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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912화 (91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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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제 생각에는 역시 반지, 목걸이, 보석함 같은 걸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는 반짝이는 것에 사족을 못 쓰는 법이었다. 또한 여자는 안정적인 것을 원하기에 재물을 탐하는 속성도 강한 편이었다.

“레이시아 왕비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검소한데요.”

반대의견이 바로 나왔다. 그건 선물이라기보다는 뇌물에 가깝다. 드낙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보석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레이시아였다. 주변에서 오히려 그런 면모를 어려워할 정도였다.

왕비가 보석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니, 다른 이의 눈으로 보면 뭔가 결핍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별채를 하나 새로 선물해주는 건 어떻습니까?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에 드낙이 짧게 답했다.

“미안하지만 차원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그렇게 큰 선물은 못 줘.”

세파리아스에게 한 소리를 들었고, 무엇보다 실제로 실버 타운의 예산을 삭감한 것이 드낙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시아에게 집 한 채를 선물해준다?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뻔히 보였다.

“음...그런 조금 더 상징적인 것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왕비님의 취미 쪽에서 의미를 확장시키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의 취미는 가장 먼저 남을 돕는 것이 있었다.

“레이시아 왕비님과 함께 식량을 지원해서 하루를 봉사하며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끼리 하는 건 또 다를 겁니다.”

“식량 지원은 이미 하는 거라서...”

인구수 증가를 위해서 다종족 연합의 공통된 정책이 바로 식량 정책이다. 아무리 돈 없어도 굶어서 죽을 수가 없었다. 인구대비 영토도 넓었기에 집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오크도 마찬가지였고, 지하 연합도 마찬가지였다.

“바캉스나 피크닉이 어떻습니까. 여유롭고 태평하게 하루를 보내는 겁니다. 매번 바쁜 게 레이시아 왕비 아닙니까.”

신전에 신성력 관리와 선별을 맡기고 났음에도 바쁜 것이 그녀였다. 공왕이라는 직함 없이도 사람을 위해서 활동하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꼭대기나 다름없는 게 레이시아 플래티넘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드낙이 그럴듯하다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임팩트가 없어.”

수영복을 입고 가족끼리 수영장에서 노는 것도 제법 몇 번 해서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에 드낙의 시선이 게제라스에게로 향했다.

“뭐라도 이야기해봐. 게제라스 총리.”

“정원에서 가족 미술대회를 여는 것이 어떻습니까.”

곳곳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레이시아는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고, 장님일 때도 그때의 기억을 살려서 그림을 그렸다. 자신은 볼 수 없는 그림을 상상하며 그리며 취미로 삼았다.

눈을 회복하고 난 뒤로는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제법 예술가적 면모도 가진 게 그녀였다.

“즉, 왕비님께서 이길 수밖에 없는 대회입니다.”

“아니면 평가를 맡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유일한 심사관이 된다면 그 또한 재밌을 터였다.

“나쁘지 않은데, 다른 왕비들과 자식들을 불러서 축하도 해주고.”

그럴듯해 보였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다.’

*

소아귀(小兒鬼). 아기의 모습을 지닌 하급에서도 최하급 권속 악마.

그들로 이루어진 대악마, 아카타베루의 세계에는 수많은 전리품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아카타베루에 의해서 변질되어 그를 위해서 봉사하는 존재가 된다.

금으로 된 십자가.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관.

그곳에 구천안흉(九千眼凶) 다섯이 조용히 관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레버를 당겼다. 금으로 된 십자가가 돌출되었고, 이를 역십자가로 돌려서 다시 끼워 넣었다.

푸스스...

무언가가 퍼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주변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졌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닫은 것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런 것마저도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덜컥.

관이 옆으로 비켜서며 남자가 스윽 일어났다. 새하얀 얼굴은 미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보면 절로 피부관리 어떻게 하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눈 밑은 퀭했다.

“후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구천안흉 중 한 명이 피가 든 잔을 건넸다.

“흠. 흠.”

냄새를 맡은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의 피가 아니라 악마의 피라서였다.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결국, 뱀파이어는 피가 있어야지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 잔을 건네줬다. 품에 있는 오래된 손수건으로 입을 가볍게 닦았다. 귀족으로서 품위유지는 필수적이다. 손수건을 꺼내는 남자의 품속에 황금색으로 멋지게 장식된 리볼버가 살짝 보였다.

