했고, 다른 기질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제법.’

자신을 숨기기에 최적의 방안이다. 그리고 그건 아스톨포만 할 방법이었다.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으면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시선을 모으기에 카사노바라는 가면으로 자신을 덧칠해야 했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드낙은 단번에 이를 알아차렸다. 항상 사냥감을 생각하면서 사냥했던 사냥꾼 시절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드낙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 개개인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었다.

‘뿔쥐들이 놈을 찾기까지 기다려야겠다.’

드낙이 백날 돌아다녀 봤자 머릿수는 못 이겼다. 파동으로 변했을 때는 외부 측정이 힘들었다. 그림자로 백날천날 돌아다니면 뿔쥐만 드낙에게 정보를 주기 힘들다.

‘오랜만에 마을 순시나 돌아볼까?’

밥 한 끼 먹으러 온 사단장, 순시 도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저희 마을에서 며칠 지내신단 말씀이십니까?”

허리를 숙인 촌장이 눈을 부릅떴다. 동공이 흔들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눈이 아픈가? 늙으면 저렇게 되나 보네.’

턱.

드낙이 촌장의 어깨를 주물럭거렸다.

“흐윽. 헥.”

늙은 촌장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이에 드낙이 손을 놓았다.

“커흠. 긴장을 좀 풀어주려고 했지.”

“예...죄송합니다.”

실로 비굴한 모습에 드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그렇게 빡빡한 양반 아닌데.’

“에헤이. 걱정하지 마라니까! 나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야. 기본만 하면 돼.”

“예...”

그렇게 드낙이 눌러앉았다. 그는 마을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돌아다녔는데, 그와 마주치는 이들마다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내 그것도 쉽게 무뎌져 갔다.

딱히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슥 보고 휙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계속 주시하는 것도 아니라서, 능히 마음이 조금씩 풀어질 수 있었다. 대형견도 자주 보면 귀여운 법이다. 드낙을 직접 마주한 적이 잘 없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세금 걷으러 오는 개새끼들보다는 낫지.’

자연스럽게 드낙은 시골 마을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간 내가 너무 소홀히 했는데, 제대로 운영되는지 한 번 볼까?’

때가 됐다고 생각한 드낙이 가장 먼저 간 곳은 농업 골램과 관련된 곳들이었다. 당연히 드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습을 보인 건 그들의 경계를 최대한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그 뒤에는? 아예 모습을 가리고 지켜봤다.

그게 더 확실하게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정을 깔았던 것.

“오늘 당번이 누구지?”

“제이슨일걸.”

농업 골램은 최소한의 인력이 배당되어야 했다.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부터, 행동 지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마력 잔여량도 틈틈이 확인해서 노동시간도 체크해야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당번제로 하는 게 보통이었다.

‘태평하기 짝이 없네.’

드낙이 그렇게 생각하며 실실 웃었다. 이것이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곳곳을 몰래 누볐다. 특히 식량 창고를 먼저 확인했다.

‘이거지.’

단박에 드낙이 무릎을 쳤다. 곳간에 식량이 한 가득이다. 굶고 싶어도 굶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식량 창고는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았고, 개가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고양이는 배고플 때 쥐를 잡지만 개는 시도 때도 없이 보이면 잡기 때문에 식량 창고에는 항상 개 한 마리는 있는 편이다.

‘누구나 쉽게 가져갈 수 있다.’

마을 공용 식량 창고는 몇 곳이나 되었고, 추가로 한 곳을 더 짓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만큼 농업 골램 덕분에 밭은 더 넓어지고 있었고, 수확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지.’

마법으로 꽁꽁 언 돼지도 꾸준히 지급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요리 대회로 시작된 소규모 마을 지급품 중 하나였다. 이 분배 또한 눈여겨봐야 했는데, 그냥 난잡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독식하는 경우는 없었다.

나눔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난 틀리지 않았다.’

그 모든 걸 눈에 본 드낙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괜히 코를 슥슥 비볐다.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고아도 굶지는 않았고,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라는 말처럼 일차산업에서 벗어나며 노동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현 사회는 아름다움이 꽃피고 있었다.

‘역시 굶주림을 해결하면 가장 낮은 자가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

어디서 들었는데,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났다. 그건 바로 식대에 대한 비용은 아무리 부자여도 적정 수준에서 머문다는 소리였다. 결국, 돈 많은 사람도 음식에 쓰는 돈은 일정 금액 이상 넘어갈 수가 없었다.

식량 발전을 극한으로 추구하면 할수록 절대적으로 부자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 잉여분은 아래로 나뉠 수밖에 없다.

‘고기와 밀. 그다음에는 향신료와 어패류다.’

