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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96화 (89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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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이 어느 정도 귀찮음과 게으름을 쫓아냈을 때는 2일이 더 지나 있었다. 이미 필요한 정보는 모두 축적된 상태였다.

촤락!

두꺼운 양피지를 펼쳐서 확인했다. 저급한 종이와는 다르게 확실히 양피지의 질감은 뛰어났다.

가장 먼저 양피지에서 언급되고 있고, 정리된 보고서에는 파견대의 출발과 드루먼쇼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었다.

‘실패확률이 7할?’

이미 끝난 것이나 봐도 무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낙이 너무 시간을 허비하고, 해결하지 못해서였다. 마신의 힘은 계속해서 초월자 파동 파악 마탑에 의해서 관측되고 있었다.

수천 명의 드워프가 지닌 <힘(力)>과 <업(業)>과 <격(格)>이 오벨리스크에 모여들었다. 어쩔 수 없이 관측될 수밖에 없었다. 추가적인 은폐작업을 진행한 것이 아녀서였다.

‘그것도 며칠 내내. 제기랄, 내가 왜 그랬지?’

1년 365일 휴일 없이 지낸 직장인이 3일 휴가를 받은 것처럼 혼자 지내버렸다. 술만 진탕 마시며 취하며 알딸딸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 노력했다.

이제 찾아온 건 후회뿐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드낙이 엘프 선박 자문단에 쓴 머리만큼 뿔쥐들이 해결방안을 제법 적어놨다는 점이다. 드낙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한 결정이었다.

신이 결정하기 전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 건 신성모독이었지만 그만큼 드낙이 불완전한 모습을 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드낙을 위하는 마음은 대단히 선한 마음이었고, 그가 괴로워할 때 뿔쥐들은 그를 도와줄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드낙과 뿔쥐의 관계였다.

‘세파리아스를 움직인다.’

가장 좋은 해결법이 있다면, 파견단의 목적을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조금 위험하고, 조금 경계해야하고, 조금 위태로워도 그나마 현재로써는 가능한 일이다. 이미 마신의 힘은 확실하게 이계인들에게 들어간 게 확실시 되어 보였다.

그렇기에 차선을 택하는 게 필요했다.

‘그 차선이 세파리아스? 뿔쥐들이 세파리아스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네.’

이계인들이 만약 세파리아스를 가까이에서 본다면 그들은 온몸의 털이 곤두설 것이다.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는 그만큼 대단했다.

피숨결 검은 뿔쥐는 드낙에 대한 신앙심 때문에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에서 자유롭지만 다른 존재는 다르다. 조금만 말을 섞어도 그를 따르고 싶고, 충성하고 싶은 게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였다.

거지가 하루아침에 군대를 이끌고, 성을 차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드낙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뿔쥐와는 다르게 세파리아스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심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차선일 수밖에 없지.’

드낙이 마신을 다 죽이기 전까지 이계인과 세파리아스를 대립시켜서 그들을 돌려보내게 하는 건 필요한 조치였다. 혹은 세파리아스를 보여주지 않고, 신제국에서 구금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유? 기득권층과 말다툼했으니까.’

그런 간단한 것으로도 구금이 가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계인들에게 신제국 또한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세파리아스도 안 보여주고, 마신도 안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계획은 허점투성이였다. 이계인들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무리해서 신제국을 횡단할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되면 드루먼쇼는 그냥 끝난다.

‘무지막지하게 발달하고 있으니까.’

신제국은 세파리아스라는 단 한 명의 지배자를 두고 엄청난 집중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시골 마을 옆에 거대한 마탑을 세우고 있는 성이 빌딩처럼 쌓아 올려지고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그들이 기존 길을 탈선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자신들이 속았다는 걸 깨달으면 어찌 되었든 경계해야 한다고 전달할테고...’

그렇게 되면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주 낙원이라는 것과 차원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남은 기간 이계인들은 흩어져서 다양한 정보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휴우...”

