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87화 (88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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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이 그곳에 왔을 때, 세파리아스도 그곳에 있었다.

“넌 뭐냐?”

“생각보다 피규어 병정놀이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와주고 있었다.”

드낙이 눈을 좁혔다. 세파리아스는 그런 드낙의 모습에도 동요 하나 없었다.

“이상한 짓을 할 수밖에 없는데...”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냉큼 공장의 현황을 파악하려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세파리아스가 속삭였다.

“마력 피부.”

“엉? 뭐라고?”

드낙이 솔깃해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였다.

“전투를 해도 마력 피부 코팅이 벗겨지면 기동을 중지하는 시스템, 어떤 것 같으냐?”

“나쁘지 않은데...하지만 그래도 부상은 입을 텐데.”

“그래도 그 정도가 낮을 수밖에 없지.”

중상을 입을 피해가 경상으로 끝날 수 있었다. 마력 코팅 체계 자체를 방어력을 가질 수 있게 조정할 수 있어서였다. 물론 그만큼 마력은 더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단점이지만, 드낙은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초월의 힘은 증가한다.’

그 총량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능히 소비 가능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어서였다.

‘아!’

그렇게 생각하던 드낙이 손뼉을 쳤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눈을 빛냈다.

‘역시, 떡밥 하나 던져주면 어쩔 줄을 모른다니까.’

“마력무기(魔力武器).”

“어떤 개념이지?”

“응, 안 알려줄 거야.”

드낙이 다시 발걸음을 올렸다. 최근의 그는 우주 낙원(Cosmos Paradise)에서 보냈다고 거의 확실시되는 ‘신성력 입자’ 때문에 날이 서 있었고, 그만큼 정신 컨디션이 좋았다.

세파리아스가 주제를 이어나가려고 해도 본 목적을 까먹지 않았다. 그런 드낙은 세파리아스가 따라붙었다.

“베테랑 병사를 충분히 만들 수 있어. 그들에게 전쟁터를 체감하게 해주는 거지. 150cm의 신장을 지닌 피규어들은 능히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생각해보니 너무 비싸지 않아? 너무 크고. 경기게임으로는 부적합해.”

수십이 싸우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수천이 싸우게 되면 그 모든 걸 디테일하게 보기가 힘들었다. 수많은 전광판을 세우고 발달한 렌즈가 존재하는 카메라 기술이 없는 게 이 세상이었다.

‘물론 그냥 마법을 때려 넣으면 가능하긴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이야.’

화면에 확대해서 보여주면 그럴듯할 터였다.

드낙이 <소비 문화>로서의 피규어 병정놀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세파리아스는 <전략 체계>로서의 피규어 병정놀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둘의 차이는 매우 컸다.

“최소 30cm까지는 줄일 생각이야. 그래야 대중들도 조금조금 할 만하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현실성을 추구하는 세파리아스에게 30cm짜리 인형은 그냥 인형에 불과했다. 적어도 150cm는 되어야지 그럴듯하다고 여겨지고, 병사들도 진짜 체험이라 깜빡 속을 수 있다고 여겼다.

“후우...”

드낙이 우뚝 섰다. 그리고는 힐끗 세파리아스를 쳐다봤다. 알 수 없는 위기감에 세파리아스가 검에 손잡이를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이 빙긋 웃었다.

“너랑 싸울 생각은 없어. 세팔아. 난 그냥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내가 왜 일차산업에 종사하는 골램을 만드는 공장을 드워프와 엘프에게 맡겼겠어?”

그 질문에 세파리아스는 짧게 대답했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결정한 것이 아니군...”

“그냥 생각했다면 그냥 엘프에게 맡겼겠지. 난 제대로 이 세계를 가꿀 생각이다.”