가재와 게 그리고 새우!

공짜로 그런 걸 먹는 시대가 오리라고 드낙은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하루 3끼를 모두 굶어본 적이 있는 박호훈의 기억은 확실하게 드낙에게 남아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굶는다는 걸 보면 까무러치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현대사회가 얼마나 잔혹할 정도로 세속적인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머리에 꽃이 핀 사람들이다.

‘자기가 그렇게 산다고, 남도 그렇게 살 거라는 황당한 생각이지.’

책을 읽지 않은 티가 역력한 면모를 가진 현대인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드낙은 아스톨포를 놓쳤지만 작은 마을을 통해서 자신의 처세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로 삼았다.

더욱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식량이야말로 아랫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

아스톨포 왕자는 이름 모를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밤의 귀족, 뱀파이어다.

뱀파이어의 가장 큰 특징은 육체 변이었고, 다양한 것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건 인간의 눈으로는 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쨉쨉.”

거대한 박쥐가 소리를 내며 큰 고목 나무의 두툼한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 뒤로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떼처럼 움직이면서 하나같이 자리를 잡았다. 자리 잡으면서 도망치는 벌레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거대한 박쥐는 입에 목함의 구리 걸이를 물고 있었다. 마검 샤를로트가 들어있는 목함이다. 이를 위해서 거대한 박쥐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 다른 수백 마리의 박쥐 또한 아스톨포의 피이며, 육신이다.

순식간에 초음파를 통해서 주위를 살피던 아스톨포의 눈에 척 봐도 800kg은 되어 보이는 곰이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거체. 털이 붉지 않은 걸 보니 일백야수가 되면 기사도 감히 승부를 보지 못할 놈으로 보였다.

그곳에 단번에 수백 마리에 달하는 박쥐들이 맹렬하게 돌진해서 가죽이 이빨을 박았다.

“쿨쿨...”

털이 곤두섰지만 곰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피가 빨리면서도 끝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결국 피가 없어서 큰 곰이 그대로 죽어버렸다.

체급에 비해서 허망한 최후였다.

동물의 피는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비린내가 심한 피였다. 게를 생으로 먹는 것과 같았다. 게장도 비려서 못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장으로 담가도 비린 것이 어패류였다.

하지만 혹자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다. 홍어도 이와 같았다.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동물의 피는 딱 그 정도였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악마의 피는 당연히 5년 삭힌 정어리다. 물이 뚝뚝 떨어지고 물컹거리는 식감과 썩은 내에 비견할 정도로 맛이 없는 게 악마의 피였다.

‘그거에 비하면 꿀맛이지.’

특히 아스톨포는 동물의 피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왜 싫어하는지 도통 몰랐다. 게장킬러가 게장이 비린내 난다며 싫어하는 사람을 보는 감정이 딱 이랬다.

포식을 한 아스톨포는 단번에 인간의 모습을 취했다. 박쥐들이 거대 박쥐에게 들러붙으면서 단번에 변이가 시작되었다. 박쥐의 새하얀 이빨은 코트의 금색 테두리가 되었고, 박쥐의 가죽은 검은색 코트의 한 자락을 차지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변이를 마친 아스톨포는 곰의 가죽을 해체했다. 손톱으로 슥슥 그으면 그만이었고, 들러붙어 있는 건 잡아당겨서 뜯어냈다. 꼼꼼히 손질하지는 않았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바로 그곳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피하나 없는 곰의 발가벗겨진 시체를 바라보며 그대로 나무에 기대었다. 달빛이 그곳을 비추었다. 그야말로 한편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 속에서 아스톨포는 자신이 현재 획득한 정보를 정리했다.

‘이상한 것 투성이다.’

그가 빨리 빤스런을 친 것은 마을의 상황이 너무나도 이상해서였다. 그걸 하나하나씩 복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마법사가 없는데도 농업 골램을 굴린다.’

보여주지 않았지만 골램 보관창고에 몰래 들어가서 확인한 바로는 통철로 된 마력탱크가 있었다. 그 무게는 최소 25t급.

딱 봐도 일개 마을이 운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농업 골램을 민간에 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우월한 기술과 지식은 오로지 기득권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그걸 나눠주고, 가장 소외된 촌락에 지급해준다? 단단히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아스톨포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서 손에서 땀이 쭉 나올 정도였다.

‘이 세상의 주인은 감히 담을 수 없는 그릇을 가지고 있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며 히히덕거리던 구천안흉(九千眼凶)의 모습이 생각났다.

“하하하!”

그들을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이 세상의 지배자는 진정으로 완벽한 신에 가까울 것이 틀림없다.’

아스톨포는 가히 전능전지하며 완벽한 존재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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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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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점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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