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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그림자가 질주한다. 서쪽으로 향했다. 소용돌이 형태로 만들어진 지하동굴의 크기는 넓었다. 드낙의 눈이 마충(魔蟲)에게로 향했다.
‘기생충 새끼들.’
마음 같아서는 기생인처럼 변질시키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신의 힘과 악마의 힘은 달라서 충돌만 일어날 뿐이었다. 이를 가공해서 무구로 만든 드워프의 대단함을 새삼 느꼈다.
발라쿠의 피조차도 흡수하지 못했던 드낙과는 다르게 드워프는 적합한 프로세스를 통해서 마왕 무구를 만들어냈다.
‘공정 과정이 끝난 마왕 무구는 괜찮다. 하지만 과정 중에는 마신의 힘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다는 거지.’
그렇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마신의 힘은 체계가 전혀 달랐기에 독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깊게 생각하지 않은 드낙의 잘못이 매우 큰 사건이었다.
화르르르르!
이글거리는 화염이 모든 통로를 뒤덮었다. 나가 새끼들부터 시작해서 마충과 신비수력까지 모조리 없앴다. 적 또한 반신. 그리고 드낙 또한 반신이었다.
초월의 힘으로 경쟁이 붙으면 드낙이 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무리는 하지 않았다. 점점 조여오는 수많은 사건의 압박 속에서 전력을 다하지는 못했다.
그저 현재 가진 <힘>만큼만 활약하고 있었다.
업(業)을 소모해서 힘으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면 악마가 되는 길은 더욱 멀어진다. 어차피 놈도 반신. 나도 반신이다. 끝까지 도달하면 놈을 따라잡을 수 있어.’
다른 곳에 뚫어놓은 통로 또한 뿔쥐들에게 맡긴 상태였다. 그 덕에 더더욱 빨리 시간을 당길 수 있었다.
화염과 그림자를 다루며 드낙의 속력은 점점 빨라졌다.
능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능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반신급 나가에 대한 추측도 쌓여서, 곧 하나의 결과가 꽃피웠다.
‘빌어먹을. 이래서는 내가 진다.’
놈은 바다에 도착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신비수력(神祕水力)’에 있었다.
‘압도적인 제어력.’
마력은 형태가 없다. 하지만 신비수력은 형태가 있다. 거기에 변동성이 강한 액체고, 액체 중에서도 제법 무서운 ‘물’이다.
‘그렇게 형편 좋은 힘을 다룬다면 효율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송곳처럼 한 능력치에만 올인한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었다. 드낙이 그림자, 악마, 신성력, 신, 은신과 사냥, 암살, 마력과 주력, 피 등으로 개발된 것과는 다르게 오직 신비수력 하나만으로 반신급에 오른 나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숙련도를 보유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화염을 뿌리며 그림자로 질주하는 드낙만큼 빠른 속력으로 굴을 돌파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 속력은 물의 가속력만큼이나 점차 빨라질 것이다.
그 광경을 드낙이 상상했다.
현대인의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한 뛰어난 상상력은 순식간에 그 광경을 머릿속에 출력할 수 있었다.
‘가속력이 붙기 전까지 많은 힘을 소모하지만 한 번 붙고 나서는 유지에만 쓰면 된다.’
바위조차도 찰나의 순간에 갈라버릴 정도의 물 소용돌이를 만들면 그때부터는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바위와의 충돌 시간이 줄어들수록 속력의 저하 정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고로, 상대는 지금 아우토반을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내달릴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빠를 수 있었다. 상대의 목적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바다로의 진출>.
그것만 이루어내고 숨으면 끝이다. 마신은 이곳에 장기적인 투자를 위해서 반신급 한 마리만 보냈다. 그 결과물은 1년이 지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해양종족의 등장이었다.
‘나가 새끼의 부화 속력을 본다면 끝장이다.’
바다는 생명의 보고(寶庫).
뚫리는 순간 차원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파악한 드낙은 단번에 파동으로 변했다.
마충이고 나발이고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속였다.
관측에서 벗어난 드낙의 육체는 그저 파동에 불과했다. 단번에 드낙은 대륙 서쪽 끝에 도달했다.
‘단번에 땅을 뚫고 지하로 향한다. 놈의 앞길을 막는다.’
