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05화 (904/1,239)

<-- 905 -->

판타지 월드

붉은 요새의 방패병이 지닌 저력은 대단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그를 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뿌리가 마음에 들었다.

뿌리는 하나. 강고한 뿌리다. 굳건한 방패술과 거체를 상정한 둔기술은 뛰어나다.

당연하게도 세파리아스는 붉은 요새의 방패병이 지닌 무술을 확인하고, 파악해나가면서 그 무술이 어떤 존재를 죽이는지 알 수 있었다.

‘오크.’

체격이 큰 상대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방패술과 둔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다.

“깊이가 없군. 많이 해봤자 100개의 줄기인가.”

깊은 뿌리 속에서 꽃핀 것은 그저 거짓된 기술들뿐이었다.

인조적으로 쌓아 올려진 기술이다. 그렇기에 깊이가 없었다. 평범하게 정예라고 부를만했지만, 진짜 정예들의 싸움에서는 한 끗발이 안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게 느껴지는 차이는 아니다.

인조적으로 쌓아올렸기에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수작업으로 만든 것보다 깔끔하기도 하고, 양산품을 찍기도 좋았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단칼에 방패병을 베어내 죽였다.

더는 얻을 게 없어서였고, 흥도 식었다.

세파리아스의 근본은 바로 인간의 자유로움이다. 무술조차도 인조적으로 쌓아 올려진 존재에게 애정을 줄 리가 만무했다.

피가 흘러내리는 사이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이 다가와서 예를 올렸다. 사용자가 죽었을 때 알아서 자폭하여 부품이 부서진 SXK16 기관단총을 보며 세파리아스가 말했다.

“모든 잔해를 드워프 제국에 보내라. 동시에 기록한 것을 마법사들에게도 보내라. 상당한 무기체계다. 기사들이 이를 방어토록 하는 게 급선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적들의 기색.’

죽어가면서도 마치 당장 복수에 성공했다는 듯이 굴었다. 적이 이곳에 도달하는데 많은 시간이 안 걸린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관측된 순간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명을 받듭니다!”

기사와 병사들이 작업을 시행했다. 그 사이에 세파리아스는 시체에 있는 강철 브로치를 뜯어냈다. 그리고 주먹을 쥐며 박살을 냈다. 강철임에도 너무나도 손쉽게 구겨졌다. 영상이 끊긴 아메리고 병장이 혀를 찼다.

“우리도 돌아간다.”

서둘러 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뒤처리는 말끔히 끝냈다. 빛없이 온도를 내는 발열도구부터, 브로치를 통해서 지켜보는 마법 시야 장치도 접이식으로 해체하여 회수했다.

깔끔하게 땅까지 수풀로 흩트려놓고, 적당한 온도를 지닌 온풍을 통해서 헤집어놓은 흙도 바짝 말라놓았다. 유사 중세 시대인만큼 사냥꾼들의 수준이 높을 수 있었고, 재능이 툭 튀어나온 놈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방심하고 있었다.

18일을 빠르게 이동하여 제국을 벗어났다. 실로 빠른 이동이었다. 그다음에 그들은 잠시 몸을 추스르며 ‘신성력 정보 입자’를 제작했다. 용병 지구인들은 모두 상위인간(上位人間)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곳에 무엇을 담을지는 뻔했다. 세파리아스에 대한 정보였다.

“A등급으로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측정 불가라고 하기에는 ‘인간 반신격’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아메리고 병장이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민가에서 ‘징발’한 술을 마셨다.

“상위인간이 반신격이 되면 S급으로 지정해야 하지만, 마력도 없는 인간이 반신격이 되어 봤자야. 그래도 A급 받은 게 대단한 거지.”

“무력...때문은 아닙니까?”

“이 새끼, 뭘 본 거야? 신성력의 빛 하나 없이 상처를 회복했어. 즉, 신성력에 대한 통제가 뛰어나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A급인 거야. 신이 되기 전에 반드시 죽여야 해.”

신성력의 빛발산조차도 제어 가능하다는 것만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위인간임에도 A급을 받을 수 있었다.

“9MM 총기는 통하지 않는 것도 보내겠습니다.”

“저지 불가능이지. 통하기는 통하잖아. 신성력 정보 입자는 많으니까, 확실하게 보내.”

“예.”

아메리고 병장은 느긋하게 훈수를 두며 군기를 잡음과 동시에 보고서를 완성해나갔다.

“역시 반신격 상대로는 펀치력이 무조건 좋은 총알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병장님.”

“관통력 좋은 5.56은 오히려 별로지. 신성력으로 쉽게 회복 가능하니까.”

