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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루먼쇼!
신제국와 자치왕국을 비롯한 지하 연합과 오크, 엘프 등 다양한 이들이 꼬박꼬박 챙겨보는 세계최고의 문화 사업이 오늘도 갱신을 맞이했다.
“오늘 몇 시래?”
“해질녘에 일 최대한 빨리 끝마치고 중앙 광장에 오래.”
마을 중앙에는 으레 못 사는 이들을 위해서 우물이나 분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어림도 없지 바로 밀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 대신에 이미지 크리스탈의 이미지를 대형화시키는 마법 시설이 들어가 있었다.
간단한 기둥을 여섯 개 박아놓고, 바닥과 위에는 철판을 깔아서 마력 저장을 도모한 시설이었다. 매일 꼼꼼하게 집마다 돌아가며 물걸레로 닦는다. 그리고 아래에는 홈이 있는데 거기에 이미지 크리스탈을 넣으면 가동 완료.
그 덕에 마을 공동체의 커뮤니티도 강화된 점이 있었다.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드루먼쇼’가 될 수 있어서였다. 드루먼쇼는 충분히 마을 내 사람들 간의 관계에 윤활유로 쓰이기 충분했다.
“저런, 저런. 저 사람들 오늘도 된통 당하겠는데?”
“이계인이니까, 우리 문화를 모르잖아. 저렇게라도 배우는 게 중요한 거지.”
시민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한 달 전에 있었던 <그레이트 데이즈> 연휴 때문이었다.
반년에 한 번, 2주일 동안 푹 쉬는 그레이트 데이즈는 당연히 드낙이 명령한 대명절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이계인들은 크나큰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곤란하고 당혹스러운 일상.
“아니, 오늘 청소하는 날인데 왜 안 오셨냐고요. 돈을 드렸잖아요.”
“잡혀가고 싶어? 그레이트 데이즈잖아!”
성질 내는 아줌마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들은 숯숯 마을의 일원이었다. 여기서 거점을 잡고 있는 이상, 어느 정도 평판을 잘 유지해야 했다.
그 속에서 깨알 같은 캐미들도 이어졌다. 아메리고 병장은 빵집 여자로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루에니에게 식은 빵을 얻기도 했고, 에메리히 상사는 인부들 덕분에 가정식을 가져와서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인품이 대단하구만!”
“역시, 저렇게 곤란한 사람을 도와야지. 내가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아!”
“돕고 사는 게 인생이지.”
그 훈훈한 모습은 실로 시청자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그레이트 데이즈 명절을 이용해서 이계인들은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혼란스러움을 마을 사람들 덕분에 해치워내거나 헤프닝이 일어나는 재미가 있는 화였다.
당연하게도 그 속에 드낙의 노림수가 있었다.
어둠에 숨은 채 달빛에 생긴 그림자에 숨어있는 드낙과 뿔쥐가 속닥거리며 앞을 주시했다. 이계인들은 토끼굴이 많은 언덕 구멍에 불을 피워 연기를 집어넣은 뒤에 땅을 파며 토끼 시체를 꺼냈고, 이를 도축하여 구워 먹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있었기에 피를 씻겨내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용병업도 2주 동안은 때려치워야 했다. 오가는 이들 없이 조용한 길의 옆에서 모닥불을 피운 그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이 보였다.
“흘러 지나가는 성에는 내일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찍찍.”
“잘했다. 준비는 모두 마쳤겠지?”
“예. 위험한 물건은 치우고, 발전한 시설도 철거를 마쳤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옛날에 돌아간 것처럼 행동할 겁니다.”
지하 연합이 크게 도와준 셈이다. 그만큼 많은 여력이 드루먼쇼에 투입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거대한 자연과 인적이 드문 장소는 운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서서히 사라지는 곳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에게 가치가 있었다.
폐허가 된 곳, 세계대전 때 벙커로 썼던 곳을 탐험하는 이들처럼.
사람은 사람이 없는 곳을 종종 찾기 마련이다.
그 다음 날 이계인들은 흘러 지나가는 성에 도착했다. 병사들은 사이즈도 안 맞는 투구를 쓰거나 벗은 채 카드놀이를 하기 바빴다. 그들이 근접하자 막내 병사만 다가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숯숯마을입니다. 신분증은 여기...”
숯숯 마을에 일정 기부를 하고 촌장으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꺼내기도 전에 막내가 소리를 꽥 내질렀다.
“통과!”
‘엥?’
순식간에 그들은 통과되었다. 지나가는데도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황당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나라 군대야, 뭐야?’
