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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어둠.
그 속에서 25명에 달하는 인원이 내성벽에 바짝 붙었다. 그들은 투명화가 된 상태로 매우 천천히 걸어온 상태였다. 매우 불완전한 투명화 마법은 언제든지 해제될 수 있었다.
그 덕에 투명화 이동훈련을 밥 먹듯이 해야 했던 과거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는 하나의 결과물을 꽃피워냈다. 노력은 항상 보답 받지는 않지만, 보답을 받으려면 노력해야 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오성마탑의 마법사 3명의 투명화가 풀렸다. 그들은 성벽에 손을 짚었다. 성벽이 붉게 변했다. 환희와 자유의 사제 7명은 신성법술을 통해서 이를 가렸다. 신성력에 색을 입혀서 검게 변질된 신성력이 녹아내리는 성벽의 빛을 차단했다.
성벽은 순식간에 녹았다. 그곳에 거침없이 붉은 요새의 방패명 5명이 먼저 들어섰다. 방패병 2명은 후방에 있었다.
25명 전원 들어섰음에도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순찰 시간이 워낙 긴 것이 신제국의 황당한 야간 순찰이었다.
‘세금을 줄인다고 군사력을 줄이다니.’
자신 혼자 반신격이니 그렇게 할 만했지만, 썩 똑똑한 결정은 아니었다. 이런 일을 자초했으니까.
“작전대로 움직인다.”
순식간에 둘로 쪼개졌다. 용병 지구인 5명. 인조생명체 20명으로 나누어졌다. 당연하게도 반신격과의 전투에 용병 지구인이 동원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양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황제와의 전투를 위해서는 양동이 필요하기는 했다.
‘지휘관의 숫자는 언제나 적은 법이다.’
그 어떤 세계라도 T/O는 정해져 있고, 그렇기에 양동은 언제나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다. 명령체계의 단순화는 효율적이지만, 기만술에 당하기 쉬웠다.
아메리고 병장은 왕궁 곳곳에 화재를 일으키고 그대로 물러났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내성, 외성을 벗어나 퇴각 루트를 100% 활용하여 안전하게 수도를 벗어났다. 그리고 마법을 통해서 상황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일이 너무 쉬운 것 아닙니까?”
“신제국의 군사체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메리고 병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현대식 군사전술과 이런 유사 중세의 군사전술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크면 무조건 정예라고 생각하는 것이 냉병기 시대의 군사전술이다.
“오히려 일이 틀어지는 게 이상한 거지.”
그게 끝이었다.
화재가 일어나고, 인조생명체들은 필요한 인력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신황제가 정원을 특히나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그렇기에 그를 호위하는 이들마저도 움직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잔잔히 떠 있는 신성력을 담은 물에 텅텅빈 복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신성력으로 만든 사다리를 통해서 단번에 신황제가 있는 침실에 도착했다.
유리는 깨지 않고, 녹여서 소리 없이 들어갔다.
쾅!
이내 큰 문을 박살 내고 안으로 진입했다. 나무 조각이 튀고, 먼지가 일어났다. 신황제가 잠을 자는 침실은 대단히 넓었고, 벽난로의 크기도 컸다.
타닥.
장작이 갈라지고, 타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힐링되는 순간이었지만 그 누구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전신갑주를 챙겨입고, 가만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신황제가 고개를 돌린 상태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그 모습은 시리도록 차가운 백색이었다.
스르르릉.
세파리아스가 검을 뽑아들었다. 손잡이가 30cm는 되고, 날 길이는 125cm가 넘는 롱소드였다. 당연히 양손검에 속한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롱소드였는데, 장식이라고는 손잡이의 테두리에 있는 금박 한 줄이 전부였다.
<신제국 롱소드>라 불리는 것이었다. 규격화되어서 부품 교체가 매우 원활한 롱소드였다. 당연히 무력을 통한 초월자 사냥을 하려고 하는 게 세파리아스였기에 국민 전체가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신제국 롱소드였다.
“20명? 잘도 그런 대규모 인원이 이곳에 들어섰군.”
세파리아스가 한마디 했다. 그 말에 담긴 무거운 카리스마는 인조생명체들을 압박했다. 동시에 기만이기도 했다. ‘20명’을 대규모 인원이라 여기는 것부터 이 세계의 수준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바로 이들 너머에서 이를 관전하고 있는 놈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세파리아스의 눈이 이리저리 적들을 훑었다.
‘제대로 된 무인(武人)은 10명.’
붉은 요새의 방패병 7명, 포레스트 레인저 3명이었다.
아무리 순찰자라고해도 이곳에 있는 인조생명체의 등급은 ‘3성 정예병(Elite)’. 활을 다룰 뿐만 아니라 롱소드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훌륭한 검사(劍士)였다.
‘숏소드를 쥔 방패병과 롱소드를 쥔 순찰자라...재미가 없지는 않겠군.’
