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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그렇게 엘프들의 복불복 추첨이 드낙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상상 이상으로 참가율이 높은데...경쟁율은 약 200:1인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드낙이 아니었다. 그는 더욱 나섰다. 속으로 검게 웃었다. 도박이 지니는 무서움, 운빨이 지니는 급발진. 그게 엘프들에서 보였다.
아직은 싹에 불과했지만 드낙에게는 확실하게 보였다. 그 또한 게임머니 한도 60억을 다 써서 게임에서 강제퇴장 당했던 기억이 있었다. 현금으로는 10만 원에 불과해도 그 이후로 그는 고스톱을 그만뒀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그야말로 재미나게 즐겼었다.
‘요놈들 딱 걸렸다. 딱 대.’
겉보기에는 생각을 깊게 하면서 물러서는 엘프가 있었지만, 드낙의 눈에는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지만 체면을 차리는 것 같았다.
“기본 자문단의 숫자를 2배로! 40명에서 80명으로 변경하겠다!”
“와아아아아!”
엘프들이 소리를 내질렀다. 경쟁률이 단번에 하락했다. 가만히 있을 수야 없었다. 무엇보다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유명세가 다르면 벌어들이는 것도 다르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드낙은 단번에 이 분위기를 바꾸었다. 판돈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엘프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달려와서 종이를 아주 큰 테이블에 던졌다.
그 모습에 드낙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내뻗으며 외쳤다.
“아니! 아니! 4배로, 4배로 가자! 160명으로 가즈아!!”
으아아아아!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애앳!!”
크아아아아!
내친김에 술까지 돌렸다. 물론 술보다 더 좋은 것은 미남미녀를 출격시키는 것이지만 엘프들은 성욕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또 임신을 하는 것도 크게 꺼려서 <배양소>가 있을 정도라, 미인을 출진시키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는 벨룸 퓨에르들은 확실히 엘프와 타락 엘프는 다르다는 것을 더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드낙만 들어가면 타락 엘프들의 감정이 요동을 쳤다.
‘벽’과 ‘계단’을 허문 대가이기도 했다. 더는 고정된 엘프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벨룸 퓨에르들은 서로의 눈을 보며 눈치코치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우리는 체면이 있지.’
‘저런 것에는 끼지 말자.’
‘응?’
“저놈, 에르하르트 아냐?”
“벨룸 퓨에르가 왜 저기에 있어. 미친놈인가. 당장 끌어내!”
룩산드라의 말에 칼리스투스가 화를 냈다. 용기의 에르하르트가 단번에 끌려왔다. 끌려온 그는 불평했다.
“아니 왜! 나는 엘프 아냐? 나는 하면 안 돼?”
“선박 자문단에 무슨 벨룸 퓨에르가 속해? 보기 안 좋아. 디아볼로스들이 서로 눈치 보며 자중하는 거 안 보여?”
“너무하네. 진짜. 나도 좀 쉬고 싶은데...”
“어림도 없는 소리하지 마.”
“응, 근데 어쩌나? 이미 추첨 종이를 넣어버렸는걸?”
“너...”
칼리스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드낙이 이렇게 분위기를 만드는데 공조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고, 에르하르트의 이름이 적인 종이를 뺀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조용! 조용! 이제 추천 종이를 넣는 걸 중단하라!”
소란은 금새 진정되었다. 아무리 드낙이 화끈한 소리를 해도 결국 도박을 하는 엘프의 숫자는 정해져 있었다. 추첨이 되지 않으면 <차원전쟁 준비단>에 속하게 된다.
그때는 지옥이 시작된다. 얼마나 굴려질지 몰랐다. 하지만 드낙의 말대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인드가 잔뜩 자리잡혀 있었다.
“이제 내가 지목하는 엘프가 나와서 종이를 한 장 추첨하도록 하겠다!”
절로 맛깔나는 전개였다. 아무렇게나 지목된 엘프가 올라와서 추첨종이가 접힌 곳을 한 번 손으로 쓰윽 쓸었다.
단번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에르하르트!”
“으아아아아! 휴양지 가즈아아아아!!!”
그 말에 칼리스투스가 다급히 외쳤다.
“반마반신이시여! 이 자는 디아볼로스 중에서도 관리자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선박 자문단에 속하기에는 너무 큰 인물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양팔을 쩍 펼쳤다.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애!
