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83화 (88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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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흑마법사들이 불러준 좌표. 그곳의 외곽은 당연히 남부 왕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바다가 넘실거리고, 인간은 점점 줄어들어 조용한 곳이었다.

항구도시들이 남아있고, 어촌도 유지가 되고는 있었지만, 세상의 흐름이 벗어나 있었다.

트렌드를 쫓고, 진짜가 되고 싶은 이들은 일찌감치 신제국과 자치왕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드루먼쇼 같은 사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몇 곳 중 하나였다.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서 소일거리를 하고, 농사를 짓는다. 자식과 함께 낚싯대를 가지고 별을 보러 향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극소수의 쉐도우 위스퍼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모습은 10년 뒤에도 그러할 것이고.

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 뒤에도 그러할 것이다.

끝까지 변하지 않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물론 그런 곳에서도 악인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동굴석식(洞窟石食)에게는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결코 지상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어서였다. 오로지 개체 수를 높이기 위해서 태어난 권속 악마였다.

“그엉?”

배를 채운 동굴석식들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졌다. 흑마법사들의 거처 중 하나인 이곳은 먼지로 가득했다.

카득!

나무 책상을 더듬거리다가 한 입 깨물어 먹어보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돌도 먹는데 나무도 먹지 않으라는 법이 없었다.

카득, 카드득!

“에취잇!”

나무를 뜯어 먹으며 먼지가 자욱하게 퍼졌고, 절로 기침 소리가 나왔다.

그중에 몇몇 동굴석식은 물약을 마시기도 했고, 오래되어서 썩은 술을 마시기도 했다.

“크륵, 카륵!”

모두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들에게도 혀가 있어서였다. 썩어도 돌보다는 맛있었다.

“키익!”

“케에에엑!”

싸움도 나긴 했지만, 주먹다짐에서 끝났다.

“크어어어....”

배를 두드리고 곤히 잠을 청하고, 다시 먹고 짝짓기를 하는 나날을 보냈다. 순식간에 흑마법사의 동굴에는 하급 권속 악마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들이 흙을 파헤치고, 돌을 먹는 일이 서서히 본 목적으로 들어섰다. 태어난 이유를 실천해나갔다.

개체 수가 많으면 먹을 것이 적어지기 마련이기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파악, 팍!

자연히 흙을 파헤치고 돌을 찾아야 했다. 돌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모두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이 주변에는 구리가 많아서 더더욱 흙을 파헤칠 맛이 났다.

아카타베루가 설계한 하급 권속 악마, 동굴석식(洞窟石食)은 오로지 개체 수만 증가해도 그 삶의 목적을 이룬 셈이다.

그들은 때가 되었을 때,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의 이름으로 침공을 개시할 것이다. 광증 걸린 개처럼 날뛸 터였다.

깡! 깡! 깡!

“크룩?”

흙을 파헤치며 머리부터 자신이 판 구덩이에 처박은 동굴석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귀를 땅땅! 치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그 진동은 땅을 타고 자신의 몸으로 전해져왔다.

광석을 캐는 곡괭이질 소리였지만 동굴석식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지식이 짧아서였다. 호기심이 생겼고, 그곳으로 동굴석식이 움직였다.

흙은 두툼하고 거대한 두더지의 손에 의해서 단숨에 갈라졌고, 돌이 막으면 먹어치워서 굴을 꿇었다.

‘그 소리’에 관심이 있는 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이제는 15마리에 달하는 동굴석식이 일직선으로 굴을 파고 있었다. 종종 그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돌을 깨먹는 소리도 흙을 통해서 깊게 전파가 되었다.

이는 상대편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깡! 깡! 깡!

상대편 또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자신들이 가만히 있는데도 다가오고 있어서 알 수 있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지식 하나 없는 동굴석식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 다음’을 생각하는 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토독...호도독!

흙이 밀알처럼 떨어져 내리고 구멍이 뻥 뚫렸다.

검은 털과 붉은 피부를 지닌 동굴석식과 붉은털과 붉은 피부를 지니게 된 크놀이 서로 마주 봤다. 그들의 털이 없는 얼굴 부분은 서로 붉은 피부임을 알 수 있었다.

“뭐야? 처음 보는 종족인데.”

크놀 광부가 곡괭이를 어깨에 척 걸쳤다. 그리고는 흙먼지가 묻은 얼굴을 대충 손에 침을 묻혀서 닦아냈다. 둘 다 적의가 없었고, 호기심만 있었다.