드낙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참았다. 마음도 답답했다. 온종일 도서관에서 수학 공부만 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 미쳐버리게 하는 이 감각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결국 드낙은 더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세파리아스를 설득해본다. 어차피 하는 거 파견대가 일단은 문제없이 신제국을 관통하게 만들어야겠다. 차원전쟁을 쉽게 끝내려면 신제국도 출혈을 감수해야겠지.”

그 사이에 드낙은 마신의 종자를 처리하고, 일부를 남겨두어 이계인들이 관측하게끔 둔다. 동시에 제국군으로 처리한다. 세파리아스는 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골램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마을에서 골렘을 본 것이 그들이다. 바보 같은 지배자라고 웃었던 것이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골렘을 통해서 적을 상대하는 건 좋은 생각이었다. 이미 확인된 것이고, 골렘은 위협적이지만, 그렇게까지 충격적으로 위협적인 건 아니었다.

드낙은 그렇게 대충 생각하며 단번에 움직였다.

세상을 속이고, 파동으로 변하여 단번에 신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세파리아스를 찾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냥 물어보면 된다.

그림자로 변해서 돌아다니며 세파리아스를 찾았다. 그는 회의소에 있었는데, 수많은 대신들 앞에서 전혀 꿀리는 모습 없이 이야기를 주도 하고 있었다. 그 뒤에 드낙이 설려고 했는데, 세파리아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오우씨!”

드낙이 기겁했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미소를 지었다.

“똑같은 수법은 2번 당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진짜 미친놈이네.’

세파리아스의 재능은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이래서 판타지 세상에서 암살자 하겠어?”

“누가 하라고 했느냐?”

그렇게 말한 세파리아스가 손을 휘젓자 대신들이 썰물처럼 쓸려 내려가 사라져버렸다.

“무슨 일이냐.”

다 알면서도 세파리아스가 물었다.

“이계인 때문이지, 뭐겠어? 마신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걸 너도 알잖아?”

“그래. 그것 때문에 일단 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피의 호수가 있는 곳은 굳이 신제국을 통해서 오지 않아도 되는데?”

“도로가 좋으니까, 경유해도 시간상으로는 빠르다는 거지.”

이계인들의 판단은 마신과 신제국,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소리였다. 그제야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드워프는 서쪽에 있고 신제국은 중앙 서부에 존재했다.

도로의 존재도 한몫했지만, 정보를 두 종류 획득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다.

‘그게 이계인의 노림수였나.’

“그럼 놈들은 시간이 촉박하니까....자극하면 안 되겠네.”

“난 모습을 내비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무리해서라도 날 보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네가 해놓은 드루먼쇼니 하찮은쇼가 정한 신제국의 수준으로는 그들로부터 날 사전차단할 수 없다.”

“마주쳐도 죽이지는 마. 그럼 큰일 난다고.”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웃었다.

“영향무력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다른 건 다 쓰겠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 대처하면 사상자가 나올 수 있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반신격의 평균적인 힘을 통해서 이계인을 처단한다면 그들은 서둘러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 들킬 것 같다. 내 기분 탓일까?’

걱정이 한 움큼 크게 들어왔다. 이상하리만치 불쾌한 기분은 아까부터 계속 드낙을 괴롭히고 있었다. 사기를 당하기 직전에 아리송한 괴이한 기분.

점점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최대한 조심히. 응? 잘못되면 결국 적에게 기습하지 못한 채로 차원전쟁에 임해야 하니까.”

“글쎄. 그렇게 대단한 놈들이면 아무도 없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세파리아스는 아무리 적들을 방심한다고 해도 적들이 기본은 할 것이라 여겼다. 미리 안전을 확보하고 착륙할 것이 뻔했다. 드낙이 하는 짓은 너무 겁을 먹고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미지의 적에게 한없이 겁쟁이인 게 드낙이지.’

그렇기에 그는 그걸 지적하지도 않았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가라.”

“말 안 해도 간다.”

드낙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세파리아스도 각오를 다졌다. 그 또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자. 최악은 피하고 싶었다.

그는 순식간에 뿔쥐들이 알려준 좌표에 도착했다. 정확히 피의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없다.’

엄청난 용량을 지니고 있었던 피의 호수는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동시에 드워프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오벨리스크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드낙이 단번에 그곳에 근접했다.

