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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신제국의 황제. 세파리아스 불파겐.
거대한 왕궁에 살고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왕궁으로 들어와서 많은 걸 보고 가는 곳이었다. 왕궁개방은 세파리아스의 업적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는데, 그 어떤 권력자도 자신이 사는 집을 공개하지 않아서였다.
물론 그 누구도 3층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황제를 칭송하기 바빴다. 다른 것도 하지 않은 황제가 많아서였다.
그 외에 하는 일마다 확실히 제대로 된 것들뿐이었으며, 누구보다도 묵직한 행보를 걸어가고 있었다. 특히 제국인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누구보다도 황제에 어울리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앞에 홀연히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봐도 봐도 놀랍군.’
영향무력(影響武力). <세상을 무력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파리아스에게 드낙의 등장은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불현듯 찾아오는 도깨비처럼 그냥 거기에 있던 것이 되어버리는 드낙의 출현은 압도적이다.
‘반마반신에 불과한데도 저런 수준이라면...’
신이나 악마의 반열에 올라 제대로 된 초월자가 되면 그 누구도 드낙을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드낙은 세파리아스와 노선이 다르기에 협력 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
“이미지 크리스탈에 대한 제재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말을 하려고 온 것이냐? 그냥 곱게 왕궁 구경이나 하다가 가라.”
드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세파리아스의 눈매가 살짝 변했다. 서로 격은 똑같은 것이 현재 드낙과 세파리아스였다.
세파리아스의 성장세가 실로 두려울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많은 신앙을 받고 있었다. 반면 드낙의 경우에는 악마의 종족, 신의 종족. 그 두 가지를 모두 몸에 담고 있었기에 신격을 획득하는 <문턱>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양쪽 길 모두 달려야 하는 드낙과 한쪽 길만 달리면 되는 세파리아스.
어느 쪽이 힘든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드낙은 흥청망청, 대망청 수준으로 이판사판 업을 소모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게 선순환으로 되돌아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많이 컸네. 세빨아.”
“똑바로 내 이름을 말해라. 난 세파리아스다!”
“세파리아스, 세팔이, 세!빨!이!”
세파리아스가 분노를 꾹 참았다. 이런 얄팍한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자신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애새끼 같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이미지 크리스탈로 파생되는 경제 규모를 생각해봐, 그걸 왜 포기해?”
“사회혼란 생각 안 하고 저지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제재는 필요하다. 날뛰는 야생마에 타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탈 엄두도 못 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그렇게 말하며 세파리아스가 손에 깍지를 끼며 드낙에게 말을 해나갔다.
“넌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나 다름없다. 드낙, 왕이란 것은 언덕에 서 있는 자와 같다. 다른 이들보다 높은 곳에 있기에 많은 곳을 살필 수 있다. 헌데, 넌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다종족 연합을 이끌고 있는데?”
“디테일하지는 못하지.”
“단언할 수 있어?”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지 크리스탈이 주고 있는 사회 혼란을 말 해봐라, 네 입으로 직접.”
“그야...”
드낙이 눈알을 굴렸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냉큼 드낙을 찔렀다.
“봐라, 못 하잖아. 확실히 경제면에서는 압도적인 성장을 이룩해낼 수 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서서히 이미지 크리스탈에 적응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과도기다. 그런 사람 절반, 안 그런 사람이 절반이다.”
“그래서 제재를 해야 한다고?”
“그래. 급박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냥 버려져야 한다. 남 일이라고 웃어넘기는 개만도 못한 놈이 되고 싶지는 않겠지?”
드낙은 말은 투덜거렸지만, 세파리아스의 의견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세파리아스가 많이 준비한 티를 너무 많이 내서였다. 작정하고 드낙을 기다린 듯했다. 함정에 걸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것으로 조금 더 발전된 방향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어림도 없는 착각에 불과했다.
“전체적인 군비가 줄어들었다.”
가장 먼저 자연적으로 군비축소를 논했다. 실로 전쟁광 같은 면모였다.