그렇게 마음 먹었으므로 지하로 땅을 뚫기 시작했다. 마법을 이용해서 용암을 집어넣어서 모조리 녹이며 태웠다. 매캐한 연기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약 100평 남짓의 거대한 구덩이가 서서히 깊어지기 시작했다.
‘최소 3일 이후에 여기서 만나겠지.’
그전까지 시간이 있었다. 조금 뒤에 바다가 있다는 게 좀 그렇지만,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대신 드낙은 다양한 생각을 했다.
‘마신의 무서움.’
의외성.
‘보통은 드워프를 지배해서 그들을 통해 전쟁을 수행하고, 업을 빨아들인다.’
그게 평범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제법 강력한 존재가 중립신의 드워프다. 그런데 그걸 전투에 한 번 써먹지 않고 바로 인신공양으로 죽여버렸다.
‘반신급을 소환했다.’
비효율적이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의외성을 지닌 마신은 실로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마신을 따르는 존재가 마신의 방침을 통해서 수작질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더욱더 열심히, 철저히 임해야 한다.’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걸 이번 사태에서 배웠다. 마신장처럼 힘으로 찍어누르고, 마신군단처럼 단타치고 빤스런치는 것도 솔직히 일품이었다.
‘이제는 확실한 세계전염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아직 막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드낙은 몸집을 키웠다. 순식간에 10m가 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상태에서 자신의 손아귀에서 피를 쏟아내 대검을 만들었다.
‘놈이 뚫어놓은 굴의 크기를 봤을 때 못해도 중대형급 존재다.’
체급이 비등비등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드낙은 이렇게 하고 나서 또 하나를 깨달았다.
‘무기.’
반신급 이상을 때려잡는 무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 단순히 피로 만든 대검은 유효할 수는 있었지만, 더 노력할 수 있었다.
‘그걸 게을리했다.’
동시에 드낙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마저도 이계인의 초월자 파동파악 마탑에 걸릴 수 있어서였다. 드낙은 숨길 수 있었지만, 드낙이 내뿜는 힘은 숨길 수 없었다. 물론 현재의 드낙은 들킬 염려가 없었다.
현실에 <힘>이 방출되는 걸 조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드낙은 결국 자신의 특기로 눈을 돌렸다.
‘암살.’
숨어있다가 바로 놈의 목을 친다면 게임 끝이다. 마음을 정한 드낙은 몸집을 키운 상태로 몸을 숨겼다.
기괴하게도 그렇게 컸음에도 존재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 대검 또한 스멀스멀 사라졌다.
피가 흙에 묻었음에도 흙은 전혀 피를 흡수하지 못했다.
이제 드낙도 어엿한 반마(半魔)였다.
악마는 육체를 힘으로 사용하는 존재. 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운용할 줄 알아야 했다. 그렇기에 반마도 이런 것쯤은 쉽게 할 수 있었다. 동시에 드낙은 은신의 귀재였다.
3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바다로 향해 질주하는 지진소리와 뒤섞인 파도소리가 드낙의 귀로 들려왔다.
콰앙!
거센 충격음과 함께 바닷물이 솟구쳐올랐다. 그곳에서 마신의 종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길이는 16m에 이르렀다.
물의 뱀(水蛇)이었고, 길쭉한 삼지창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나가가 거대화된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대머리였지만 등과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에 물갈퀴가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지느러미도 몸 곳곳에 구석구석 팔랑거렸다.
다섯 번째의 비늘(복제품).
세우림 수사(水蛇).
놈은 바닷물을 받아들이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동시에 놈의 꼬리에서는 끝도 없이 나가의 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닥치는 대로 알을 깐 듯했다.
드낙은 몰래 이를 지켜봤다. 상대는 전혀 자신을 알아차리고 있지 않았지만, 암살하기에는 까다로웠다.
‘와류(渦流).’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회오리치는 신비수력 때문이었다. 드낙은 형체를 지니고 있었기에 저 와류에 모습을 조금만 드러내도 와류는 변화한다. 회오리치는 머그컵에 젓가락만 놓아도 움직임이 확 변한다.
‘자연스럽게 암살을 피할 수 있고, 투사체부터 시작해서 온갖 공격의 흐름을 확장해서 느낄 수 있다.’