세파리아스가 가만히 있자 인조생명체들이 움직였다. 방패병은 걸리적거리는 단상을 방패로 무너뜨리고, 발로 걷어찼다. 가히 500평이나 되는 넓은 곳이라서 20명이 진형을 짜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선명한 빛이 방패병과 순찰자의 뒤에서 일어났다.
“아-아. 아!”
성악가처럼 목을 가다듬는 사제 7명의 목소리에 따라서 신성력이 넘실거렸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새로운 체계. 하지만 전에 본 적이 있지.’
신성력이라는 입자를 변형시켜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신성력 정보 입자와 비슷한 형태의 변형 신성력이었다.
노래에 따라서 신성력이 형태를 이루고, 형질이 변화되어서 아군에게로 스며들어 갔다.
“우오오오오!!!”
강력한 활력에 방패병이 고함을 내질렀다. 세파리아스는 그곳으로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영향무력(影響武力)>을 사용하지 않을 뿐, 나머지는 모두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낙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난 나의 길을 걷는다.’
이번 우주 낙원의 침공은 세파리아스에게는 값진 경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버러지처럼 여기는 초월자들. 그런 초월자의 침공 속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고, 다양한 판단 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명탐정이 살인사건을 쫓아다니듯이, 세파리아스 또한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전쟁으로 뛰어들어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신제국을 전쟁터로 만들 각오도 하고 있었다.
드낙이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얼마든지 피를 흘려서 미래를 위한 토대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황당하게도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파지지직!
바닥을 타고 전류가 일어나며 작은 벼락이 세파리아스를 노렸다. 동시에 방패병 사이로 순찰자들이 롱소드를 몸쪽으로 바짝 당기며 찌르기 자세를 했다.
‘마비와 후속타.’
당연하게도 순찰자의 그런 모습은 방패병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순찰자들의 체고(體高)가 낮아진 것만으로도 그들이 찌르기 자세를 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남에게는 전혀 할 수 없는 판단이었지만, 그에게는 너무 쉬운 판단이었다.
벼락은 정확하게 세파리아스에게 적중했다. 아무리 반신격이라도 벼락보다는 빠를 수 없었다. 동시에 그걸 인조생명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상대는 인간.’
아무리 반신격이 되었다고 해도 인간은 인간이었다. 오우거가 반신이 되는 것과 엘프가 반신이 되는 것과 인간이 반신이 되는건 큰 차이가 있었다. 신이 되기 전까지는 결국 자신의 종족에 얽매여있는 게 반신격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인간 반신격’의 전투력과 특성을 파악하려고 이곳에 올 생각을 했다.
벼락이 도달하는 타이밍 전에 방패병들이 방패를 비켜섰고, 순찰자 3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완벽한 한 수였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벼락이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가볍게 움직였다. 오우거의 적발이 지닌 마법저항이 있어서였다.
“웃!”
순찰자들은 조금만 움직인 것만으로도 세파리아스가 마법에 면역이라는 걸 알고, 발을 틀었다. 한 놈은 쓰러지듯이 좌측으로 몸을 내던졌다. 다른 놈은 급히 멈췄다. 자신의 공격은 쏘아졌고, 세파리아스는 아직 롱소드를 움직이고 있지 않아서였다.
선공이 아무리 후공보다 좋다고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외통수나 다름없었다.
푹!
정면에서 돌격을 멈춘 놈의 아랫배에 세파리아스의 롱소드가 깊게 찔러 들어갔다. 순찰자는 찌르던 검을 멈춰서 휘둘렀지만, 강철 글러브로 후려쳤다. 아랫배에 검이 찔러 박힌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낼 수가 없는 순찰자는 검을 그대로 놓쳐버렸다.
세파리아스는 발로 배를 걷어차며 롱소드를 회수했다.
큰 방패가 그를 에워싸듯이 포위했다. 자연스럽게 쓰러진 순찰자를 지나서 방패병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신성력은 순찰자를 치료하지 못했다. 앞에 방패가 있음에도 세파리아스가 달려들어서였다.
적발의 초월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 저항의 권역에 들어갔기에 신성력조차도 사그라들었다.
“말도 안 되는!”
경악하는 사제의 목소리를 들으며 체격이 곰 같은 붉은 요새의 방패병은 숏소드를 집어넣고,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검사를 상대할 때 둔기만큼 좋은 게 없었다.
쿵!
방패와 세파리아스의 몸이 부딪쳤다. 방패병의 둔기가 내려쳐 졌다.
부웅!
허공을 둔기가 휩쓸었다. 방패로 느껴지는 체중이 확 사라지자 방패가 앞으로 쏠렸다.
터억.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음에도 앞발차기로 방패의 끝에 발을 올린 세파리아스가 이를 잡아당겼다.
‘큭!’
방패병이 버텼지만, 손으로 발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방패가 앞으로 쏠렸다는 게 중요했다.
팔이 활짝 펴져 있었다.
인체 구조상 팔을 접힌 상태에서 버티는 건 쉽지만, 팔을 쫙 편 상태에서는 쌀 20kg도 들기 힘들다. 허리에 부담도 컸다.