“무기 연구, 개발하는 자들이 이미지 크리스탈의 대체재를 제작하거나, 이미지 크리스탈을 만들어서 팔기 바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공장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
“저번달 생산률은 유지되고 있지만 이번 달부터 계속 하락세다. 아직 뿔쥐들로부터 정보를 못 들은 듯하군. 기술자들이 딴짓하기 바쁜데, 그걸 제대 안 하고 가만히 놔둘 수가 있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
강력한 제재가 필요했다.
“드낙! 평화는 결코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를 가볍게 여기고, 오늘도 내일 같음을, 내일도 오늘 같음을 너무나도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너나 나나 그래서는 안 된다.”
“......”
‘참, 말 잘한다. 순간 혹 할 뻔.’
평화를 위해서는 군대가 반드시 존재해야 했으며, 평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게 군대였다. 힘이 없으면 자식이 강간당하고, 머리채 잡혀서 탄광에 처박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를 모르는 자들이 수두룩했고, 그런 자들의 머릿수만큼 사악한 자들이 있는 게 이 세상이었다.
“감소한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나잖아. 조금은 다른 곳에 눈을 돌려도 괜찮지 않을까? 경제 총량이 증가하면 결국 군비 또한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되잖아.”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걸린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뒤로 넘긴다고? 미래의 네가 확실하게 해준다는 보장이 있나?”
“갑자기 미래의 나는 왜 거론하고 그래?”
“딱 봐도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지 크리스탈 때문에 그 얘기밖에 안 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조차도 그 현상 때문에 아이들의 성적이 낮게는 10%, 크게는 50%까지 떨어졌다.”
‘와, 씹꼰대...’
드낙이 손발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그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 사실 공부를 지독하게 싫어했던 게 박호훈이었다. 그만큼 그는 실효성 있는 교육 외에는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워야 할 이유가 없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동시에 과목마다 자격증 제도를 통해서 실력이 있고, 재능이 있으면 바로 패스할 수 있도록 했다.
고로, 이 사태는 평범하지 않았다.
“진짜 제재를 가해야 하나?”
“이런 빌어먹을, 정말 머리에 꽃이 가득하구나. 중립신을 죽이고 나서 그냥 아무 생각이 없지?”
“엉.”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큰 걱정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계인 때문에 조금 겁을 먹었지만, 그마저도 그들을 속여서 역공을 취한다는 전략을 세운 뒤로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되려 그 속이는 맛에 다종족 연합의 영향력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
세파리아스가 빡칠만 했다.
“그래도 삶의 재미를 그렇게 강제로 빼앗아도 될까?”
자유의지에 대해서 드낙이 말하자 세파리아스가 코웃음 쳤다.
“그딴 식으로 생각하면 마약을 유통해도 상관없겠군. 말 그대로 개인 의지니까.”
“......”
결국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설득할 수 없었다. 하나같이 정론이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해야겠어.”
“그건 신제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자치왕국은 그 치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신제국과의 경쟁을 포기한다면 제재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말에 더욱 드낙은 쫄깃한 마음이 들었다. 상위인간보다 더 대단한 인간들의 국가? 그렇게 되면 자치왕국은 얼굴도 들어 올리기 힘들 터였다.
‘특히 지금은 과도기다.’
발전한다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되려 세파리아스는 자치왕국의 ‘자유의지’를 드높였다.
‘질이 나빠.’
드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높였을 때, 이를 손쉽게 빈정거린 만큼 자치왕국 또한 다를 바 없다는 소리였다. 동시에 세파리아스는 실로 독재자 적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철권통치.’
철인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판단 하나 까딱 잘못하면 다 말아먹는 시스템이었다. 독재자에 대한 불신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드낙으로서는 세파리아스의 모습이 실로 배알이 꼴렸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열등감도 한 스푼 들어갔다.
“제재에 대해서는 적정 수준까지 하도록 할게. 근데, 그분만큼 다른 문화를 활성화시켜야겠어.”
“건전한 거냐?”
“건전하다 못할뿐더러 치안에도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흥미를 느꼈다. 드낙의 아이디어는 제법 그럴듯하거나 참고할 만했고, 혁신적이었다. 너무 혁신적인 게 문제라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어떤거지?”