강력한 방벽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 외의 ‘보이지 않는 방벽’도 알아차렸다. 평범한 암살자라면 결코 못 볼 것을 확인했다.
‘음흉하기 짝이 없군.’
그 보이지 않는 장벽은 바로.
*
“특! 단!의 조치가 필요하오!”
드워프들 수천명이 한 곳에 모였다.
<검은 드워프 사태>
그곳에서 3천 명이 넘는 드워프가 핏물이 되어서 죽었다. 진정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건 드워프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드워프들도 죽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드워프가 한 번에 죽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규모 전투일수록 상대의 숨통을 제대로 끊기가 어렵다. 드워프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아무리 큰 전투라도 살아남는 드워프가 많았다.
워낙 단단하기 때문이고 애초에 큰 전투도 역사상 잘 없었다.
결국, 이번 일은 드워프 제국에게 큰 파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책이 필요하오! 대책!”
너도나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해결책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즉, 지금 이렇게 소란스럽지만, 이야기의 전진은 없었고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조용! 조용! 위험을 말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제대로 된 해결방법을 이야기해봐라!”
산맥 가문, 왕의 가문의 말에 모두 조용해졌다. 어떻게 해야 마신의 손아귀로부터 괜찮은 드워프 제국이 되는가.
그건 너무나도 큰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돌덩이 전사 가문의 일원이었다. 모두 표정 변화가 없었는데, 항상 엉뚱한 소리를 하는 전사 가문이어서였다.
다만 그들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숫자가 많아서였다.
“커허허허허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위대한 돌덩이 전사 가문의 일원이며!”
그가 자신의 경력을 간단히 말했다. 그다음에 입을 놀렸다.
“수련을 하는 게 어떤가 싶소! 결국에 우리 드워프는 정신이 약하다는 소리 아닌가! 그걸 해결하면 능히 마신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무슨 그런 해결 방법을...”
너도나도 부정적이었다. 이에 돌덩이 전사 가문의 일원이 역정을 냈다.
“제대로 된 해결 방법도 말 못하면서 깎아내리기만 하다니!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가!”
“그-만! 그래서 어떻게 수련을 하자는 건가?”
“뭐, 많지 않겠습니까? 육체를 고통스럽게 해서 변태처럼 자가발전을 이룩하는 인간처럼 말입니다.”
“인간들이 변태적이긴 하지. 일부러 땀을 흘리며 몸에 부담을 주는 놈들이야.”
이미 완성된 육체를 지닌 드워프의 입장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수련하는 인간은 아주 변태적인 종족이었다. 그런 종족을 받아들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드낙 때문이었다.
“그런 걸 따라 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정신력이 늘어나기는 하겠지만...내키지가 않소.”
“드워프에 맞게 조정하면 되는 것 아니오.”
“흠...”
그럴듯해보였다.
“드워프가 정신력을 올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변태적인 일...”
“변태적이라는 단어는 뺍시다. 우리도 수련을 하기는 하잖습니까.”
“힘들지 않을 뿐이지.”
“잠을 버티는 건 어떻소?”
솔깃.
“잠을 이긴다라...”
“앞으로의 드워프 제국을 위해서라면 능히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오.”
대업(大業)과도 연결되어있었다.
“확실히 잠과 싸우면 정신력은 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으음...드워프의 정신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수도...”
“마신의 종자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짓을 해올 공산이 크오.”
결국 그들은 일단 임시방편으로 이를 진행하기로 했다.
잠을 버티다가 진짜 잘 것 같을 때 바로 각성제를 먹어버리는 수련이었다.
이를 잠술(Sleeping Arts)라 명명했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을 잠투력으로 설정하며 이 평균치를 그 어떤 드워프라도 볼 수 있도록 했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드워프들이 슬리핑 아츠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호오? 이거 대단한 걸요! 어떻게 하루 만에 잠투력을 900까지 올렸지요? 후후,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드워프 술집에서는 잠투력이 높은 드워프에게 무료로 술을 제공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네임드가 된 드워프들은 자신만의 컨셉을 잡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긴다!”
“하루 만에 잠투력을 300이나 올린 다크호스의 등장이다! 판돈은 은화 하나부터!”
자연스럽게 내기도 이루어졌다.
“이녀석! 싸우는 도중에도 잠투력이 계속 갱신되고 있다고!”
“어이어이, 젠장! 진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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