바위나 금속을 골램으로 성형하는 일은 굳이 드워프가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마스터피스를 만드는 장인들이었다. 굳이 드워프를 일반인에게 거진 무료로 제공하는 골램을 만드는데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오우거 잡는 기사로 30명도 안 되는 조용한 어촌을 지키게 만드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일차산업 골램의 설계도를 만드는데 50명의 드워프만 배정하고 나머지 성형과 제작은 그냥 인구가 많은 다른 종족에 맡겨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선정에 있어서도 드낙이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골램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흙으로도 빚을 수 있는 게 골램이었다. 하지만 드낙이 그런 골램 제작에 드워프와 엘프를 동시에 묶어서 만든 이유.

드워프 공장과 엘프 공장. 두 개를 만든 이유.

우월한 두 종족이 진심으로 월등히 좋은 골램을 만드는 결과를 토해내게 유도한 이유.

“시민의, 약자의, 식량으로부터의 해방.”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드낙의 눈은 착 가라앉아있었다. 세파리아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체계>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피라미드로 이루어있지. 아닌가?”

공장의 통로에서 세파리아스와 드낙이 마주한 채로 이야기를 길게 이어나갔다. 전과 다르게 감정의 기복이 사라진 드낙을 보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진흙 속에서 태어난 서슬퍼런 독단검.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 독단검은 혹시, 세상의 흐름에 휩쓸린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너...드낙이냐?”

“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고작 묻는 게 그런 거냐?”

드낙은 양손을 조금 들어 올려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왠지 옛날이 생각나. 그때는 뭐든지 치밀하게 생각을 했거든. 하지만 점점 힘을 얻으면서 그런 게 의미가 없어졌지.”

레벨업을 하듯이 <힘>이 강해지니 다른 걸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힘>이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비전이다. 미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 그리고 나는 그렇게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해. 하지만 다음 걸어가야 할 게 무엇인지는 생각할 수는 있지.”

세 수 앞을 내다보는 천재는 될 수 없었다. 그건 그냥 재능이다. 공부조차도 8의 재능, 2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일이 재능이다. 게임조차도 재능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한 수 앞만 내다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걸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드낙의 그런 말에 세파리아스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몰라.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너는 안다고? 시민들의 우둔함이 총명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거냐?”

“그래. 그렇기에 그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나는 그들이 식량 걱정을 안 하는 세상을 먼저 만들 생각을 가졌다.”

세파리아스가 입을 달싹거렸다.

‘아니, 그건.’

그건 한 수 앞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이 중립신을 받아먹고 달라졌다는 인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건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방식이다. 드낙!”

“그런가? 그럴지도.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세파리아스, 평범한 인간이라는 건 말이야. 결국, 상황에 따라서 자신을 바꿀 수밖에 없어.”

문답을 통해서, 세파리아스의 말을 통해서 드낙은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더욱 깨달았다. 검은 꿈에 휘둘리고, 상황과 사람에 휘둘리고, 세파리아스와 중립신 사이에서 흔들리고.

수백 번을 흔들리고, 그는 이곳에 있었다. 이제는 중립신이 만들고 싶었던 것을 자신이 하며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1년전의 자신과 1년 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천지 차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큰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모든 것이 그대로라고 말한다.

부모님 앞에서 자식의 모습.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대하는 모습.

후배로서의 자신. 선배로서의 자신.

매 순간순간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본다면 사람은 자신이 다중인격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대라는 것이다. 고로 대쪽같은 왕이 그들에게 불어오는 바람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 말에 드낙이 웃었다.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그렇다. 그게 지배자의 덕목이다. 시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개돼지라면 사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월급으로 알뜰하게 살며 다음 지배자를 위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노예를 생산해야 한다.

왕은 백성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자본가는 소비하는 소비자가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사업은, 구매하는 사람이 없으면 유지할 수 없다.

고로,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있어야지만 지배층이라 불릴 수 있었다. 동시에 세파리아스는 그제야 드낙이 노리는 것을 깨달았다.

“일차산업 골램 사업의 진의...”

“먹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드낙이 그 말을 받았다. 먹는 데 돈을 쓰지 않게 된다면, 그럴 필요가 없게 된다면, 약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 누구도 드낙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어둠을 두르고 있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진의를 세파리아스에게 살짝 보여줬다.