“아스톨포(Astolfo) 왕자, 대악마 아카타베루님의 말씀이시다.”

“또 미리 가서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라는 소리겠지. 파괴만 하는 악마가 원하는 건 사탕 좋아하는 아이도 능숙하게 알 수 있지.”

“무례한...”

“영지도 가지지 못한 뱀파이어가 감히...”

“패배했다면 완전히 굴복하라. 어둠의 왕자.”

그런 말에도 아스톨포 왕자는 그 어떤 안색의 변화도 없었다. 언제나 이성적이고 교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것이 귀족의 품격이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첫걸음이었다.

물론 이제 더는 아스톨포에게 주어진 의무는 없었다.

그의 영지민은 모두 죽었고, 그의 혈족 또한 검은 운명의 고리로 스며들어 갔다. 고강한 네크로맨서가 있다면 되살릴 수 있겠지만, 그런 네크로맨서와 조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탁한 금발을 뒤로 넘기며 아스톨포가 관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키는 185cm로 가장 보기 좋은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부터 적당히 근육이 잡혀있어서 과하지도 않았다.

굵은 눈썹에 긴 속눈썹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날카로운 눈매에 있는 푸른 눈동자는 바다를 담고 있는 것처럼 깊었다.

말 그대로 미남.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미소녀 게임을 해도 여자들이 쪽지를 건넬 정도로 잘 생겼다.

피를 마셔서인지 퀭한 눈 밑도 사라졌다.

철컥.

진한 갈색의 오래된 목함이 구천안흉의 손에서 아스톨포의 손으로 옮겨졌다. 긴 목함은 무기케이스였고, 이를 바로 열지는 않았다.

마검(魔劍) 샤를로트(Charlotte)는 악마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스톨포는 거침없이 목함의 잠금장치를 풀고 살짝 틈을 열었다.

“무, 무슨!”

괴이한 속삭임을 들으며 구천안흉들이 펄쩍 뛰었다. 이에 아스톨포 왕자가 다시 닫으며 미소 지었다.

“귀족을 앞에 두고도 인사하지 않는 이들에게 잠깐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서, 많이 놀랐다면 미안하다.”

중급 권속 악마 구천안흉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들은 거칠게 아스톨포 왕자를 이끌고, 차원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도 수많은 세월이 남아있었지만, 미리 작업을 치려면 지금 보내놔야 했다.

악마들과 사이가 안 좋을 뿐, 뱀파이어에서 데몬 뱀파이어(Daemon Vampire)로 변질된 아스톨포 왕자는 아카타베루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황금의 테두리가 심플하게 장식된 코트를 입은 아스톨포 왕자가 그대로 마법진의 중앙에 섰다. 매번 같은 형식이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고, 악마들은 아스톨포 왕자가 모든 걸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증오는 동굴에서 떨어지는 석회물과 같다.’

처음에는 그저 물방울에 지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종유석이 되어 동굴을 아름답게 만든다.

‘복수심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장작이었고, 사그라지지 않는 불씨였다.

“목표는 전과 같다. 지금은 죽었지만, 인신이 지배했던 세상에서 인간들을 이끌어라. 때가 되면 군대를 일으켜서 세상을 더욱 혼란케하라.”

“알았다.”

아스톨포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진이 서서히 빛을 내자 그의 주위로 어둠 혼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따르는 몸 잃은 그의 백성들과 그의 혈족들이었다.

[아아...으으...]

[이제 그만 편해지세요. 저희 생각은 하지 마세요.]

너무나도 나약해서 그저 앓는 소리 밖에 못 내는 작은 어둠 혼령부터 모든 걸 잊고, 새 출발을 원하는 어둠 혼령도 존재했다. 하지만 아스톨포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둠 혼령들은 그 어떤 이성도 감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아스톨포의 거울 역할을 할 뿐이었다.