툭.

드워프의 시체를 쳤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부릅뜬 눈은 붉은색이었다. 드낙이 죽은 드워프의 상태를 확인했다.

‘피가 한 방울도 없다.’

다른 드워프들 모두 피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3천이 넘는 드워프들의 시체 속에서 무엇도 찾지 못하자 드낙은 오벨리스크로 눈을 돌렸다. 그때가 되고 나서야 주변에 있던 뿔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동태를 살피고 있었고, 드낙이 나타나자 모여들었다.

‘마신의 오벨리스크.’

빛도 내지 않고 있었지만 절로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그곳에 담긴 문양에 절로 시선이 담겼다. 뱀의 머리에 인간의 상체 그리고 뱀의 하체를 지니고 물을 다루며 삼지창을 쥐고 있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놈들 소환한 건가? 하지만 왜 아무것도 없지?’

정보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무엇하나 걸리지 않았다. 이에 드낙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겠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드워프들이 기도를 했습니다. 숭배하고 고개를 조아렸으며 손을 싹싹 빌었습니다.”

“세우림 그리고 다섯 번째의 비늘이라는 말만을 되풀이했습니다. 소환의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둘 쓰러지고 나서는 그마저도 줄어들었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변동이 없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드낙이 소리를 지르며 오벨리스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벨리스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곳에서는 그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비된 것이 틀림없다.’

무언가를 소환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누구도 모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아!”

드낙이 손뼉을 쳤다.

“마신이 그새 업을 강탈해서 자신에게로 전송했구나. 그러면 다 이해된다.”

그새 빤스런을 친 것이다. 그야말로 단타치고 빠지는 주식 개미 새끼들처럼 투기하기 바쁜 놈이나 다름없었다. 기업에는 도움 하나도 안 되면서 500원 천원 이득 보고 희희덕거리는 놈들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게 마신이었다.

‘작은 건 아니지. 무려 드워프 3천 명이다. 거기에 마왕 발라쿠의 피까지 알차게 챙겼다.’

손절을 할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신이시여! 만약 그렇게 사라졌다고 한다면 이계인들은 그 정도를 알고 신제국의 정찰에 힘을 쓰라는 정보를 숯숯마을로부터 받았을 겁니다.”

“정보 전달 체계가 있는가?”

“예. 그들은 실시간에 가깝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고 소통도 가능합니다. 신성력의 입자를 변형시켜 정보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와 신성력을 정보 통신으로 사용하는 셈이었다.

그 말에 드낙이 심호흡을 했다.

“마신의 힘은 계속 관측되는데 정작 이곳에는 마신의 종자가 없다. 소환물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는 않았을테고...빌어먹을!”

드낙이 화를 내며 오벨리스크를 발로 찼다. 인내심의 한계가 온 탓이다.

콰직!

단번에 오벨리스크의 일부분이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굵은 파편이 안으로 들어가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땅에 부딪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통...토통...통!

그저 벽과 부딪치는 소리와 메아리가 들려왔다. 오벨리스크의 내부가 텅텅 비어있다는 걸 본 드낙이 숨을 멎은채 고개를 숙였다. 발로 걷어찬 부분을 손으로 잡아서 더욱 벌렸다.

“빛이여, 솟아라. 라이트(Light)!”

한 문장의 주문이 이루어지고 빛이 그 내부를 훑었다. 텅텅 비어있었고, 반들반들했다.

또옥.

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 게 드낙의 눈에 담겼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땅 아래로 향했다. 빛의 구체가 끝없이 밑의 통로로 내려갔다. 그 수심은 놀라울 정도로 깊었다. 그리고 아래로 향할수록 매우 넓어졌다.

곳곳에 물이 고여있기도 했다.

그곳을 본 드낙이 고함을 내질렀다.

“쇼생크 탈출이다! 이런 씨발! 당했다!”

마신 성현! 그도 어엿한 한국인이었다.

쇼생크 탈출 모르는 사람은 한국인으로 취급도 안 하고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게 인지상정인 세상에서 온 것이 그들이었다. 남들이 하면 자기도 해야 하는 사회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쇼생크 탈출을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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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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