쾅!
단번에 방패가 바닥의 대리석과 부딪쳐서 큰 소리를 냈다. 그사이에 좌우에서 방패병이 세파리아스를 향해서 덤볐다. 세파리아스는 방패를 발로 걷어차더니 한쪽 구석을 내려 밟았다.
방패가 팍 튀어 오르며 좌측의 방패병의 진로를 방해했다. 그리고 세파리아스는 우측으로 몸을 돌리며 상단을 취했다. 방패병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비스듬하게 이를 막을 준비를 했다.
시야가 당연히 가려졌다. 그 사이에 세파리아스는 두 걸음 물러서며 후방을 잡으려는 순찰자에게 몸을 돌리며 달려들었다.
캉!
검이 순수하게 부딪쳤다. 그것만으로도 순찰자의 검이 휘청거렸다. 평범하게 1:1을 해서는 반신격에 도달한 인간을 버틸 수 없었다.
후욱!
3걸음 차이를 두고 있던 방패병이 들고 있던 숏소드를 투척했다. 세파리아스는 이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꾸준히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숏소드의 투검은 허공을 가르며 벽에 있는 그림에 박혔다.
순찰자는 롱소드를 버렸다. 대신 단검을 두 자루 뽑아들었다. 범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검신이 짧은 단검이기에 더더욱 적의 공격을 막기 수월했다.
완전히 수비태세에 들어간 후방을 잡으려던 순찰자는 그 순간 혼자가 되었고, 그렇기에 버티기로 들어간 것이다.
범처럼 달려든 세파리아스는 팔을 휘적거렸다. 상단에서 중단 그리고 하단으로 옮겨갔다. 단검이 이리저리 허공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세파리아스가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불!”
결국 순찰자가 입에서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경장비를 입고 있는 순찰자의 팔에 걸린 검은색 팔찌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그리고 단번에 사라졌다.
‘마법 저항!’
절로 이를 악물었다. 무식하게 전신갑주를 입은 세파리아스는 가슴으로 놈을 쳐서 넘어뜨렸다. 단검을 쥔 건 롱소드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전신갑주에 흠집 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 덕에 순찰자는 허망할 정도로 세파리아스의 돌진에 당했다. 돌진이랄 것도 없었다.
롱소드를 버리고, 수비를 택한 건 전술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후방과 좌우에 아군이 있어서였다. 실제로 순찰자를 넘어뜨린 세파리아스는 숏소드를 던진 방패병의 방패에 한두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빌어먹을!’
서둘러 넘어진 순찰자가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등골에는 서늘한 감각만이 존재했다.
전신갑주에 부딪쳐서 넘어졌을 때, 그 찰나의 순간에 가졌던 어마어마한 무력감.
사자의 아가리를 마주하는 듯한 공포.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단검으로 전신갑주를 쳤다면 롱소드가 허벅지나 다른 곳을 베었을 터였다. 모든 선택지에서 내몰린 순찰자는 아무것도 못 했고, 방패병 덕분에 살아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공포 때문에 몸이 무뎌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이내 강하게 다시 롱소드를 움켜쥐었다. 롱소드를 회수한 순찰자의 눈에 팔이 꺾여서 그대로 탈골 당해 쓰러지는 방패병의 모습이 보였다.
‘미친.’
세파리아스는 롱소드 하나 쓰지 않고, 방패병을 쉴드차지를 유도한 뒤에 측면을 손으로 잡아서 비집고 들어와 그대로 박투에 들어갔다. 무식한 반신격의 힘에 방패병은 무력하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몸과 몸이 얽혔고, 체급은 낮았지만, 힘에 우위를 지닌 세파리아스는 단박에 무기를 쥔 오른팔을 탈골시켰다. 특히 놈의 무릎 사이의 방어구 틈에 롱소드를 끼워놓은 것이 대단히 유효하게 작용했다.
덜컥거리며 자신의 움직임이 제한받자 크게 당황한 것이다. 쓰러지는 놈에게서 롱소드를 가볍게 회수한 세파리아스는 검으로 투구를 후려쳤다.
검이라고 해도 롱소드의 길이를 생각하면 그냥 둔기나 다름없었다.
“물러서!”
마법저항의 현상을 본 오성마탑의 마법사 3명이 합일하여 강대한 마력을 통해 대마법을 실현시켰다.
콰앙!
폭음이 터져 나오며 세파리아스가 있던 곳을 폭발시켰다. 이글거리는 마법불꽃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와서 가렸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있었으면 하는데...”
오성마탑의 마법사가 재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 사이에 사제 7명은 상처 입은 이를 치료했다.
저벅. 저벅.
세파리아스가 연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으로 발생시킨 폭발이었기에 실오라기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저 흙먼지가 묻었을 뿐이었다.
“페이즈2를 준비한다.”
붉은 요새의 방패병 중 리더인 페리(Perry)가 방패를 버렸다. 숏소드와 기관단총(SMG)을 꺼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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