7.62가 답이었다. 그것보다 대구경을 쓰기에는 과잉 화력이었다.

그 외의 다양한 것을 꼼꼼히 썼다. 특히 세파리아스의 성격에 시간을 많이 쏟아부었다. 보이지 않는 성격이라서 정리가 필요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반신이지.”

“주변을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흐흐. 그렇지. 그래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놈이 죽을 때 얼마나 짜릿하겠냐? 하늘 위에 하늘을 보게 되겠지.”

용병 지구인들이 히히덕거렸다. 실로 재밌는 상상이었다. 인조생명체를 죽이며 승리한 세파리아스의 멋있는 척하기는 영상으로 보면 실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현장감’을 못 느껴서였다. 그게 세파리아스의 또 다른 무서움이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영상에 모두 나오지 않는다.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거기에 대한 정보는 쏙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위 인간 반신격치고는 높은 등급을 받았네요.”

“불쌍하게도, 가장 먼저 죽지 않겠습니까?”

“칠색신룡(七色神龍)에게 찢겨 죽겠지.”

“찍.”

“뭔 쥐새끼 소리가 들려?”

“아,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요.”

“이래서 이 세계가 싫어. 너무 비위생적이야.”

“그래도 숯숯마을에는 고양이를 좀 많이 키웠는데, 이런 야지에서는 고양이 보기가 힘들죠.”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는 게 고양이들이었다. 귀여움으로 무장해서 낮잠 자는 게 이들의 삶이다. 그들은 느긋하게 정보를 보내고 나서 숯숯 마을로 향했다. 물론 에메리히 상사와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사이에 잔해를 받아들인 신제국에 거주하는 드워프와 마법사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규격이 똑같아!!!!”

“이, 이렇게 작은데 어, 어떻게!”

손발을 덜덜 떨었다. 작기도 작은 부품이었음에도 그 모든 것이 똑같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균일해 있었다. 자신들도 공장, 작업소를 가지고 있고, 규격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 일치율은 조금조금 달라서 따로 일정 공정을 하는 상태였다.

즉, 말만 공장이지 사실은 인력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수학과 과학의 발전이 미흡해서였다. 학문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방할 수 있는 것이 나온 건 축복할만한 일이었지만, 깜짝 놀라는 건 당연했다.

“우리랑 다른 총기야. 봐봐, 이 총구멍의 내부를...”

“회전? 총알에 회전력을 주는건가...그렇게 하면 총이 파열될지도 모르는데?”

“아니,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어...두려운 기술이야...”

“그것보다도 이걸 보라고! 이 잔해를 역추적했는데 이상하기 짝이 없어!”

드워프들은 특히나 총기의 구조에 대해서 소름 돋는 발견을 이어나갔다. 특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총이 발사되는 구조에 집중했다. 싱글액션 형식의 발사 형태는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해머로 공이를 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위험도는 높지만 그만큼 단순한 구조라서 따라 하기도 쉬웠다. 자폭해도 회수된 SMG의 숫자는 10정이 넘었다.

그 덕을 많이 봤다. 폭발도 결국에는 확률론에 따라서 부품의 파괴 정도가 제각각이었다. 동시에 드워프들은 수작업의 달인이었고, 천부적인 대장장이였다. 부품 잔해를 통해서 직감적으로 원래 형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안 되면 뚝딱 만들어보면 그만이다.

마법사들은 총기에 스며들어있는 다양한 마법 체계를 드러내기 바빴다. 수많은 양피지에 선이 그어졌다.

“새로운 형태의 마법진!”

이 세계의 마법진은 음각(陰刻) 마법진과 양각(陽刻) 마법진. 두 종류로 나뉜다. 각자 장단점이 존재했다. 음각 마법진은 홈이 파여져 있기에 연금술의 덕택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마법진이다.

양각 마법진은 ‘소재’의 도움을 빌릴 수 있었다. 특징적인 금속 등을 이용해서 띠를 만들어 사용하는 편이다. 세월에 잘 닳기 때문에 보존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이건 그 두 개 모두 아니다.’

꿀꺽.

절로 마법사가 손을 더듬으며 양피지에 그려진 마법진을 훑었다.

“이건 예술이며, 학문이며, 천재의 결과물이다.”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보이십니까? 이건 점입니다. 그리고 직선이고, 곡선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면이며 부피입니다. 곧, 공간입니다. 이건 공간의 예술입니다.”

면에 그려진 입체적인 기하학(幾何學)의 깊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대단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심플하게 다가오면서 이를 따라 하기에는 난해했다.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는 진리이나,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100년을 노력해도 어려운 마법진이다.”

그렇기에 예술이라 할 수 있었다.