‘피지배계층이라 불리는 약자들에게 식량이라는 것을 그냥 보급해준다면...’

“모르겠다. 모두 다른 선택을 하게 될테니까.”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래.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웃기 바쁜 드낙에게 세파리아스가 물었다.

“그걸 왜 나에게 알려주는 거지?”

“너도 결국에는 인간이기 때문이야. 피로 물든 영지에서 사람들 목을 수확하던 양반이 신제국에서는 성왕으로 받들어지기 바쁘지. 400년 전의 사람들이 지금의 너와 그때의 너를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까?”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드낙은 그것으로 만족한 듯했다.

“앞으로도 서로 잘 해보자고. 세파리아스.”

드낙이 통로를 걸어나갔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없었다. 거대한 고민거리가 그의 앞에 툭 던져졌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드낙이 보여주고 있는 건 그 어떤 신념도 목표도 없었다. 그가 하는 건 <꿈>이 없는 인간들을 양산할 것이 분명했다.

10년, 30년, 50년!

수명의 절반을 갈고 닦고, 그리고 숭고한 위업을 달성하는 인간은 드낙이 만든 세상에는 없어질 것이다. 그건 세파리아스가 원하는 광경이 아니다.

나약한 인간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하고, 그 마음을 떨게 하기 위해서는 굶주림이 필요했다. 경쟁이 필요했으며, 싸움이 있어야 했다.

심지어 초월자마저도 덜덜 떨게 할 두려운 한 자루의 검. 그 검을 가진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수련이 필요했다.

그런데 드낙이 하는 짓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냥 먹어야지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에 먹는 일을 손쉽게 해결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게 일차산업 골램 사업이다.

‘단순하지만 결과는 단순하지 않다.’

인간을 복잡하게 만든다.

돈 한 푼 없이 손수레 하나 끌고 세계여행하겠다는 정신 나간 놈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든 고기 한 덩이 구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우우....”

세파리아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낙이 던져준 화두(話頭)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지능이 뛰어난 세파리아스에게는 어려운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다.

동시에 드낙은 그 고민을 끝냈다는 것이다. 고로, 세파리아스도 그 해답을 얻고, 드낙에게 이를 말해줘야 했다. 드낙은 그걸 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자신의 노림수를 보여줬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드낙의 사업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대의명분이 있어야 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그 길로 신제국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철도나 비행마법 등을 쓰지 않고 그냥 마차로 여행했다. 수행원은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였다.

드낙이 한 수작질은 일반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세파리아스 또한 그들을 살피며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했다. 다만 쉽게 고민할 수는 없었다.

‘드낙. 언제부터 그렇게 멀쩡해졌지?’

겉으로는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하지만 그 속에 무서운 진의가 담긴 사업을 툭툭 집어넣고 있었다. 어쩌면 <피규어 병정놀이>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을지 몰랐다.

‘중립신을 먹어치우고 나서?’

모른다.

‘경합 요리 대회 이후?’

모른다.

하나같이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드낙의 연기는 뛰어났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놈.’

드낙으로서는 자신의 현재 포지션을 지키는 것이 더 재미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가볍고, 실없지만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경계를 숨기기 좋았다.

수풀에 숨은 사냥꾼처럼.

오두막의 천장에 구멍을 뚫어놓고 독가스를 살포하는 암살자처럼.

음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것도 일시적인 일일지도 모르지.’

그만큼 중립신의 세뇌는 강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치매 환자처럼 드낙이 잠깐씩 제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때마다 모종의 계획을 진행하게 했다는 점이다.

‘신격을 얻으면 중립신의 면모를 확실하게 터득할 것이다.’

힘을 얻고 세뇌를 살살 당하기 전까지는 치밀했던 게 드낙이었다. 신 혹은 악마에 오르면 중립신의 족쇄를 모두 훌훌 털어낼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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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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