아스톨포 왕자가 손을 휘적거렸다. 어둠 혼령들이 그의 속으로 들어왔다. 마법 때문에 놀란 혼령들을 순식간에 다스렸다. 왕자라 불리지만 이미 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데몬 뱀파이어 하나를 차원이동 시키는 데에는 소아귀 50만 명과 비교되는 힘이 들어갔다. 세계가 통째로 차원을 부유해서 그곳으로 향하는 것보다 많은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많은 거리를 뛰어넘는 것이 차원이동 마법진이었다. 구천안흉은 성공적으로 그가 이동했음을 확인한 이후에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실로 편하기 그지없군. 아카타베루 님께서 왜 전리품을 모으려고 집착하는지 알겠어.”

“반마급 존재를 소모품처럼 쓸 수 있다니, 정말 볼 때마다 대단해.”

실로 형편 좋은 일이었다.

차원 이동의 여파로 메스꺼움을 느낀 아스톨포 왕자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짹짹!

새 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거렸고, 바람과 함께 나뭇잎이 흔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그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햇볕이 그의 볼을 적셨지만, 그 어떤 괴로움도 없었다. 뱀파이어가 햇빛에 죽는다는 소리는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뱀파이어는 ‘어둠’을 다루기에 햇빛이 있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햇빛이 있다고 해서 초월의 힘인 ‘어둠의 힘(Dark power)’가 약화하는 경우도 적다. 그저 상대적으로 가시거리가 확보되는 것뿐이다.

어둠의 종족인 흡혈귀이면서 동시에 아카타베루의 피의 지배를 받는 아스톨포는 아카타베루를 위한 일을 해야 하지만, 엄청난 제약을 받는건 아니었다. 그는 가장 먼저 양지 마른 바위에 드러누웠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깨어났다. 이런 여흥은 필요한 일이다. 귀족은 결코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까악!”

까마귀 소리에 아스톨포가 눈을 떴다. 새하얀 털을 지닌 까마귀가 말벌을 입에 물고 고개를 까딱하고 있었다.

“아, 네 자리였니? 이거 미안하다.”

아스톨포가 웃으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백색 까마귀는 되려 깡충 뛰면서 더욱 다가왔다. 이에 그가 아예 바위터에서 물러났다. 까마귀 피는 맛도 없었고, 원하는 피도 아니었다.

“까악!”

까마귀가 한 쪽을 가리켰다. 아마 그곳으로 가라는 뜻인 듯했다.

“똑똑한 놈이군.”

아스톨포는 길쭉한 목함을 어깨에 메고, 그대로 움직였다.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자 백색 까마귀는 호들갑을 떨며 날갯짓해서 사라졌다. 어디선가 말벌의 날갯짓이 늘려서였다.

꿀벌을 죽이는 말벌은 100번 죽여도 무죄였다. 이곳은 자치왕국의 남쪽, 백색 까마귀를 통해서 양봉이 성행하고 있는 곳이었다.

검은색에 황금의 자수 테두리가 놓인 제법 있어 보이는 코트를 휘날리며 아스톨포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밀짚모자에 붉은 셔츠를 입고, 반바지를 입고 있는 청년이었다.

“어.”

청년이 소리를 냈다.

“실례합니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습니까?”

이에 아스톨포가 살짝 목례를 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남자라도 잘 생긴 남자와 친구 먹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심리였다.

“예. 헌데 특이한 복색을 입고 있으시네요.”

드루먼쇼 덕분에 이계인에 대한 정보는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이를 꿈에도 모르는 것이 아스톨포 왕자였다.

“예.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아스톨포 샤를로트. 망국의 왕자입니다.”

“아...나라가 망해서...”

청년이 아주 딱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마침 가려는 참이라서 같이 갑시다.”

“예. 근데 마을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높은 언덕을 넘으면 바로 보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아스톨포는 청년의 목덜미에 시선을 한 번 주고 다시 언덕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딱히 바로 죽이지는 않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여기서 청년을 잡아먹고, 피를 빨아먹는다면 그저 그뿐이다. 그래서야 밤의 귀족답지 않았다.

의미가 있는 흡혈이 가장 뱀파이어를 만족시키는 법이었다. 고로 아스탈포는 그를 당장 죽이지 않았다. 대신 마을로 향하면서 순식간에 청년을 사로잡았다. 애초에 첫인상은 외모가 90%다.

아스톨포 왕자를 싫어할 사람은 열등감에 자신을 잡아먹힌 자존감 없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버러지들 뿐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순수하게 그에게 호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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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5738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점심 맛있게 드시빗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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