그 물음에 드낙이 웃었다.
‘딱 대. 이 새끼야.’
“세파리아스 피규어.”
“그게 뭐냐?”
세파리아스가 순수하게 물었다. 개념 자체를 몰라했다. 그렇기에 드낙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
<레드 쉴드 용병단>.
병장 아메리고가 하고 있는 용병단의 이름이었다. 그냥 붉은 요새의 방패병을 참고해서 만든 이름이었다.
그들은 <흘러 지나가는 성>으로 언제나처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일단의 무리가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대를 확인해보니 일몰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우리도 여기서 야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하필이면 우리가 매번 자리 잡는 곳에 잡았네.”
상등병 리셸의 말을 들으며 아메리고가 짜증을 냈다. 매번 용병업을 하면서 돈을 벌 때마다 항상 야영을 하던 곳에 상대 용병단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 때쯤 손을 흔들며 대충 인사했는데, 아메리고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저렇게 덩치가 커?”
하프 드워프의 덩치는 작은 거인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절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총이네?”
하나같이 장총을 들고 있었다. 단발형식이었지만 전부 대구경이었다.
“저길 보시면, 마차인데 기름 가죽으로 꽁꽁 덮은 게 있습니다. 아마 탄약 수레 같아 보입니다.”
“신기하네. 총은 처음 보는데...”
“썩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확인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무조건이지.”
초월자 파동파악 마법탑을 짓고 있었기에 지금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파견대였다. 그런 차에 들어온 새로운 정보는 실로 환영할만했다. 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맛있는 것을 요리해서 들고 그들을 찾아갔다.
“기름으로 튀겨낸 고기라고?! 맙소사! 세상에!”
“호우! 호우!”
그들은 이를 환대해줬다. 역시, 여행길에서 마주쳤을 때 중요한 건 먹거리였다. 드낙에게 훈련을 너무 받아서 접대가 손에 배어있는 모습이었다.
실패한 경력조차도 훌륭한 커리어로 만들어낼 수 있게 변모된 하프 드워프들은 단번에 가벼운 고기 튀김 요리조차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희는 숯을 전달하러 흘러 지나가는 성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 쪽분들은 어디로 가는 길이십니까?”
은근히 자신들의 총을 보여주며 이를 물었다. 알아 쳐주길 바라는 모습이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은근하게 접근해야 하지.’
상대가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숯숯 마을의 백탄을 직접 조달하러 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직접 가는 편이죠.”
“아하...”
조금씩 서로에 대해서 대답하다가 이내 안달이 난 아메리고 병장이 먼저 자신의 총을 보여줬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뭡니까?”
“총입니다. 총.”
“총? 그게 무슨 단어요?”
서로 단어의 혼동까지 보여주는 디테일을 보여줬다. 이내 서로의 총이 비슷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건 블랙 피닉스라는 놈입니다. 천둥 소리를 내며 보이지 않는 속도로 상대를 죽일 수 있습니다.”
“아하.”
“아아, 이건 총이라는 것입니다. 천둥 소리를 내며 보이지 않는 속도로 수십 발을 쏠 수 있습니다.”
아메리고 병장은 단번에 저들이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정보를 툭 내던졌다.
“호오.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하십니다.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해서 되겠습니까?”
상대는 자신들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번 교환해서 사용해보지 않겠습니까?”
“좋지요.”
‘됐다.’
일단 우월한 총기의 위력으로 상대를 주눅이 들게 만들고 나서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이었다. 대가로는 총기 하나와 탄약 3개 정도 쥐여주면 된다고 여겼다. 어차피 따라 할 수 없었고, 따라 할 수 있다고 해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정도로 장총은 모두 자잘하게 구경에 차이가 있었다. 대장간 같은 곳에서 그냥 손으로 만든다는 소리였다. 그런 실망감 속에서도 반드시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총기는 강력하니까.’
상위 인간도 제대로 한 대 맞으면 골로가는 게 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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