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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세파리아스는 조심스럽게 드낙을 따라나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은 진정되기는커녕, 거세게 뛰었다. 그는 드낙의 치밀함을 잘 알았다. 중립신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중립신은 드낙을 오래전부터 아니, 이 세계에 태어났을 때부터 주시하고 있었다.
고블린이 창고에 숨어 들어가며 도둑질을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다른 ‘때’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드낙이 검은 꿈을 마주한다는 건 필연이었다.
훈련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사냥꾼임에도 마브로스 리꼬를 사냥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드낙의 면모를 오늘 마주했다.
‘전과 다르지.’
<힘>을 보유하고, 초월자로 나아가야 할 존재가 똑똑하다? 조심할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베테랑 병사 양성은 황제 기사단을 만드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드낙이 말했고, 세파리아스가 대답했다. 마음속에 있는 불안은 말에 단 한 점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 훈련만 해서 태어나는 황제 기사단은 경험이 적어서 쉽게 죽을 수 있다. 그걸 방지하고 미리 베테랑으로 만들어놓는다면, 나한테 큰 이득이지.”
솔직하게 자신의 노림수를 말했다. 현재 마주하고 있는 드낙은 멀쩡한 사냥꾼이다. 뜨~낙이 아니다.
“나도 그건 인정해. 지금만 해도 이계인들이 침투해있거든.”
“동의한다.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언제든지 차원침공이 일어날 수 있다.”
세파리아스의 의견을 들으며 드낙은 중립신을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에 그렇게 무리했던 것도 서둘러서 차원을 막기 위해서였을 거다.”
“그렇겠지.”
드낙은 양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협곡을 선정하고, 인공 지형을 많이 만들어 봐.”
“엄청난 토목사업일 텐데?”
“베테랑 병사 만드는 게 쉬운 일이야? 한 번 만들 때 제대로 해야지. 탁상공론으로 끝내기는 싫다.”
드낙이 몸을 돌리며 시원하게 웃으며 외쳤다.
“신제국 잉여 노동력 전부 가즈아!!!”
“미친놈.”
세파리아스가 툭 내뱉었다. 드낙은 거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짓을 하면 신제국은 망하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이 두루두루 발전하는 게 국가에서는 베스트다.
‘곧 식량 문제가 해결된다면 요식업의 단가도 내려가고 사람들은 많은 잉여 시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직접 해먹는 것도 싸지만, 그냥 사 먹는 것도 싸다. 그럼 자신이 편한 대로 하게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수많은 사람이 알아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게으른 자는 배를 두들기며 햇빛에 드러누울 것이고.
커리어의 완성을 원하는 자는 조금 더 자신의 분야에 투자할 것이다.
세계를 마주하고 싶은 자는 여행을 길게 떠날 터다.
수많은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속에서 필멸자들은 비로소 <자신>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20살에 결혼하는 사람이 있고, 30살에 결혼하는 사람이 있고, 40살에 결혼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냥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시간은 <같은 일>을 두고서도 모두 다르게 흘러간다. 그 시계를 맞추려고 하지 말아야 했다. 남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자아실현의 첫걸음이다.
그 잉여시간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손을 대는 것이 좋았다.
“이미지 크리스탈 사고 싶어서 너도나도 공사판에 뛰어들걸? 인원수 딱딱 정해놓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자치왕국도 공동으로 추진하도록 해.”
“왜?”
“두 곳의 데이터를 모은다면 피규어들이 더 현실적이고 변칙적으로 싸우지 않겠어?”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고양감을 높일 수 있겠어.”
자치왕국 병사나 기사의 데이터를 담은 피규어에게 패배한다? 열등감이 바짝 설 것이다.
“판매용, 경기 및 병사 양성용으로 나눠서 피규어를 만들면 되겠지.”
“판매용은 30cm가 적당하겠고, 경기용과 베테랑 병사 양성용은 150~180cm면 좋겠는데.”
“그럼 180cm로 그냥 만들자. 그게 더 현실적이니까.”
드낙과 세파리아스는 걸어가면서 수많은 것을 결정했다.
신제국의 황제와 반마반신이 한 자리에 있었다.