“크히.”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웃긴지 동굴석식이 웃었다가 이내 자신도 손에 침을 뱉어서 얼굴을 닦았다. 서로 피부색이 비슷해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고, 탐색만 이어졌다. 거기에 종족이 같다는 것도 컷다.

둘 다 <권속 악마>라는 계통에 속한 생명체들이었다.

또, 덩치는 크놀이 훨씬 컸는데, 드낙 때문이었다. 너무 자신만 위해주는 지하 연합의 종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신체의 강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까도독!”

동굴석식이 널브러진 돌을 하나 주워서 집어먹자 크놀이 깜짝 놀랐다.

“돌을...먹는다고...?!”

‘돌을 먹는 지하 종족이라니?’

굉장히 유용해 보였다. 그는 몇 가지 지하 종족 언어를 사용해보았지만, 전혀 들어 처먹지 않았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운데...’

아무런 장비도, 도구도 없는 놈이라서 놓치면 그대로 끝일 것 같았다.

그 대신 꾸준한 만남을 위해서 가죽 주머니에 담긴 술과 딱딱하게 말린 육포 그리고 밀가루와 설탕을 섞어서 만든 비스킷을 건네줬다.

“킁! 킁킁!”

놈은 냄새를 맡다가 이내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침이 뚜둑 흘러내렸다.

“옳지! 옳지! 어이구, 잘한다아~!”

크놀이 능숙하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먹을 것을 줬다. 그리고 내일도,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동굴석식은 크놀과 맞닿은 지하 통로에 옹기종기 모이게 되었다.

몇 번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크놀 대장장이도 굴을 하나 두고 동굴석식과 만남을 지켜보았다.

“식량으로 지하 연합으로 합류시킬 수 있겠어.”

“뿔쥐들에게 보고를 올릴까요?”

“이봐, 지금 뿔쥐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게 할 셈이야? 충분히 이들을 지하 연합에 받아들이고, 적당히 때를 봐서 소개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크놀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이곳은 <권역 외>라고 불리는 곳.

대부분의 뿔쥐들은 산업 진흥을 위해서 위로 올라갔고, <검은 돔>정도에만 뿔쥐들이 많았다. 공중 요새를 비롯해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뿔쥐들만 정보를 얻기 위해서 남부 왕국의 큰 마을이나 중요한 지형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전쟁을 하네 마네 해도 어촌에서는 낚시하며, 하루를 그냥 평범하게 보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큰 걱정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특히 드낙은 기생인의 뒤에 큰 뒷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자신의 권속 악마로 먼저 죽게 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무엇보다 이계인들에게 신경이 많이 가 있었다.

고로, 크놀들이 동굴석식들을 보고 경계심을 일으키거나 그 뒷배를 생각할 리가 없었다.

“뚜라! 고기!”

“뚜라! 고기!”

동굴석식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크놀들의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덩치가 큰 크놀들에게 자연스럽게 굴복했다. 또한 비슷한 권속 악마라서 동질감도 어느 정도 있었다.

무엇보다 피부색도 비슷했다는 게 매우 컸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다가가기가 힘들어진다. 문명인이라고 으스대는 현대사회일수록 그런 경향은 매우 심하다.

하물며 맛있는 것도 주기 때문에 돌을 먹지 않는 동굴석식도 많았다. 그들에게 식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크놀에게 매우 의존적인 식문화였기에 그야말로 크놀들의 노예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꺼어어억!”

한껏 포식을 한 동굴석식은 바로 드러누웠다. 일단 크놀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배우고 있는 와중에는 할 것이 전혀 없었다. 노예라기보다는 한량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권역 외 지하 연합 소속 지하 마을들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넉넉한 집안 살림 덕분에 손님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지하 연합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넉넉했고, 그렇기에 비슷한 종족이 있으면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크놀이 그러했고, 고블린이 그러했다. 황당하게도 비슷해 보이는 두더지도 지하 연합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하급 권속 악마라도 악마는 악마. 이들의 학습능력은 평범한 수준은 될 수 있었다.

“새로운 지하 종족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

신제국의 황제가 국제 연합 도시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죽인다.’

축제까지 벌여서 크게 홍보를 했다. 세파리아스가 알려지지 않은 뒷부분을 예측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영향력은 매우 뛰어났다.

드워프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는데, 오크들과 드워프들의 합작품인 자-주포의 최대 수입국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각성제 중 10여 종이 신제국의 연금술사들이 만든 것이기도 했다.

마약도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각성제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 이거 참!”

