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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방식은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세파리아스가 절로 궁금해했다. 전쟁의 비는 전쟁 지휘자의 경험을 키우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베테랑 병사를 키우는 것이 <인공 협곡>이라면 전쟁의 비는 전장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규모 피규어와 대규모 피규어의 차이지.’
병사가 직접 협곡에 들어서는 것이 인공 협곡.
지휘관이 지휘를 하는 게 전쟁의 비였다.
그렇게 한 이유.
‘대중성과 수익성.’
배달팁 1,000원을 쉽게 보는 시민은 많다. 하지만 사업하는 이들은 마진 100원 차이로 사업에 들어가냐, 마느냐를 결정한다. 10억을 100원의 마진에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 이상을 쓸 수 있는 사업가는 손해를 보고도 들어간다.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돈이 많을수록 수익성에 굉장히 민감해 한다.
볼펜을 팔아도 모든 것이 가격이 다르다. 100만 원짜리 볼펜 택배 사업조차도 마진보고 들어가는데, 피규어 전쟁 또한 돈을 보며 규격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 협곡은 적자 사업이다.’
군사 사업이 대개 그렇듯이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인기조차도 없고, 아이들은 무섭다고 난리다. 그렇기에 <전쟁의 비>라고 따로 30cm 피규어들을 구분 지어서 민중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 어떤 자가 보다 재능이 많은가.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군사적 재능은 타고나야 한다. 아카데미에서 유능한 지휘관을 배출할 가능성은 1% 미만. 이를 2%로 만들 수 있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2배나 커지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유능한 장군을 배출하는 건 복불복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장군이 되고 싶어야 했고, 그 열정과 동시에 재능도 가져야 했다.
‘전쟁의 비는 그걸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전적이 충분히 높은 상태에서 이모저모를 확인하면 재능 있는 이를 가려낼 수 있었다. 또 그 성향조차도 파악하기 쉬웠다.
전쟁의 비는 그만큼 좋은 점이 많았다.
‘제법 이슈가 되겠어.’
세파리아스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다이앤타가 대답했다.
“궁수가 보병보다 많아야지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싸움이 붙어서 전쟁의 비를 하기로 했기에....방식은 크레시미르...”
다이앤타가 살짝 입술을 떨며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가...”
실로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빠라고 생각하기 싫은 듯했다. 세리안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왕자는 궁수 비율이 많은 걸 이끌고 전 보병 비율이 많은 걸 이끌게 되었어요.”
“그래? 싸움터는 야지(野地)에서 하기로 했느냐? 아니면 공성전을 하기로 했느냐?”
“당연히 야지죠. 있을 만한 지형은 모두 있어요.”
세파리아스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원거리는 주류가 될 수 없거늘. 기본적인 전술서에 나오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기병 비율은?”
“5%요.”
“피규어 몇 개가 붙지?”
“천 개요.”
“50기. 너무 많지 않느냐? 기병 때문에 판도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의도와 맞지 않았다. 의도는 궁병과 보병의 야지에서의 실전 비율이다.
“의도대로 된다면 그게 전쟁입니까?”
의미심장한 말에 세파리아스는 납득했다. 3배. 심하게는 10배의 싸움조차도 꺾을 수 있는 게 전쟁이었다. 고작 기병 비율에 연연하는 것이 우습다.
세파리아스는 딸과 손녀와 시간을 보낸 이후에 그 다음 날 크레시미르를 찾았다.
“이야기는 들었다. 전쟁의 비를 한다며?”
“예. 어찌나 당당하게 구는지, 한번 짓눌러주고 싶어서요.”
크레시미르는 자신의 의도를 당당하게 밝혔다. 전술적 실수를 범했음에도 이길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일부러 그런 함정을 판 듯했다.
“방패 들고 오면 화살의 정밀도는 확 떨어진다. 방법은 생각해놓았느냐?”
“예.”
세파리아스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건 전쟁의 비를 실제로 시작했을 때 얻을 하나의 재미로 남겨뒀다. 동시에 그 어떤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나의 싸움이 아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괜히 어슬렁거리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다른 관료들에게 눈칫밥을 먹이고 다녔다.