일 처리가 빨리 끝날 수밖에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금방 피규어 공장을 떠났다. 드낙은 세파리아스가 이 피규어 공장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줬다. 그럴 역량이 충분했다. 좋으면 그냥 그것도 그냥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전쟁과 분란 그리고 기득권층끼리 하는 밥그릇 싸움 등,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분란이 사라졌기에 가능했다.
모든 이들이 밥그릇 싸움하며 밥을 버리기보다는 새로운 밥그릇을 만들기 바빴다.
드낙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때? 잘 돼 가고 있나?”
“반마반신을 뵙습니다. 예! 잘 되고 있습니다.”
드워프가 고개를 숙였다. 드낙이 풍기는 카리스마는 격(格)이 높아서 자연스러웠고, 그 카리스마는 업과 격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점점 꽃을 피울 때가 찾아오고 있었다. 타락 엘프와 디아볼로스가 제대로 업을 서로 돌려 넣기 하지 않고, 드낙에게 주고 있어서였다.
“지금 하고 있는 건 뭐지?”
“오크 주술사들이 연금에도 제법 공부를 했습니다. 그 연금술과 드워프의 손길을 합쳐서 <물렁 금속>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신기하네.”
물컹거리는 금속. 광택이 대단했다.
“도색을 칠하면 진짜 사람 피부처럼 됩니다. 오크 피부도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종족마다 피부가 보이는 게 달라서 매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굳이 오크 피부까지? 킹 슬레이어 캠페인에 오크가 나오나?”
“오크 주술사들이 겸사겸사 한다고...”
드낙은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막는다면 일의 결과물은 빨리 나오겠지만, 다른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드워프들은 듬직하게 피규어들의 외형을 만드는 데 이미 성공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곧바로 오크 주술사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물렁금속에 쓰이는 연금물약부터 다양한 종족의 피부색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선 드낙은 이를 다 보고 난 뒤에 오크 주술사 책임자를 몇 명 호출했다. 당연히 앞으로 어떤 걸 개발하느냐에 대해서 말하기 위함이다.
“물렁금속 피부, 대단했다. 피부 도색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멋졌다.”
드낙은 그들을 치하하는 걸 먼저 시작했다. 오크 주술사들의 입에 꽃이 피웠다.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주겠다.”
“배를 만드는데, 엘프 기술자가 필요한데 혹시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시행착오가 많다고 합니다.”
“좋다. 그 정도는 어렵지도 않은 일이지.”
드낙은 냉큼 수락했다. 타지생활을 해야 할 엘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거침없었다.
“감사합니다.”
오크 주술사가 고개를 숙였다. 동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했다.
‘하긴, 다른 종족들이 있다면 나도 내 종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노력하고 싶어지지.’
경쟁자가 있기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라이벌은 자신을 키워주는 장작이다. 그렇기에 오크들의 동족을 위한 부탁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같은 인간인데도 한일전에 미쳐버리는 한국사람을 보면 더더욱 이해가 갈 것이다.
“그리고...내가 몇 가지를 생각을 해봤는데, 마력피부(魔力皮膚) 시스템을 지금 개발 중이잖아?”
“예.”
“그런 마력 피부만 타격하는 마력무기(魔力武器)를 개발하는 게 어떤가 싶은데.”
“혹시 어떤 건지 자세한 걸 생각하셨습니까?”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펴고 주문을 읊었다. 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색찬란한 형광등을 들고 칼춤추는 모습이 오크들에게 보였다.
“어때? 이러면 보는 맛도 있잖아?”
시각적으로 보는 맛이 확 살아났다. 또 피격할 때도 마력이 서로 충돌하며 팡하고 퍼져나가며 불꽃축제처럼 큰 임팩트를 일으켰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오크 주술사는 명칭을 바꾸고 싶어 했다.
“마력은 만변하지만 파괴적인 힘입니다. 그렇기에 주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주력은 대자연의 것이라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 주력무기라고 할까?”
“조그놀트(Zognolt, 주술) 소드, 할버드, 쉴드. 그런 거로 하겠습니다.”
“조그놀트....개멋진데? 하지만 좀 더 목적성이 뚜렷하게 형광등 조그놀트 무기라고 하지.”
“예.”