까마득한 수학적 차이. 총기라는 복잡한 구조에 집어넣을 수 있는 실용성...

‘무섭다.’

“악마의 마법진...”

그 어떤 복잡한 구조에도 끼워 넣을 수 있는 마법진. 그걸 본 마법사들은 절망을 느꼈다. 공간 마법진이라 불리는 이것은 보고도 쓸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계속 보게 만드는 마력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악마 마법진이라 불릴만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똑같이 모방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모방이 무서웠다.

창조보다 수천만 배는 쉬운 게 모방이었다.

“일단은 따라 해봅시다.”

“드워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단 하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하학 마법진, 입체적 공간을 면에 대입하는 초월 마법체계가 그렇게 신제국의 손에 들어왔다. 물론 그 결과는 그저 갑옷에 더 많은 양의 마법진을 넣을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하찮은 수준의 이용에 불과했지만, 세대가 지날수록 그 힘은 강해질 것이다.

*

“아얄타!!!!!!”

거친 바다를 헤치며 호위함(Frigate), <군 달라인(깊은 바다, Gun dalain)>이 거칠게 파도를 갈랐다.

오션 오크의 항해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수틀리면 자색 주포, 자-주포를 날리면 그만이었다. 비둘기조차도 특정해서 유도 사살 가능한 것이 자주포였다.

그 호위함대에 속한 프리깃, 군 달라인의 숫자는 물경 50을 넘기고 있었다.

드낙의 부름에 최소한의 숫자만 남기고 모조리 끌고 왔다. 길이만 60m나 되는 철갑선의 이동은 그 어떤 해양 괴수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호기심에 다가온 흰등 가시혀 육식고래는 피를 뿌리며 자주포에 희생되어 갈고리에 끌어올려 져서 오크의 입에 들어갔다.

스윽! 사악!

스윽! 사악!

거침없이 회칼을 놀렸다. 날이 아주 날카로워서 3개월 혹은 반년마다 바꿔줘야 할 정도로 날카로운 회칼에 고래가 순식간에 도축되었다. 물의 주술로 피를 씻겨내고, 그대로 오크들의 손에 옮겨갔다.

화악! 화악!

살짝 살짝 불길을 더해서 적당히 익힘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기생충도 죽였다.

겉에는 살짝 타서 바싹한 식감이 있고, 속에는 열기가 전해져서 기생충이 죽은 것을 단번에 초장에 찍어 먹었다.

“크으! 이 맛이지!”

오션 오크가 바다로 진출하면서 드낙은 틈틈이 파동이동술을 통해서 빛에 준하는 속력으로 오고 가며 틈틈이 해산물을 먹었다.

그 결과는 초장의 개발로 이어졌다.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넣은 식초와 유사 고추장의 배합! 결코, 패배할 수 없는 맛이었다. 간을 하지 않고, 살짝 데친 수준의 회에 초장이 주는 강렬함은 뛰어났다.

“곧 도착한다!”

대륙의 서쪽.

그곳에 드디어 오션 오크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드낙과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굳이 명령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적었다.

“빨리도 왔군. 바다에서 전투는 없었고?”

“있었지만 감히 저희 함대에 준하는 적은 없었습니다.”

오크들이 냉큼 드낙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은 드낙의 권속이 아니지만 다종족 연합에 속한 존재들이었다. 동시에 드낙으로부터 많은 편의를 받고 있었다.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

부족함 하나 없이 자신들의 종족은 계속해서 번영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나가들은 대부분 처리했다. 내가 직접 나서서 했기에 사실 와준 건 고맙지만 이미 모든 게 정리된 상태다.”

“예? 그럼 그냥 돌아가야 합니까?”

“그렇지.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잖아?”

“예!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초장은 있겠지?”

갑자기 드낙이 초장을 찾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오션 오크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나타났다.

“그건 왜...있기야 있습니다.”

“여기 주변에 굴이 엄청나게 많더라고. 전부 자연산이야. 오랜만에 해산물을 배 터지게 좀 먹어보자. 물론 나 혼자 먹을 생각은 없다. 나가 전쟁에서의 승리다!”

“예? 저희들은 아직 싸우지도 않았습니다만...”

“뿔쥐들은 제법 도와줬거든. 그래서 보답을 좀 하고 싶다. 싸움에 공을 세우지 못했다면 보급에서 공을 세우면 되지 않겠느냐?”

그 말에 오크들이 시무룩해졌다. 멀리서 둥둥 떠 있는 공중 요새를 바라보았다.

‘자색 주포도 날아다니는데, 배도 날아다니면 공을 세울 수 있었을 텐데!’

=============================

[작품후기]

6174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