어처구니없어했다. 기본이 안 되어있어도 너무 안 되어있어서였다. 이를 본 에메리히 상사는 단번에 판단을 내렸다.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것.’
“성의 병사들을 조사하는 데 연휴를 쓰자.”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보셨습니까? 투구 사이즈도 전혀 맞지 않던데요.”
저러면 제대로 된 전투 행동도 취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투구가 얼굴을 가리며 시야를 차단한다면? 죽은 목숨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드낙이 어둠 속에 있었다.
‘완벽하군.’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능숙했다. 또 카메라라는 것도 없어서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 난이도가 매우 낮았다.
‘이 정도면 가만히 놔둬도 되겠어.’
드낙이 웃음 지었다.
이번 계획은 바로 ‘당나라 군대 대작전’이었다.
이계인들의 뒷배를 최대한 빨리 오게 하기 위한 작전 중 하나로 첫 번째 작전은 바로 하프 드워프들을 통해서 총기의 허접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번에는 군사체계가 얼마나 거지 같은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나 같아도 쳐들어오고 남을걸.’
평화를 손쉽게 아는 이곳 사람들을 보며 이계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는 고민 안 해도 쉽게 가능했다. 특히나 이들은 전투원들이었다.
맥주를 기울이며 아메리고 병장부터 라쉬 일등병까지 하나같이 이곳의 병사 수준을 비난하기 바빴다.
“거짓으로 순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석대로 순찰을 돌아도 빈틈투성이입니다.”
“순찰을 했다는 도장까지도 복사해서 쿵쿵 찍는 건 기본입니다.”
야간순찰은 말할 것도 없었고 주간순찰마저도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이런데도 범죄율이 낮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훈련도 그냥 출근도장 찍고 다시 자러 가던데...”
“기사는 몸이 뚱뚱해서 자기 갑옷도 제대로 못 입고 그냥 군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수준입니다.”
“반란이 안 일어나는 게 신기하네.”
“세금이 워낙 낮지 않습니까? 기사랑 호형호제하는 미친놈도 있고...”
“푸흐흐흐. 기득권이 기득권 같지가 않군. 이런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 거지?”
“딴 세상이긴 딴 세상입니다. 하하하!”
모두 거짓된 모습이라는 걸 이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세상 어느 놈이 이계인 40명을 상대로 드루먼쇼를 찍겠는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고 망상이었다.
근데 드낙은 그짓을 하고 있었다.
‘이놈들의 목적은 이제 다 드러났다.’
뿔쥐들의 염탐을 통해서 거침없이 속속들이 깨닫고 있었다. <우주 낙원(Cosmos Paradise)>부터 시작해서 식민지의 침공 단계 등, 구멍은 좀 있었지만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숯숯마을 덕이지.’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태평한 세상.
당연히 자신들의 계획도 입 밖으로 내뱉기 쉬웠다. 이런 놈들 상대로는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는 둥, 자기들이 대장 노릇 하기 바빴다. 차원 침공이라는 화제는 시간을 죽이기에도 쉬웠는데, <초월자 파악파동 마탑>을 짓는 데에는 반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쉬웠다.
‘네놈들 생각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드낙이 웃었다. 그리고 그 음흉한 웃음처럼 그의 내부에서는 악마의 꽃이 서서히 개화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일은 대충 뿔쥐들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난 다시 피규어 쪽을 좀 관리해줘야겠다.’
세파리아스 피규어는 꼭 보고 싶었다. 겸사겸사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바바리안 세파리아스로 성상품화를 유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육의 아름다움을 여성들에게 전파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남자가 미녀를 좋아한다면 여자는 미남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세파리아스는 능히 미남이고, 남성미가 대단하다.
‘세팔아, 걱정하지 마. 찌찌파티에 남녀는 없는 거야. 불티나게 팔릴 거다. 그 돈 너한테 적잖이 넣어줄게.’
그가 알면 단번에 달려들었을 테지만, 드낙은 이를 꼭꼭 숨겨서 비밀리에 돈 있는 여자들에게 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실로 좋은 아이디어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TV를 켜서 광고만 봐도 고개가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찌찌파티 가즈아!’
드낙이 파동으로 변해서 순식간에 국제 연합 도시에 있는 피규어 공장지대로 향했다. 연구소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
오크들은 동부 항구에서 배를 시범 운전하고 있었다.