바로 책정됐다. 형광등 조그놀트 무기체계는 주술피부(呪術皮膚)와 알맞게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실현 가능했다. 애초에 물렁해도 금속이라서 피해가 잘 나지 않는데, 주력같이 파괴적이지 않은 초월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서로 반발력이 생기게 성질만 다르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은근슬쩍 킹슬레이어 캠페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파악했다. 세파리아스가 분명 수작질을 부렸을 게 분명해서였다.
“뭐? 도적? 세빨이 이 녀석이 건방지게!”
“그, 그래서 일단은 반란군으로 설정했습니다.”
“반란군이나 도적이나 매한가지 아냐. 왕국군이랑 싸우는 게 뭐겠어? 제국군이지! 난 제국군으로 해줘.”
“예? 근데 이미 많이 만들었는데요.”
“그건 소형 피규어 싸움에서 쓰면 되잖아.”
“네? 이건...150cm짜리 피규어인데요.”
“근데 이제 180cm로 만들어야 해.”
“예? 예? 지금 예? 뭐라고 하셨...예?”
“180cm로 싹 다 바꾸라고. 그래야 더 현실적이잖아. 그리고 30cm짜리도 만들어야 해.”
“예?”
“....음. 150cm짜리 도적들은 나중에 쓸만한 곳이 있어. 인공지형 협곡에 다양한 걸 추가시키는데 도적 캠프도 하나 있으면 좋겠지. 안 그래? 잘 못 먹어서 150cm인거지.”
“그럼 왕국군은요?”
“아...그게 문제인데 그건 그냥 전시용으로 해야겠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으로 그냥 군제식으로 행군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서로 대련하고 그런 거에 쓰면서 홍보하는 거지.”
“예...”
드워프는 일단 대답했다. 순식간에 모든 계획을 갈아엎어야 했다. 킹슬레이어 캠페인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셈이었다. 180cm짜리로 왕국군 vs 제국군 컨셉으로.
“그리고...”
드낙이 온갖 이야기를 떠들어대었다. 그 모든 걸 실현하기는 어려웠지만 모두 체크는 해놔야 했다. 나중에 물었을 때 궁색한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파견대는 <초월자 파동파악 마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본래 예정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려서 공사 시작 후 1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작아서 6개월 만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상사 에메리히의 말에 다른 이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 했다.
“어쩔 수 없죠. 그렇게 태평하게 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뭐만 하면 휴일! 뭐만 하면 휴식! 어휴, 주 40시간이라니.”
유사중세에서는 감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덕에 소일거리 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덕에 경제는 무시 못 할 정도로 크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형편없는 군대가 세운 평화는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지.”
“그렇게 쓰레기 같은 병사들은 난생처음 봅니다.”
“사람들이 평화롭고 여유로워서 그렇게 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너도나도 군사체계를 비난했다. 가볍게 보기 바빴다. 우주낙원은 이 차원을 식민지로 만들 것이다. 인조생명체를 사정없이 투입해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침탈하고 기존의 기득권 위에 서게 될 터였다.
그 일보(一步)가 바로 초월자 파동파악 마탑이었다. 높이는 10m도 안 되는 탑이다. 그곳에서 파동이 퍼져나갔다.
무색무취의 보이지 않으며 평범한 사람은 느낄 수도 없고, 초월의 힘을 다루는 주문 사용자도 파악 불가능한 조용한 파동은 오로지 초월자 혹은 거대한 마력 구조물을 파악해나갈 것이다.
그 검색에 걸린 시간은 11시간 52분.
조용한 대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반신격 1체(體). 확인했습니다.”
당연히 세파리아스였다.
“초월의 힘을 가득 담은 구조물은?”
“전무합니다. 정말 형편없는 동네네요.”
“평화로운데 굳이 크게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예상했던 것 그대로 나왔습니다.”
큰 마력이나 큰 힘을 담은 구조물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의심은 하지 않았는데, 반신격도 하나뿐이라서였다. 그 정도로 세계가 대단하지 못했다.
“마법사도 큰 마을에는 하나뿐이고. 사제도 그 정도고.”
용병 지구인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곳은 정말 먹기 좋은 곳이었다.
“우주 낙원에게 해당 정보를 보내라.”
4년 내로 그들은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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