그 덕에 확실하게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의 진검승부가 되기 시작했다. 둘 다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하나같이 전술서를 들고 있었다.
“흥!”
다이앤타는 신경질적으로 빠져나갔다. 크레시미르는 헛웃음 한 번으로 끝냈다. 하지만 두 명의 눈에는 활화산처럼 승부욕으로 가득했다. 그들 모두 엘리트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일류였다.
자존심 또한 대단했고, 바보라는 간단한 도발에도 넘어가는 자존감을 지닌 자들이었다.
열등감이 높은 사람이 간단한 도발에 눈깔 뒤집히는 것처럼,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 또한 간단한 도발을 넘어가지 못한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반마반신께서 오셨습니다!”
세리안이 붙여준 고용인으로부터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놈! 하여간 운이 좋은 놈이로다!!!’
세파리아스가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저...”
“안다. 들었다. 물러가라.”
그 말에 고용인이 당혹스러워했다. 반마반신, 드낙! 그의 출현은 태풍이 휘몰아쳤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태평하게 식사를 이어나가다니?
‘여, 역시 신제국의 황제...그릇이 다르다!’
그렇게 감탄하며 고용인이 물러갔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또한 경악했기 때문이다. 무슨 낌새가 있으면 귀신같이 나타나는 요행의 아이콘, 드낙의 등장은 기분 나쁘기 짝이 없었다.
‘좋은 구경거리를 어떻게 알고...하여간, 경박한 놈이다.’
슥슥.
세파리아스는 스테이크를 썰었다.
귀중한 식사시간이었다. 영주 시절, 전쟁터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기에 길거리의 부랑자보다 못한 식사를 하며 반평생을 살았던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호사스러운 식사 시간은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평생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호화스럽게 먹겠다고 마음 먹은 게 세파리아스였다. 아무리 드낙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는 식사를 끝까지 이어나갈 것이다.
*
“뭐? 세파리아스가 와 있다고?”
오크와 뿔쥐와 함께 해변에서 한바탕 파티를 벌인 뒤에 순식간에 자치왕국에 도착한 드낙이 깜짝 놀랐다. 신제국에 있어야 할 세파리아스가 여기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있어서였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빛이 휴식하는 별관에서...”
그 말을 들은 드낙이 빙긋 웃으면서 순식간에 파동으로 변했다. 이곳의 구조는 잘 알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느긋하게 정원에서 한 상 피워놓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세파리아스가 보였다.
‘이놈, 내가 온 걸 알면서도 밥이나 먹고 자빠졌네.’
거기에 그냥 스테이크만 먹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닭다리만 튀긴 것과 돼지 껍데기 통째로 구운 돼지 통구이도 있었다. 불향이 술술 나오는 돼지 껍데기 통구이의 일부분은 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샐러드를 비롯한 목에 있는 기름을 스윽 내려가게 하고, 입을 상쾌하게 할 야채와 채소도 많았다.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먹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드낙이 능숙하게 의자에 앉아서 몇 개 안 남은 닭다리에 손을 가져갔다.
탁.
세파리아스가 손으로 드낙의 손을 쳤다.
“어어? 어어어어?”
드낙이 호들갑을 떨든 말든 세파리아스는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야, 진짜 치사한 거 아니냐? 이렇게 먹을 게 많은데 하나를 안 준다고?”
“닭다리는 선 넘었다.”
“그럼 스테이크?”
“이건 일인분이다.”
“돼지?”
“......”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게 돼지 껍데기 통구이였다. 드낙은 포크로 쓱 잘라서 단숨에 입에 넣었다. 기름졌지만 향신료 덕분에 아낌없이 먹을 수 있었다.
“너가 여기에 근데 왜 있냐?”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세파리아스는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덕에 드낙은 소득 없이 다른 이의 입을 통해서 세파리아스의 동태와 의중을 살펴야 했다.
‘하여간 재수 없는 놈이라니까.’
뭐든지 그냥은 안 준다. 건방진 녀석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온갖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매시간 확인하고 올리는 사람과는 정반대의 인간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그를 알려면 그와 만나야 하고, 그를 파악하려면 그와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영향력이나 온갖 자원을 선물하면서 들어야 했다.