엘프들의 선박 지식 덕분에 빠르게 배를 만들 수 있었지만 노하우가 없어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서 이제야 겨우 배 한 척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 노력의 결실답게 배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오크 해양 기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크들이 움직였다. 가장 먼저 물길을 크게 막고 있던 거대한 수문을 아래로 내려서 천천히 물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바다에 지어진 조선소는 문을 여닫는 것만으로도 물을 들여보낼 수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작업소에 물이 차며 단단하게 나무로 받쳐져서 건조된 배가 서서히 바닷물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번에 시범운행을 할 배는 호위함(Frigate)의 일종이고, 전투 선박 중에서는 가장 많이 만들어야 하는 배였다. 당연히 배의 구조는 철갑선이었으며 드워프로부터 들여온 <해양 스팀 발전기>와 오크 주술사들이 만든 <염분 흡수 토템>이 부착되어있는 거대 발전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끌어올려서 스팀으로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고, 염분을 흡수한 토템은 주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 주력은 당연히 바닷물을 끓이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도 복잡한 장치들이 배 내부에 존재했다.
32문의 자-주포는 물론이고 무려 650톤에 달하는 배수량을 지니고 있었으며 길이는 60m에 달하는 호위함이었다.
빠른 순찰이 가능하며, 묵직한 수송선을 호위하는데 특화된 함선이었다. 가벼운 무장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자색 주포 중 1문은 상당히 화력이 강한 것을 집어넣었다.
이 조커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까닭은 포탄을 실을 필요가 없고, 초월의 힘만 넉넉하면 구경이 달라도 능히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자주포의 장점 때문이었다.
즉, 다양한 구경을 무리 없이 사용 가능했고 그마저도 쉽게 운용할 수 있었다. 탄약박스가 매번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초월의 힘만 잘 보급되면 발사할 수 있었다.
그 덕에 호위함은 배수량의 한계치까지 물건이나 보급을 실을 필요가 없었다. 공간이 남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한 활동도 가능했고, 목적에 따라서 장기간 운행 또한 가능했다.
“호위함을 시작해서 원양어선까지 만들면 그때부터는 오크의 시대가 오게 될 거다.”
“저 끝없는 바다를 보라! 생명으로 넘치는 물고기들은 모조리 우리 오크의 것이다!”
호위함이 천천히, 느릿하게 속도를 올리다가 이내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다. 자색 주포를 과녁을 향해 발사하기도 했다. 역시나 쉽게 맞췄다. 유도기능이 존재해서 날아가는 새조차도 맞출 수 있었다.
짝짝짝!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퍼져나갔다.
진정한 의미로 오션 오크의 시대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호위함을 먼저 생산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해양 몬스터 때문이었다.
근해에서 어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서였다. <원양어선>이라는 단어만 해도 오션 오크들의 야심을 볼 수 있었다.
“해양 몬스터가 감지되었다! 자색 주포를 발사해라! 반드시 죽여라!”
촤아아악!
바닷물을 거세게 때리며 자색 주포가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거대한 해양 몬스터에게 그대로 부딪쳤다. 놈은 단번에 피떡이 되었고, 피가 바닷물을 잔뜩 적셨다.
“후우웁!”
오크 전사가 작살을 던졌다. 그 개수만 해도 열다섯 개가 넘었다. 몸길이가 20m는 되는 해양 몬스터가 그대로 바닷물에서 끌려오며 육지로 인양되었다.
드르럭! 드르럭!
단번에 도르래가 동원되어서 끌어올려 졌다. 바닷물이 좌르륵 쏟아져 내라며 거품을 뿜어냈다. 붉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와하하하하!”
너도나도 첫 시범 운행에서 웃음소리를 내질렀다. 그만큼 효과적인 호위함이 탄생했다. 특히 배수량도 넉넉하고, 들어갈 것도 적은 것이 좋았다.
“생각보다 너무 크게 만들었기에 <주력 보관통>을 더 많이 집어넣어야겠어.”
피드백도 진행되어갔다.
오크 작업자들이 해양 몬스터의 피를 뺀 다음에 도축 작업을 진행했다. 일단 물로 잘 씻어서 데쳐 먹어보고, 삶아서 먹기도 했다. 다양한 조리 방식을 통해서 식량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동시에 동부 바다에 많이 존재하는 <흰등 가시혀 육식고래>들에게는 비보나 다름없었다. 해가 지날수록 먼 바다에 나가서 어업활동을 해서 식량을 끌어올 생각을 지닌 게 오크들이었다.
농약을 쳐서 수많은 벌레가 밭에서 죽어가듯이, 이 육식고래들의 미래 또한 죽음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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