드워프 몇몇이 입구를 지킨 채 안절부절못했다. 세파리아스를 막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가 걸음을 멈춘 이유는 그만큼 드워프들을 대우해주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대들의 종족을 대우해주는 것은 이번뿐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반신격에 도달한 세파리아스는 신성력을 얼추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드워프들은 세파리아스와 적대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세파리아스는 가진 힘에 비해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들어오십시오.”

“먼 길을 왔는데, 이렇게 오래 세워둬서 마음이 불편한데...진실을 볼 수 있겠지?”

“예.”

드워프들이 할 수 있는 건 고래 싸움에서 물러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게 단순 세파리아스를 엿먹이는게 아님을 어필해줘야했다.

‘충분히 가능하다.’

피규어 사업을 시작하고,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드워프들은 말 그대로 열광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술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주술사들의 주력 또한 고도화된 주술로서 다스러져야했다.

무궁무진한 발명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이는 드워프들이 가지고 있는 장인의 혼을 불사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연병장이군.”

세파리아스를 안내해서 도착한 곳은 족히 1,500평은 되어 보이는 경기장이었다. 모든 게 흙으로 되어있고, 잔디가 잔뜩 자라나 있었다. 그곳에 인간들이 달려들어서 잔디를 정돈하고 사라졌다.

이내 통로에서 150cm로 이루어진 피규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은 시험체에 불과했음에도 퀄리티가 상당했다.

“장군으로 보이는 자가 바로 황제를 본뜬 것입니다. 반마반신께서 요청하신 대로지요.”

“무기를 들고 있는데, 싸울 수 있나?”

“한 번 보시겠습니까?”

역정을 낼 법도 했지만 세파리아스는 매우 집중해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천생 무인이었다.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싸움터를 내려다보며 전투를 구경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재산이었다.

‘수많은 간부들을 양성할 수 있다.’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드나?”

“화폐로 환산한다면 현재로써는 금화 1닢입니다.”

미쳐버린 가격대였다. 그만큼 많은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아직 수학과 과학이 미성숙해서 어쩔 수 없었다. 체계화가 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컸다.

“차근차근 효율성이 갖춰진다면 은화 30닢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사업이군. 근데, 나만 나오는 건 이상하지 않겠나? 반마반신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지금 하는 전쟁터의 컨셉은 뭐지?”

“좌숲, 우강의 지형에서 왕을 죽이는 캠페인입니다.”

“왕과 정 반대의 세력이라면 당연히 도적 떼겠지?”

“예?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고, 왕의 군대에 대한 퀄리티를 높이는 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반란군이나 도적 떼여야지. 왕을 공격하는 건 그런 자들 아닌가?”

“저...반마반신과 이야기가 된 겁니까?”

“그래. 나를 쓰면 자기도 당해주겠다고 했다.”

드워프들이 눈알을 굴렸다. 어찌 되었든 세파리아스의 말을 일단 포용하기로 했다. 그 결과는 드낙이나 세파리아스가 알아서 서로 부딪치며 해결할 터였다.

그 이후에 세파리아스는 킹슬레이어 캠페인에 등장하는 군대의 비율에 특히 집착했다.

“일반 보병은 현실적으로는 7할이지만 이상적으로는 5할이 좋지. 군비를 무시할 수 있는 군대는 없거든.”

“그럼 7할로 할까요?”

“5할로 해야지. 여기는 군비 그런 게 전혀 필요 없으니까. 거기에 앞으로의 이 세상도 군비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나?”

월급을 적게 받는 보병이 많아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를 수정했다.

“활은 생각보다 좋은 무기가 아니야. 하지만 많을수록 좋지. 궁병의 숫자는 4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근데 불화살? 이건 누구 생각인가? 세상 어느 병신 같은 궁수가 화살에 불을 달아서 쏘냔 말이다.”

불화살을 쏘는 별 거지 같은 아이디어에 세파리아스가 역정을 냈다.

말도 안 되는 개허접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활 한 번 쏘지 못한 버러지들이 할 법한 허황된 생각이었다.

“반마반신께서 역시 전쟁은 화공(火攻)이라고 하셨습니다.”

“다 필요 없는 짓이다. 그리고 나머지 1할은 기병으로 하되, 중기병의 비율은 0.4에 경기병은 0.6로 해줬으면 좋겠군.”

“너무 적지 않습니까?”

“충분하다 못해 넘쳐. 가장 정석적인 전쟁이지.”

쐐기에 많은 숫자는 필요 없었다. 쐐기가 들어가지도 않는 곳에 찔러 넣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단 50기로도 적의 지휘부를 뚫는 게 가능한 게 기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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