엘프들이 샤우팅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칼리스투스가 눈을 감았다. 드낙이 보여주는 재미는 함께하면 더 재미난 법이었다.
“160명이 모두 정해졌지만 보너스다! 열심히 한 엘프들에게 앞으로도 부탁해야 하는 처지인데 어찌 160명으로 만족하겠느냐! 1,000명으로 간다!”
으와아아아아!
엘프들이 더욱 고함을 내질렀다.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좋아했는데, 지금 하는 행위가 그냥 도박이나 다름없어서 뇌에 행복물질이 폭발하듯이 분비되고 있었다.
디아볼로스고 나발이고 종이추첨에 걸린 존재는 무조건 선박 자문단에 속했다. 그렇게 1,000명이 정해졌다. 그중에 디아볼로스는 무려 128명에 달했고, 그중에 1명은 벨룸 퓨에르의 일원이었다.
당연히 에르하르트는 나머지 17인의 눈총을 잔뜩 받아야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에르하르트는 이번 차원전쟁 준비에서 편안하게 놀 수 있을 터였다.
“하하하하! 내가! 우리가 승리자다!”
“으아아아! 내가 해냈어!”
오랜만의 경쟁. 그곳에서 운빨로 승리하는 건 짜릿한 일이었다. 특히 워낙 고인물들이 많은 게 엘프 사회였다. 고스펙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며 사회적 승리를 하는 건 자주 보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1,000명의 선박 자문단이 엘프 중앙 도시를 떠났다. 그들은 웃으며 도시를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낙은 조울증 환자처럼 웃음기가 확 사라졌다. 뜨낙이 사라지고,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습은...가능하다.’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하지만 이내 드낙이 잔을 크게 들어 올렸다.
“10일 정도 쉬었는데, 하루 정도는 더 쉬어도 괜찮잖아! 잔을 들어 올려라! 그리고 나의 잔을 받고 싶은 자는 나에게 다가와라!”
“반마반신을 위하여!”
“신세계를 위하여!”
드낙은 그날 한나절을 술 마시는 데 썼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찬양했고, 수많은 이들이 그와 말을 섞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드낙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바빴다.
*
마왕 무구.
그것은 현재 전종족 연합이 모두 원하는 전략 물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는 건 당연히 드워프들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신장(魔神將)이 아니라 마왕(魔王)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강력하고 강대했던 오우거 발라쿠의 피가 섞인 무구였다.
피의 호수는 아직도 건재했고, 끝도 없이 마왕 무구의 제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90kg의 체구나 되어야 들 수 있고, 쉽게 운용 가능한 대형 할버드는 장병기에 폴암이다. 아주 강력한 병기였기에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드워프의 자랑 중 하나였다. 국뽕 치사량! 마왕 무구!
“엄청나지 않나.”
마왕 할버드의 도끼날을 갈며 드워프, ‘구리 관문’이 말했다. 드워프 전사였지만, 전시도 아니고 딱히 무력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 날을 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반마반신이 정한 주 40시간의 노동을 꼭 해야 하는 게 드워프들이었다.
물론, 이를 지키지 않는 드워프도 많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게 드워프들이었다. 중립신으로부터 가장 축복받은 육체를 받은 게 드워프라는 종족이었다. 다른 차원의 드워프와는 격이 달랐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마왕 무구를 만드는 일을 하려는 드워프가 많아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마왕 발라쿠!
마신 성현이 차원 침공의 첨병으로 삼은 장군이다. 당연히 오우거 중에서 고르고, 마신장 중에서 고르고 고른 장군이었다. 한 마리에 힘을 올인한 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줬다.
그가 죽은 자리는 피로 가득 찬 호수가 되었으니, 할 말 다했다.
너무나도 쉽게 죽은 것은 그만큼 발라쿠와 드낙의 공격력이 너무 뛰어났다는 점이다. 방어는 사실 도외시하고 적을 죽이기 위한 존재인 것이 발라쿠였다. 자신의 그릇조차도 붕괴하며 질주했던 것이 발라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한 파괴 행위와 함께 빠르게 저물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 여파는 드워프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마왕 무구를 제작하면 발라쿠의 힘이 드워프에게 전해진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발라쿠의 힘이 드워프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 소문은 점점 커지고, 과장되어가고 있었다.
‘각성제를 먹을 때마다 확실하게 성장했다는 게 느껴진다.’