어떤 방법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좋은 건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세파리아스는 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전쟁의 비? 피규어 싸움을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가 한다고?”
드낙이 절로 재미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축구하는 것도 재밌지만 남이 축구하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못하면 못하는 것대로 재미난다. 욕을 후련하게 박아넣기 좋아서였다.
남을 헐뜯고, 뒷담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는 그곳에서 삐져나오는 재미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마약처럼 해버리고 마는 마력을 지닌 게 뒤로 까기였다.
임금 욕도 뒤에서 하는 판국에 뒷담을 어떻게 막겠는가.
어찌 되었건 드낙은 당연히 왕자와 왕녀의 싸움에 관심을 가졌다. 이것저것 휘젓고 다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다이앤타가 이를 말려서 큰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툭툭 건드려대었다.
“야, 야야. 야야야? 듣고 있냐? 엉?”
“후우우우우우...”
명상에 잠겨 있던 세파리아스가 눈을 떠서 드낙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운 옥수수를 하나 들고 있었다.
“왜? 너도 먹을래?”
‘죽이고 싶다.’
세파리아스가 다시 눈을 감으며 분을 삭였다.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 하러 가라. 왜 나를 자주 찾아오는 것이냐?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엉? 응. 부인들도 전부 자기 사업하기 바쁘고...”
드낙이 순순히 자신이 왜 세파리아스를 건드리러 왔는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여기에 온 거지.”
“일없다.”
세파리아스가 담백하게 말했다. 빛처럼 빠른 드낙을 상대하는 섀도복싱 질만 해도 시간이 쭉쭉 가는게 세파리아스의 하루일과였다. 거기에 반해서 현재 드낙은 할 일이 적었다.
귀족 출신인 부인들은 사업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자식들은 서로 어떻게든 우뚝 서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노력 좀 해야겠다는 경각심이 자리잡혔다.
벌써 사업에 손을 대는 자식도 있었다.
“레이시아 왕비는? 그나마 신성력 선별을 신전에 양도해서 시간이 남지 않느냐?”
“복지 때문에...”
“아.”
세파리아스가 납득했다. 복지를 받으려면 직접 찾아가서 요청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해당 복지에 대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 혜택을 찾아서 건네주는 복지 사업을 하려는 것이 레이시아였다.
“실버타운 때문에 고생이 많겠군.”
그리고 그런 자발적 복지가 가능한 이유는 전세계의 노인을 실버타운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집중시켜서였다.
늙으면 외롭기 마련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태평한 시간밖에 없었다. 고로,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처럼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끼리 만나고 싶어하는 편이다. 그걸 국가에서 장려한 것이 바로 실버타운이었다.
그 덕에 레이시아는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실버타운이 이정표가 된 셈이다. 실버타운의 옆에는 장애인과 불구들이 살아가는 곳도 서서히 자리잡히고 있었다.
독살에 의해서 실명한 경험이 있는 레이시아가 장애를 지닌 이들을 가만히 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전까지는 그냥 돈으로 해결했는데 이제는 더더욱 삶의 질을 높이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드낙, 차원 전쟁이 언제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예산을 재조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하게도, 세파리아스는 그런 레이시아 왕비의 행태를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사람에게 자원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자원이 부족할 지경인데 자원을 투자해봤자 ‘행복’밖에 주지 못하는 노인과 장애인들은 솔직히 말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야, 너무 가혹한 말 하지 마. 너도 늙으면 그런 대우를 받고 싶을 거 아냐.”
“바보 같은 소리. 난 그런 길을 걷지 않는다.”
“너도 걸음 하나 못 걸을 때가 왔을 때, 그때를 생각해보라고.”
드낙은 자연스럽게 약자에게 빙의되어서는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웃었다. 명상을 끝내고 몸을 일으켰다.
“자꾸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내뱉지 마라. 사회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젊은이들에 대한 막대한 투자다. 생산적인 활동 하나 하지 못하는 노약자들에 대한 자원 투자는 그저 마음만 편할 뿐이지, 인류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파리아스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30년 이상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새로운 시야를 제시 가능한 과학자를 만들 자원을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데 쏟아붓는 짓은 분명 큰 손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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