드워프 전사 구리 관문 또한 그렇게 해서 여기에 온 드워프 중 하나였다. 단순 날을 가는 일만 해도 발라쿠의 힘으로 변화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워낙 감각이 무뎌서 각성제를 먹어야지 알 수 있는 변화였다.
‘변화가 있다는 게 중요하지.’
드워프들은 드낙의 아래로 들어왔지만, 아직도 큰 변화는 겪고 있지 않았다. 권속 악마가 생산하는 각성제를 통해서 드워프들에게도 악마의 피가 서서히 들어차고 있었지만, 워낙 강력한 육신을 지닌 게 드워프였다.
하지만 마왕 발라쿠의 피에 깃든 힘은 드워프와도 잘 어울렸다. 악마와는 다르게 오우거는 자연계 생물이고 초월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강할 뿐! 반면 마신은 그런 자연계 생명체를 그저 마력을 사용하고, 무영창 주문 사용자로 만들 뿐이다.
신체강화는 그 마력을 받아들인 오우거라는 종족이 자연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고로, 자연 생명체와 같은 드워프와 자연 생명체인 오우거는 죽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발라쿠의 힘은 드워프에게는 산삼보다 좋은 계피인 셈이다. 사람마다 잘 듣는 약재가 다른 것과 비슷했다.
물론 칼을 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드워프 전사가 은근슬쩍 할버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바닥에 있는 것은 신발의 끝에 부착해둔 <절단>의 드워프 손길이 담긴 단검으로 절단됐다.
그게 가능한 것은 이 구리 관문이라는 이름의 드워프 전사가 지닌 드워프 손길이 바로 절단이라서였다.
즉, 단검에 꾸준히 드워프 손길을 더욱 집어넣어서 과부하를 시키는 셈이다. 그 덕에 그의 품 안쪽에는 단검이 여러 자루가 있었다. 철이 가루가 되어서 바스러지면 단검의 검신을 교체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절단된 할버드는 등에 차곡차곡 넣어서 밀반출했다.
‘새로운 드워프의 가능성이다.’
거기서 자신이 첫 스타트를 끊어야했다. 하지만 자신은 후발주자! 그렇기에 도둑질을 해야만 했다. 각성제 덕분에 동기부여가 확확 타오르고, 열정이 쏟아져나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대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딱 3시간 일하고 퇴근했다. 할버드 하나 훔친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 할 버드는 어딜 가든지 함께했다. 그래야 발라쿠의 힘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에 대한 효과는 보름이 지나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변했다.”
인간처럼 모발이 변하지는 않았다. 대신, 눈동자가 변했다.
붉디붉은 눈동자가 드워프의 눈에 보였다. 구리 관문은 씨익 하고 웃었다. 각성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노동을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더욱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드워프의 손길이 변했다.’
전사였기에 광물을 생산해내지는 못한다. 그저 한 가지의 성질만을 변형시킬 수 있는 게 드워프들이었다. 구리 관문의 경우 <절단의 손길>을 지니고 있었다. 손길이 들어간 만큼 절삭력이 강해진다. 반면 내구력은 빠르게 감소한다.
‘더 강화되었다.’
구리관문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그가 다시 피의 호수로 향했다.
하지만 피의 호수는 엄격하게 통제된 상태였다.
‘냄새를 맡았구나.’
마왕 무구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호수를 주변으로 철봉이 박혔고, 위로는 철장이 그리고 천장마저도 철로 덮기 시작했다.
왕을 배출하는 가문인 산맥 가문부터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영향력을 확보하던 가문들의 대표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산맥 가문은 뿔쥐들에게 정보를 미리 제공했다.
드낙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큰일이 마왕 무구 생산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미 수천 명에 달하는 드워프들의 눈이 붉어진 상태였고, 그들은 이 현상을 강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입금지다! 드워프!”
구리 관문은 그 말을 듣고는 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목에는 핏대가 서렸으며, 눈에는 광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으득!
드워프로서는 가져서는 안 되는 거대한 증오와 분노가 그 눈에 맹렬하게 소용돌이쳤다.
‘발라쿠의 피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적안의 드워프를 찾아다니면서 규합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은 뿔쥐로부터 보여지지는 않았다. 드워프들은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기에 뿔쥐들은 영향력이 있는 가문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뿔쥐들이 하고 있는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인사단행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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